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뜻으로 돌이킴이 복의 시작입니다

[학개 2장 10절~23절]
10절 -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절 -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절 -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절 -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절 -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절 -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절 -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절 -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20절 -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절 -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절 -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다리오왕 2년 아홉째 달 24일, 하나님이 백성과 나라가 부정하다 하십니다. 하나님은 밭과 포도주 틀과 과실나무의 소산이 적었던 때를 기억하라 하시고, 그러나 오늘부터는 백성에게 복을 주겠다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실 그날에 그분의 종 스룹바벨을 세우실 것입니다.

1. 그러나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10~19절)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하는 것은 참된 복을 얻는 길입니다. 학개가 제사장에게 두 가지로 질문한 것의 대답은 '거룩함은 접촉을 통해 다른 대상으로 옮겨지지 않지만, 부정함은 접촉을 통해 다른 대상으로 옮겨진다'는 의미입니다(레 21:1; 민 19:22). 이와 같이 죄는 쉽게 전염됩니다.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지내며 세상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백성은 지속적으로 성전에 나아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성전 재건은 그들이 부정함에서 회복되고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 위한 정결 의식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성전의 지대를 쌓기 시작한 그들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요 4:24)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 곤고함이 사라지고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여러 재앙을 통해 무엇을 깨닫기 원하셨을까요? 참된 복을 받아 누리려면 오늘부터 내게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할까요?

2. 하나님의 종, 스룹바벨 (20~23절)
하나님은 친히 택하시고 세우신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포로지에서 백성을 이끌고 본토로 돌아온 지도자 스룹바벨은 대적들의 반대와 공격, 내부의 회의와 불신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학개를 통해 스룹바벨을 격려하시며 그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 주십니다. 온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성전 재건을 위해 스룹바벨을 택하셔서 마치 하나님의 인장 반지처럼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남은 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는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성전 재건을 이끌 스룹바벨에게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하셨나요?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격려하시며,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돕고 격려하길 원하실까요?


오늘의 기도

죄와 세상 가치관에 물든 저를 회개의 자리로 이끄시며 '그러나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고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보잘것없는 저를 택하시고 세우셔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거룩하고 아릅답고 풍성한 삶으로 하나님 이름을 드높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가장 큰 영광입니다

[학개 2장 1절~9절]
1절 -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절 -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절 -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절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절 -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 -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 -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다리오왕 2년 일곱째 달 21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스스로 굳세게 해 일하라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언약하신 말씀과 그분의 영이 백성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셔서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클 것입니다.

1.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1~4절)
위대한 결단보다 지속적 순종이 더 중요합니다. 성전 공사를 재개한 백성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명에 헌신한 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받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크고 화려했던 성전에 비해 그들이 재건하는 성전의 규모와 외양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마음에 '고작 이런 성전을 지으려고 우리가 이토록 고생해야 하나?'라는 회의와 불만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낙심하는 백성에게 학개 선지자를 보내셔서 '스스로 굳세게 하여' 성전 재건에 매진하라는 메시지로 세 번이나 거듭 격려하십니다(4절). 사명의 길을 걷다 지치고 낙심될지라도 인내와 순종으로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 성전 재건 공사를 하던 백성이 실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명을 감당하던 지체들과 내가 회의와 낙심에 빠져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5~9절)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면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볼품없을지라도,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는 것은 하나님 언약의 성취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처소, '만군의 여호와'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재료와 형태로 지어졌느냐와 상관없이 가장 아름답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재건되는 성전은 장차 오실 메시아, 곧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 영광과 권능이 임합니다. 우리의 삶과 사역은 참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 하나님은 초라해 보이는 성전이 어떻게 영광으로 충만해질 것이라고 하셨나요? 내 삶과 사역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도록 어떻게 기도하며 힘쓸까요?

오늘의 기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부정적인 말을 하고 하나님 일을 쉽게 포기하려 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영이 끝까지 함께하심을 믿고, 마음을 스스로 굳세게 다잡겠습니다. 하늘 영광에 참여하는 기쁨과 감격이 제 안에 넘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으로 새롭게 하신 사명, 함께 이루는 하나님 역사

[학개 1장 1절~15절]
1절 -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절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절 -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절 -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절 -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절 -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절 -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절 -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절 -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12절 -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절 -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14절 -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절 -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다리오왕 2년 여섯째 달 초하루에 하나님이 선지자 학개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각각 자기 집은 빨리 지었어도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게 두어 하나님이 하늘의 이슬과 땅의 산물이 그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24일에 그들이 하나님의 전 공사를 시작합니다.

