하나님께로 돌이키자

[요나 3장 1절~10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절 -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절 -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절 -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절 -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절 -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절 -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절 -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절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부족한 순종과 하나님의 은혜

[요나 3장 1절~10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절 -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절 -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절 -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절 -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절 -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절 -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절 -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절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니느웨는 오늘날의 ‘니네베’(Nineveh)로, 지금의 이라크 땅 북쪽에 위치한 시리아와 터키 접경 지역의 땅입니다. 니느웨는 대제국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앗수르가 세상을 호령하던 30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잦은 침략과 약탈로 고통을 당하며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요나는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달받지만, 그들이 혹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까 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해 니느웨 반대편 다시스로 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풍랑과 물고기 배 속에서의 시간을 통해 결국 니느웨로 갔습니다. 니느웨 성은 성벽의 높이가 30미터에 달했고, 출입문의 폭은 4대의 전차가 나란히 지나갈 만큼 거대한 성이었습니다. 면적도 3일을 걸어야 할 만큼 넓었습니다. 요나가 하루 동안 다니며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전했는데, 놀랍게도 악독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진정으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으로부터 시작된 회개 운동은 왕에게까지 전달되어, 회개가 공식 칙령으로 선포됩니다. 심판의 선포를 들은 니느웨 백성의 즉각적 반응은 요나의 마지못한 순종과 대조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마 12:41)라고 하시며, 요나보다 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정죄하셨습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명하신 것은 무엇이며, 요나는 어떻게 하나요?(1~4절) 이때 요나의 심경은 어땠을까요?

하나님은 두 번째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에 요나는 하루 동안 다니면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마지못해 순종하는 심경으로 심판 메시지를 전했을 것입니다.
니느웨는 3일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으로 면적은 약 220만 평에 달합니다. 인구는 12만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 앗수르가 대제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지배할 때 오랜 시간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용한 채찍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앗수르는 원수와도 같았습니다. 앗수르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였음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강대국이 되었고 허다한 나라를 멸망시켰다고 자랑했습니다(사 10:5~19). 이웃 나라에 행한 앗수르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큰 악이었습니다(1:2). 하나님은 니느웨를 심판하기로 결정하셨고, 요나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파송하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풍랑과 물고기 배에 갇히는 사건을 겪은 후에야 다시 하나님의 명령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불순종으로 호된 사건을 경험한 요나였지만, 여전히 그는 마지못해 순종하는 심경으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는 심판 메시지를 전했을 것입니다.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불순종을 선택하는 이유는 대체로 무엇인가요? 억지로라도 순종해서 좋은 결과를 본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99퍼센트 순종하는 것은 불순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23). 순종을 방해하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간 것은 불순종이었고, 당돌한 행동이었으며 대단한 용기에서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상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원수 니느웨가 회개해 멸망을 피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은 ‘즉시’, ‘기쁘게’, ‘온전히’ 행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마지못해 하는 순종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순종하기 괴롭고 두려운 일일 경우는 주님께 순종할 마음과 의지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온전한 순종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2. 요나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하나님은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들을 보시고 어떻게 하시나요?(5~10절)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합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 금식하며 악에서 떠나도록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한 진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요나가 하루 동안 전한 심판 메시지를 듣고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은 니느웨 사람들의 단계적 변화를 보여 줍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어 ‘아만’은 확고하고, 신실하게 신뢰하며, 지지하면서 진실을 입증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처음 사용했고(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오늘날 기도 끝에 붙이는 ‘아멘’(Amen)이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생겨난 것입니다. 그들은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동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베를 입었습니다. 왕이 듣고 자신도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으며, 조서를 내려 전 국민이 금식하게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보시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전하는 자는 부족해도 복음의 메시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나의 부족한 순종에도 하나님은 거대한 성읍 니느웨를 회개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자격 없는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고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은 악독한 니느웨 백성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이 때로 뜻을 돌이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복음을 전함으로 선한 열매가 있었다면 나누어 보세요.

