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권에 순종하는 생활

[사사기 20장 19절~34절]
19절 -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절 -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절 -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절 -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절 -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절 -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절 -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절 -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절 -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29절 - 이스라엘이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30절 - 이스라엘 자손이 셋째 날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매
31절 -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 길 곧 한쪽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쪽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32절 - 베냐민 자손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고
33절 -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들의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그 장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34절 -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만 명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치열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1. 이스라엘 연합군은 두 번에 걸친 베냐민 지파와의 전면전에서 어떻게 되나요?(21, 25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22절, 10~11절 참조)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과의 첫 번째 전투에서 22,000명의 사상자를, 두 번째 전투에서 18,000명의 사상자를 내며 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두 번의 전투를 위해 모두 하나님께 묻기는 했지만(18절, 23절) 이미 자체적으로 전쟁을 결정한 이후였습니다(10~11절, 22절).
예상과 달리 40만 병력의 이스라엘 연합군은 26,700명의 베냐민 지파에게 많은 사상자를 내며 참패를 당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미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사람들에게 분노하여 전쟁을 결정한 후에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일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자신들의 결심에 대해 하나님께 동의를 구하는 형식적인 물음이었던 것입니다. 판단은 그들 자신이 하고, 중요한 계획도 그들이 세웠습니다. 첫 번째 패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잘못을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날이 저물도록 눈물을 흘리기는 했지만(23절) 그것 역시 ‘스스로 용기를 내어’(22절) 싸우기를 결심한 이후의 행동이었기에 회심의 눈물이라기보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첫 번째 전투에서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18절)라고 하시고, 두 번째 전투에서 “올라가서 치라”(23절)라고 응답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베냐민 지파와 싸우려 하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그들이 패하게 될 싸움을 싸우라고 하십니다.

* 누군가 잘못했을 때 지나치게 화내며 책망한 적이 있나요? 그런 일이 있을 때 대체로 나와 하나님 관계는 어떤가요?
하나님께는 전쟁의 명분이나 승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 당사자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악한 죄를 지은 기브아 사람들을 응징하고 그들을 내주지 않는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질문한 것은 단지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주장하는 삶의 권리에 단지 허가 도장만 찍어 주시는 무능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보다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 둔 후에 종교적인 절차만 갖추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으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이 신앙에 따라 행동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비록 눈물을 흘리며 신앙적인 모습을 취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리에 서지 않는다면, 삶의 결과는 단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입니다.

2. 이스라엘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나요?(26~28절) 세 번째 전투 결과는 어떠했나요?(31~34절, 35절 참조)
이스라엘은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벧엘로 가서 금식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할 것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올라갈 것을 명하시며 승리를 말씀하셨고, 결국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이깁니다.
두 번의 패전 이후에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제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벧엘로 가서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며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에 있고”(27절)라는 언급은 비로소 그들이 진정성 있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28절)라는 언급은 그들이 제사장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이르기 원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을 형식적인 것으로 밀어내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인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를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이번 물음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전쟁의 방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할 것인지 그 여부를 물은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전쟁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명령하시고 이전 두 번의 응답과는 달리 “네 손에 넘겨주리라”(28절)라는 승리의 약속을 주셨으며 결국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전술에 속아 패전하게 됩니다.

* 어떤 일로 계속 실패하고 있을 때 그 근본 원인이 하나님과 불화했기 때문인 적은 없나요? 그 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누어 보세요.
처음에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였지만 이는 스스로 판단하여 전쟁을 결심하고 선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이 전쟁에 관해 하나님께 묻기는 했지만 전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가 아닌, 누가 어떻게 올라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의 주권은 하나님이 아닌 그들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결정을 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행동이 옳지 않고 그들의 병력이 베냐민 지파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의 패전을 통해 전쟁의 승리가 사람의 이성과 현실적 상황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마음을 다한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비느하스의 영적 권위를 세워 줌으로써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승리의 조건은 정당한 명분과 타당성 있는 현실이 아닌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두 번의 패배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취한 태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날이 저물도록 금식했습니다. 첫 번째 패전 후 그들은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에 앞서 ‘스스로 용기를 내어’(22절) 그들의 판단과 결심대로 행했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패전 후에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자세로 금식합니다. 만일 자신들의 힘으로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려고 했다면 금식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회개를 위해 금식한 경우가 많이 있으며(삼상 7:6; 욜 2:12; 행 9:9)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 금식한 예도 여러 차례 나타납니다(출 34:28; 욜 1:14). 둘째,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렸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기원하며 헌신하는 제사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로서, 이 두 제사는 모두 예배자가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셋째,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라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전쟁을 승인해 달라거나 이길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은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관계의 회복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 모두에게서 하나님의 공의를 성취하시고 전쟁의 목적을 이루시게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결정한 문제에 대해 승인 도장만 찍어 주시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권자 되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간다면 그 결과는 실패와 멸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영적 갈림길에 설 때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자 합니다. 자기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 길을 지도해 주십니다(잠 3:5~6).

함께 기도하기
- 하나님의 뜻을 묻는 척하면서 사실은 제 뜻을 고집했던 형식적 신앙을 회개합니다. 모든 문제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게 하소서.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함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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