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신실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은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 호세아는 이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된 선지자다. 부정한 아내를 끝까지 사랑하는 남편의 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부정한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호세아 한눈에 보기
본문
| 1:1~3:5
| 4:1~8:14
| 9:1~13:16
|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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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 호세아 가정
| 이스라엘의 범죄
| 이스라엘의 처벌
| 이스라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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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호세아는 아모스에 이어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 디글랏빌레셀 왕이 앗수르로 사로잡아 간 브에라(대상 5:6)와 호세아의 아버지 브에리를 동일 인물로 보는 유대교 전승이 있다.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 때 예언했지만, 호세아서 외에는 그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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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주전 750~715년, 앗수르에 정복되기 전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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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 폭력이 난무하고 제사장과 왕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때, 호세아 선지자는 거짓 신과 거짓 예배와 사회적 불의를 비판한다. 그는 이사야나 에스겔처럼 자신이 선포한 메시지를 삶으로 그대로 옮겨 에언의 말씀이 백성에게 생생히 전달되게 했다. 호세아는 부정한 창녀와 결혼해 각각 '하나님이 흩으심(또는 씨를 흩어 뿌림), 불쌍히 여기지 않음, 내 백성이 아님'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3남매를 두었다.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거짓 신들과 끊임없이 행음하는 백성에게 반역을 그치고 돌아오라고 촉구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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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예언서 |
호세아 가정 (1:1~3:5)
창녀가 낳은 자녀들 (1:2~2:1)
남 유다에서 4명의 왕(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이 바뀌는 동안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40년 이상 통치를 이어 갔다. 정치적·물질적으로는 안정된 시기였지만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해 영적 수준은 암담한 상태였다. 이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 결혼을 명하신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반영하는 행위가 바로 결혼이다. 그런데 신부 이스라엘은 남편과 자녀를 싫어하는 정결하지 않은 창녀였다(겔 16:45). 대가도 받지 않고 도리어 돈을 쥐어 주며 누구나와 자려고 했다. 이런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대변하는 인물이 곧 호세아가 결혼한 창녀 고멜이다. 호세아가 고멜 사이에서 낳은 세 자녀의 이름은 각각 '이스르엘(하나님이 흩어 버리심 또는 씨를 흩어 뿌림)', '로루하마(불쌍히 여기지 않음)', '로암미(내 백성이 아님)'다.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날마다 각인시키는 가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도 미래는 있다. 흩어졌던 백성이 모두 올라오는 날이 올 텐데, 그때는 '하나님의 자녀'요 '긍휼을 입은 자'라 불릴 것이다.
배신당한 남편 (2:2~23)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 때문에 화를 내고 벌을 주리라 경고한다. 아내가 정부(情夫)에게 갖다 바치는 재물은 모두 남편이 준 것이다. 남편은 이 모든 것을 빼앗고 망쳐서 아내에게 수치를 입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벌하는 데 갈등을 느낀다. 할 수만 있으면 아내를 타일러 마음을 돌이키게 하고 의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겠다고 다짐한다. 배신당한 남편의 분노와 아내를 되돌리려는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호세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 (3:1~5)
아내는 음녀가 되어 타인의 사랑을 구한다. 결국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해 값을 지불하고 데려온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이 어떤 가치인지 확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호세아가 고멜의 몸값을 절반은 은으로, 절반은 곡식으로 치렀다고 추측한다면, 보리 한 호멜 반을 은 열다섯 개와 동급의 가격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성인의 몸값이 대략 은 30개였기 때문이다(마 26:15).
호세아 가족의 이름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면서 이름을 바꿔 주시는 일이 많다(창 17:5, 15 등).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호세아 가정을 택하셔서 가족들 이름을 통해 그분의 뜻을 계시하셨다.
