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를 뛰어넘어

[사무엘상 21장 1절~9절]
1절 -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절 -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3절 -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절 -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절 -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절 -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7절 -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절 -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절 -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1. 놉으로 도망간 다윗은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어떻게 말했나요?(1~2절) 다윗의 거짓말은 결국 어떤 비극을 불러왔나요?(22:18~19 참조)
다윗은 사울을 피해 놉 땅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 다윗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그에게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결국 이 때문에 놉 땅에 있던 제사장 85명과 그의 가족들이 학살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죽이기로 결심한 줄을 알고 홀로 정처 없는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놉 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갔습니다. 아히멜렉은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이 오자 떨며 그를 영접합니다. 그는 사울 왕이 다윗을 총애하여 그를 곁에 두고 천부장으로 삼고 그의 딸을 주어 부마로 삼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 온 것을 이상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다윗이라면 천부장으로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는 것이 당연할 텐데 지금 초라한 모습으로 홀로 이곳까지 온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왕명을 받들고 있는 중이며, 이것은 극비 사항이기 때문에 혼자 왔다고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다윗은 아마도 도망자 신세로서 몹시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진실을 이야기할 경우 아히멜렉이 자기를 영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굶주리고 지쳐 있던 다윗은 그에게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다윗의 거짓말을 곧이들었던 아히멜렉의 호의로 말미암아 놉 땅의 제사장 85명과 그의 가족들은 사울의 보복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보고,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누어 보세요.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을 들은 히브리 산파들은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여인들은 산파가 도착하기 전에 아기를 낳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출 1:17~19). 기생 라합 역시 정탐꾼들을 숨겨 주고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합니다(수 2:4~6).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허용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사탄을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면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 자체를 허용한다면 자기 합리화에 능숙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거짓말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하물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과 같이 선의의 목적도 아니고 단지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거짓말로 인해 결국 놉 땅에서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된 것을 볼 때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2. 다윗은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무엇을 요청했나요?(3, 8절) 요청을 듣고 아히멜렉은 어떻게 했나요?(4~6, 9절)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히멜렉은 굶주리고 있는 다윗을 위해서 거룩한 떡 진설병을 내어 줍니다. 다윗이 칼이나 창이 없는지 묻자 아히멜렉은 전에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골리앗의 칼을 가져와 그에게 줍니다.
다윗은 먹을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울의 천부장이요 왕의 부마였지만 그의 현재 신세는 참으로 처량했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외롭고 두렵고 배가 고팠습니다. 아히멜렉은 거룩한 떡 외에는 다윗에게 줄 것이 없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 떡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떡이 아니라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히멜렉은 전혀 갈등 없이 다윗에게 진설병을 주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지만 율법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배고픈 다윗을 불쌍히 여기고 그에게 거룩한 떡을 주었습니다. 아히멜렉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결코 율법적인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의 조문에 매여 율법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은 그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기꺼이 다윗에게 떡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무기를 찾는 다윗에게 전에 엘라 골짜기에서 그가 죽인 골리앗의 칼을 주었습니다.

* 많은 사람이 율법주의라는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롬 7:7), 우리의 죄를 심화시키고(롬 7:8),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갈 3:24)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그 자체는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어서 율법 그 자체를 지키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착각하며 율법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는 대신 종교 행위를 신뢰하고 규례와 규칙을 따르면서 신앙의 본질을 놓칩니다. 율법주의는 전통을 지킴으로써 영적인 우월감을 갖고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할 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은 없이 자기 의를 쌓음으로써 영적인 소경이 되게 만듭니다. 아히멜렉이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것은 하나님은 결코 굶주린 사람을 버려두면서까지 율법의 조문 지키는 것을 더 값지게 여기지 않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 본문을 예로 들면서 안식일에 배고픈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훑어 먹었던 사건을 변호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율법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1세기 기독교인 중에서 유대교 율법에 익숙했던 유대인들은 신앙생활도 율법적으로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도 613개나 되는 유대교 율법을 지킴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고 특히 할례 의식을 준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이들은 신앙생활과 율법을 거의 별개로 보았습니다. 율법 밖의 문화에 더 익숙했던 데다가 율법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더 컸기 때문에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효력이 상실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행실이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들 간에 입장 차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신자들 간에도 혼란이 생겼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예루살렘 공회가 소집되었고 결국 어떤 율법으로도 인간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신자들에게 율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씀조차도 율법주의로 흐르는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늘 율법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시면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셨고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되길 기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베드로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 애찬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엄격히 따르는 야고보의 사람들이 오자 베드로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습니다. 율법은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을 금지했기에,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들은 바울은 위선적인 행동이라며 베드로를 비판했습니다(갈 2:11~14).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 중 하나는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떡을 굶주린 다윗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어떤 상황에서든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악한 세상을 살면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행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되 율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진정한 율법의 정신을 따르며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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