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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오순절의 성령강림 2:1-4
여기서는 성령강림을 설명해 주고 있다.
1. 성령강림의 시간과 장소(1)
(1) 그것은 오순절날이 이미 이른 때였다.
첫째, 성령은 종교적인 축제때에 임하였는데 그것은 군중들이 이스라엘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으므로 이 일을 사방에 퍼져나가게 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이 유대인의 명절은 지난 유월절과 같이 복음전파에 기여하였다.
둘째, 이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켜졌다. 그러므로 성령이 불의 혀같이 이 명절에 임하게 된 것은 한민족에게 뿐만아니라 온세계에 복음이 전파된다는 의미에서 적절한 것이다.
셋째, 이 오순절은 일주일의 첫날, 즉 일요일이었다. 그것은 그날을 기독교의 안식일로써 확고하게 해주었고, 그날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두가지 위대한 축복을 교회가 영원히 기억하게 하였다. 매주일은 그날에 대한 기도와 찬양속에서 완전하고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지켜져야 한다.
(2) 그것은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던 때' 였다.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이 선택한 곳이요, 거기서부터 주의 말씀이 전파되리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시고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따라서 이제 여기서 그들을 만나시고 축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이 명예를 주셨고 지역간에 불화하지 말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곳에 남은 자를 두시며 예루살렘에도 남은 자를 두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들은 한마음으로 모여있었다. 당시 그들은 평상시보다 더욱 연합하여 기도하였고(1:14), 이것은 더욱 서로를 사랑하게 해주었다. 이리하여 주님은 그의 은총으로 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도록 예비하셨다. 비둘기같은 성령은 시끄럽고 소란한 곳으로 오시지 않고 파도치는 수면이 아닌 잔잔한 수면으로 오신다. 우리도 높은 곳에서 임해 오시는 성령을 체험하고자 하는가?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어 서로서로 사랑하자.
2.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방법(2,3)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가끔 구름속에 임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나 성령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간의 마음을 덮고있는 구름을 흩어버리기 때문이다.
(1) 본문에서는 그들에게 기대감을 일으키게 하는 바람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2절). 그것은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하게 임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왔으며 함께 기다려왔던 사람들조차 놀라게 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였다. 그것은 바람소리였는데 그 이유는 성령의 역사는 바람과 같기 때문이다(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그것은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이었다. 그것은 강하고 격렬하였으며 마치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릴듯이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임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위력있는 영향력과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방뿐만이 아니라 저희 앉은 온집에 가득하였다. 그 집을 가득 채운 이 바람은 제자들에게 경외감을 주었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매우 숙연한 분위기에서 성령을 받도록 도왔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에 대한 확신이 위로받는 길이 된다. 그 축복받은 바람의 거친 일격은 인간의 영혼이 부드럽고 순한 미풍을 받을수 있게 준비시킨다.
(2) 본문에는 눈으로 볼수 있는 표적으로 은사가 내린다. 그들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3절). 그리고 그것은 각자에게 임하여 있었다. 자연주의자들은 유성을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부드러운 불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다.
1) 제자들 자신이 신앙을 확고하게 하기위하여 외적이며 감지할수 있는 표적이 있었다.
2) 그 표적은 불이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가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한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그때 그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율법이 불길속에서 주어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도 그러했다. 성령은 불과 같아서 마음을 녹이고, 불순물을 태워버리고 영혼속에 경건함과 헌신적인 사랑을 일깨워준다. 그리스도는 이 불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오신 것이다.
3) 이 불은 갈라진 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령의 역사는 여러 모양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표적에 관련되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히 방언의 은사라고 말할수 있다. 그것들은 혀의 모습이었다.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하여 세상에 말씀하시고자 하셨으므로 제자들에게 그들이 아는바를 세상에 공포할수 있는 능력을 가질수 있도록 이 성령을 보내셨다. 이 혀들은 갈라졌다. 이 혀들은 나누어져 있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였다. 표현은 다양하더라도 진실한 사랑의 일치는 가능하다.
