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심판과 소망
북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남 유다는 적들의 침입 앞에 위태롭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불의하고, 지도자들은 백성을 착취하며 제 이익만 챙긴다. 그러므로 형벌의 날이 이를 것이다. 선지자는 이들에 대한 분명한 심판을 경고하는 한편, 하나님이 결국 이들을 구원하시고 이 땅에 평화를 주시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미가 한눈에 보기
본문
| 1:1 | 1:2~2:13
| 3:1~5:15
| 6:1~7:13
| 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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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1
| 2:12~13
| 3:1~12
| 4:1~5:15
| 6:1~8
| 6:9~7:6
| 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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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 표제
| 들으라 백성아
| 들으라 통치자들아
| 들으라 이스라엘아
| 희망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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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경고
| 구원의 희망
| 심판 경고
| 구원의 희망
|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쟁론
| 심판 경고
| 구원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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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모레셋 사람 미가
| 분류
| 예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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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했다.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이다. 대락 주전 750~686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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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2~721년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면서 멸망한다. 남 유다는 주전 701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을 받는다. 잔인한 앗수르 군대에 유린되고 끔직한 전쟁의 양상에 좌절한 백성은 희망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미가 선지자는 백성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행실을 바꾸라고 촉구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를 행하라고 권한다. 그러고 나서 미래에 관한 위대한 비전을 쏟아 놓는다. 머지않아 왕이 오셔서 자기 백성을 평화로 인도하실 것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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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 (1:1)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1:1)
선지자가 모레셋 출신이라는 점 외엔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다. 미가는 남 유다의 세 왕이 통치하는 동안 예언했고,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양쪽에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 예레미야는 미가의 예언을 기록했고(렘 26:18), 이사야서에는 미가서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사 2:4; 미 4:3). 미가서에는 '들으라'가 세 번 나오며 그 대상들에 관한 심판과 구원이 각각의 단락 안에 자리한다.
들으라 백성아 (1:2~2:13)
심판 경고 (1:2~2:11)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 모두에게 심판을 선포한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한때 거룩하고 신실한 도성이었지만 지금은 거짓 신들과 악한 행습에 물든 곳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사마리아는 멸망하고, 예루살렘은 포로가 되어 끌려갈 것이다. 백성이 악하고 부도덕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서로 속이고 훔치고 패역하고 배신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이렇게까지 죄를 저지른 것은 거짓 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거짓 종교가 거짓 도덕과 행동을 낳았고, 그 결과 온갖 불의와 압제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은 음행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신전에서는 신을 예배한다며 '음행의 값'을 치르는 성매매가 이루어졌다. 타락한 종교가 성의 타락을 동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지자는 남 유다에 경고하기 위해 유다 성읍의 이름을 나열하며 이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구원의 희망 (2:12~13)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으리라 약속하신다. 목자가 양 떼를 인도하는 것처럼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것이다.
들으라 통치자들아 (3:1~5:15)
심판 경고 (3:1~12)
야곱의 우두머리와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자기 본분을 저버리고 악을 행했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권력을 남용해 자기 잇속만 채웠다. 선지자들은 백성을 거짓으로 속여 그 대가로 연명한다. 재판이 뇌물 때문에 기울고, 제사장은 먹고살기 위해 아첨하고, 선지자는 돈을 위해 점을 치면서도 하나님이 계시니 망할 리 없다는 거짓 보장을 남발했다. 이들 때문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의 희망 (4:1~5:15)
하지만 여호와의 산에서 새로이 율법이 나오고 백성은 이에 순종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차별 없는 세상이다. 모두 함께 예배하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환난받는 자와 저는 자와 슬퍼하는 자가 환영받는 곳이다. 또한 이곳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단지 분쟁이 없는 정도의 평안함이 아니라, 완전한 안식 자체다. 새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 권능의 왕이 택함을 받을 텐데,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5:2). 이 평화의 왕이 앗수르를 몰아내고 백성을 건져 주시므로 야곱의 남은 자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날에 이스라엘에게서 점쟁이를 없애시고 우상과 주상을 멸절하시며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주변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국제 정세를 뿌리부터 흔들게 될 것이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6:1~7:13)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쟁론 (6:1~8)
여호와의 산에 세워질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비교라도 하듯, 이스라엘의 현실을 헤아리는 뼈아픈 지적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마치 여호와 대 이스라엘의 재판 광경과도 같다. 배심원석에서는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빠짐없이 지켜본다. 산과 땅의 지대들이 증인처럼 앉아 있다. 먼저 하나님이 검사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으며 번번이 그들을 속량해 주신 분께 무슨 짓을 했는지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라고 따지신다. 이스라엘은 피고로서 자기 행동에 대해 변호할 기회를 얻는다. 이들은 회개하기보다 여호와가 요구하시는 것이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심판 경고 (6:9~7:6)
여호와가 판결을 내리신다. 여호와의 판결은 이스라엘에 예비된 매, 바로 심판이었다. 이스라엘은 부정한 저울을 쓰고, 강포와 거짓으로 충만하다. 저울이란 정직의 지표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없고, 경건이나 정직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들이 서로 연합할 때는 죄를 저지를 때뿐이다.
