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자

[디모데후서 4장 1절~8절]
1절 -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절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절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절 -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절 -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절 -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절 -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절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배경 이해하기]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젊은 지도자 디모데에게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는데, 본서를 저술할 즈음에는 로마의 대 화제(AD 64년)로 인해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도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박해를 견디다 못한 어떤 이들은 배교를 선택했고,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성도들을 박해하는 세력에 편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때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로 규정합니다. 3장까지 격려의 말을 이어 온 바울은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4장의 첫 구절을 엄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성도를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비록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준 명령이지만, 실상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디모데가 자신을 본받아 살아가기를 권면합니다.

[관찰과 묵상]
1. 디모데가 전도자로서 감당해야 하는 직무는 무엇인가요?(2절) 때가 이르면 진리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3~4절)
바울은 디모데가 전도자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심판하시는 심판자라 부르면서, 디모데에게 엄중한 톤으로 명령합니다. 본문에는 다섯 가지의 명령어가 등장합니다. 첫째, ‘전파하라’(preach)입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바른 교훈(sound doctrine, 3절)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기에 ‘힘쓰라’(be prepared; 준비하라 )입니다. 이것은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고 믿었던 전통적인 유대의 지혜에 배치되는 가르침입니다. 듣는 청중이 선포된 진리를 받아들일지 그렇지 않을지 예측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께 순종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셋째, ‘경책하라’(correct: 허물과 오류를 바로잡아 주다), ‘경계하라’(rebuke: 호되게 책망하다), ‘권하라’(encourage: 위로하고 격려하라)입니다. 특히 ‘권하라’라는 단어에서 위로자 되시는 보혜사 성령님(헬, 파라클레토스)의 이름이 파생되었습니다. 이렇게 수고한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3절) 의도적으로 진리를 배척할 것입니다(4절). 또 영적인 성장과 변화를 갈구하기보다 자신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 주고,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만한 얄팍한 지식만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자는 맡겨진 직무를 끝까지 완수해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복음에 빚진 자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나는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는지, 그날이 임박했음을 어떻게 느끼는지도 나누어 보세요.
로마 감옥에서 최후를 기다리고 있던 바울은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롬 2:16; 고전 4:5)에 기초하여 디모데에게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을 때에 애국지사들은 무장 항일 독립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온갖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 일제의 통치는 더욱 간악해지고, 시간이 흘러도 독립이 요원하게 느껴지자, 일반인들뿐 아니라 일부 독립 운동가들조차도 변절하여 일제에 부역하는 밀정이 된 이들이 많았습니다. 광복 이후 심판대에 선 그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있습니다. “정말 광복이 될 줄 몰랐다.” 복음 전파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 전파로 인한 열매가 적고, 주님 오실 날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정말 주님이 오실 줄 몰랐다”라고 후회하며 땅을 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늘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 바울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회고하나요?(6~7절)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친 이들에게 주님은 어떤 상급을 예비하실까요?(8절)
바울은 이미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제물로 올려졌다고 고백하며(6절), 달려갈 길을 잘 마쳤다고 합니다(7절). 그리고 의로우신 재판장님이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8절).
바울은 자신의 인생이 포도주를 부어 준비한 전제와 같이 온전히 바쳐졌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 자신의 모든 재능과 시간과 건강과 돈을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생명뿐입니다. 그는 이마저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이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6절)라고 할 때 사용한 ‘떠나다’(헬, 아날뤼시스)라는 헬라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먼저 동물들이 마차를 몰거나 쟁기를 끌 때 그 위에 씌웠던 멍에를 벗긴다는 뜻입니다. 또 올가미나 족쇄를 늦춘다는 뜻도 있고, 천막을 걷기 위해 로프를 푼다는 뜻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동안 주님을 위해 졌던 모든 멍에를 내려놓고, 로마 감옥에서 자신을 가두었던 족쇄도 풀어 버리고, 천막을 걷은 후, 이제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항해를 떠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는 자신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음을 강조합니다. 이제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그에게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인데, 그것은 그의 의로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데 어떤 것이 장애물이 되나요? 오늘 하늘나라로 떠난다면, 바울같이 후회 없이 달려왔노라 고백할 수 있나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고유한 사명과 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신는 신발을 신고, 남들이 입는 옷을 입고, 앞서 가는 사람을 좇아가려고 무리하면 주저앉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마라톤 경기에는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을 태워 운반하는 차량이 따라다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을 잃어버린 채 갈림길에서 다른 이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 낭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2016년 4월 영국 북부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레이스를 완주한 5,000여 명의 참가자들 중 1등을 제외한 전원이 실격 처리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등은 올바른 코스를 달렸는데, 2~3등으로 달리던 사람들이 갈림길에서 엉뚱한 길을 택해 달린 것입니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사람들 모두 본래 코스보다 짧은 지름길을 택해 달리는 바람에 전체 코스를 완주하고도 264m가 부족하게 된 것입니다. 몇 달 동안 이 날만을 위해 땀 흘리며 연습하고 준비한 참가자들은 결국 허탈하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성도들도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가다 믿음을 잃어버린 채 불의와 타협하고, 죄의 꾐에 빠져 엉뚱한 길로 달린다면, 결국 그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는 불행한 결과를 맞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올바른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지 늘 깨어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이때,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까?”, “과연 지금이 복음을 전하기 좋은 때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구원하는 이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나긴 믿음의 경주에서 ‘한 걸음’을 제대로 걷고 ‘하루’를 승리하기 위해 애쓰며, 믿음의 법대로 달리고자 힘쓴다면, 점점 죽음을 초월한 참제자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결승선에서 의의 면류관을 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청결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원합니다. 고난 후의 영광을 소망하며,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으로 복음 사역을 두려움 없이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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