4) 이 불은 성령이 그들과 함께 상주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가운데 머물렀다. 우리가 추측할수 있는 것처럼 표적이 곧 사라진다해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언제나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3. 성령강림의 직접적인 효과(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4절). 그들은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해 있었고 그 성화하시는 능력아래에서 전보다 더욱더 충만하여졌다. 그들은 성령의 위로를 충만하게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속에서 전보다 더욱더 기뻐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성령의 은사도 충만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확장을 위한 기적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열두 사도뿐만이 아니라 120명의 제자들이 거의 동시에 성령충만하게 된 것이 확실하다. 이 사람들은 1,2절에 함께있었던 사람 모두를 언급한다. 그들은 그들의 모국어외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상어로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을 이끄시는대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까지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생각이나 명상으로 말했던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을 이끄시는대로 말했다. 성령은 그들에게 방언과 마찬가지로 할일도 알려주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었다.
(1) 놀라운 기적 : 그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서 언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언어들을 배운적도 전혀 없었고, 들어본적도 전혀 없었다. 그들은 학자나 여행자도 아니었다. 사실 베드로는 모국어로 사람들 앞에 나와서 이야기할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연설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입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입들을 새롭게 만드셨다.
(2) 매우 합당하고 유용하고 요긴한 기적 : 제자들이 사용했던 언어는 히브리어의 방언인 시리아어였다. 이러한 그들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사명이 주어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작부터 극복할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들이 각 민족에게 권위있게 설교할수 있게 하기위해 그들에게 각 민족의 말로 설교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모든 것을 생각해 볼때, 이것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치유의 기적보다 더위대한 일로 평가될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첫결과였다.
Ⅱ. 예루살렘에 운집한 군중들의 여러가지 생각 2:5-13
여기서는 이 특별한 은사에 대한 군중들의 주목을 설명하고 있다.
1. 예루살렘에 운집한 군중(5,6)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5절). 이것은 당시 알려져있던 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1) 여기서 그 사람들이 떠나온 나라들이 어디인가를 알수 있는데(9-11절)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거주자와 같은 동방으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유대가 기록되어 있다. 다음에 가바도기아와 본도의 주민들이 나오는데 그 나라는 특별히 아시아라고 불리워진다. 다음으로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언급되는데 그 나라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역시 로마에서 온 여행자였다. 그리고 이집트 남부지방, 그레네 근방의 리비아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그레데 섬에서 온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막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원래 유대인이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유대인 저술가들은 유대인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로서 유대인이 섞여 살지않는 민족은 없다고 하였다.
(2) 모든 유대인과 개종자들이 이때에 예루살렘에 모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거기에 기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메시야가 나타나리라는 기대가 퍼져있었다. 그래서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살고 있었다.
2. 타국인들이 놀라와 함(7-12)
타국인들은 제자들이 그들의 언어를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1) 그들은 제자들이 모두 갈릴리인들이며 그 모국어 밖에는 어떤 다른 방언도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7절). 하나님은 지혜있고 권세있는 자들을 깨뜨리기 위하여 세상의 약하고 어리석은 자를 택하신다.
(2) 그들은 제자들이 유창하고 완벽하게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되는 것이 어찜이뇨(8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11절).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의 모국어를 듣는다는 것은 기쁘고 놀라운 일이었다.
첫째, 사도들의 강론을 통해 그들이 들은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 곧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그리고 복음의 은총에 대하여 이야기했을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다.
둘째, 그들은 사도들이 이러한 위대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것에 관하여 사람들을 그들의 언어로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사도들이 유대어로 말한다해도 이해할수 있을만큼 유대어를 습득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사도들의 방언은 더욱 기이한 사건이었으며 또한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친근감을 주었고 그들의 호의를 얻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각 민족의 말로 성경이 읽혀지고 공중예배가 집행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3) 그들은 그것을 보고 놀랐다. 다 놀라며(12절). 그들은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심하였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묻고 또 서로서로 물었다. "이 어쩐 일이냐?" 그들은 가시덤불 곁에 섰던 모세처럼 옆에 서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의 조롱(13)
이 일을 비웃었던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었던것 같다. 그들은 저희가 명절때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였다(13절). 그들 본토 유대인들은 그 말들이 실제 다른 나라의 말이라는 것을 몰랐고 따라서 방언을 술취한 사람의 술주정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집의 주인인 주님을 술주정꾼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의 식솔인 제자들을 술주정꾼이라고 부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Ⅲ. 예루살렘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2:14-36
본문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유대인들 곧 그 조롱했던 자들에게 즉석에서 행했던 설교를 통해 성령의 첫열매를 보게된다. 그는 그들이 취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15절). 베드로의 설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3천명이 그날에 회개했는데 베드로의 설교만 기록되어 있다. 전에는 겁에 질려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그가 이제는 용감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1. 서론(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14절). 그들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을 비웃는 유대인들 앞에 당당히 서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중에서 더 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창과 검으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가르치도록 부름받는다. 베드로는 자기가 말한바를 아주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는 유대인들과 특히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을 너희로 알게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2. 그들의 불경스런 증상에 대한 답변(15)
너희의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15절). 이제 방언으로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양식있게 말하고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바가 무엇인지도 알고있었다. "때가 제 3시이니 너희는 그들이 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제 3시는 우리 시간으로 아침 9시를 이르는데 안식일이나 거룩한 축제일에 유대인들은 이 시간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3. 놀라운 성령강림에 대한 설명(16-36)
그는 이것을 두가지로 해석한다. 즉 말씀의 성취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결과이다.
