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에게 고난은 영광의 그림자
[요한계시록 7장 9절~17절]
9절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절 -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절 -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절 -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절 -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절 -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절 -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절 -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절 -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 흰옷을 입고 보좌와 어린양 앞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은 누구며, 그 수는 얼마나 되나요? (9~10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찬양합니다.
9절부터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살아남을, 그분의 많은 백성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인 맞은 하나님의 종들이 장차 누리게 될,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천국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인 맞은 사람의 숫자를 144,000명이라고 했지만(4절), 9절에서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목격하고 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요한이 목격한 큰 무리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그 무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4절에서 묘사한 인 맞은 하나님의 종들인 것입니다. 유대인인 요한은 구원받은 사람들 중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에 먼저 관심을 갖습니다(4~8절). 하지만 죽어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은 144,000이라는 숫자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모든 민족으로 구성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그 큰 무리보다 큽니다.
* 가정이나 일터 등에서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나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어서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우리의 삶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권위와 기존 질서가 무시되고 가치에 대한 정의가 새로워지는 이 시대의 변화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반기독교 정서도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여러 가지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론 공격을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향한 영적 공격은 훨씬 조직적이고 집요합니다. 개인에게도 이런 영적 전쟁과 고난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고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마치 엘리야가 고백했던 것처럼 홀로 신앙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고난의 끝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을 144,000명과 허다한 무리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올 때는 구원자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현재 당하는 어려움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 주는 예배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소망의 우물과도 같습니다.
2. 환난을 거쳐 온 사람들에게 어린양 예수님과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베푸시나요?(17절)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은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13절부터는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설명이 더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은 이 무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요한에게 설명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은 고난 속에서 낭패감에 빠진 그 당시 성도들과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장로는 그들이 큰 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많은 사람이 한 번의 큰 환난을 통해 모두 함께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크고 작은 환난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큰 것으로 보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 옷이 희게 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환난과 고난 중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본 사람들입니다(고전 2:2). 하나님은 그런 과정을 거쳐 구원의 백성이 된 사람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고 마음속의 모든 울분을 씻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분, 눈물을 씻어 주시는 분을 소망하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 공동체 안에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나요? 어떻게 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심한 경우에는 공동체를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그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원하십니다.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힘든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전쟁 중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같은 대열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치르는 전쟁과 내 주위 사람이 치르는 전쟁은 상대가 같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전쟁입니다. 그래서 나도 힘들고 어렵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중보로 돕는 것은 내가 치르는 전쟁에도 도움이 됩니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 주신 것은 이 전쟁에서 함께 승리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환난과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천국을 미리 맛보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144,000명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이 숫자를 영적인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단의 주장처럼 144,000이 구원받기로 정해진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은 수많은 구원받은 백성 중 유대인의 수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도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해 볼 때 유대인 중에서 구원받기로 정해진 숫자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144,000과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인지 더 명확히 보여 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큰 무리’는 144,000이라는 수로 상징된 자들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144,000은 유대인을 뜻하고 ‘큰 무리’는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이방인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큰 무리’는 큰 환난 때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순교자들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해석 중에서 자의적인 해석을 최소화하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첫 번째 해석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은 일곱 인 재앙이라는 끔찍한 고난의 상황에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후 일곱 번째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의 고난이 지나가면 더 큰 고난이 다가오고, 그 고난이 지나가면 더 참혹한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하고 소망을 품게 합니다. 고난이 끝이 아니며, 마침내 우리도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영광과 축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됨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고난을 이기고 보좌 앞에 서기까지 끊임없이 격려하시며 응원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기
- 영적 전쟁에 함께할 믿음의 동역자를 세워 주시고, 위로자요 인도자 되신 주님의 손을 붙잡고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게 하소서.
- 어려움을 겪는 지체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며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 천국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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