1. 성전 재건에 대한 책망과 권면 (1~11절)
사명을 외면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고레스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은 16년 동안 성전 재건하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나무로 만든 '판벽한 집'을 짓고 곡식을 많이 수확해 안락하게 사는 데만 온통 관심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소득은 형편없었고, 그들의 땅에는 가뭄과 기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이 본토로 돌아온 목적은 성전을 재건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뒤로하고 불순종한 그들의 행위를 깨우치시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고자 선지자를 통해 권면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은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삶의 우선순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 백성이 열심히 수고해도 풍성한 수확을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잘못된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요?

2. 다시 시작된 성전 재건 공사 (12~15절)
말씀을 좇아가면 위대한 역사가 성취됩니다. 여건과 상황이 좋지 않아도 사명을 위해 결단하고 헌신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합니다. 학개 선지자의 불같은 메시지를 듣고 백성은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16년 동안이나 중단했던 성전 재건 공사를 학개의 첫 설교 후 24일 만에 재개하고, 그로부터 약 4년 만에 완료합니다(스 6:13~22). 하나님이 순종하는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들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기꺼이 헌신할 힘을 주신 것입니다. 핑계, 변명, 합리화, 망설임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순종할 때 상상하지도 못한 길이 열립니다.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열매 맺는 길입니다.
*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백성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 마음을 감동시켜 행하게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말씀에 비추어 제 행위를 살펴봅니다. 사명을 잊고 세상적인 행복과 안정된 삶을 추구하기에 급급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듣고 받은 말씀에 순종하기를 미루지 않기 원합니다. 어떤 일을 하라고 성령께서 제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 머뭇거리지 않고 그 일을 시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새로운 시작

[학개 2장 20절~23절]
20절 -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절 -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절 -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우선순위

[학개 1장 1절~15절]
1절 -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절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절 -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절 -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절 -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절 -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절 -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절 -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절 -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12절 -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절 -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14절 -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절 -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함께하노라

[학개 2장 1절~9절, 20절~23절]
1절 -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절 -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절 -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절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절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절 -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 -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 -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0절 -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절 -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절 -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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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라
무엇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가? 유다 백성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자신들의 집안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느라 성전 재건을 등한시 한다. 이에 선지자 학개는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로 다시 세워지도록 책망과 약속의 메시지를 전한다. 개인의 필요보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이다.

학개 한눈에 보기

본문

1:1~15

2:1~9

2:10~19

2:20~23

요점

첫 번째 설교 (우선순위)

두 번째 설교 (관점)

세 번째 설교 (정결)

네 번째 설교 (약속)

주제

성전을 재건하라

영광이 충만하리라

저자

학개 (바벨론에 유배되었다가 1차 포로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연대

다리오 왕 제2년 (주전 520년경)에 임한 말씀들

장르

예언서

배경

바벨론이 페르시아(바사)의 고레스 왕에게 패한 지 약 20년이 지났다. 고레스 칙령 후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리라는 의욕과 다짐이 넘쳤다. 포로 귀환은 실로 제2의 출애굽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어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때 선지자 학개가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백성은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했다.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 땅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표지기 때문이다.


성전 재건의 선두에 선 학개

선지자 학개가 처음 등장하는 성경은 에스라서로, 성전 재건을 격려한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스 5:1). 때는 다리오 왕 제 2년, 주전 520년이었다. 학개와 스가랴는 멈추었던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라고 백성에게 권한다(스 5:1~2; 학 1:1; 슥 1:1). 이를 두려워한 관리들은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써서 성전을 다시 지어도 좋은지 허락 여부를 묻는다. 왕의 창고에서는 고레스의 칙령이 발견되는데, 유대인에게 성전 공사를 허락하는 내용이었다(스 6:1~12). 이에 다리오는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비용도 대 준다. 이렇게 해서 성전은 다리오 왕 제 6년, 주전 516년에 완공된다(스 6:15). 성전이 파괴된지 70년 만의 일이었다.