(1) 그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이다. 그는 요엘서 2:28절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비록 성령으로 충만하였지만 그는 성경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성경위에 두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결코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1)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17-21절) : 여기서 말세, 즉 복음의 때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다. 이 복음의 때가 말세로 불리우는 이유는 이때에 복음에 의하여 인간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의 마지막 섭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예언되었고 약속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날을 대망하여 놀라지 말라. 그날을 기다리며 영접하라"는 뜻이다. 이 사도는 본문 전체를 인용하고 있는데 온전한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사가 전에 없이 풍성하고 광범위해지리라는 것이다. 이제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체에게,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부어질 것이다. 유대학자들은 성령은 현자와 부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규정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② 성령은 그들속에서 예언의 성령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능력은 성의 구별없이 주어져서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예언하게 된다. 또한 나이의 구별없이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18절). 즉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그의 남종과 여종으로 부르신다. 딸(17절)과 여종(18절)에 대한 언급은 남자와 똑같이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받았던 여성들을 생각하게 한다(1:14).
③ 그들이 예언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대나라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복수를 당하게될 것이다. 그리하여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후 4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파괴가 여기서는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로 불리워진다. 그와 같은 황폐는 전에도 이후에도,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다. 그것은 주님의 날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백성들에게 복수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심판의 날이었으며 영화로운 날이었다. 유대인의 멸망은 곧 기독교인의 구원이었다.
둘째, 가공할만한 파멸의 전조가 예언되고 있다.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20절).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 서문'에서 전쟁의 전조들, 즉 무서운 천둥과 번개와 지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불타는 혜성이 일년간이나 그 도시의 하늘에 떠있어서 새빨간 검이 도시를 가리키고 있는것 같았다고 한다. 불과 연기는 문자 그대로 도시와 마을, 회당, 그리고 마침내는 성전까지 불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셋째, 주의 백성은 특별히 보호될 것이라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절). 로마의 공격으로 폐허가 될때 기독교인들은 한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구원받은 남은 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의 강한 성은 그들이 부르는 주님의 이름인 것이다.
2) 이 예언을 당시의 사건에 적용시킴 :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16절). 이것은 곧 모든 육체에 오리라던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는 다른 것은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 은총의 성령, 곧 옹호자 혹은 위로자는 약속에 따라 주어졌으며 동일한 약속에 따라 땅끝까지 교회와 더불어 계속될 것이다.
(2) 그것은 그리스도의 선물이었다. 베드로는 이 성령의 은사로부터 예수에 대한 설교로 나아갔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22절).
1) 22절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요약한 것이다. 베드로는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고 있다.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가운데 베푸사 너희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는 인간에게 비난받고 정죄당한 분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분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분이었다. 너희 자신이 그가 어떻게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는지를 증거해주는 증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은 바로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신 일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런 능력을 행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기적중에서 베드로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라. 기적이 일어난 사실 자체는 부정될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은 너희 자신이 아는바대로 너희 가운데서 일어났다. 너희들은 그의 기적의 목격자이다. 거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세주라고 선포하심으로써 그를 증거하셨다.
2) 그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기적이었다. 곧 하나님의 증거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인정된 사람이 바로 그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난과 죽음, 이 두가지 신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23절). 먼저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써 놀라운 은총의 행위이며 지혜로운 행위였다.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 내어주셨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하나님을 비난할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예지로써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이다' 또한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들이 행한 일로써 몹시 죄악스럽고 어리석은 행위였다. 그것은 그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행위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손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외쳤던 사람들도 섞여있을지 모른다. 베드로는 그들의 믿음과 회개를 더욱 효과적으로 촉구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들에게 십자가 사건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3) 부활에 대해서 증거한다(24절). 그를 죽음에 내어놓으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그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다.
