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의무를 다하는 사랑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민족의 하나님이시다. 룻은 이방 민족인 모압 족속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은 룻을 이스라엘 구원사를 완성하는 데 사용하신다. 룻은 부모를 섬기는 의무를 다했고, 보아스는 사랑에 따르는 의무를 다했다. 그 결과 한 가문이 구원받았다. 출신 성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룻기 한눈에 보기
본문
| 1:1~22
| 2:1~23
| 3:1~18
| 4:1~12
| 4: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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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 두 여인의 귀향
| 두 남녀의 만남
| 세밀한 계획
| 두 남녀의 결혼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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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알 수 없다.
| 분류
| 성문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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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당시는 이스라엘과 모압의 관계가 잠시 평화로울 때였다. 다윗 가문의 족보가 나오므로 룻기는 왕정기에 기록된 것이라 추정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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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 본문에 23번 나오는 히브리어 '가알'('무르다, 구속하다'라는 뜻. '고엘'은 현재분사형)은 누군가를 구원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다. 룻과 보아스의 의무를 다한 사랑을 통해서 나오미가 회복되고 손자를 얻는다. 그리고 그 손자를 통해 미래를 보장받게 된다. 가뭄과 기근 속에서 남편과 아들을 전부 잃었던 사람이 다시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환경을 얻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보여 준다. 보아스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지켜 가시는 과정을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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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예고하는 이름들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의미심장한 이름을 갖고 있다. 먼저 룻은 히브리어 '레웃'과 비슷한 발음으로, '깊은 우정'을 뜻한다. 거친 운명 속에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는 나오미는 '기쁘고 유쾌함'이라는 뜻을 갖기에, '쓰디쓴 괴로움'을 뜻하는 '마라'로 이름을 바꿔야 할 지경이다(1:20).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지만 흉년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그 땅을 떠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인다. 나오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각각 '질병'과 '종말'을 뜻하는데, 과연 자기 이름대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수확기에 읽는 룻기
룻기의 공간적 배경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이고, 시간적 배경은 보리 추수 시작할 때부터 타작을 마칠 무렵까지다. 이스라엘에서 보리 추수를 하는 시기는 5월경으로, 수확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오르는 칠칠절(샤부옷)의 계절이다. 그래서 오늘날 유대교는 칠칠절에 룻기를 읽는다. 이들이 룻기 본문에서 아로새기는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풍성한 수확기에 가난한 이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레 19:10; 23:22). 부유한 보아스는 가난한 룻이 곡식을 베는 동안 떨어진 이삭을 줍게 허락하고, 심지어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버려서 룻이 줍게 하라고까지 일꾼들에게 이른다. 그의 관대함과 자비로움은 이 사랑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다. 추수의 극상품은 하나님의 것이다. 추수의 기쁨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추수하는 자들은 추수의 기쁨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두 여인의 귀향 (1:1~22)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 엘리멜렉 가정이 흉년 든 고향 베들레헴을 등지고 떠나 모압에 정착해,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이한다. 10년쯤 지났을 때 이 가정의 남성들이 모두 죽고, 엘레멜렉의 아내 나오미는 고향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두 며느리는 같이 길을 나섰지만 큰며느리 오르바는 돌아가고 룻만 곁에 남는다. 나오미는 룻에게 돌아가라고 세 번이나 권하지만, 룻은 나오미의 백성과 하나님께 속하겠다고 선포한다. 베들레헴에 도착하니, 추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두 남녀의 만남 (2:1~23)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부양하기 위해 보아스의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다. 보아스는 이들의 부자 친척이다. 보아스는 룻을 눈여겨보고 보호해 준다. 젊은 남자들이 집적거리지 못하게 막아 주고, 룻이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조처해 준다. 게다가 룻이 더 많은 이삭을 줍게 하기 위해 일부러 멀쩡한 이삭을 떨어뜨리라고까지 일꾼들에게 명한다. 보아스가 정도 이상으로 룻을 배려한 것은, 나오미를 정성으로 돌보는 룻의 헌신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 중 한 명으로, 룻과 결혼해 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세밀한 계획 (3:1~18)
힘겨운 가난뿐 아니라 성적 희롱의 위험까지 안고 있던 젊은 과부 룻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은 새 가정을 꾸리는 것밖에 없었다. 이에 나오미는 룻을 단장해 보아스에게 보내어 잠든 보아스의 발치에 눕게 한다. 이는 보호를 요청하는 상징적인 행위일 수도, 성적 관계를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보아스를 얻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룻을 발견한 보아스는 덫에 걸린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룻이 요청한 것 이상을 베푼다. 구설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움직이고, 빈틈없는 절차를 계획하면서 룻을 안심시킨다. 보아스는 룻에게 감동을 받았고, 기꺼이 기업 무를 자가 되고자 한다.
