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를 굳게 지키라
[유다서 1장 1절~10절]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절 -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절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절 -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5절 -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절 -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절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8절 -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9절 -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절 -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자 야고보의 형제입니다. 유다서는 야고보가 순교한 이후 AD 65~80년경 기록된 서신입니다. 유다서는 야고보서, 베드로후서와 많은 부분 중복됩니다. 야고보서와는 여러 가지 시험을 극복하는 믿음이라는 주제를, 베드로후서와는 교회 공동체에 침투한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라는 주제를 공유합니다. 당시 유다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외부적으로는 영지주의를 표방하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과 유혹으로, 내부적으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음란 문화에 대한 영향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다는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그들은 천사들을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음란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유다는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내 경건한 삶을 독려합니다. 그는 교회 공동체 안으로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을 가리켜 ‘꿈꾸는 자’라고 합니다. 저들은 환상과 꿈을 앞세워 선지자인 척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스스로 성령을 받은 자로 자처하고 그렇지 못한 성도들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 하며 교회의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실상 저들은 사탄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습니다. 성도들은 늘 깨어서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궤계를 경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유다는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나요?(1절) 유다가 편지를 통해 그들에게 권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요?(3절)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임에도 겸손하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합니다. 유다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성도들을 권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유다는 인사말에서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형제임에도 자신을 종으로 낮추어 소개하는 것은 복음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바르고 겸손하게 전하려는 의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수신자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키심을 받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지키심을 받은’(1절)은 현재완료 수동분사로 ‘이미 지키심을 받았으며 또한 그 지키심이 일회적이 아닌 심판의 날까지 지속적인 것임’을 뜻합니다. 유다서에는 이 용어가 반복해서 사용됩니다(1, 6, 21절). 그만큼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만큼 당시 유대 공동체 안으로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의 영향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대 공동체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은 경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음란과 방종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영지주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방종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으며, 이런 자들이 받을 심판은 오래전에 이미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통해 언약의 말씀을 주셔서 악한 궤계에 넘어가지 않게 하십니다. 언약의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적용과 나눔
내게서 순수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럴듯하게 현혹하는 이단의 접근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는 성도들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거짓된 가르침으로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단의 공동체를 만들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대적에게서도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 눈동자처럼 지켜 주십니다(신 32:10). 교회 공동체에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영지주의 같은 이단 사상으로 무장한, 음란의 영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악한 세력과 음란의 영이 오늘날 한국 교회 전반에 침투해 목회자와 그들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더럽히며,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음란의 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첨단 산업과 기계 문명이 날로 발전해 가는 이 시대에도 사탄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의 수법은 오히려 더욱 간교해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단 사상을 전파하는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2. 유다가 심판의 본보기로 언급한 것들은 무엇인가요?(5~7절) 천사장 미가엘이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한 말은 무엇인가요?(9절)
유다는 심판의 본보기로 애굽에서 구원받았으나 후에 믿지 않아 멸망한 사람들, 자기 처소를 떠나 심판 날까지 영원히 결박된 천사들,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등을 언급합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마귀와 변론할 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교회 공동체에 가만히 들어와 은혜를 방종으로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래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 세 가지 사례를 들어 경고합니다. 5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열 정탐꾼의 그릇된 보고에 편승해 불신앙에 빠진 사건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20세 이상 된 사람들을 모두 광야에서 멸하셨습니다. 6절에서는 천사들이 타락하여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않고 떠난 일로 인해 하나님이 홍수로 지상을 쓸어버리셨을 뿐 아니라 최후 심판의 날까지 그들을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던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7절에서는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불 심판 받은 사건을 언급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 음란했기에 이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유다는 이단에 속한 거짓 교사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비방하는 패역한 일임을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다투어 변론한 예로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다는 거짓 교사를 심판하시는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적용과 나눔
주변에 하나님을 대적한 악이 심판받은 사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각자 바른 믿음의 길을 평생 어떻게 지켜 나갈지 나누어 보세요.
하나님은 그분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악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전 12:14). 교회 공동체에 침투한, 음란의 영을 가진, 육체를 더럽히는 거짓 교사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엄중한 불 심판이 예고됩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자신의 자리, 믿음의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 발걸음을 지켜 주시며 궁극적으로 형벌을 면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성결하게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육체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거룩한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슨 트로트맨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90%는 진리이고 10%는 거짓인 것과, 10%는 진리이고 90%는 거짓인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위험합니까?” 90%는 진리이고 10%는 거짓인 것이 더 위험할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별하기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며 악한 마귀를 따르는 무리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는 영적 전쟁 한가운데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유혹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꿈과 환상을 빙자해 구원의 진리를 오도하며 성도들의 믿음을 흔듭니다.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저들의 유혹을 우리는 간과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을 분별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는 말씀 묵상과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은혜를 빙자해 방종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데 힘써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복음의 은혜와 구원의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나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악하고 음란한 삶에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고 거룩한 믿음 위에 저 자신을 세우며 성령을 좇아 행하기에 힘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