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이 위로자십니다
[욥기 16장 18절~22절]
18절 -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절 -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절 -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절 -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절 -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기 17장 1절~5절]
1절 -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2절 -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절 -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4절 -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5절 -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배경 이해하기]
친구 중 하나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정금이시다’ 혹은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은 죄에 따른 하나님 심판의 결과로 고통 당하는 것이라는 논증을 계속해서 펼칩니다. 엘리바스는 다른 두 친구인 빌닷과 소발보다 욥을 향해 동정심을 더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고난을 당한다’,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악한 사람이라는 반증이다’라는 전통적인 율법주의에 근거해 고통 중에 있는 욥을 훈계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주관적인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과장해 이야기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다분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동시에 그 틀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깊고 크신 섭리를 축소함으로써 세속적인 인과 관계 논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욥이 고난 당하는 것 역시 세속적인 인과 관계의 원리로만 설명하며, 욥을 향해 계속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의 신관은 ‘하나님은 악한 자를 징계하시고 선한 자에게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수동적인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줍니다.
[관찰과 묵상]
1. 엘리바스의 훈계를 들은 욥은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 줄 이가 누구라고 고백하나요?(16:19)
욥은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 주실 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그의 유일한 증인이 되시고 중보자가 되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죄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엘리바스와 논쟁하던 욥은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아프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야말로 자신의 결백을,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 주실 유일한 분임을 고백합니다. 비록 자신의 고통에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한탄도 있었지만(16:6~16),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지하고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창조주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신원하심을 간구합니다. 큰 고통 가운데 있는 자신을 찾아온 세 친구로부터 오히려 모욕과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 욥은 더욱더 확고하게 하나님만이 자신을 위로하시며 자신의 중보자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붙잡습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20~21절).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결국 그는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고후 4:8)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서 더욱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합니다. 욥은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제거하시고 도우실 분임을 확신합니다.
적용과 나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위로받은 경험이 있나요?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던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스코틀랜드 목사요 설교자인 로버트 머리 맥체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옆방에서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백만 명의 원수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분은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욥은 세 친구의 위로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그들로 인해 더 큰 상처를 입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분, 그가 의지할 만한 유일한 분, 그가 피할 유일한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며 그분께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인생에서 고난과 고통의 상황을 겪는 것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성도는 그 고난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주시고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2. 욥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했으며, 그것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17:3)
오직 하나님만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주실 수 있으니, 하나님이 신원하신다는 보증으로 담보물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욥은 계속되는 엘리바스와의 대화 속에서 더 큰 절망감을 느낍니다. 더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의 좌절감을 느끼며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17:1)라고 자신의 절망적인 심정을 표현합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실 수 있음을 토로합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피난처가 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며 하나님께 ‘담보물’을 요청합니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17:3). ‘담보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르베니’는 ‘계약을 증빙하기 위한 물건 혹은 증표’를 뜻하는 법적 용어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담보물을 요청하며, 자신의 보증인이 되어 주시길 간청하는 것입니다.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17:3)라는 욥의 고백은, 친구들은 고통 속에 있는 그의 손을 잡아 위로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주는 대상이기에, 하나님이 그들로부터 신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요청입니다. 동시에 욥 자신의 편에 서서 중재자가 되어 주시길 바라는 간구입니다. ‘손을 잡아 주다’라는 히브리어 ‘타카’는 보증을 설 때 채무자의 대리인으로서 중재의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자신의 남은 힘을 다해 하나님이 자신의 손을 잡아 주시길 소망합니다.
적용과 나눔
요즘 나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길 바라는 문제가 있다면 함께 나누고 기도하세요.
욥의 인생은 그야말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외딴 섬처럼 고통 가운데 덩그러니 던져진 듯한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처럼 무덤 속으로 끌려갈 것을 기다리며 체념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욥은 한 줄기 실낱같은 소망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 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역사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와 인생의 한계에 부딪힐 때 한계를 느끼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기회입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가장 약할 때, 가장 낙심될 때, 내게 남은 도피처라고는 죽음뿐이라고 여겨지는 그때 하나님의 강함으로 한계와 문제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과 문제를 향하던 우리의 시선이 완전하신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그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폭풍우를 잠잠케 하실 것입니다.
*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문제와 한계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때로는 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어 정서적으로 불안을 느낄 때도 있고,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 오는 정죄와 비난의 손가락질로 큰 상처를 받아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내 편이 되어 나를 변호하고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최고의 방법은 내 마음이 하나님 안에 뿌리내리도록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유일한 위로자요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 신뢰하며 걸어가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실 위로를 기대하며 살게 하소서. 사람의 말이나 상황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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