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

 

[마태복음 23장 25절~39절]
25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절 -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절 -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절 -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절 -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절 -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절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절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절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절 -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유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에 반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각 지방에 널리 퍼져 생활해 사람들과 자주 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경제적인 여건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 율법 지식과 경제적 여건을 토대로,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지위, 교육 수준, 경제력, 율법적 삶과 같은 요인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이 자신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사장들의 부패가 이들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높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백성의 인정은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고, 교만은 자신들이 받을 대접에만 관심을 가지고, 실제적인 신앙에는 무관심해지는 결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는 점차 심화되어 예수님 당시에는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자들’로 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절에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를 행하고 지키되”라고 말씀하시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생각에 유익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시면서도, 그들을 질책하셨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일곱 번이나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뭐라고 선포하셨나요?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25~31절)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율법대로 사는 것처럼 꾸미며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았지만, 내면은 탐욕과 방탕 등의 죄악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23장 13절부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모두 일곱 번이나 화를 선포하십니다. 16절에서 “눈먼 인도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여섯 번의 화를 선포하실 때에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로 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외식하는 자들로 선포하신 것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해치고 그릇된 지식을 선포하는 잘못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외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권위와 체면에 집착하는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했더라면 변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면에 가득한 교만과 무지한 백성의 높임 때문에 자신들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체와 허상 사이의 간극을 억지로라도 메우기 위해 외식을 택했고, 그 외식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4절까지 ‘맹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그들의 무지함과 그들의 잘못된 인도를 비판하셨고, 25절부터는 그 근본적인 원인인 외식을 직접 거론하시며 겉으로는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산다 하면서도 내면에는 탐욕과 방탕, 부정이 가득함을 힐난하셨습니다.
적용과 나눔
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외식하진 않나요? 참된 신앙인으로 온전히 서는 데 방해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는지를 아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율법에 담긴 참된 의에 대해서는 탐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없게 했고, 그들에게 비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 인도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잘못은 우리도 동일하게 범할 수 있는 종류의 잘못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내 생각과 세상 기준을 토대로 살면서 온전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교만하고 만족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선지자와 의인의 무덤을 단장하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예수님은 뭐라고 책망하셨나요?(29~36절)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만일 그들이 조상 때 살았더라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를 죽인 그들의 죄를 드러내시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공부하며 이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국의 역사와 친숙했습니다. 유대 역사에서 실패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부분 신앙의 부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조상들과 다른 판단과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조상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자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만과 무지의 산물입니다. 그들에게는 선조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인간의 한계에 대해 통찰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선조들보다 더 큰 잘못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의롭기 때문에 의인을 결코 핍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인이신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뱀’으로 부르시는 것을 넘어 ‘독사의 새끼’라고까지 부르셨습니다. 유대적 관점에서 사람을 뱀으로 부른 것 자체도 강한 공격이지만, 독사의 새끼라고 부른 것은 엄청난 책망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외식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과도 같습니다.
적용과 나눔
누군가의 잘못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어떤 일을 반면교사 삼았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을 포함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잘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러한 무지는 교만으로, 교만은 행악으로 이어져 그들이 비교의 대상으로 삼았던 조상들보다 더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셨고, 제자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무지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사람에게 높이 평가받기보다 하나님께 칭찬받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할 때 남을 쉽게 판단하는 죄를 버리고, 겸손히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자신들의 생각과 사는 방식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눈만 의식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잘못된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의 신앙까지 망가뜨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외식하는 자’, ‘독사의 새끼’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한계에 유의하지 않으면, 어느새 교만해져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동하려 힘쓰는 성도는 훗날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 생각과 경험, 가치관이 하나님 말씀보다 앞섰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바르게 깨닫도록 성령께서 조명해 주소서. 모든 일에 겸손과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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