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8:1~9:1절)

권위에 대한 교훈 - 본문은 비교적 독립된 세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왕에 대한 지혜자의 자세(8:1~8), 악인이 때로 번영하고 의인이 때로 고통당하는 모순에 대한 이해(8:9~14), 인간의 분명한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8:15~9:1).

(1~8절)

왕(王) - 만약 왕이 세상의 권력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는 지혜자의 처세술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 왕은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영원한 한 왕 즉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왕에 대한 지혜자의 바른 자세에 대한 교훈은 7:11~14; 잠 1:7절과 일맥 상통한다.

[1절]

얼굴은 마음의 게시판이다. 따라서 성도들의 가장 좋은 화장법은 매일 말씀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속사람을 단장하는 것이다(벧전 3:3~5).

[2~6절]

하나님과 인간 - 주권과 복종의 관계. 왕 즉 하나님의 주권과 그에 대한 인간 복종의 당연성에 대한 설명이다. 주권과 복종의 관계는 ①존재론적이다 : 즉 좋고 나쁘고를 가리기 이전에, 하나님은 창조자이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②선한 것이다 :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므로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은 결국 선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③지혜로운 것이다 : 존재론적이고 선한 순종의 미덕과 행복을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궁극적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이니 이는 지혜로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것이다. 잠 1: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5~6절]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3:1~8).

[7~8절]

미래 일에 대한 무지,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을 시인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시인과 순종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9~14절)

신정론 - 현실의 모순에 숨은 하나님의 뜻. 이 부분은 9, 10절에서 현실의 모순을 말하고, 11~13절에서는 악의 멸망과 정의의 승리라는 원칙론적 이야기를 하고, 다시 14절에서 현실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등 논리 전개에 무리가 있는 듯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피상적인 현실의 현상만 보면 악과 선이 뒤 바뀌고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며 잘사는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그 깊은 내면의 본질을 볼 때에는 악인은 패망할 것이라는 일반적 신앙을 이야기한 것이라 하겠다. 이 문제를 신정론이라 한다<욥 서론, 신정론의 이해>.

[10절]

장사지낸바 되어. 무덤에 고대인들에게 이는 명예로운 사후의 대우를 의미했다. 악인이 사후까지 대우 받는 철저한 모순을 가리킨다.

[11절]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길어야 80세 안팎을 살다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당장 모든 일이 끝장나기를 바라나 영원을 사시는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이와 사뭇 다르다(벧후 3:8).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충분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징벌을 지연시키고 계신다(롬 3:25; 벧후 3:9). 그러므로 이를 기회로 회개하기는커녕 더욱 악을 자행하는 자가 있더라도 성도는 그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가련히 여길 일이다.

(8:15~9:1절)

모순적인 현실에 대한 성도의 태도 - 9~14절과 대응되는 것으로서 성도는 비록 현실에 모순이 있으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해 주신 것에 만족하며(빌 4:11, 12) 선한 일에 힘쓰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결론적으로 교훈하고 있다.

[15절]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세상이 복잡하니 나도 즐겨보자는 식의 자기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신뢰와 성실에 바탕을 둔 만족과 행복이다(2:24~26; 3:11~15; 5:18~20).

[17절]

이 짧은 한 절에만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이는 인간 지혜의 한계에 대한 고백으로서(3:11; 7:14, 24) 불가지론이나 지식 무용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본래부터 제한된 존재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자아 발견의 극치라 하겠다. 자신의 참모습을 깨달은 자는 착각과 교만에서 깨어져<막 14:66~72, 자아의 깨짐> 여호와 신앙이 왜 당연한 것이며 선한 것이며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잠 1:7절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을 깨닫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깨닫고 여호와를 신앙하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서 참 지혜의 출발점이자 완성점인 것이다.


# 해설

권위에 대한 잠언 (8:1~9:1절)

일단 세상적 권위에 복종할 것을 권하는 전반부(1~8절)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미칠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권면하는 후반부(9~17절)로 나눌 수 있다. 특히 후반부 9~11절은 의인의 고난이라는 욥기 전체의 주제와 일맥 상통한 물음이며, 이에 대한 대답인 12, 13절은 간접적으로 영원한 심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는 우리의 영원성을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만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전도서의 결론임을 보여 주고 있다. 좀더 세부적으로 고찰해 보면 14, 15절은 2:24~26; 3:9~15, 22절 등과 연결된 것으로서 하나님 신앙이라는 절대성 회복을 전제로 상대적 문제를 자족하며 기뻐할 것을, 8:16~9:1절도 결국 욥기의 결론부(욥 42:1~6)가 보여 주는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


# 핵심

1~9절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통치자인 왕의 명령에 순복하는 것이 지혜자의 도리라고 가르친다.


# 묵상

지혜로운 삶을 위한 방법 (1~8절)

지혜로운 삶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삶의 모든 면에서 전지전능하시며 판단자이신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삶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교만과 불신입니다. 자신의 의와 지혜를 지나치게 자랑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교만이며, 세상의 악과 어리석음을 좇는 것이 됩니다. 또한 이러한 교만은 결국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신념 (9~17절)

의인과 악인에 대한 전도자의 신념은, 의인은 인생을 즐길 수 있으나 악인은 그렇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의인이 벌을 받고 악인이 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문제는 전도자도 수수께기처럼 풀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모순된 현실에서의 성도의 삶 (8:15~9:1절)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안일과 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오히려 무시합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순뿐인 현실에서도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상황에 만족하고, 선한 일에 힘쓰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자 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신약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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