① 베드로는 그의 부활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있을수 없었음이라(24절). 그가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때 이러한 영혼의 고통과 슬픔에서 아버지는 그를 풀어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육체가 부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으로 인하여 갇히시고 죽음의 속박을 받게되셨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속에 생명을 갖고 죽음의 왕을 정복했기 때문에 죽음의 세력에 억류당하지 않는다.
② 베드로는 그의 부활의 진리를 증거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절). 그들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 권능을 받은 것은 그들로 하여금 유능하고 신실하며 용기있는 증인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③ 베드로는 그것이 성경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윗이 말한대로 그는 죽음과 무덤에 사로잡혀 있을수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구약 본문을 자세히 인용하였다(25-28절).
㉠ 우리 주 예수는 모든 것을 그의 아버지께 돌렸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25절). 그는 그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에 상당히 기여함을 아셨기때문에 그 자신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목표로써 두었다.
㉡ 그는 아버지의 현존과 능력을 확신했다. 나로 동요치않게 하기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25절). 하나님이 우리의 우편에 계시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사역을 수행하셨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25,26절). 그의 사역의 결과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 변함없는 기쁨이 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그 계획에 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그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 그의 고난과 죽음은 행복한 결과를 낳는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6,27절). 그의 소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혼과 육체가 계속 분리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27절).
둘째, 육체가 무덤속에 있게 되는 것은 잠시동안뿐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7절). 그는 죽어야만 하지만 결코 썩음을 당하지는 않는다.
셋째, 그의 고난과 죽음은 축복받은 영원불멸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그로하여금 이 길을 세상에 알리고 이 길을 열게하셨다.
넷째, 그의 모든 슬픔과 고난은 완전한 복락안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그의 앞에 놓인 대가는 하나님의 지지로 인한 기쁨, 곧 충만한 기쁨이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기쁨이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맛보게 될 기쁨인 것이다. 그안에서 그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 이제 베드로가 이상의 본문에 대해 주석한 것을 보자. 그는 인간과 형제라는 제목으로 그들에게 설교했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수 있노니(29절). 여기에서 다윗은 그 자신에 관하여가 아니라 단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 자신에 대하여 말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이 썩음을 당치 않으리라고 한것이 아니다. 그가 썩음을 당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확실히 한 예언자로서 메시야를 염두에 두고 말했던 것이다. 다윗은 그의 후손중에서 메시야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중에서 한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30절). 우리 주 예수께서 탄생하실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눅 1:32). 성령에 따라 그리고 그의 신성에 의해 그는 다윗의 아들이 아니라 다윗의 주가 되셨다. '그의 영혼이 분리되지 않겠고 그의 육체가 썩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다윗의 말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31절).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성경에 기록된대로 다시 사셨으니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라.' 본문에는 그의 승천에 관해서도 약간 언급되어 있다. 다윗은 죽었다가 부활하지도 않았고 하늘에 올라가지도 못하였다(34절). 베드로는 더나아가 다른 시편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다른 사람 즉 그의 주가 되신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시 110:1).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35절).
4) 이 과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시킨다.
① 이것은 그 당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주는 의미를 설명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떤 일이냐'하고 물었다(12절).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절). 성령의 은사는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이것은 모든 남은자에게 주신 약속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거룩한 사랑이 언약되어 있다.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은 단지 위대한 일의 전조에 불과하다."
② 이것은 예수께서 참메시야이며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것으로 베드로는 설교를 끝낸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받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절). 사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17:9). 그러나 이제는 그 사실을 선포해야만 한다.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가능성있는 것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그들로 그것을 확실히 알게하라.
첫째, 하나님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던 바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를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가했던 경멸은 오히려 그의 영광을 빛내주었다.
둘째, 하나님은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기까지 영화롭게 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던 바로 그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진리이다.
Ⅳ. 베드로가 한 설교의 효과 2:37-41
우리는 지금까지 성령이 복음전도자들에게 미친 놀라운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성령이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 내리신 축복된 성령의 열매를 살펴볼 것이다. 이 신성한 메시지가 처음으로 전파되자 이 메시지속에는 신의 능력이 들어있는것 같았다.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려고 모여들었던 사람들로 풍성히 거두어들인 첫열매들을 보게된다.