언제 일어난 일인가

학개는 네 번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정확한 날짜를 명시한다. 다리오 왕 제 2년 여섯째 달 1일(1:1), 일곱째 달 21일(2:1), 아홉째 달 24일(2:10; 2:20 세 번째와 네 번째 말씀은 같은 날 선포됨)의 일이다. 이를 현대 그레고리력으로 따지면 9월 21일, 10월 17일, 12월 18일이다.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라 (1:1~15)

학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에게 우선순위를 점검하라고 외친다. 백성의 생활은 어려웠다. 수확도 많지 않고 아무리 애를 써도 구멍 뚫린 전대처럼 전혀 넉넉해지지 않았다. 학개는 이것이 성전을 완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전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헌신의 표시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폐허가 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짓는 데만 열성이었다. 지금 삶의 초점이 구원자 되신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안락함에 맞춰져 있다면 문제가 있다. 학개의 선포는 정곡을 찔렀고, 곧 성전 건축이 재개되었다.


영광스런 약속 (2:1~9)

학개는 한 달 후 두 번째 예언을 선포한다. 아마도 첫 번째 선포로 일어난 백성의 열정이 식은 듯하다. 백성은 성전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건물이 과연 성전이란 말인가? 이 엉성한 건물을 어찌 과거에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학개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복된 약속 (2:10~23)

학개는 두 달 후 두 가지 예언을 더 선포한다. 첫 번째 예언은 제사장과 백성을 위한 것이다. 그들에게 죄에서 떠나라고 경고한다. 성전의 기초가 놓였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오고 있었다. 학개가 말하는 부정한 요소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를 피해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두 번째 예언은 스룹바벨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스룹바벨은 여호와의 '인장'이 될 것이다. 인장은 왕의 도장으로 공식 문서에 찍는 권위의 상징이다. 애굽 왕은 자기 손가락에서 인장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 주며 요셉에게 권위를 위임했다(창 41:42).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고니야(여호야긴) 왕이 하나님의 인장 반지라 해도 손에서 빼어 갈대아인에게 던져 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렘 22:24~25). 그러나 학개서에서는 이제 그의 손자인 스룹바벨(대상 3:17~19)을 다시 택하셔서 인장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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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9절)
재건될 성전의 영광 - 비록 제1성전(솔로몬)의 위용보다는 못하지만 지금 재건하는 제2성전(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영광이 더 찬연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격려의 메시지이다. 사실 인간의 판단은 그 대상의 외모를 기준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2성전의 기초석이 놓일 때 솔로몬 성전의 장엄함을 기억하고 있던 유다 백성들은 기쁨과 환희 이상으로 슬픔과 우울함을 나타내었다(스 3:12, 13).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떠나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는 메시지는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면에서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구속사의 큰 흐름이라는 측면에서도 희망찬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행 7:6, 구속사의 이해>.
[1절]
칠월 곧 그 달 이십일일. 학개의 두 번째 설교는 7월 15일부터 한 주간 동안 계속된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선포되었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어려움 가운데서도(1:6, 10, 11) 무사히 추수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모여 감사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백성들을 위로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예수께서 초막절의 끝날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상황을 바라보게 한다(요 7:37~39). 추악한 죄인들이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거룩한 성령의 전이라 불리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고전 3:16, 17; 고전 6:19, 20).
[3~4절]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성전이란 외형적 건물 뿐 아니라 그 속에 필수적인 성전의 기구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탈무드<마 15:2, 탈무드의 이해와 그 제한성>에 의하면 스룹바벨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제단의 거룩한 불, 하나님의 영광, 법궤와 스랍, 우림과 둠밈, 예언의 영 등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스룹바벨의 성전을 지은 백성들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사모하는 향수에 젖어 허무함까지 느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에게 이 전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을 일러주시며(9절), 또한 다시금 그들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큰 기쁨과 용기, 힘의 원천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5절]
머물러 있나니. 이 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망라하여 계속 함께 계셔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즉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그들의 통치자요, 인도자요, 공급자 및 보호자로서 일하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머물러 계시며 역사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어두워진 영성과 탐욕과 성급함 때문이다.
[7절]
만국의 보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르리니'(히, 바우)라는 동사가 3인칭 복수 동사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귀중한 제물들'이라 해석한다. 결국 이 견해는 각국의 수많은 이방인들이 많은 보화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보배'(히, 헴다)라는 말이 소원하는 것(the desirable thing)이라는 의미도 내포하며, 삼상 9:20절에서 사울을 가리켜 동일한 단어가 '사모하는 자'라고 사용되기 때문에 이 말은 이방인의 흠모하는 자, 유일한 소원이 되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이방인 중에서 선택된 영적 이스라엘을 뜻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견해들은 서로 상충되는 듯하지만 구속사적인 흐름에서 그 모두는 함께 수용될 수 있다. 결국 '만국의 보배'란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 중에서 선택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하나님의 교회에 소속될 것을 바라보게 하는 희망찬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8절]
은도...금도 내 것. 은과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던 솔로몬의 성전(왕상 10:21, 27; 대상 22:14; 대하 4:7, 8)을 회상하며 현재의 초라함에 실망해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물질적 풍부는 당신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며 당신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복'이 되신다(시 16:2).
[9절]
성전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외부 장식들이 아니라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마 23:16~22). 이런 점에서 스룹바벨의 성전이 영광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본절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 곧 말씀이 육신이 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통하여 증거될 예언적 선포이다.
(10~19절)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 - 이것은 두 번째 설교보다 약 2개월 후에 선포된 세 번째 설교이다. 특히 여기서는 의식법에 얽매여 참된 경건을 상실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과 인간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지 못했던 지난날을 경책하고, 나아가 유다 전체의 죄의 오염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는 결정적 원인이었음을 깨우쳐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허물을 경책하는 것으로 마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고 성전 재건을 시작하는 유다 백성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허물에 집착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가를 중요시 하신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덧입느냐, 그렇지 못하냐는 현재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 맺고 있지 못하느냐는 문제에 기초한다. 과거에 연연해 있는 자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없다(엡 4:22).

