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의 사랑법

[요한일서 3장 13절~24절]
13절 -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절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절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절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절 -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절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절 -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절 -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절 -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절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절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절 -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1.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잔잔하던 호수 위의 파문 그대 처음 바라본 순간/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며 서로 조심스레 가까웠을 때/ 빨려들던 눈동자의 빛은 외로움에 지친 그림자/ 이제는 당신의 오 당신만의 사람 오 당신만의 사랑이겠소/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 진실만이 오고 갔을 땐/ 차가워진 손을 어루만져 그대 마음까지 따스했을 땐/ 피곤했던 내 마음의 날개 날아 오른 느낌이었어/ 오 그대 그대는 그토록 기다리던 오 기다리던 사람이었소/ 젖은 눈을 바라보는 순간 떠날 시간 다가온 줄을 알면서도/ 말 못하는 마음 아니 보내야만 했던 내 마음/ 헤어지는 아픔만이 남은 어느 슬픈 사랑의 얘기/ 그러나 당신은 나 하나만의 사람 나 하나만의 사랑이었소/ 그러나 당신은 나 하나만의 사람 나 하나만의 사랑이었소/ - 윤형주의 ‘어느 사랑의 이야기’-

2.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 중에 그 사랑에 가장 가까운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로 인해 나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습니까?
‘강철 왕’이라고 부르는 카네기의 가정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했을 때, 정작 여비가 없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친구인 헨더슨 부인이 선뜻 20파운드를 빌려 주었습니다. 멀리 낯선 땅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을 믿고 돈을 빌려 준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50센트씩 모아 마침내 20파운드를 마련한 날에 카네기는 “빚은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영원히 갚지 못합니다. 평생 고마움을 간직하고 삽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된 데에는 항상 사랑을 베푼 사건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는 것도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입니다. 부모님, 선생님, 목회자, 친구 등 나의 삶을 바꿔 놓게 했던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을 함께 나눠 봅시다.

3. 사도 요한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 없는 것은 무엇과 같습니까? 그리고 그 주장은 어떤 사건에 기초하고 있습니까?(14~16절)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생명이 없을 뿐 아니라 구원 받지 못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사건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생명이 없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과 같습니다. 적어도 요한에게 사랑하는 것은 구원 받는 것과 동의어입니다. 반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마귀의 속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목숨까지도 내어 주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미움의 영이기에 질투로 시작해 살인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에 그 사랑을 아는 성도들은 당연히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요한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만 주시지 않고, 그와 더불어 그분의 성품을 나눠 주시기 때문에 이 일은 가능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시기 때문에, 이기적인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을 이야기할 때, 최상의 사랑인 ‘아가페’(agape)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숭고하길 기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를 우리가 이미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인 아가페에 한 번 접촉한 사람은 그 아가페를 퍼뜨리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4.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습니까?(17~18절)
감정이나 관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행동에 진실함이 더해 질 때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나야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술로만 사랑을 합니다. 궁핍한 형제가 있고 자신에게 도울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입술로만 불쌍히 여깁니다. 이런 사랑은 궁핍한 형제를 배부르게 못하며, 헐벗고 추위에 떠는 형제를 따뜻하게 못합니다. 차라리 밥 한 그릇, 옷 한 벌을 주는 것이 더 큰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행함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행함 위에 진실함이 더해지기를 원하십니다. 행함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진실함이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진실함 없이 베푸는 것은 반쪽짜리 사랑입니다. 나누는 행함에 진실함이 더해질 때, 그 사랑은 능력이 됩니다. 나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입술만 움직이는 천박한 사랑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진실한 마음 없이 손만 움직이는 사랑은 아닙니까? 마음속에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사랑이 있어서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우리는 작은 예수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5. 사도 요한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유익은 무엇입니까?(23~24절)
사도 요한에게 사랑보다 더 크고 귀한 계명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에게 사랑보다 더 크고 귀한 계명은 없습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사랑은 동사입니다. 요한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랑할 대상을 찾습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또 사도 요한에게 사랑하는 것은 곧 ‘믿는 것’입니다(23절).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을 느끼고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강력하게 임재하고 느껴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풍성함이 나를 덮고 채웁니다. 사랑을 받는 비결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형제자매들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6. 나는 공동체 안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사랑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사랑을 주는 것이 더욱 행복합니다.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상처도 적지 않게 주고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사랑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지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랑의 무게를 달아 보실 것입니다.

7. 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있습니까? 혹시 아무것도 손해 보는 일 없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사랑 없이 줄 수 있지만, 주지 않고 사랑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주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쥐고 있던 손을 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느새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이 나누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기쁘게 나눌 때, 하나님 나라는 임할 것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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