호주 시드니의 작은 거리에서 40년간 거의 매일 사람들에게 “선생님, 오늘 밤 죽는다면 천국에 가실 확신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으며 전도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전도했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노인이 되어 더 이상 전도를 하지 못하게 된 어느 날, 영국의 한 목사가 찾아왔습니다. 영국의 목사는 지난 3년간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만났던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호주의 작은 거리에서 “선생님, 오늘 밤 죽는다면 천국에 가실 확신이 있으십니까?”라고 말하는 한 사람의 전도를 들은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이 전도자의 이름은 프랭크 제너(Frank Jenner)로, 그는 40년간 고작 두 문장 외에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지만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몇 주 뒤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능력이 있고, 순종은 놀라운 열매를 맺습니다.


요나가 두 번째 하나님의 명을 받고 마지못해 순종해 니느웨에 심판 메시지를 전합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금식하면서 회개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심판의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심판이 아닌 회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요나에게도 다시 말씀에 순종할 기회를 주시고, 악독한 니느웨에도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순종 여부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순종에도 하나님 말씀은 능력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제사보다 나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이 소중히 보시는 한 영혼을 저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저도 기뻐하게 하소서. 요나처럼 부족한 순종에 머물지 않고 매사에 즉시, 온전히 순종하도록 저를 단련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요나 4장 1절~11절]
1절 -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절 -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절 -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절 -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절 -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절 -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절 -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절 -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절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는 니느웨에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며 화를 냅니다. 요나가 성밖 동쪽에 초막을 짓고 돌아가는 형편을 지켜보자, 하나님은 박 넝쿨을 통해 요나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아끼시는 것은 그 안에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요나의 불만 (1~3절)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원한다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속한 앗수르가 이스라엘의 적국이라는 이유로 멸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니느웨의 심판을 철회하시자, 그는 매우 싫어하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며 성을 냈습니다. 자신은 불순종을 회개하고 용서받았으면서, 니느웨의 악독이 용서받는 것에는 인색했습니다. 용서보다 심판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품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대와 반대로 일하신다면, 화가 나고 심지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주권에 겸손히 순복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니느웨에 심판이 아닌 용서가 임하자 요나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이 내 기대와 다르게 역사하실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하나님의 교훈 (4~11절)

열방을 향한 하나님 사랑을 아는 것이 모든 사역의 시작입니다. 요나는 선민의식과 편견으로 모든 사람을 품지 못했습니다. 우상 숭배자요, 이스라엘을 괴롭힌 악한 이방인을 멸망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웃(형제)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태도를 참으시고 박 넝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십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영적 무지와 죄악에 빠진 영혼을 그분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박 넝쿨을 통해 요나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품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입술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제게 유익을 주는 작은 물건보다도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저의 눈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를 깨우치시고 제 마음을 넓혀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에서 돌이킨 이들을 위해 심판의 뜻을 돌이키시다

[요나 3장 1절~10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절 -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절 -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절 -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절 -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절 -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절 -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절 -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절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다시 말씀을 받은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 후에 성이 무너질 것임을 예언합니다. 그 말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왕은 모두가 금식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라고 조서를 내립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회개에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1. 니느웨의 회개 (1~8절)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요나는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 다시 말씀의 통로로 쓰임받습니다. 이번에는 '여호와의 말씀대로'(3절) 니느웨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기중심으로 불순종하던 요나는 이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악독이 가득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전심으로 회개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백성에게서 시작된 회개 운동이 위로 왕에게까지 이어져, 회개가 공식 칙령으로 선포됩니다. 니느웨 백성의 즉각적인 순종과 회개는 마지못해 순종한 요나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8절)에서 돌이키는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 니느웨 백성은 요나가 전하는 심판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나요?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공동체적으로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용서 (9~10절)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겔 33:11). 니느웨 백성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죄악을 버리자, 하나님이 심판 계획을 철회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을 바꾸지 않으시지만(민 23:19 참조),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해 뜻을 돌이키십니다.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심판 철회는 심판 직전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 줍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믿고, 회개하고, 죄악을 버리면 구원과 회복의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용서와 구원은 독생자를 희생시킨, 값싼 은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니느웨를 멸망시키시려는 뜻을 왜 돌이키셨나요? 심판 뜻을 돌이키시는 용서의 하나님 앞에 회개의 자리로 초청할 이웃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최소한의 순종에도 기뻐하시며, 최선의 결과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구원받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제 편견으로 판단하지 않고, 누구에게든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는 자마다 하나님 앞에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기도로 이끈 고난, 다시 얻은 새 삶

[요나 2장 1절~10절]
1절 -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절 -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절 -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절 -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절 -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절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절 -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절 -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절 -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절 -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자신이 받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며 은혜를 구합니다. 또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합니다.

