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복된 성도의 위상 (공재영 목사님)
[요한계시록 1장 4절~8절]
4절 -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절 -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절 -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절 -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절 -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 속에서 순수한 영혼의 자리를 시로 표현한 오스트리아 사람 릴케의 시 「엄숙한 시간」 이라는 시를 소개해 봅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울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웃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걷고 있다. 세계 속에서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죽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 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 시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존재 가치와 그 가치에 맞는 삶의 자리를 열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 릴케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가로서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세워진 사람이 시인 윤동주 입니다. 사람이 모든 만물 중에서 최고의 자리에 세워진 것은 인간이 가진 위상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도의 존재 가치는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존재로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세상 마지막 때에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 위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세워 주시려고 지중해 밧모섬으로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1. 축복된 중심의 자리에 세워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6).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 같이 우연히 생겨난 자리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시작의 자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자리이든 불행한 자리라고 생각되든 그 모든 자리에는 반드시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 30:19,20)」고 하셨습니다. 즉 이 세상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는 것이요 사람의 자리는 자신의 선택 여하에 따라 그렇게 세워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세워진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는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가 놓여져 있는데 이 자리에서 사람들의 자리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선택의 자리 때문에 결정 되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택의 자리에 사람이 세워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에덴동산의 복을 상실한 인간에게는 여러 유형의 삶이 열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생명의 자리에서 사망을 선택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하며 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복된 자로 자신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갈 6:9). 이 자리를 본문에서 예수님이 증거 하시기를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라는 인간이 세워진 축복된 터전이요 제사장은 온 인류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는 중심의 자리입니다. 즉 하나님은 성도를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로 얽혀진 세상 속에 축복된 터전 위에서 중심의 자리에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세워진 성도를 통해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려고 온 인류를 부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심에 세워진 성도의 존재 가치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성도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5,7).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33년의 사역을 마감하시고 떠나시는 자리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온 천하에 나타내신 자리에서 세움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가를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일은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값을 치르시고 죽으셨다가 부활의 첫 열매와 만왕의 왕으로 계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르치고 전파해야 하는 성도가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입니다. 그 대상은 모든 사람이지만 그 중에도 나는 세워주기가 싫은 사람 일지라도 그 사람을 위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 자신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었더라면 믿음의 사람으로 세움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리에는 자신의 길이 닫혀지게 하는 자리를 열어가지 못하게 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사람의 손길이 필요 없으신 분이시니까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셔야 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믿음의 자리에 좋게 세워주시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금과 빛의 자리에서 사람을 변화되게 하여 좋은 세상을 열어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변화되어 좋은 세상을 맞이하는 자리에는 그 누군가가 값을 치르는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반드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세워진 사람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고 값을 치르시는 자리에서 세워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값을 치르며 받아들이는 자리가 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세워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알게 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한다고 본문에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역사의 주관자가 예수님이심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4,8).
성경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세상이 만들어진 기원과 온 인류에게 구원과 종말의 자리를 보여주면서 인간 역사의 시작과 끝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이 가고 오는 세대 속에서 생존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에게 사람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값을 치르시고 죽은 자리에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구원을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도록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성도가 전하여 모든 사람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성도의 최고의 위상이 됨을 본문에서 열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온 세상에 알게 하려고 말세의 대표적인 일곱 교회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두 가지 큰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의 시작과 끝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며 다른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값을 치르시는 자리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속해 주셨고 다시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시는 전능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가족을 구원시킬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 예수님을 전하라고 예수님이 편지를 쓰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시작과 끝을 가지신 예수님이 온 인류를 심판하시려고 다시 오실 것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심부름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심부름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성도를 자랑스럽게 세워 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성도는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기뻐하면서 삶을 더 좋게 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고 지금까지 우리를 품고 계시는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고백할 때에만이 세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으로 자신의 모습이 복된 것임을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위상을 세우는 지혜는 첫째는 축복된 중심의 자리에 자신이 세워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성도를 통해 일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는 역사의 주관자가 예수님이심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이는 곧 성도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큰 것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부르신 것을 믿고 믿음 안에서 최상의 삶을 살아 다음세대에 믿음을 물려 줄 때 그 위상이 아름답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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