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의 자녀에서 사랑받는 자녀로
[에베소서 2장 1절~10절]
1절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절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절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절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절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절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절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절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절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배경 이해하기]
에베소서 2장에서부터 본론이 시작됩니다. 본론의 전반부(2:1~3:21)는 개인의 구원 문제를 다룬 구원론과 구원받은 무리의 문제를 다룬 교회론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구원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구원론은 이후에 나올 교회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즉 1~10절에서 사도 바울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분인 11~22절에서는 전에는 ‘이방인’, ‘무할례당’, ‘외인’,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져오신 평화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1~10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인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2장 전체를 살펴볼 때, 지나치지 말아야 할 표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때에(전에는)…이제는’의 구조입니다. ‘그때에’(2절), ‘전에는’(3절)이라는 단어와 대비되어 ‘이제는’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4~10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구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6, 7, 10절)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그리스도 밖에’(12절) 있었던 모습(1~3절)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할 때의 모습과 대조하고자 합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본질상 진노의 자녀(1~3절)
바울은 1~3절에서 구원받기 전 인간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즉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죽음의 원인을 허물과 죄로 구분합니다. 허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프토마’는 ‘곁으로 떨어짐’이란 뜻으로 ‘위반’을 의미합니다. 죄는 ‘하마르티아’ 즉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란 뜻이 있습니다. 결국 이 두 단어는 동의어로서 진리에서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 가운데 행하여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마귀를 유대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유대인은 일층이 땅으로서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고, 이층이 공중으로서 마귀가 거주하는 곳이며, 삼층이 천국으로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에베소 교인들이 과거에는 마귀에 종속되어 그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불순종하는 악인들을 말합니다. 결국 이 말은 세상 모든 악행의 배후에는 마귀의 강한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바울은 선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소망 없는 존재였습니다.
본문 연구 2: 그리스도가 주신 선물, 새 생명(4~10절)
4~7절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말씀하고, 8~10절은 우리에게 일어난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설명합니다. 4절의 ‘긍휼’은 자비와 동정심을 뜻하는 말로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5~6절). 여기서 ‘살리셨고, 일으키셨고, 앉히셨다’는 세 동사가 모두 부정과거형으로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과 부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새 생명을 주셔서 살리신 것은 과거의 일이고, 최후에 부활하고 하늘나라에서 영화롭게 되는 일은 분명히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동사가 모두 부정과거 시제로 기록된 것은 그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일처럼 확실하고 확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성격을 8~10절에서 다시 요약합니다. 8절에서는 ‘믿음으로’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의 결과지만 그 구원이 우리의 것이 되려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즉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묵상 포인트]
나 자신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죽었던 나를 살리시고 일으키셔서 하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신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믿음으로, 그분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을 뿐입니다.
1. 주님을 만나기 전, 나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내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진노의 자녀였음을 인정하나요?
1절에 의하면,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육체적으로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도 우리가 세상 풍조에 빠져 있었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에 예속되어 있었고 그의 도구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이유는 본질상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상’이란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천성적으로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분노, 불신, 시기심, 우상 숭배, 술 취함, 음란은 이 세상을 좇기 때문에 짓는 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인정하라고 촉구합니다. 불신앙의 비늘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벗겨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미련함은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다고 비유했습니다(잠 27:22).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5:14)라고 말했습니다. 내 영이 죽은 상태였고 마귀의 자식이었고 세상의 풍속에 휩쓸렸던 육체의 사람이었던 것을 인정할 때,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영을 받아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죽었던 우리는 지금 어떤 상태가 되었나요?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성도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4~7절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고, 더 나아가 하늘에 앉게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4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자체가 원인이요 결과입니다. 그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5절)던 것입니다.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우리 역시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을 때 우리 역시 그와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수님과 날마다 만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데 있어서 우리의 행위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성도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기도문]
허물 많은 죄인이었던 저를 살리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은혜에 감사로 화답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에베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리는 것이 사명입니다 (엡 3:1~13) (0) | 2015.08.08 |
---|---|
'분리'에서 '우리'로, 담을 무너뜨린 십자가 (엡 2:11~22) (0) | 2015.08.08 |
죄로 죽었다 살아난 기적은 선물입니다 (엡 2:1~10) (0) | 2015.08.05 |
주님의 충만을 보여 주는 교회 위해 기도하십시오 (엡 1:15~23) (0) | 2015.08.05 |
자녀이기에 누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엡 1:1~14) (0) | 2015.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