● 요나의 기도
고난은 인간적인 고집을 내려놓고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구하게 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간 것은 죽음의 경험과 유사합니다. '스올'(2절)은 땅 밑,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무덤과도 같은 곳입니다. 요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소명을 저버리고 헛된 것을 섬기는 자처럼 행동했기에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물고기 배 속에서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고(4절) 하나님을 기억하면서(7절), 감사로 제사드리고 서원을 갚겠다고(9절) 기도하자 다시 기회를 얻습니다. 온전한 회개에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요나의 기도는 죽음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고난의 때일수록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기대하며 겸손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죽음에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하나님 능력의 통로입니다.

* 죽음과 같은 물고기 배 속에서 요나 선지자가 한 일은 무엇인가요? 죽음과 같은 고난의 상황에서 주권자 되신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불순종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긍휼

[요나 1장 11절~17절]
11절 -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절 -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절 -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절 - 무리가 예수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절 -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절 -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절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점점 흉용해지는 바다를 잠잠케 할 방법을 묻는 이들에게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합니다. 사람들은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지만 더 거세지는 폭풍에 하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바다가 잠잠해지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 그분께 제물을 드리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킵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무리 (11~16절)
한 사람의 불순종은 여러 사람을 고통 가운데 빠뜨리기도 합니다. 요나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다시스로 가던 배는 파선 위기에 처했습니다. 문제의 근원인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자 바다가 일순간에 잔잔해지고, 선원들과 무리는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요나가 섬기는 하나님이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9절) 참신이심을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요나는 거역하고 반대 방향으로 갔지만, 선원들과 무리는 요나가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제물을 드리며 서원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을 징계하시는 과정에서도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열방에 드러내시며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 요나를 바다에 던진 후에 배에 탄 이들이 알게 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만물의 통치자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 고집이나 불순종은 무엇인가요?

2. 물고기 배 속의 요나 (17절)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살길을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다에 던져질 요나를 위해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말씀을 어긴 선지자는 마땅히 죽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순종하는 요나를 삼킬 '큰 물고기'를 예비하신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여 줍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물고기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물고기 배 속은 요나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죽음의 장소 같지만 요나를 거친 바다로부터 지켜 주는 피난처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밤낮 3일간 있었던 사건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는데 인용하십니다(마 12:40).
* 하나님이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순종을 반복하는 데도 하나님은 내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나요?

오늘의 기도
이기적인 태도와 고집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저를 새롭게 하시고자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절망 속에 삼켜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저를 고치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열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순종과 불순종, 옳은 선택은 하나뿐입니다

[요나 1장 1절~10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절 -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절 -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절 -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절 -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절 -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8절 -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9절 -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절 -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 하셨지만,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칩니다. 큰 폭풍이 일자 선장은 잠자던 요나를 깨우고, 재앙이 누구 탓인지 알고자 제비를 뽑습니다. 제비로 뽑힌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했다고 고백합니다.