[10절]

구월 이십사일. 9월(기슬르월)은 양력으로 11월과 12월에 해당하는 달인데, 새해의 농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이른 비를 기다리는 시기이다.

[14절]

이 백성. 학개가 '내 백성'(히, 암미; 호 2:1)이라 하지 않고 '이 백성'(히, 하암하쩨)이라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고집과 인간적인 욕심에 따라 살아가던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실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렘 6:19, 21; 렘 14:10, 11).

[15절]

오늘부터...추억하라. 여기서 '오늘'이 강조된 것은 성전 건축을 재개하여 하나님께 순종한 일이 과거의 징계와 미래의 축복을 나누는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않았던 때' 곧 성전 재건의 기초석만 놓고 중단해 버린 16년 동안을 돌이켜 보라는 말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무관심했을 때에 오직 곤고와 슬픔과 탄식만이 그들에게 주어졌던 사실을 회상케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무관심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고난으로 이끈다. 그러나 무관심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심을 회복하는 심령에게는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채워 주실 것이다(욜 2:14).

[17절]

내가...쳤으나. 하나님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육체, 물질, 환경 등)을 통해 회개할 것을 종용하신다. 이것은 죄인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이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계속적으로 거부한다면 그 영혼은 더 큰 역경과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호 4:14; 마 24:39).

[18~19절]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 여기서 '쌓는다'는 말은 '기초를 놓은다'(found)또는 '건축하다'(build), '보수하다'(fix)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하고 있다가 다시 지대를 놓는 사건을 의미한다(스 3:10~13).

(20~23절)

미래의 축복에 대한 약속 - 학개의 네 번째 설교는 스룹바벨 개인에게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에게 국한된 약속과 예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사의 새로운 장이 전개되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 및 악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질 것을 보여 주는 이중적 성격을 띤 메시지이다. 더욱이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고 영접할 준비 작업으로서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21~22절]

여기에 나오는 징조는 '만국의 보배'가 임하여 성전의 영광이 충만케 될 것(7절)과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예고하는 표현이다(단 2:44; 미 5:10; 슥 12:9; 마 24:7). 특별히 하나님께서 열국의 보좌와 열방의 세력을 엎드러뜨린다는 말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에 사용하신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창 19:29; 사 13:19; 애 4:6; 암 4:11), 악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승리를 토대로 건설된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막 1:15, 하나님 나라의 개념>.

