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

[누가복음 10장 25절~42절]
25절 -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절 -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절 -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절 -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절 -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절 -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절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절 -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절 -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절 -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절 -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절 -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절 -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절 -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절 -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던진 두 가지 질문은 무엇이며, 그의 의도를 파악하신 예수님은 어떻게 응답하시나요?(25~29절)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율법을 인용하시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율법교사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합니다. 율법교사의 태도에서, 자기의 선행과 율법적 지식을 뽐내면서 예수님을 공격하려는 악한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라고 반문하시며 말씀의 핵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율법교사가 신명기 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과 레위기 19:18의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인용해서 대답하자, 예수님은 그렇게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다시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이야기하십니다.

2. 예수님이 율법교사에게 최종적으로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36~37절)
예수님은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지 물으셨고, 율법교사가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하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공격하는 율법교사를 꾸짖지 않으시고 비유를 통해 진리를 확실하게 깨우쳐 주십니다. 강도 만난 사람 곁을 지나가는 제사장과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을 예로 드시며 그를 진리로 인도해 가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 온유,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마치시고 율법교사에게 물으십니다.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쉽지만 깊이 있는 질문입니다. 율법교사가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일침을 놓으십니다. 이웃의 개념을 묻는 율법교사에게 참된 이웃의 개념을 깨닫게 하셨음은 물론이고 이웃 사랑을 지속적으로 행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민족적, 종교적 범위를 넘어서서 삶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참된 이웃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 예수님을 접대하려고 분주히 준비하던 마르다가 예수님께 요청한 일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요?(40~42절)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을 행하는 것이 말씀을 이루는 삶인 것을 교훈하신 예수님은 그다음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십니니다. 이 장면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와 상호 보완적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어떤 사역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집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마르다는 정성껏 여러 가지를 준비합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자신을 돕지 않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졌고, 예수님께 마리아에게 명하셔서 자신을 돕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시며,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분주한 일상이나 사역 때문에 신앙의 본질을 놓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4.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그때 느낀 기쁨과 보람은 어떠했나요?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와,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서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당돌하게 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참 이웃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시며 사랑을 실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 말씀의 기저에는 그분 자신이 말씀 안에 거하시며 말씀을 행하셨던 모범적인 선생으로서의 권위가 담겨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교훈이 아무리 위대하고 탁월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삶이 그 가르침과 상관이 없다면 그 가르침은 가치를 잃고 설득력도 없을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일입니다. 드라마나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없는 이유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실제 삶이 그렇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문이나 뉴스는 많은 정보와 가르침을 주지만, 이를 전달하는 사람의 삶을 검증할 수 없기에 뉴스와 정보로만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예수님 그분이 바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삶의 실천이 우리의 인격과 삶을 바꿀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 나는 평소에 마르다와 마리아 가운데 누구의 모습과 더 닮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나요?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며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행동하는 믿음을 갖는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며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어떤 위대한 사역도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우선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 듣는 것을 우선순위로 정했기에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고 마르다의 비난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르다의 섬김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선순위와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르다처럼 일 중심적인 사람들은 일을 통해 가치를 추구하고 일의 결과를 통해 성취와 만족감을 얻습니다. 반면, 마리아처럼 관계 중심적인 사람들은 만남 그 자체가 소중하고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에 큰 의미를 둡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병행한다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일을 먼저 해야 할 때가 있고, 관계가 우선일 때가 있습니다. 충성스럽게 일하고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이 최선일 것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