1. 순종하지 않는 선지자 (1~3절)
선지자는 대개 '거룩한 자', '신실한 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아밋대('진실한, 신실한'이라는 뜻)의 아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니느웨가 속한 앗수르가 이스라엘의 적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서쪽에 위치한 다시스(오늘날 스페인)는 당시 세상 끝이라고 여기던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통치자로서 니느웨성의 악독까지 감찰하십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버린 것이며 죽음의 길입니다. 온 우주를 경영하시는 전능자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감정이나 기호에 따라 순종과 불순종을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요나 선지자가 불순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요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4~10절)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영역에 미칩니다.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은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십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갔지만, 결국 하나님의 손바닥 안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큰 폭풍은 요나로 하여금 육체의 잠과 영혼의 무감각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재앙의 원인자로 요나가 제비 뽑힙니다. 그제야 요나는 '나는...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며 자기 정체성을 되새기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한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인생에 찾아오시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개입하십니다. 불순종을 돌이키는 데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됩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 경외함은 겉포장만 그럴듯한 선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요나의 불순종을 돌이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행하셨나요? 내가 불순종할 때마다 하나님은 어떻게 개입하셨나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에 순종하기 싫다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제가 원하는 길로 갔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악한 제 모습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제가 경외할 대상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허락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요나서

이방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메시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사랑하시는 민족의 신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요나서의 메시지를 통해 이방인들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심으로써 배타적 선민사상을 가진 이스라엘(요나로 대표됨)을 깨우쳐 주신다.

요나서 한눈에 보기

본문

1:1~4

1:5~17

2:1~10

3:1~10

4:1~6

4:7~11

구성

하나님의 명령과

요나의 도피

불순종에 대한 징계

요나의 회개와 구원

요나의 순종과

니느웨의 회개

요나의 불평

박 넝쿨을 통한 교훈

초점

요나에게 임한 명령

니느웨의 회개와 구원

주제

요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긍휼

니느웨에 임한 하나님의 긍휼

장소

다시스로 가는 바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시기

BC 760년경 (니느웨 방문 시기)


역사적 배경

열왕기하 14:25절이 요나를 여로보암 2세의 통치와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에 요나서의 사건들은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시대에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나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 왕인 여로보암 2세는 북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왕하 14:23~29). 일찍이 앗수르는 근동에서 군림하는 위치를 차지했고 예후로부터 조공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아람 족속들을 물리친 다음에 내부적인 다툼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 기회를 틈타 여로보암 2세가 아람에 속해 있던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대 이래로 가장 넓은 영토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세아와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은 불경건한 이스라엘을 향해 임박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스라엘이 완악했기 때문에 동쪽으로부터 일어나는 이방 족속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암 5:27)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요나서의 기록 목적

요나서는 다음 내용을 교훈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① 하나님의 보편성 선포 :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방 세계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어야 한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들의 민족 신으로 여겼던 이스라엘 민족의 관점에서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② 항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 요나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더 확고히 보여 주었다. 요나의 항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어코 그를 니느웨로 보내셨고, 니느웨를 구원하셨다.

③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 : 요나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구원의 조건은 철저한 회개이다.

④ 그리스도의 예표 :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 3일간 들어가 있다가 살아 나온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예표가 된다. 예수님이 직접 이러한 사실을 밝혀 주셨다(마 12:41).

⑤ 이스라엘을 향한 교훈 : 이스라엘 민족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더라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요나서의 문학적 특징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 3일간 있었다는 사건을 두고 요나서를 신화나 우화 혹은 비유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요나서를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2장에 나오는 기도를 제외하면 그 당시 시 형태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이야기들과 달리 요나서는 직설문적인 산문으로 서술되어 있다. 또한 성경은 요나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거론하고 있다. 특히 요나의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심과 부활에 대한 표적으로 언급되었다.

요나서는 문학적으로 두드러진 대칭 구조를 보여 준다. 또한 요나서에는 역설이 풍부하다. 선지자의 불순종은 선원들의 놀라운 믿음과 대조가 되며(1장), 요나의 박 넝쿨에 대한 속 좁은 생각은 니느웨의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긍휼과 대조가 된다(4장).


