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이름
[빌립보서 2장 5절~11절]
5절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절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절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거리를 오가다 보면 추위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총총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날씨는 차갑고 쌀쌀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마음 따뜻한 겨울을 보내도록 합시다. 오늘은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의 이름 속에는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속성이나 지위, 하는 일 등을 함께 연상하게 됩니다. 가령 제가 한 10억원이나 100억원 짜리 수표를 끊어 준다면 은행에서 소용없는 것이라고 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최고 재벌의 이름으로 수표를 준다면 은행에서는 아무 말없이 처리해 줄 것입니다. 내 수표와 그들의 수표의 차이는 바로 이름 때문입니다. 이름이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가장 좋은 이름인 예수의 이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나 하늘 나라에서나 가장 중요하고 귀한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의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1. 예수의 이름은 권세있는 이름입니다.
과거에 권세 있었던 이름들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알렉산더 대왕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습니까? 그는 33살에 그가 아는 세계를 모두 다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33살에 술취하고 주색에 빠져 죽어버렸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이름도 권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씨이저(Caesar)도 권세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로마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부루터스,(Brutus)라고 하는 한 친구의 단검이 그를 죽이자 그의 이름도 권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도 권세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전 유럽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러나 워털루(Waterloo)에서 패전하고 세인트 헬레나(St Helena)섬에 귀양가서 죽자 그의 이름은 권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카이젤(Kaiser)이나, 히틀러(Hitler)나, 무솔리니(Mussolini)도 권세있는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불명예 가운데 죽어 버렸고 죽음과 동시에 그 권세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는 세계를 창조하셨고,역사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으며 인류의 운명도 바꾸었습니다. 그는 죄와 죽음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의 권세는 영원히 감소되는 일이 없고, 앞으로 오늘날에는 온 세상이 그의 절대적인 권세를 깨닫는 때가 올 것입니다.
불란서는 한 때 루이 대제(Lousis the Great)의 권세를 자랑했습니다. 세계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어느날 죽음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때는 큰 성당에 애도하는 사람들과 저명 인사들이 가득하게 모였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성당 안은 어두웠고 큰 촛불 하나만이 황금관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설교자인 마실론(Massilon)씨가 설교하기 위해 청중 앞에 섰습니다. 그는 천천히 다가서더니 루이 황제를 의미하는 큰 촛불을 껐습니다. 캄캄한 가운데 네 마디의 말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다' (God only is great) 참으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위대함을 잠시 동안 소유하지만 죽음이 그것들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전능하신 그리스도 예수만이 세세토록 그 권세와 능력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사단의 손이 더 권세 있어 보입니다. 정치에서나, 실업계나, 스포츠계나, 사회의 모든 면에서 악한 자가 득세하는 것 같고 힘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느날 최고의 권세가 되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 모든 악한 권세를 끝내실 때가 옵니다.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고 그 입으로 예수님은 주시라고 고백하며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릴 때가 옵니다. 영원히 권세있는 이름은 예수의 이름 뿐입니다.
2. 예수의 이름은 은혜로운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여러분을 위하여 천국의 모든 기쁨과 영광을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 나라에서 영광 중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셨던 분입니다. 천사들과 천사장들이 그분의 명령에 분주히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영광의 옷을 벗어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내려오셔서 고난 받으시고 죽어 주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어느 대통령이 그 높은 자리를 내어 놓고, 어느 빈민굴에 찾아와서 남은 생애를 그들을 위해 보냈다고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위대한 일이며 온 세계가 놀랄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낮고 천한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겸비와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었으나, 세상에서는 머리 둘 만한 집 한 칸도 없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잡술 만한 식탁 하나 없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부요한 자 중에서도 가장 부요하신 분이 세상에서는 가난한 자 중에 가장 가난한 분이 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높은 자 중에 가장 높으신 분인데, 세상에서는 낮은 자 중에 가장 낮은 자가 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위대한 분 중에 가장 위대하신 분인데 세상에서는 우리를 위해 종의 종이 되셨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도대체 웬 은혜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데 대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께서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천사들을 그 앞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인류가 다 범죄하여 멸망받을 상태에 있음을 설명하시고 누군가가 이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내려가야 하는데, 단 한가지 조건은 죄가 없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국의 훌륭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서면서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내려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나서면서 '아버지여, 제가 가겠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러 저를 내려보내 주십시오'라고 청원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된다 아브라함아! 너는 자격이 없다. 너는 세상에서 살 때 네 생활에 죄가 있었으므로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나섰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며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그가 말하기를 '아버지여, 저를 보내 주십시오. 세상의 죄를 위하여 내 피를 흘려 구원하겠습니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안된다. 모세야 내가 너를 천국으로 데려 왔으나 세상에서 너의 죄는 네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단다. 너는 못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에서 많은 신령한 노래를 쓰고 불렀고, 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이 나타나서 '아버지여, 저를 보내 주십시오.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해 제 생명을 바치겠습니다'라고 청원하자, 하나님께서는 '안된다. 다윗, 너도 범죄했으므로 내려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서서 '아버지여, 내가 세상 죄인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세상에 내려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 생명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천사들이 발칵 뒤집혀 그것을 반대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결코 가서는 안됩니다. 죄많은 인간을 위해 죽으러 가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하시고 나서 '예. 아버지, 제가 꼭 가야 합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을 줄 압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께서 동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지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은혜입니까?