[23절]

네 번째 설교의 결론인 이 구절은 또 한번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스룹바벨이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하며(창 49:8~10), 다윗 후손 곧 메시야를 통하여 성취될 인류 구속과 하나님 나라 건설의 위업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내 종 스룹바벨 '내 종'이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받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자라는 의미와 함께, 그는 세상의 종 곧 세상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인간 총독이 아니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종'의 개념은 하나님 앞에서의 비굴한 위치를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과 날마다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자라는 영광스러움을 담고 있다(스 5:11; 사 42:1; 사 49:3). 이런 의미에서 스룹바벨은 친히 종의 신분(빌 2:7)으로 오셔서 인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사 41:8, 사 42:1; 사 44:1; 겔 34:23). 그리고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성전 재건 공사를 시행하도록 촉구한 것도 결국 성전의 완성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심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요 2:18~22).

 

# 해설

재건될 성전의 영광 (1~9절)

학개는 약 한 달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두 번째 메시지를 받았다. 종교력 7월에는 나팔절(레 23:23~25), 속죄일(레 23:26~32), 장막절(레 23:33~43) 등 중요 절기가 밀집되어 있었으므로, 학개는 장막절 마지막 날 백성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추수를 무사히 마치고 감사하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던 것이다. 본문은 재건될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외관상으로는 보잘것없으나, 하나님이 성전에 친히 임재하심으로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9절 말씀은 계시의 점진적 발전을 보여 줌과 아울러 그리스도를 향하는 구속사적 흐름을 선명하게 밝혀 주는 말씀이다.

순종에 대한 현세적 축복 (10~19절)

성전 재건에 나태했던 백성들의 죄와 그 결과로 초래된 기근과 재난을 회고하고(14~19a절), 이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을 재건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실 현세적 축복을 예언(19b절)하고 있는 학개의 세 번째 설교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 재건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써 이웃 사랑의 길을 열고 사회의 부조리와 죄악을 척결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의 축복에 대한 약속 (20~23절)

학개의 마지막 메시지는 스룹바벨 개인에 관한 약속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본문에는 종말론적 묘사가 두드러지는바, 이 예언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스룹바벨로서 예표된 메시야의 도래에 관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히브리서 기자가 갈파한 바와 같이 스룹바벨 또한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히 11:13)하였던 자들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 핵심

1~9절

포로 이전의 솔로몬 성전과 현재 건축 중인 스룹바벨 성전을 비교하고서 좌절하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대목이다.

 

# 묵상

학개의 설교 (1~8절)

이 설교는 초막절 마지막 날 행해졌는 데, 어려움 가운데 추수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모여 감사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포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적절한 때를 이용하십니다.

성전 건축의 영적 의미 (10~19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만일 근면하지 못하여 영적 나태함에 빠진다면 더 큰 역경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는 자 (17절)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물질이나 환경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개할 것을 종용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멸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요, 자비로우신 은혜입니다(욥 17:4; 잠 28:5).