요나서의 주인공

요나서의 주인공은 이 책을 기록한 요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요나서 전반에 걸쳐 주인공으로 등장하신다. 하나님은 요나를 부르시고, 요나가 불순종할 때 폭풍을 보내셨다. 선원들이 요나의 사정을 봐 주지 못하도록 폭풍을 더 심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요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큰 물고기를 준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요나의 기도에서 감사와 찬양의 대상이 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요나서에서는 하나님이 38번이나 언급되었다(NKJV). 그러므로 요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고, 요나의 선포가 성공하자 진노의 손길을 보류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 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보내셔서 요나에게 교훈하신다. 반면에 요나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가 힘 있고 강력한 효과를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간 까닭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는 이스라엘이 점차 부강해지던 여로보암 2세 때였다. 이때의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대적인 세력이었다. 더구나 앗수르는 포악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민족이었다. 요나는 이런 앗수르의 큰 도시 니느웨가 죗값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니느웨가 멸망당하기를 바랐다. 그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방 민족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니느웨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티그리스 강 동쪽으로 약 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도시로, 앗수르의 수도였다. 고고학자들은 1842년에 거대한 니느웨의 잔해를 발견했는데, 발굴 작업 결과 거대한 궁전의 흔적과 앗수르의 이야기를 담은 수천 개의 묘비를 발견했다. 발굴에 따르면, 니느웨 시는 약 30미터 높이의 성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벽이 아주 두꺼워서 네 대의 전차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고, 또 성벽에는 수백 개의 탑이 있었으며 성벽 둘레에는 넓이 42미터, 깊이 18미터의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튼튼했던 도시 니느웨는 BC 612년경에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에게 점령당했는데, 티그리스 강이 갑자기 흘러넘쳐서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고, 이를 통해 적군이 쉽게 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니느웨가 그렇게 빨리 회개했던 이유

니느웨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로부터 약 884킬로미터 떨어진 티그리스 강 동쪽 제방 위에 위치하고 있었고, 바벨론과 마찬가지로 외곽의 성벽과 내곽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내곽 성벽의 넓이는 15.24미터, 넓이가 30.48미터나 될 정도로 큰 성읍이었다. 이렇게 난공불락의 도시처럼 보이는 철옹성에 요나가 도착하기 전 몇 가지 재앙이 덮쳤고(BC 765, 759년), 또 개기일식이 BC 763년 6월 15일에 발생했다. 니느웨 백성에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표징으로 받아들여졌고, BC 759년에 요나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자 니느웨는 즉각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재기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요나 3장 1절~2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추운 날씨 때문에 길도 얼어 붙어서 빙판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져서 아파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제 갈 길로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사노라면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빨리 넘어진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자가 정녕 지혜로운 자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는 인생을 살기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처음 기회를 잘 포착하여 재기함으로써 단 한번에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고 두번째, 세번째의 기회를 포착하여 재기함으로써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요나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 죽을뻔 했으나, 큰 물고기 뱃속에서나마 회개하고 기도하여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 3: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이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실패하고 잘못했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유명한 화가 휘슬러(Whisler)란 사람은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에 입학하려다가 화학 점수가 나빠서 낙방을 하고 공학도가 되려다가 그것도 실패했으나 그의 재능을 최대한 개발하고 노력한 결과 세계적인 대 화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유명한 설교자 필립 부욱스(Philp Brooks) 목사는 양복점의 직공으로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이것 저것 실패하다가 복음 전도자가 되어 세계적인 설교자가 된 것입니다.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실망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도리어 사람은 실망할 수밖에 없는 실패의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실패의 고배를 몇 번이나 마신 뒤에 성공한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에도 연합군이 독일에 대패한 뒤에 영국과 불란서가 다시 반격하여 히틀러를 굴복시키고 말았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도 미국과 영국이 참패를 당하고 진주만, 싱가폴, 필리핀까지 다 내놓고 맥아더 장군까지 쫓겨났다가 다시 일어나 싸워서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때로는 우리가 실수하고 범죄하여 좌절하고 넘어질 때가 있으나 곧 뉘우치고 회개하고 나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두번째 기회를 주십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했으나 회개하고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목 매달아 자살하고 말았으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는 큰 죄를 범했지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눈길과 마주칠 때 통곡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똑같이 막중한 죄를 짓고도 이들이 각자 취한 자세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 운명의 차이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회개한 베드로를 찾아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것처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곧 재기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나쁘지만 회개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쁘고 '에라 모르겠다. 나같은 놈이 무슨 신앙 생활을 하겠느냐'고 주저 앉아버리는 것은 더 나쁜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도, 성령충만 받았던 사람도 실수할 수도 있고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범죄한 후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와서 타이르고 책망하는데도 돌이키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패망하고 비참한 종말을 고하고 말았지만, 다윗은 범죄했을 때 이름도 없는 시시한 선지자 나단이 와서 책망할 때 그 자리에 거꾸러져 눈물로 회개하여 용서받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위대한 왕으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마귀란 놈은 죄짓기 전에는 '한 번쯤은 괜찮다 한 번만 해보라'고 유혹하지만 일단 범하고 나면 '큰일났다 너 같은 것을 누가 믿는 성도로 보겠니? 너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낙심시킵니다. 곧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범죄케 유혹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죄짓고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 앞에 일어서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속임수로 우리를 낙심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졌을 때 취할 자세는 어떤 것인가 살펴봅시다.

