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아온 삶에 감사합니다 (공재영 목사님)

[고린도전서 15장 10절]
10절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어느 심리학자에게 한 어머니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를 언제부터 훈련을 시키면 좋을까요?” 그러자 심리학자가 그 어머니에게 “아이가 지금 몇 살이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다섯 살인데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심리학자가 어머니에게 “부인, 빨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벌써 5년을 놓치셨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대화에서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부모의 자리는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귀한 자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정말 가슴 아픈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은 계시는데 그 부모님의 역할이 닫혀진 채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를 복되게 세워주시려고 하나님은 성경에 요셉과 모세의 자리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신의 환경 때문에 자신의 삶 속에서 붙잡아야 하는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의 삶을 성경이 증거하기를「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히11:26)」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본문에서 살아온 삶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자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나답게 사는 복을 알고 삶을 열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자리를 확인해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정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자리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라고 하신 것입니다. 관심의 자리에 세우게 하는 우리 몸의 지체가 눈입니다. 이 눈에 형제에게 있는 티는 보여지고 자신에게 있는 들보는 보여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티는 톱밥 중의 한 알이라면 들보는 널빤지나 기둥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나에게 있는 널빤지나 기둥은 보이지 않고 톱밥 한 알이 묻어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만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리가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열려지지 못하므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리를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요9:39)」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맹인의 자리에서 눈이 열려진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나 되는 것을 알았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을 존귀하게 하고 아름답게 세우는 지혜는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알고 열어가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알게 하려고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을 거절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요13:7)」고 했습니다. 사람의 자리에서 가장 위로를 받는 자리는 내가 나 되는 자리에 세워진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이런 위로의 자리를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를「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딤후4:7,8)」라고 했습니다. 나답게 살아가는 자리는 어느 특정인의 은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세워지는 은혜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삶에 감사하는 자리는 모든 사람이 세워야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나답게 살아가는 자리에 세워주시고 계십니다.

2. 자기 공로로만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 속에 활동력 있게 세우는 기간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누구도 예외없이 삶의 모습이 점점 보여지지 아니하다가 소리없이 어디론가 떠나버립니다. 인생의 자리를 한마디로 표현을 한다면 정거장에서 어디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해보겠다고 결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자리는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은 어린시절에 누리며 살았던 놀이 문화 중에 땅따먹기 소꿉장난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놀 것이 없었던 그 때에는 저녁 늦게까지 골목 모퉁이에서 큰 원을 그려놓고 작은 돌멩이 하나를 튕겨서 자기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자기 땅도 아닌데 그 땅을 차지하려고 전심으로 달려듭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그 땅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는 얼마나 그 땅을 차지했느냐에 따라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아웅다웅하던 모든 것을 미련없이 버리고 집으로 가듯이 내가 이루어 놓은 성공의 땅을 내려놓고 떠나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이 인생의 정거장에서 무엇으로 자신을 세워야 자신이 살아온 삶에 감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조그만 정거장에 나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살아온 자리에서 나 자신과 함께 있어 준 은혜의 자리가 있다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우리 모두가 생각없이 살았던 자리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온 인생 길을 살아오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세워진 것이 성도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고 나의 곁에 함께 있어 준 은혜의 자리를 잊어버린 채 자신의 공로로만 삶을 세운 것처럼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을 누구보다도 크게 받은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자리를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바울은 크게 외친 것입니다. 내 공로로 세운 자리에는 용서할 수 없는 자리가 있지만 내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는 모든 것을 세우게 되면서 감사하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처음 받은 은혜를 끊임없이 회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공로로 세운 자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세운 자리가 어떤 것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인간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경쟁자로만 보이게 되고 한 번 실패가 패배자가 된다는 위기감 속에 삶을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자리를 세워주는 열쇠가 바로 은혜의 자리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은 사람의 자리에는 이 은혜의 자리가 너무나 불완전하므로 쉽게 닫혀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자리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유혹의 자리를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삶을 강하게 붙잡아 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자로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감사의 열매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유혹에서 벗어난 사도 바울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며 자신의 자리에 남다르게 찾아주신 예수님의 손길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일컬어「처음 받은 은혜 곧 처음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자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세워지는 자리가 남다르게 보여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이 받고 사는 은혜의 자리보다 자신의 업적을 최우선적으로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부족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워진 자리에서 고백하기를「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결코 세워질 수가 없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찾아주셨고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셨음을 믿고 깨달으면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살아온 삶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받은 처음의 은혜를 끊임없이 회복할 수 있을 때에 열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잘못된 자리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성도의 자리에는 좋은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가진 좋은 은혜의 자리를 끊임없이 회복하며 살아가는 성도로 세우게 될 때에 살아온 삶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이 살아온 모든 자리에는 힘들이지 않고 세워진 자리는 없습니다. 이는 감사할 수 있는 자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끊임없이 회복하는 지혜는 첫째 나답게 사는 복을 알고 삶을 열어가야 합니다. 둘째 자기 공로로만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처음에 받은 은혜를 끊임없이 회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의 자리에 세우게 하려고 우리를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이 있으므로 더 좋은 일을 해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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