구원의 희망 (7:7~13)
선지자는 깨닫는다. 여호와를 바라보면 그분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신다. 죄를 범한 사람에게 예비된 일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로움을 따르는 자는 광명에 이르게 하신다. 여호와가 우리를 구원하시면 전에 우리를 짓밟던 자들이 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앗수르와 애굽 같은 강대국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에서도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희망의 기도 (7:14~20)
미가 선지자는 기대에 차서 기도한다. 주님이 이 백성을 인도하시기만 하면, 애굽 땅에서 구원하신 것 같은 이적이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멸망시키려던 나라들은 주님을 두려워하며 떨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주님의 성품을 열거하며 기도를 마친다. 주님은 백성의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기에 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은 죄 사함을 받을 것이다.
[미가 길라잡이]
정의와 인자를 행하며 하나님만 바라라 - 김창대 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
미가서는 호세아서에서 시작해 말라기로 끝나는 소선지서 12권 중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책이다. 미가서의 핵심 구절은 6장 8절이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인자(사랑)는 무엇인가? 이 물음과 관련해 6장 4~5절은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길갈에 이르렀던 이스라엘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의롭게 행한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6:5). 여기서 '공의'로 번역한 히브리어 '체다카'는 '의'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정의와 인자
하나님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악을 행하던 애굽을 정의로 심판하시고,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인자로 구원하셨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배교할 때는 정의로 심판하시면서도 동시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인자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본받아 정의와 인자를 행해 의의 삶을 살라고 촉구하셨다. '정의'가 하나님 뜻에 따라서 하는 외적 행동을 뜻한다면, '인자'는 하나님을 닮아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의와 인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요소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사랑(인자)하는 동시에, 하나님 뜻을 외형적으로 실천(정의)해야 한다. 인자 없이 외형적으로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은 위선이며 하나님은 이를 가증히 여기신다. 반대로 인자는 있지만 정의라는 외적 형태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도 바르지 않다. 미가서는 정의와 인자를 동시에 행하는 것을 규정한다. 그리고 이런 의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권면한다.
정의와 인자를 버린 자들 vs 하나님만 바라는 남은 자들
미가가 살던 당시에 이스라엘의 부자와 지도자들은 정의와 인자를 실천하지 않아도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을 향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이웃을 착취했다. 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정의와 인자를 저버린 행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가 선지자는 2장 1~5절에서 부자들이 침상에서 악을 꾸미고 약자들의 밭을 탐하는 것을 강하게 질타하고, 하나님이 부자들의 행위를 그대로 갚아 주실 것을 언어 유희를 통해 선포했다.
히브리어로 '침상'은 '미쉬카보트'고 '악'은 '라'며, '꾸미다'와 '밭'은 각각 '하샤브'와 '사데'다. 하나님은 이 단어들과 유사한 발음의 단어들을 사용하셔서 그분 자신도 '미쉬파하'(족속)에게 재앙(라아)을 꾸며서(하샤브) 그들을 망하게 할 것(샤다드)이라고 선언하였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부자들이 '미쉬카보트'(침상)에서 '라'(악)을 '하샤브'(꾸미다)하여 '사데'(밭)를 탐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미쉬파하'(이 족속)에게 '라아'(재앙)를 '하샤브'(꾸미다)하여'샤다드'(망하다)시키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더욱이 부자와 지도자들이 밭을 탐하는 모습을 비꼬면서, 그들이 밭을 그렇게 좋아한다면 시온을 아예 밭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다(3:12). 사실상 시온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미가서가 심판과 저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메시아를 통해 다시 의를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신 것처럼 그들을 의로 인도해 광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5:2~4; 7:9). 더 나아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의와 인자를 행할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이다(7:18). 이런 은혜를 받기 위해 미가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자(nothing)임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는 남은 자가 되라고 촉구한다.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5:7).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의와 인자를 동시에 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려면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