1. 낙망치 말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한 소망은 있습니다. 골드 스미스(Gold Smith)가 말하기를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실패할 때마다 일어나는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제임스 존스(James Jones)는 '영웅의 참으로 위대한 점은 한 번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전에 피부병의 특효약 606호라는 약이 있었습니다. 왜 606호라고 했는가 하면 그 약을 발명한 사람이 자그만치 605번이나 실패를 하고도 낙심치 않고 연구와 실험을 계속한 결과 606번 만에 성공하여 만든 약이라 606호라고 했다고 합니다.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2. 다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한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없고 훌륭한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 43: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전 일을 묻지 않으시며 현재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최선을 요구하시며, 또한 바로 지금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반면 마귀는 언제나 지난 일을 생각하게 만들고 나쁜 과거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옛날의 실패를 자꾸 생각하지 맙시다. 사도 바울도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하였습니다. 노르만 필(Norman V. Peale) 박사는 건강한 생활을 하려면 하루에 두 번 이상씩 마음을 세척하라고 했습니다. 매일 세수하듯이 손을 씻듯이 마음에 좋지 못한 기억을 씻어버리고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3. 변명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든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든지 하면서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며 변명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왜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고 물으니 '당신이 나에게 주신 하와 때문에'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하와에게 물으니 '하나님이 만든 저 뱀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고 변명했습니다. 좋지 못한 습성입니다. 요나는 폭풍을 만났을 때 그 폭풍이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잠잠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 내가 아노라"(욘 1:12)고 솔직히 고백할 때 결국 자기도 살고 그 배에 탔던 사람도 살았습니다. 사울은 범죄했을 때 변명하고 책임 전가하고 원망하다가 결국 멸망했고, 다윗 왕은 솔직히 고백하며 회개하여 용서받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임금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하거나 범죄했을 때 변명하거나 원망하면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여 다시 일어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하나님께 절망은 없다

[요나 3장 1절~6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절 -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절 -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절 -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절 -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생활을 합니다. 비록 지난 한 해를 실패와 낙심으로 보냈다 할지라도 다 묻어 두고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작년과 엇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며 또다시 실망하게 되지 않습니까. 새해에 거는 기대와 포부는 금새 실망과 절망으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절망은 없습니다.
오래 전 어느날 아침에 천호동 쪽에 있는 엘칸토 구두 회사에 가서 구두공장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그 회사는 회사원을 모두 다 합치면 거의 천명이나 되는 큰 회사라고 합니다. 엘칸토 교회 목사님께서 구두 공장을 안내해 주시면서 설명을 해주시는데, 구두 한 켤레가 나오려면 100번 내지 250번이나 손이 가는데 구두는 두드려 맞을수록 맵시 있고 예쁜 구두가 된다는 말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많은 고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연단을 받아 훌륭한 인물이 되고, 더욱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많이 두들겨 맞아야 나중에 훌륭한 그릇이 되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값비싼 진주는 조갯살에 모래알이 들어가 부드러운 살을 고통스럽게 하니까, 그것을 진액이 나오게 감싸주다 보면 나중에 비싼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통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에게는 좌절과 절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절망이 도리어 하나님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되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역경과 실패에도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좌절이나 절망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실패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지워져 큰 물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회개하며 기도했더니 물고기가 니느웨성 해안가에다 요나를 토해 놓았습니다.
요나는 대실패자였습니다. 철저한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내어버리지 않고 다시 찾아와 용기를 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나 3: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고 했습니다. 두번째에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대찬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또 다시 성공의 기회를 주시고, 승리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실패란 없습니다.