이름
| 뜻
| 이름
|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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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 구원
| 암미
| 내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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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에리
| 나의 샘(원천)
| 루하마
| 긍휼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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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멜
| 욕정을 만족시킨다는 뜻으로, 창녀의 신분을 연상시킨다. |
디블라임
| 두 겹의 무화과 케이크를 뜻하는데, 고멜의 어머니 디블라임도 창녀였을 것이다. |
이스르엘
| 하나님이 흩으심(또는 씨를 흩어 뿌림)이라는 뜻으로, 북 이스라엘의 평원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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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루하마
| 동정을 받지 못한 여성을 뜻하고, 이스라엘의 황폐한 상황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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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암미
| 내 백성이 아닌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절하셨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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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범죄 (4:1~8:14)
죄악에 대한 책망 (4:1~19)
이스라엘에는 진실도, 인애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다. 대신 저주와 속임, 살인과 도둑질, 간음과 학살이 끊이지 않았다. 우상 숭배는 종교적인 혼음을 동반하기에, 이스라엘에게 간음은 일상이었다. 그들은 번성할수록 죄를 범했고, 그 결과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음행해도 자녀를 낳지 못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심판 (5:1~15)
이스라엘을 죄악에 빠지게 한 주범이자 1차 책임자는 제사장, 관리, 왕족 등 지도자들이다. 이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다. 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 유다 또한 하나님을 저버린 점은 똑같았다. 그 결과 두 왕국은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은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구하게 될 것이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간의 전쟁
남 유다
| 북 이스라엘
| 전쟁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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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과 유다·베냐민지파
| 여로보암과 열 지파
| 스마야의 중재로 전쟁을 피하고 왕국 분열로 마무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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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얌
| 여로보암
| 르호보암의 아들인 아비얌과 여로보암도 전쟁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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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 바아사
| 유다가 아람 왕 벤하닷을 청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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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
| 요아스
| 유다가 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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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
| 베가
|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을 맺고 유다에 쳐들어오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임마누엘의 계시를 주신다. 하지만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을 청해 아람과 이스라엘을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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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촉구 (6:1~11)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낫게 해 주실테니 그분께 돌아가서 여호와를 알기에 힘써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는 척 흉내를 낸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업무와 제사를 지속하는 한,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제사를 지내는 데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회개를 받지 않으신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호세아서 전체의 핵심과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7:1~16)
이스라엘은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한쪽만 타들어 가 결국 먹지 못할 쓸데없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애굽과 앗수르에게 달려가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헛수고만 계속하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고의적인 우상 숭배 (8:1~14)
이스라엘은 혼합주의 신앙을 고수해 여호와도, 바알도 섬겼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동맹군에게 구원을 기대했으며, 왕궁과 성읍이 자신들을 보호해 주리라 기대했다. 그 결과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께 징벌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처벌 (9:1~13:16)
임박한 심판의 예언 (9:1~17)
이스라엘은 포도 수확을 기념하며 축제를 벌이지만, 호세아는 형벌의 날, 보응의 날을 예고한다. 앞으로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릴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영광을 잃고 버림받아 열방을 떠돌 것이다.
두 마음을 품은 죄 (10:1~15)
이스라엘은 말라 못쓰게 된 포도나무와 같다. 뿌리가 뽑혀 죽게 된 것이다. 악을 심은 이들이 거둘 것은 불의뿐이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재앙뿐이다.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에 행할 잔혹한 전쟁이 생생히 그려진다.
하나님의 사랑 (11:1~12)
하나님은 다시금 격정을 억제하신다. 눈물을 참고 상심함을 억누르려 애쓰시는 듯하다. 자식에게 걸음마를 가르쳤는데, 덕분에 자식이 도망치게 된 것을 보는 부모와 같은 심정이다. 게다가 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식을 향해 끝까지 기대를 접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진멸하진 않으실 것이다.
회개 촉구와 교만에 대한 책망 (12:1~14)
유다와 이스라엘에 심판이 닥칠 것이다. 그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뿐이다. 그들은 조상처럼 다시 광야에서 장막에 거주하게 될 텐데, 모세처럼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선지자를 찾아야 한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13:1~16)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자신들을 건져 주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마침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셔서 왕과 지도자를 세우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을 대적했다. 이 때문에 고초를 겪고, 형벌을 당해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이스라엘의 미래 (14:1~9)
엎드러진 이스라엘이 할 일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강대국 대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용서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슬과 같다. 이 이슬을 받은 이스라엘은 백합화같이 피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혀 가지가 퍼지고 마침내 푸른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들을 향해 무제한 부어진 결과다. 이를 위해 오직 회개와 순종이 요구된다. 의인은 이 도를 깨닫고 하나님과 함께 걷겠지만, 죄인은 이 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