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빌닷의 두번째 연설 18:1-4
빌닷은 불쌍한 욥을 향하여 더욱 혹독한 말로 화살을 쏘아대었다. 그는 비록 현명하고 선한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 이경우에는 욥의 고통을 더해줌으로써 사단의 계획에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1) 엘리바스가 비난했던 것과(15:2,3) 마찬가지로 빌닷도 욥이 쓸데없는 말을 끝없이 늘어놓는다고 비난한다. 너희가 어느때까지 말을 찾겠느냐(2절). 빌닷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에 지쳤으며, 자기의 차례가 돌아올때까지 참고 기다릴수가 없었다. 이런 행동이 얼마나 점잖지 못한가 하는것은 다른 사람은 누구나 알수 있는데도, 정작 그 본인 자신은 그것의 잘못됨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한때 욥에게는 모든 논쟁을 종식시킬수 있을때가 있었다. '내가 말한후에 그들이 말을 내지 못하였었나니'(29:22)라는 말씀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그때는 욥이 힘이 있었고 번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황폐하였고 낮은데로 떨어졌으므로 도대체 말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수 없었다.
(2) 빌닷은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을 욥이 무관심하게 대한다고 책망했는데 '깨달으라 그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는 말이 바로 그 책망이다.
(3) 빌닷은 욥이 자기 친구들의 제안과 그 친구들 자신을 거만하게 멸시했다고 그를 책망한다(3절).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욥이 비록 그들을 '조롱하는 자'로 불렀고 그들을 지혜가 없고 무자비한 것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그들을 짐승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빌닷은 사태를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격한 마음이 욥에 대해 심하게 대할 구실을 찾고자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냉혹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먼저 자기에게 그렇게 대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4) 빌닷은 욥이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다고 책망했다. 울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4절). 여기서 그는 욥이 앞으로 이렇게 말한 것을 상기한것 같다.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13:14).
(5) 빌닷은 욥이 교만하고 오만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도 자기가 마음대로 하려했다고 비난했다. 너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겠느냐. "한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자연의 진행이 바뀌고, 확립된 통치의 법칙이 깨어져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욥이여, 너는 세계가 너없이는 유지될수 없다고 생각하며, 네가 망하면 세상도 너와 더불어 망하고 버림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기쁘게 하기위하여 하나님의 뜻이 바뀌고 그의 방법이 달라지며 그의 말씀이 실현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고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Ⅱ. 악인의 비참한 상태〔1〕 18:5-10
빌닷의 나머지 연설의 대부분은 악인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유창한 묘사에 할애되고 있는데, 거기에는 상당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악인이 이세상에서 비참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큰곤경에 처하게된 사람은 바로 그 사실때문에 악인으로 간주되어져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비록 빌닷은 자기의 주장을 욥에게 쉽지않게 적용시킬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확실한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정당한 일도 아니었다.
(1) 악인의 멸망이 흑암이라는 비유하에서 예견되고 예언되었다(5,6절).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렇도다"라고 빌닷은 말한다. "바로 그것이로다. 너는 근심에 쌓여있고 괴롬을 당하고 있고, 비참하게 되었으며 더나은 어떤것도 기대할수 없도다. 왜냐하면 '악인의 빛은 꺼지므로' 너도 그렇게될 것이기 때문이로다."
(2) 덫에 잡힌 짐승과 새, 혹은 체포된후에 처벌을 기다리며 갇혀있는 행악자의 비유로 악인의 파멸이 상징되고 있다(7-10절).
1) 사단이 그의 멸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그 몸이 올무에 얽힌 자(9절)로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
2) 그는 죄가운데서 계속 행함으로써 스스로 자기의 파멸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렇게함으로써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다. 그는 그 베푼 꾀에 스스로 빠진다(7절). 그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에 들어간다'(8절).
3) 하나님이 그의 멸망을 준비하고 계시다. 죄인은 스스로 열심히 덫에 걸려든다. 그 강한 걸음이, 즉 그의 강한 계획과 노력들이 곤비하여질 것이며, 따라서 그는 자기의 뜻한바를 이루지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욱 열심히 빠져나가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단단히 묶일 것이다. 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것은 사람이 추격자로부터 도망하는 것보다도 더어렵다.
Ⅲ. 악인의 비참한 상태〔2〕 18:11-21
여기서 빌닷은 그 파멸자체를 묘사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진노와 두려움(11,12절) :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죄인의 양심의 두려움이 그를 괴롭히므로 그는 결코 편안할수 없을 것이다. 그의 발도 그에게는 아무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의 발은 빨리 걸어서 덫속으로 들어간다(9절). 그는 자기의 파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있다. 그는 그것에 대항할 힘이 전혀없다. 그것을 피할수도 없고 견딜수도 없다.
(2) 비참한 악인의 죽음.
1) 악인이 죽는 것을 보라. 그는 사망의 장자(즉 보통 죽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보다도 더무서운 어떤것을 그 자체속에 가지고있는 어떤 질병이나 타격)에 사로잡혀 있다. 죽음의 선발대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즉 그의 뼈를 부패시켜서 닳아 없어지게할 것이다.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14절). 즉 그를 두루리라고 믿던 모든것이 그를 떠날 것이다.