영국의 시인 골드 스미스(Gold Smith)는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적마다 일어나는 데 있다'고 했으며, 제임스 존스(James Jones)는 '영웅의 참으로 위대한 점은 한번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모든 아픔과 고난은 보다 좋은 유익을 낳는 씨앗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진정한 실패자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법원의 서기가 되려다가 실패했고, 그가 사랑하던 여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경험했고, 1831년에는 사업을 하다가 동업자의 배신으로 실패를 했고, 1832년에는 주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을 했고, 1833년에는 사업에 실패하여 7년 동안이나 빛을 청산했고, 1836년에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신경쇠약 환자가 되었고, 1838년에는 하원의원에 출마했다고 낙선했고, 1843년에는 상원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1856년에는 부통령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1860년에 가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후 괴한의 흉탄에 맞아 사망했으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실패의 씨앗 속에는 보다 큰 성공의 가능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실패란 없습니다. 철저히 실패한 요나에게 찾아와 다시 말씀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얼마든지 성공의 기회를 다시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사람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달아나다가 풍랑을 만나 큰 물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간 요나를 다시 일으켜 쓰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소망이 없어 보이는 몹쓸 사람도 크게 들어 쓰시고, 성공의 기회를 주십니다.

조금 전에 말한 아브라함 링컨은 사실 국민학교도 졸업을 못한 사람인데,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기도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반드시 일류대학을 나와야만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아는 한때, 술에 몹시 취해서 옷이 다 벗겨진 줄도 모르고 잠자다가 창피를 당했던 인물인데 구원받은 의인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인을 주먹으로 때려 죽인 후 미디안 광야에 가서 목동 노릇을 하던 사람인데 이스라엘을 구출해낸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다윗 왕은 마귀의 시험에 들어 간음죄를 짓고, 부하 장수를 일선에서 싸우다가 죽게 만들기까지 한 사람인데 후에 가장 훌륭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까지 한 사람인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다시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큰 사명을 맡겨 주시고 위대한 그릇이 되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체포해다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인데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시고, 신약성서의 2/3를 기록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몹쓸 사람이란 없습니다.

고전 1:27~29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비극은 자기의 연약함과 자기의 죄와 자기의 추악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디(D.L. Moody) 선생 같은 분은 국민학교도 못나온 사람이라, 15분 설교하는 문법이 16군데나 틀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코맹맹이 소리에 인물이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북미와 영국을 크게 부흥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절망적인 몹쓸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환경이란 없습니다.

요나는 폭풍을 만나 바다에 던지워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까지 들어간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으나 회개하여 기도할 때, 제2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믿음 안에서는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고전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시헝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실패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 좌절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역경과 고통을 주는 환경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 알콜 중독자의 가정이 술 때문에 파탄이 되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여러 해 후에 조사해 보니까, 두 아들 중에 한 아들은 술도 안먹고 성실한 인격자가 되고, 또 한 아들은 절망적인 주정뱅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째서 전혀 다른 정반대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고, 한 심리학자가 각각 두 아들을 만나서 '어째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 다 각각 말하기를 '당신 같으면 나의 아버지 같은 분을 모셨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똑같은 질문을 하더랍니다.

성공과 실패는 역경과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에서 10%는 사실에 의한 것이고, 90%는 반응에 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환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어린 소년 시절에 물맷돌 다섯개만 가지고 천하에 무적 장수 골리앗을 하나님을 믿고 대항해 나가 싸워서 물맷돌로 이마를 뚫어 쓰러뜨리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골리앗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으나,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는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실패의 첫째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사 41: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실패도 없고,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사람도 없고, 하나님께는 절망적인 환경도 없음을 믿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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