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
[요한일서 3장 11절~24절]
11절 -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절 -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13절 -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절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절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절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절 -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절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절 -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절 -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절 -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절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절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절 -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사도 요한은 유다 전쟁(AD 66~70년)으로 인해 에베소에 정착했고, 소아시아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요한이 대처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는 영지주의 이단이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세상은 저급한 물질세계와 영의 세계로 이분되어 있고, 영혼이 육체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지식, 즉 영지(靈知)가 필요하다는 이원론적 우주관과 구원관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지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가현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이들을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불법한 자’(살후 2:8), ‘멸망의 아들’(살후 2:3), ‘짐승’(계 13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약 30년 동안 에베소를 중심으로 목회하던 요한은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요한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악하므로 기존의 도덕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극단적인 금욕, 쾌락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주장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과 그에 합당한 열매(생활의 문제)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첫째,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믿으며 둘째, 윤리적으로 빛 가운데서 의를 행하고, 셋째,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떤 상태에 있나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형제를 사랑해야 하나요?(14~18절)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살인하는 자로 사망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듯이 자기 목숨을 버릴 만큼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확인하는 증거가 형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의 계명과 믿음의 일차적인 요구에 순종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행동은 항상 사랑의 행위와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과 모습을 돌아보고 만약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궁핍함을 보고 도와줄 마음을 닫는 것은 의지적, 의도적으로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셨음에도 사랑하셨고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내가 진실하게 사랑하지 못한 지체는 누구인가요? 그가 내게 원하는 진실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이웃과 지체 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14절). 요한은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형제를 돕지 않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가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정도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형제를 위해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큰 사랑의 마음을 갖고 형제를 대하라는 뜻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웃과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결심하고 실천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되고, 이웃에게까지 흘러넘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요?(23절)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24절)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십니다.
요한이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23절)를 언급한 것은 당시 초대 교회를 어지럽히던 영지주의와 적그리스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봅니다. 당시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생각,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도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몸을 입어 잠시 머물렀다는 ‘가현설’로 설명하며, 구원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믿음을 파괴하는 폐해를 가져왔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과는 구별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성경에서의 계명은 종교적, 도덕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계명의 핵심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마 22:36~40). 하나님의 사랑에는 반드시 이웃에 대한 사랑이 동반합니다(마 22:39). 예수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심도 확신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적용과 나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공동체가 합력해서 지속적으로 섬길 사람은 누구며, 사역은 무엇일까요?
어느 공동체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약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고 건강하게 하며, 지체를 돌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하십니다.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면 가족 모두가 기도하며 하나 되고, 감사하지 못했던 일상을 뒤돌아보며 현재의 삶에 조목조목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나와 다른 환경을 가진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으로 품고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24절). 우리가 예수님을 대하듯 이웃을 섬길 수 있다면 주님의 동행하심으로 천국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 25:35).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위에 있는 작은 사람, 한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은혜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 형제 사랑의 방법은 ‘행함과 진실함’입니다.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증거는 ‘형제 사랑’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의 은혜로 능히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이들을 돌보고 사랑하면, 우리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예수님이 우리 중에 거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삶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며 빛 가운데 거하는 우리를 세상은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먼저 미움 받으셨고 죽음에서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담대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는 항상 생명의 자리에 머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말로만 형제를 사랑한다 하고 실제로 행함과 진실함이 부족했음을 회개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동행을 일평생 이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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