내 종 스룹바벨 (23절)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하여 주권적으로 선택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스룹바벨이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창 49:8~10). 이 말을 통해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에 의해 성취될 인류의 구속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개념은 하나님 앞에서의 비굴한 위치에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자라는 영광스러움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 15절)
다리오 왕 이년 유월 학개의 첫 번째 설교가 다리오 왕(Darius Hystapes, B.C. 522-485) 2년 6월 1일에 시작되었고, 성전 재건 공사가 24일 후 곧바로 시작되었다는 사실(14, 15절)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포함한 모든 백성들이 학개의 설교에 크게 감동되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학개가 성전 재건을 촉구하고 그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한 유월은 이스라엘의 추수기이고 1년 중 가장 바쁜 계절로, 6월에 모든 추수를 끝마쳐야 7월에 있는 각종 절기를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마지막 추수를 서둘러야 할 때에 성전 건축 공사를 재개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학개의 설교에 크게 감동받은 결과 개인적인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추진할 정도로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음을 증거해 준다(마 6:33).
(1~15절)
성전 재건에 대한 호소 - 이 부분은 학개의 첫 번째 설교인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16년 동안(B.C. 536-520)이나 성전 재건을 중단한 사실을 책망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재해의 원인이 바로 성전의 재건을 중단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사실 유다는 주변 국가들의 시기로 인하여 성전 건축을 위시한 일련의 재건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스 4:5). 그러나 이런 외부적 영향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 내부적으로 여호와를 사모하는 열정이 식고 무기력하게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상이 팽배했다는 데 있다. 이에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영적 각성 운동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인 성전 재건을 재개하도록 독려하신 것이다. 한편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2절]
만군의 여호와(히, 야웨 체바오트)란 하나님의 칭호는 모든 피조 세계를 관할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나타내는 말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3~4절]
판벽한 집. 벽과 지붕에 각종 장식을 한 화려하고 안락한 저택을 가리킨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16년전에 성전의 기초를 놓으면서 감격했던 것(스 3:12)과 달리 이제는 호화 주택에 살면서도 시기 상조(2절)라는 이유로 성전 재건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들은 직면한 어려움(정치, 경제적)을 과장하여 자신들의 불의한 욕심과 불신앙을 숨기려 했던 것이다. 그들의 핑계는 자신들의 궁핍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성전 재건에 착수할 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처음 열심', 당신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강권하고 있다(계 2:4, 5).
[5, 7절]
자기의 소위. 이것은 오늘날까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의미하는데 특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와 마음 자세까지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무뎌져 버린 유다 백성을 향해 과거를 회상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지닌 부의 출처와 호화로운 삶에 비해 퇴락해 버린 성전의 처참한 현실을 깨우쳐 주려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행 자지(自行自止)하는 자들로 하여금 '돌이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죄인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이다(눅 15:17).
(8~11절)
유다가 처한 어려움의 이유와 해결 방안 - 창조자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무관심한 채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살아가던 유다 백성들은 계속되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그들이 왜 빈핍한 생활을 해야 했으며,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즉 그들의 가난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고 영광을 돌리지 못했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었으며, 그 해결 방법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성전의 회복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과 그들과 맺은 언약의 회복을 동시에 의미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 만나는 모든 문제는 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반면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영혼은 날마다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시 1:1~3).
[8절]
전을 건축하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처럼 금은 보석과 백향목 등의 호사스러운 재료를 요구하시지 않고(왕상 6:11~7:51) 그들이 순종할 의사만 있으면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 주변의 산들에서 나무들을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한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순종과 겸허와 진실과 경건임을 알 수 있다.
[9절]
이것이 무슨 연고뇨. 이 질문은 세상의 재물에 대한 관점이 잘못된 백성들에게 자기들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반문이다.
(12~15절)
백성들의 회개 - 이 부분에는 습관적으로 불신앙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는 메시지 앞에 자복하고 그들의 책무를 다시금 깨닫는 아름다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회개의 증거로 여호와 경외(12절)와 성전 재건 역사(14절)를 단행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지난 허물을 뉘우치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며(잠 28:13) 그 앞날을 보장하신다.

[12절]

남은 모든 백성. 온갖 고난을 여호와 신앙으로 극복하고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남은 자'를 가리킨다(스 2장).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로운 역사를 이같이 신실함으로 끝까지 지킨 소수의 남은 자들과 더불어 이뤄가신다<스 9:8, 남은 자 사상>.

[13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격려하시고 축복하시는 '임마누엘'의 약속이다(신 31:6, 8; 수 1:5, 9, 17; 수 10:25; 사 7:14; 사 8:10; 마 28:20).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더불어' 계신다는 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확실한 소망의 근거가 된다(시 23:4; 사 43:2).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은 단순한 '있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하심'까지를 포함한다(수 1:5, 9). 이 약속의 가장 뚜렷한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며(요 1:14), 그 궁극적인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성취될 것이다(계 21:3).

[14절]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의 영혼을 각각 깨우쳐 그들에게 올바른 지향점을 갖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셨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한 사람도 의인이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롬 3:10, 11). 즉 스스로는 하나님과 진리에 동참할 수가 없다. 그러나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신 이후(창 3:9)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긍휼로 죄인들을 깨우치며 부르시는 것이다(엡 2:8, 9; 계 3:20).

 

# 해설

성전 재건에 대한 호소 (1~15절)

제1차 포로 귀환(B.C. 538; 스 2:1 이하) 이후 성전 재건이 중단된 지 16년이 지났음에도 성전 재건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신앙 생활은 나태해졌고, 이러한 영적 위기 상황 속에서 학개는 소명을 받았는데, 그의 사명은 지도자들(스룹바벨, 여호수아)과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전을 재건하게 함에 있었다(스 5:1; 스 6:14). 이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구심점을 이루어 왔던 성전 예배를 되살림으로써 그동안 파기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본문은 빈곤과 기타 여러 재앙의 원인이 신앙적 나태에 있었음을 지적함과 아울러 성전 재건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하고(2~11절), 이에 감동된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성전 재건에 착수함을 보여 준다(12~15절).

