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출애굽기의 저자 역시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이다.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모세오경의 모든 말씀을 골고루 인용하시면서 오경이 모세의 글임을 증거하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생생한 환경과 기적을 목격하고 그것을 가장 명확하고 생생하게 기록할수 있는 자는 애굽의 모든 학술과 지혜에 능통했던 그 당시의 사람 모세만이 가능했다. 또한 출애굽 자체도 모세가 출애굽기의 저자임을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출34:28).

2. 출애굽기의 기원과 성격

출애굽기라는 명칭은 구약성서의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LXX)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맛소라 텍스트(MT)는 "그리고 이름은 이러하니라"는 말로 책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칠십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역 등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길을 떠나다' (ex + odos)라는 의미를 담아 'Exodus'라 부르고 있다. 한글 개역은 '출애굽기'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출애굽기는 애굽 탈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성막 건축기라고 볼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할 당시의 애굽의 역사를 족장들의 행적과 관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출애굽기는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조명한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라고 할수 있다.
출애굽기는 모세의 이야기와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인 유월절 신앙과 시내산에서의 전통 그리고 성막에 관한 전승을 이어주는 기록으로써 이스라엘의 구원 개념과 역사 이해를 살펴볼수 있는 정경이다(Canon).

3. 출애굽기의 특징

출애굽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두가지로 분류할수 있다.
첫째는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이 거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인류의 대속주를 뜻하는 유월절 어린 양과(고전5:7), 생명의 떡을 상징하는 만나의 사건(요6:48), 생수를 의미하는 반석의 물(고전10:4)과 인류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사장 제도(출28, 29장)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형에 대한 연구는 출애굽기 연구의 핵을 이루며 신약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둘째는 출애굽기가 보여주는 구조의 다양성이 서로 일치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출애굽기에는 다른 책에서 볼수 없는 여러가지 특이한 사건들이 한데 어우러져 매우 복잡한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 예를들면 출애굽기 전체 내용에서 이스라엘이 진을 친 장소를 지리상으로 구분해 볼때 애굽에서의 이스라엘(1-12장), 시내산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13-18장),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19-40장)로 구분할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다양성은 모두 이스라엘의 구속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어 있음이 출애굽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수 있다.

4. 출애굽기가 쓰여진 역사적 정황

1)박해시기
이 시기에 있어서 문제는 히브리인들의 주류 혹은 그 구성원에 대한 문제이다. 보수측 계열에서는 성서 그대로 백만 이상의 군중들이 움직였다고 보는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그 시기에 애굽에는 아피루('apiru)라고 불리우는 애굽의 노동 계급이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피루(hapiru)라는 천민 계급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yrb[(히브리)로 불렸다. 이러한 관점에서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은 단일 민족이라기보다는 하나님 신앙을 위주로 해서 뭉쳐진 지파 공동체임을 알수 있다. 그래서 구약성서는 지파를 강조하고 지파간의 분쟁이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재구성해 보면 히브리인들의 주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요셉을 알지못하는 왕' (출1:8), 즉 투트모스 1세와 라메세스 2세의 시기에 건축 현장에서 일을 했으며, 하나님 신앙에 의해 뭉쳐진 그들은 이 노예 상태에서 탈출하였고, 북쪽으로 이주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갔으며, 거기서 다른 아람 족속들과 연대하여 이스라엘 지파 공동체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시내산 계약을 그 연대의 계약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 신앙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파악하였다.
바로 출애굽기는 모세와 그 일행에게 주전 8,9C 혹은 6C의 종교, 제례, 역사, 도덕의 개념을 사용하여 그들의 기억속에 있는 역사와 신앙을 해석하려고 한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단순히 주전 13-15C의 상황뿐만 아니라 이것이 편집되던 시기의 상황도 많이 개입된 것을 알수 있다.

2)출애굽 시기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명을 찾아주고 실제적으로 해방된 인격자로 하나님 앞에 서며, 인간의 관계성이 회복되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개방의 추구는 그들이 홍해를 건너는 사건에서 역사적 애매성이 드러나는데, 이는 갈대 바다(#ws !y; 얌 숩)를 붉은 바다 즉 홍해(Red sea)로 오역한데서 기원한다. 왜냐하면 홍해에는 갈대가 전혀없으며, 애굽의 통칭상 고센 지방의 갈대 바다(호수 지역)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출애굽의 경로가 다양하게 알려진 것은 후대의 편집에서 각기 다른 전통들의 하나님 신앙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연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그중에서 15C(B.C. 1445-1440)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3) 시내산 여행
출애굽에 나오는 산은 시내산 혹은 호렙산이라고 불리는데 이 산의 위치는 분명치 않다. 전통적으로는 시내산 남단에 가까운 에벨-무사(Jebel-musa)이다. 그러나 화산의 분출과 같은 사건을 생각한다면(출19:16-19) 아카바 만의 동쪽 서북 아라비아(미디안)의 어느 지점이라고 추정한다. 또한 하나님의 신명의 기원에 관한 것인데, 이것이 모세 혹은 이드로에 의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출15:2에 '내 아버지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제사장으로 알려진 모세의 장인 이드로(출3:1)가 지혜로 모세를 돕고(출18:13-27) 하나님께 제사와 성찬을 인도하는 것(출18:10-12)을 통해 이드로가 속한 켄족이 이스라엘 민족과 깊은 연관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4) 광야 유랑 시기
광야에서 방황할 시기의 자료는 위치가 애매하고 또 하나는 여러무리로 흩어진 방랑의 자료가 하나의 전승으로 합쳐졌을 가능성이 있어서 전승 자체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팔레스틴 지방을 지나 북쪽으로 진군하지 않고 강력한 블레셋, 아말렉 족속을 피해 농경 사회인 에돔과 모압 족속의 땅으로 우회하여 북진한 것은 13C의 상황과 잘 부합하는데, 이는 지역 요새들을 피해 북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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