희생이란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예수님만큼 고통받으신 분이 있습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기 위해 예수님 뺨에 배은망덕의 입을 맞추었습니다. 악한 무리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더러운 침을 내뱉었습니다. 잔인 무도한 사람들이 뺨을 찰싹찰싹 때렸습니다. 채찍에 붙은 쇠붙이가 내려 칠 때마다 예수님의 등에 홈을 팠습니다. 예수님의 양 손과 발을 십자형틀에 못을 박을 때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입술이 타고 입안이 타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 만큼 희생의 고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 모든 고통이 바로 나와 여러분을 위함입니다. 누구도 이 만큼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분이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실로 은혜로운 이름입니다.
3. 예수의 이름은 승리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승리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사단이 세 가지 무서운 시험을 해왔을 때도 다 쳐서 물리쳤습니다. 사람들이 까다로운 문제를 가지고 말싸음을 걸어왔을 때도 언제나 이기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으실 때 패배를 당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구원을 완성하시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시고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승리의 이름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예수님께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나 완전한 승리의 그날이 오면 모든 무릎이 그 앞에 끓고 모든 혀가 그가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거역한 모든 사람들도 때가 오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질겁하여 놀라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승리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의지하고 끝까지 붙잡고 나아갈 때 우리 역시 끝내 승리하는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셨기에 그 이름을 믿고 따르는 자들 역시 죄와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승리의 왕으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 역시 승리의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4. 예수의 이름은 구원하는 이름입니다.
마 1: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일러준대로 예수님의 이름은 인간으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 1:12절에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행 4:12절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 여러분의 선행을 불러 보십시오. 거기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선한 업적을 불러 보십시오. 거기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완전하며 충분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은 구원과 영생과 천국,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면 감격하고 감사하여 무슨 말로 다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배를 타던 한 소년이 파선을 당하여 큰 널판지를 붙잡고 표류하다가 기절한 채 한 해변가에 밀려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아다가 병원에 눕혔습니다. 어느날 그 병원 목사님이 찾아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도리를 가르치려 하였으나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너 바다에 빠졌을 때 어떻게 되었지?' 하고 묻자 '저는 큰 널판지를 꽉 붙잡고 그것을 의지하고 있었더니 나를 그 해변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바로 그거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널판지와 같아. 그 분은 네가 의지하기만 하면 영원히 구원을 주시는거야. 만일 네가 그렇게만 하면 예수께서 너를 맡아주시고 인생 항해를 안전하게 마친 다음, 마지막에 천국 항구에 데려다 주실거야'하고 설명했습니다.
20년 후에 그 목사님이 다른 병원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한 선원에게 말씀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 보았습니다. 그 침대에 가까이 가자 그 환자는 그 목사님을 알아보고 말하기를 '그 널판지가 나를 데려다 주지요. 목사님, 그 널판지가 데려다 주지요'해서 '그게 무슨 말이요?'라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20년 전에 한 소년이 배가 파선하여 널판지를 붙잡고 살아났을 때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라고 하시면서 바다에서 몸을 널판지에 맡기듯 하라고 하신 것 기억하십니까? 그후 20년 동안, 저는 그 널판지에 의지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도 저를 안전하게 데려다 주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천국의 항구로 데려가시려고 해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옳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하시는 이름입니다. 그를 의지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결코 떨구시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 그를 믿고 그 이름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은 전능하셔서 당신을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을 맞으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실로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 있는 이름, 은혜로운 이름, 승리의 이름, 구원하시는 이름입니다. 그 예수의 이름만 믿고 의지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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