 

# 핵심

1~15절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재건하는 일을 중단한 지 약 16년이 지난 시점에,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을 촉구하는 내용.

학개 (1절)

'축제', '절기'를 뜻하는 이름으로서, 그가 이스라엘 절기일에 출생하였음을 암시한다. 학개는 포로 귀환 후의 스가랴와 동시대의 선지자이며, 바사 왕 다리오 1세 제2년, 즉 B.C. 520년경에 예언 활동을 하였다(스 5:1; 스 6:14). 그의 사역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그가 미친 실제적인 영향력은 다른 선지자들의 그것에 못지 않았다. 그는 성전 재건을 동기로 하여 백성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함과 아울러, 현재와 장래의 축복에 대한 약속을 들어 새로운 열정으로 성전 재건에 임하도록 했다.

 

# 묵상

유다 백성의 행동 지침 (5절)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자기의 행위를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부의 축적을 위해서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는 태만했던 백성의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주를 믿노라 하면서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주를 위한 일에는 태만한 성도의 신앙 생활을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귀환한 백성의 곤고한 생활 (10~11절)

귀환한 백성들이 곤고했던 이유는 성전 건축에 대한 태만 때문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등한히 하고 육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분주했던 백성들에게 찾아온 것은 풍요로움이 아니라 곤고함뿐이었습니다. 즉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던 것입니다. '이슬'이란 '비'를 말하고, '그치다'는 일시적인 중단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가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게 임해서, 비가 내리지 않고 모든 작물이 자라지 않아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축복이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회복과 언약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의 회개 증거 (12~15절)

백성들은 여호와 경외와 성전 재건을 자신들의 회개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고 미래를 보장하십니다.

 

 

출처 : 바이블25

여전히 부정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학개 2장 10절~23절]
10절 -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절 -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13절 -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14절 -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15절 -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16절 -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17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18절 -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19절 -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20절 -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1절 -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22절 -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23절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하나님의 말씀
12절 : 율법에 대한 질문 / 부정한 자가 만지면 부정함
14절 : 백성들의 상태를 알리심
15절 : 성전 쌓기 전 추억 - 돌이키지 않음(17절)
18절 : 성전 쌓던 날 추억 - 복 주심을 약속(19절)

* 도움말
1. 9월 24일(10절) : 9월은 2모작을 하는 이스라엘이 곡물을 파종하는 때로서 비가 꼭 필요한 시기이다. 본문은 그들이 지금까지 농업의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상기시키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 거룩한 고기(12절) : 하나님께 드려질 희생 제물 혹은 제사장의 몫으로 주어진 제물을 뜻한다.
3. 스룹바벨(21절) : ‘바벨론의 씨’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4. 인(23절) : 주로 왕의 인장반지 혹은 그 반지의 인을 뜻한다고 해석된다. 이 반지 혹은 이 반지의 인은 곧 왕권을 발휘하는 힘이 있다.

* 말씀묵상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로우심과 그의 자녀들을 향한 불타는 열심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로 작정하기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성전으로서의 인생을 재건하기로 작정한 것 자체를 높이 평가하셨으며 이 사실을 인하여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1. 성전과 부정
아무리 초라한 성전이라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시면 영화롭게 될 수 있는(학 2:4-9) 반면에 아무리 거룩한 성물일지라도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역시 부정하게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인생도 외양적으로는 아무리 초라하고 비참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인생을 가꿀 수 있는 반면에, 예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부정한 생각과 부정한 일들 속에서 살아간다면 여전히 부정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느냐 부정하게 되느냐는 우리가 접촉하는 것,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들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전으로서의 인생을 살기로 작정한 이후에도 여전히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
본문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은혜를 얻은 것은 그들의 삶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성전이 재건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이유도 오직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때문입니다(요 2:19-2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얻을 담대한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비가 내려야 할 때 마침내 비가 내려 그 땅의 메마름과 황폐함이 해소되고 그들이 농업과 산업의 결실을 누릴 수 있었듯이, 가장 적절할 때 주님은 우리를 도우사 마침내 영광된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도움질문]
1. 하나님이 부정하다고 여기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12-14절)
2. 하나님은 여전히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까?(19절)
3. 하나님은 결국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역사를 인정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스룹바벨의 용기, 헌신된 자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 이 모든 사실은 오늘 당신에게 어떤 용기를 줍니까?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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