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여호와

[사무엘상 14장 1절~23절]
1절 -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절 -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절 -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절 -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절 -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절 -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절 -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8절 -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절 -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절 -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1절 -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절 -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절 -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절 -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절 -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16절 -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절 -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절 -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절 -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절 -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절 -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절 -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절 -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1. 블레셋과 마주한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인가요?(2절; 13:19~23 참조) 요나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블레셋에게 나아갔나요?(6~10절)
블레셋 군대에 맞서는 사울의 군대는 6백 명밖에 남지 않았고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음을 믿고 자신의 병기를 든 자와 함께 블레셋 군대로 건너가서 싸울 각오를 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그들 손에 넘기셨다고 확신합니다.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명인 블레셋 군대가 집결하자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 3천 명을 징집했지만 경솔한 번제 제사로 인해 모두 흩어져 6백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블레셋은 철제 무기로 무장했지만 이스라엘에는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무기를 가진 군사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블레셋의 전력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의 행동은 사무엘상 13장에서 보인 사울의 비신앙적 태도나 행동과 대비됩니다. 요나단은 블레셋을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일컬으며 이 전쟁이 신앙과 직결된 것임을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6절)라고 고백하며 이 전쟁의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선언한 그는 여호와의 전쟁이 현실적인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모할 만큼 담대한 요나단의 생각과 행동은 오늘날 신자와 교회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 내 형편이 초라하고 상황이 열악하다고 느껴 낙심한 적이 있다면, 요나단의 고백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블레셋의 3만 6천 명 군사와 이스라엘의 6백 명 군사는 압도적인 차이입니다. 철제 무기로 무장한 블레셋에 비해 아무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은 누가 생각해도 전의를 상실할 만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병기 든 자와 함께 블레셋 진영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무모해 보이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보는 세계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도 현재 맞서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블레셋을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싸울 대상은 육체가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의 견고한 진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라는 생각은 승리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 줍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는다”라는 요나단의 말은 지금의 현실이 영적 전쟁의 상황이라고 확신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요나단의 영적 안목에 따라 다시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나요?(13~15, 20절) 반면, 사울은 이때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18~19절)
요나단과 병기 든 자가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올라가니 그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졌습니다.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이 공포에 떨었으며,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고, 땅도 진동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사울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했으나 블레셋 진영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중단합니다.
요나단과 병기 든 자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표징을 신호로 약속하고 그 표징이 나타나자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군인들은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졌고 병기 든 자도 요나단을 따라가며 그들을 죽였습니다. 이때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공포로 떨 정도로 땅이 진동하는 큰 떨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떨림’은 히브리 원어로 ‘헤르다트 엘로힘’이어서 ‘하나님의 떨림’이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스스로 치면서 혼란이 일어났고,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했던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합류하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도주하는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해서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때 사울은 아히야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게 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에봇’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다가 상황이 급변하고 이스라엘이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자 더 이상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라서 승리한 일 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다가 결국 내 판단대로 한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요나단과 병기 든 자가 특별한 신호를 여호와의 표징으로 삼았던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전쟁을 시작할 동기를 품고 시기를 정하는 데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나타나는데 요나단이 올라갈 때 그 앞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들의 진영에 지진과 같은 큰 떨림이 일어났으며 블레셋 진영의 사람들끼리 서로 칼로 치며 자멸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려 할 때 있었던 일과 유사합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개입과 승리가 우리의 삶에 나타날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표적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 영적인 대적이 우리 앞에서 넘어지고 어둠의 세력들이 자멸하는 승리가 지금도 일어날 것입니다. 사울은 늦게나마 하나님의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하다가 블레셋 진영에 큰 혼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를 철회합니다. 이로 보아 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블레셋은 함 계통의 가슬루힘 자손으로(창 10:14) 지중해 북쪽 갑돌 지역에서 애굽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람세스 3세에게 패하여 현재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지중해 남쪽에 침입해서 정착한 해양 민족을 일컫습니다(렘 47:4; 암 9:7).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전쟁할 경우 두려움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셔서 광야 길로 우회하게 하셨습니다(출 13:17). 사사 시대 말기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기도 했으나(4:11),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되찾게 하셨습니다. 사울과 요나단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농기구를 만들 때 블레셋 사람들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블레셋은 철기 문화에 있어서 앞서 있었습니다(13:19~22). 사울과 다윗 왕은 블레셋과 많은 전쟁을 했으나 블레셋 본토는 정복하지 못했고 솔로몬 왕 때에야 비로소 블레셋을 다스렸습니다(왕상 4:21). 다윗 왕 이후 블레셋은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어 이사야(사 14:28~32), 예레미야(렘 47장), 스바냐(습 2:4~7), 에스겔(겔 25:15~17), 스가랴(슥 9:5~8)의 예언대로 바벨론과 헬라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요나단의 모습은 오늘날 이성과 상식, 문화와 제도 안에 갇힌 성도들에게 큰 도전과 소망이 됩니다. 먼저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누구인지, 이 싸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쟁을 위한 전쟁이 아닌 구원을 위한 전쟁에 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이 하나님의 구원을 제한할 수 없다는 확실한 신앙 고백은 놀라운 승리의 삶으로 이끌 것입니다. ‘큰 떨림’과 같은 하나님의 개입과 도움은 지금도 계속해서 나타나는 믿음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궤를 가져온 사울처럼, 신앙이 있어 보이나 결국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불신에서 떠나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 현실의 한계에만 집착하는 불신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승리를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 제 이익을 위해 이랬다저랬다 마음을 바꾸거나 형식적으로 신앙을 취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를 기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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