2) 악인이 죽은 것을 보라.
① 그때 그는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간다.' 죽음은 그 본질상 무서운 것이다. 예수께서도 "아버지여 이때가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악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특별한 방식으로 '두려움의 왕'이다. 그런데 성도는 얼마나 행복하며, 주 예수께 얼마나 큰은혜를 입고 있는가! 바로 그 주님에 의하여 죽음은 그렇게도 완전히 폐지되었고, 그 속성이 바뀌어서 이 두려움의 왕이 친구와 종이 된 것이다.
② 악인은 그때에 '광명중에서 흑암으로 몰려들어 가다'(18절). 즉 이세상의 빛과 그 빛속에서의 그의 번영하던 상태에서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③ 악인은 그때에 '세상에서 쫓겨난다.' 즉 아담이 낙원에서 쫓겨났듯이, 그는 자기의 의지와는 완전히 반대로 죽음의 사자에 의하여 급히 끌려나가는 것이다. 이는 이세상이 그의 낙원인 까닭이다. 온세상은 그를 지겨워하며 기꺼이 그를 쫓아낸다. 악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3) 악인의 가족의 단절(15절) : 심지어 그의 처소까지도 그 주인때문에 황폐케될 것이다.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이는 유황이 비처럼 내려서 소돔을 멸망시킨 사실을 가리키는것 같다. 여기서 빌닷은 하늘에서 내린 물로인하여 욥의 양들과 종들이 타죽은 사실을 들어서 욥을 책망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그의 장막이 멸망되어야 하는 이유가 나타나 있다. 이는 그것이 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불의하게 얻어진 것이다. 그의 자녀들은 그와 함께있던 자녀들이건 그의 이후에 태어날 자녀들이건 멸망할 것이다(16절). 자기 가족의 참된 명예를 생각하며, 그 자손의 안녕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죄에 의하여 시드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악인의 집안이 근절됨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19절). 그는...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 죄는 후손에게 저주를 가져다준다. 아마 여기서 빌닷은 욥의 자녀와 종들의 죽음이 욥의 악인됨을 보여주는 더강한 증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4) 악인에 대한 기억의 소멸 : 그는 망각되거나 불명예스럽게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17절).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모든 명예는 흙속에 묻혀버림으로써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을 것이며,' 아무도 그것을 원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5) 악인의 넘어짐에 대한 놀라움(20절) : 그것을 본 사람이 놀란다. 무서운 죄가 기이한 형벌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일부러 모르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자들로하여금 변명을 하지못하게 하기에 충분한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체함은 온갖 죄를 짖기 위함이다.
# 핵심
18:1-21
빌닷은 욥이 자신의 충고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저주스러운 말까지(17:5) 하는 것을 듣고, 악인에게 닥칠 운명을 열거하며 더욱 혹독하게 욥을 비난했다. 욥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의 고통에 할말을 잃고 슬픔을 표했지만(2:11-13), 자신들의 충고를 거부하자 친구의 고난을 위로해야 한다는 본분을 망각한채 자신들의 말이 옳다는 점을 입증하는데에만 열심을 내고 말았다. 이같은 태도는 참된 위로자의 모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참된 위로자(18장)
욥의 친구들의 태도는 참된 위로자가 갖추어야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역설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참된 위로자는 ① 단순히 말하는 일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② 비난이나 비평을 일삼지 말아야 하고 ③ 능숙한 설교조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 말고 ④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볼줄 알아야 하며 ⑤ 실제적인 도움과 격려를 제공할수 있어야 한다.
# 묵상
빛과 등불의 상징 ( 18:5, 6 )
이는 하나님앞에서 의로운 자의 생명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사실 악인들이 누리는 번영과 영예는 일시적인 것으로써 반드시 사라지고 맙니다. 빌닷처럼 관습에 젖은 판단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지못하고 정죄로인해 상대방과 사회에 분열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욥에 대한 빌닷의 적개심 ( 18:7-10 )
빌닷은 욥을 가리켜 스스로 올무에 뛰어든 우둔하고 포악한 짐승에 비유했습니다. 사실 이성없이 날뛰는 자는 알지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멸망을 당하며 자신의 아성을 구축해가려고 노력하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아래 멸절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빌닷처럼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위로는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할 뿐입니다.
악인이 겪는 고난 ( 18:11 )
본문은 악인이 겪게될 고난에 대한 기록입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보복이 두려워 쫓는 자가 없어도 늘 쫓기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보복을 당할 위험에서 벗어났다하더라도 내면의 정죄, 양심의 가책은 여전히 남아있게 됩니다. 이처럼 악인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앞에서 선과 의를 행해야 합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길은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 말씀가운데 굳게서야 하겠습니다.
무서움의 왕 ( 18:14 )
무서움의 왕이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죽음을 가장 두려운 것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자연적인 생명력과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모든 사람은 죽음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또한 죽음은 불가항력적이며, 죽음뒤를 알지 못하고, 모든 세계와 존재와의 이별이기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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