두 남녀의 결혼 (4:1~12)
보아스는 성문으로 가서 재판 준비를 갖추고, 자신보다 우선권이 있는 친척에게 그의 권리를 설명한다. 이스라엘 땅은 오직 상속될 뿐 매매가 금지되어 있는데, 그가 엘리멜렉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가난한 과부 나오미가 내놓은 땅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친척은 처음에는 당연히 응한다. 하지만 기업을 무르는 것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임을 깨닫는다. 땅을 사면, 엘리멜렉 가문의 과부인 룻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야 하며 죽은 자의 이름으로 그 땅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기존 재산을 룻의 자식들에게 나눠 주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운 친척은 져야 할 의무가 큰 것을 알게 되자 권리를 포기한다. 신발 한 짝을 건네는 것으로 법률적 합의가 마무리된다. 그 자리에 있던 장로들과 백성이 증인이 되어 이 거래를 승인한다. 보아스의 일 처리는 철저하고도 빈틈이 없었다. 룻과 보아스는 백성의 축복 속에 결혼한다. 룻은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에 견주어지고, 이들의 자녀는 베레스에 견주어진다. 베레스는 다말이 시아버지인 유다를 의무로 끌어내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다(창 38장).
에필로그 (4:13~22)
룻기는 단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 뿐 아니라, 다윗의 족보를 기록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글이다. 룻과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는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계보는 유다에게서 태어난 사연 많은 아들 베레스를 통해, 모압 여인 룻이 낳은 오벳을 통해 이어진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 가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기 의무를 인식하고 사랑과 관대함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룻기 길라잡이
신의를 심고 은혜를 거두다 - 기민석 침례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룻기는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는 이야기다. 그만큼 문학적 기교와 감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눈을 감으면 황금빛 보리밭이 그려진다. 일하는 추수꾼과 그 뒤에서 수줍게 이삭을 줍는 룻도 보인다. 성경 속 이야기인데도 하나님이 거의 나타나시질 않는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그 뒤에 늘 계셨다는 미세한 음성이 들린다. 그리고 이 안에 귀한 메시지 '헤세드'(사랑, 은혜, 신의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히브리어)가 담겨 있다. 사람 간의 진실한 신의(헤세드)는 하나님의 은혜(헤세드)로 보답받는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가부장적인 사회 속,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두 과부가 유력한 한 남자를 전략적으로 제압한다. 우리는 그 해학을 흥미진진하게 읽지만 사실 두 여인에겐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시어머니의 불우한 운명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헤쳐 나간 이방 여인의 믿기지 않는 신의는 결국 이스라엘에 영영히 빛날 한 가문을 일으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는 다윗의 가문이다. 어려워도 사람 간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자 하나님은 역사에 남을 넘치는 은혜로 응답하신 것이다.
사람 간의 신의, 헤세드
룻기는 '신의'(信義, loyalty)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그 진미는 한 모압 여인이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보여 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신의에 있다. 룻기에 '사랑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하브'는 단 한 번 등장하는데, 바로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향한 룻의 신의를 칭송할 때다(4:15). 시어머니의 무리한 제안에도 룻은 자신의 목숨을 걸 만한 위험도 무릅쓰겠다는 신의를 보인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3:5). 후에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을 들어 보면 이 신의가 또 다른 신의로 응답받음을 알려 준다.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3:11). 결국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가슴에 다시 아기를 안게 되는데(4:6), 이는 룻의 갸륵한 신의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나오미가 평소에 얼마나 자기 며느리들을 잘 대해 주었는지도 본문은 감추지 않는다(1:9~10, 15).
결국 룻기는 두 여인 간의 신의에 대한 이야기며, 여인들도 신의로 연합한다면 극단적인 남성 위주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여인'은 '사회적 약자'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약자들의 분투는 신의로 똘똘 뭉쳐졌을 때 보상받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궁극적으로 룻의 신의는 하나님으로부터 합당한 은혜(헤세드)를 받게 된다. 놀랍게도 아는 나오미의 말에 이미 예고되었다.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헤세드)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헤세드)하시기를 원하며"(1:8).
이는 맨 마지막에 등장한 다윗 집안의 족보를 통해 밝혀진다(4:13~22). 이방 며느리 룻이,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다윗 집안의 선조가 된 것이다.
시어머니의 불우한 운명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헤쳐 나간 이방 여인의 신의는 결국 이스라엘에 영영히 빛날 한 가문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헤세드
룻기의 구조는 데칼코마니(전사법) 같은 A-B-C-C'-B'-A'의 균형 잡힌 모습이다. 전반부에서 이야기가 A에서 B로, B에서 C로 넘어가면서 야기되는 문제들로 인해 독자들은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후반부가 되어 글이 C'-B'-A'로 진행되면서 앞에서 제기했던 문제들이 해결되고, 독자들은 안정·완결·충만을 즐기게 된다.
룻기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 전반부의 갈등이 안정된 구조 속에서 점진적으로 해결되어 가는 흐름은, 비록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도하시고 점차 해결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손길을 느끼게 해 준다. 룻기는 '물이 갈라지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의 신학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런 기적은 사실 우리의 현실 경험과는 멀게 느껴져 어딘가 낯설다. 불러도 대답 없으신 것 같고 보이지도 않으시지만, 고군분투하던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룻기는 그려 준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친근한 신학이다. 신의를 지키려는 우리의 분투에 하나님은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