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3절)
심판의 임박성과 회개에 대한 요청 - 회개에 대한 요청이 반복적인 표현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심판 선포의 목적은 심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이 나타난 것으로 죄의 회개와 돌이킴에 있음에 깨달을 수 있다.
[1절]
수치를 모르는 백성. 유대 백성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3:5; 렘 6:15) 그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한 불감증이 만성화될수록 파멸의 날은 더욱 가까워지는 법이다(전 8:11). 모일찌어다. 죄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의미이다(사 19:22; 렘 15:19; 호 6:1; 욜 2:12). 즉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자신과의 화해를 제시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라도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길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면치 못하는 자들은 오직 자신의 심령의 완악함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사 50:1, 2).
[2절]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심판의 날이 너무나 임박해 있으므로 회개할 수 있는 시간도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3절]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구원이란 인간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롬 3:24; 롬 5:15; 롬 11:6;엡 2:8, 9)이다. 따라서 겸손한 자라 할지라도 결코 그들의 행위로 인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스바냐 선지자는 이를 주지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혹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4~15절)
열방에 대한 심판 - 유다에 대한 심판 선포(1:1~2:3)에 이어 여기서는 일찍부터 이스라엘(전유대 민족)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교만하여진 이방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껏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열국들은 어디까지나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며 궁극적으로 구원 얻을 자는 이스라엘이고, 멸망받을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국임을 알 수 있다.
(4~7절)
블레셋에 대한 심판 - 블레셋은 원래 지중해 연안의 그레데 섬으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민족으로서(창 10:14; 렘 47:4; 암 9:7) 이스라엘 민족과는 오래 전부터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탈취해 갔을 뿐 아니라(삼상 5:1) 유대 왕궁을 침략하여 재물을 탈취하는 등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을 대적한 죄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4절]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수 13:3).
[5절]
그렛 족속. 지중해 연안에 거주했던(렘 47:7) 민족인데 블레셋과 함께 언급되어 있는 까닭은 국경이 서로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삼상 30:14; 겔 25:16). 이 족속은 불레셋이 그레데 섬으로부터 이주해 올 때 함께 들어가 팔레스타인 남서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레셋 사람의...없게 하리라. 이 예언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B.C. 605-562)의 침공에 의해 성취되었다. 한편 이러한 심판을 받은 가나안 땅은 통상 요단 강 서쪽 지역(창 12:5; 민 33:51)을 가리키나 간혹 지중해 동쪽 연안까지 포함되기도 한다(민 13:29; 수 11:3).
[7절]
유다 족속의 남은 자.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 해방되어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느 1:2, 3; 슥 8:6, 11, 12). 한편 이것은 신약 시대에 와서는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됨으로써(롬 4:13~16) 죄와 사망의 노예 생활(요 8:34)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스 9:8, 남은 자 사상>.
[8절]
모압과 암몬 자손은 각각 롯의 큰딸과 작은딸에게서 비롯된 후손(창 19:37, 38)으로서 일찍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예언자들은 모압을 하나님 나라의 원수의 전형으로 묘사하였다.
[9절]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의 언약이 지극히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신 32:40; 사 49:18). 나의 끼친 백성이 그들을 노략하며. 이 예언은 유다의 마카비가 암몬을 물리쳤을 때와 알렉산더 얌니어스(Alexander Jamnaeus)가 모압을 점령했을 때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스바냐는 이러한 현실적인 성취보다는 장차 메시야에 의해 완성되어질 영적인 성취, 즉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성취와 사탄 세력의 궁극적인 멸망을 무엇보다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사 14:1, 2; 사 49:23).
[11절]
세상의 모든 신을 쇠진케 하리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인간이 만든 허망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것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 역시 그것들과 함께 쇠진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다(레 19:4; 신 32:21).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참된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며 우상 숭배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뚤어진 심성이 빚어낸 죄성의 표출임을 알 수 있다. 이방의 모든...경배하리라. 하나님의 왕국이 이스라엘로부터 온 세상으로 확장됨으로써 장차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게 될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사 19:18, 19; 말 1:11).

[12절]

구스 사람(합 3:7).

[13절]

니느웨(욘 1:2).

[14절]

당아(塘鵝). 어떤 동물인지 확실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일명 '사다새'로도 불리는 펠리칸(pelican)으로 추정되고 있다(레 11:18).

[15절]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자아 도취에 빠져 하나님마저 부인하려 드는 최악의 교만을 나타낸다. 실제로 앗수르는 군사력을 앞세워 약소국들을 약탈하며(왕하 15:19; 왕하 17:3~6; 왕하 18:9~11, 13~37) 심지어는 하나님에게까지 대적하는(왕하 18:19~35) 교만함을 보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도구로 선택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나 결국은 교만함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들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다<렘 43:2, 겸손과 교만>.

 

# 해설

회개를 촉구함 (1~3절)

스바냐는 유다를 향한 심판 선언 이후에 목이 곧은(3:5; 렘 6:15) 백성들에게 회개의 성회를 촉구함(1, 2절)과 아울러 유대인이나 이방인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 회개의 성회에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3절). 이러한 내용은 예수께서 공생애 초기에 선포하셨던 말씀과 직결된다.

유다의 주변국들에 대한 심판 선언 (4~15절)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의 사면에 위치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우상 숭배와 자고함으로 패역의 극을 달리던 이방의 열방(서쪽 블레셋 : 4~7절; 동쪽 모압과 암몬 : 8~11절; 남쪽 구스 : 12절; 북쪽 앗수르 : 13~15절)에 대한 심판으로 확장된다. 특히 당시의 강대국인 앗수르에 대한 조롱섞인 선언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앞에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미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시 2:1~6; 사 17:13).

 

# 핵심

1~3절

돌이킬 수 없는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내용이다.

 

# 묵상

죄가 장성한 결과 (1절)

수치를 모르고, 자신의 범죄에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 만성이 되면 나중에는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죄의 불감증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파멸의 날이 더욱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날 (3절)

모든 것이 숨김없이 밝히 드러납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우리들은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데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과 하나님 백성에 대한 심판 (8~11절)

이방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멸망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는 심판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다시 회복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의 신실성을 보여줍니다.

앗수르의 비참한 최후 (15절)

이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즉 앗수르가 군사력을 앞세워 약소국을 약탈하고(왕하 15:11), 하나님께 대적하는 교만을 행했기 때문입니다(왕하 18:19~37). 앗수르는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지만 그 교만함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됩니다(잠 16:18).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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