1. 그들의 질문(37)
그들은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37절). 그들은 설교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마음이 완고한 자들에게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을 그들의 사악한 손에 책임지웠고 그것은 그들을 격분케할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도 명백하고 성경에 기초를 둔 설교를 들었을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1) 그 설교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저희가 … 마음에 찔려(37절). 베드로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웠고 그들의 마음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죄인들은 그들의 눈이 열릴때 죄로인하여 마음이 찔릴수밖에 없다.
(2) 그 설교는 그들에게 의문을 던져주었다.
1)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질문을 털어놓았다. 사도들로부터 그들은 확신을 얻고 따라서 그들로부터 조언받고 위로받기를 바랐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들을 불렀던대로 사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다(29절). 그것은 우정과 사랑의 표현이다. 목회자는 영적인 의사이다. 그리고 타인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처럼 생각하는 목회자들과 마치 형제와 같이 자유롭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2)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물었다.
첫째, 그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입장에 선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가 못박았던 그 예수가 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신가? 그렇다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우리는 어떻게 될까? 자비를 구하는 것외엔 아무 도리가 없다. 우리가 영원히 죽게될 위험에 빠져있음을 깨닫게 되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살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자기들에게 제시된 것은 무엇이나 즉시 행할수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죄를 깨닫게된 사람들은 평화와 용서에 이르는 길을 기꺼이 알고자 한다.
2. 베드로의 답변(38,39)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꼭 해야할 것을 간단하게 지시했다(38,39절). 확신을 얻은 죄인들은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들의 경우가 비록 비극적이긴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1)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과정을 설명한다. 회개하여(38절). 이것은 배가 난파한후에 널빤지를 얻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세례요한과 그리스도께서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의무였으며, "회개하라, 회개하라, 너희 마음과 너희 길을 돌이키라"고 지금도 외쳐지고 있다.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38절).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굳게 믿고,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며, 불신앙을 버려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예수의 이름을 믿고 그가 선조들에게 약속되었던 그리스도이며 메시야라는 것을 믿으라. 그들은 사죄함을 받기위해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이 말씀은 그들 개개인에게 부과되었다. 너희가 아무리 큰죄를 지은 죄인이라 하더라도 회개하고 믿으면 세례를 받을수 있다.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은총은 충분하며 너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은총은 각자에게 알맞게 주어질 것이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결단할 용기를 준다.
1) 죄사함을 얻으라(38절). 너희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너희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진리안에서 너희가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목적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께 그것을 구하면 너희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2)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38절). 누구든지 죄사함을 얻은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게된다.
3) 너희 자녀들도 계약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는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39절).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가? 버림을 받겠는가? 우리와 함께 구원을 받게 되는가?"하고 질문하는 것이 당연하다. "구원을 받는다"고 베드로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지금부터 영원히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그 약속은 지금은 너희 자녀에게만 미치지만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축복은 모든 먼데 사람들을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이 보편성에 한가지 제한이 덧붙여져야 되는데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각국의 개개인들에게만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부르심을 먼데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실수 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3. 주의 사항(40)
이러한 가르침에는 유용한 경고가 뒤따른다. 여러말로 확증하며(40절). 그는 많은 내용을 간결하게 말했지만(38,39절), 아직도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말씀을 들었을때는 간절하게 더듣고자 한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 그는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였다. 너희 자신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힘쓰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와 함께 죄가운데 있던 자들이 멸망할때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않으리라.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죄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말라. 이 패역한 세대에서 너희를 구하라.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을 피하라. 사악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이 우리를 몰아세운다면 격류에 떠내려가는 위험보다는 격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고통이 더낫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친 사람들은 사악한 자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림으로써 자신들의 성실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4. 설교의 결과(41)
그것은 상당한 성공이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재하였고 그로인하여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한 자들이었으나 말씀의 가르침을 듣고 변화되었다.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환영하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들은 기쁘게 말씀을 받아들였다. 헤롯은 말씀을 기쁘게 듣기만 했으나 이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설립하신 거룩한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중에 들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계약을 받아들인 사람은 기독교인의 세례도 받아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두 입으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손으로는 세례를 주었다. 왜냐하면 곡식을 거두기위해 너무 바쁠때였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삼천명을 회개시킨 것은 떡 몇조각으로 사오천명을 먹인 것보다 더위대한 일이었다. 삼천명이 그들에게 더해졌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때 그의 백성을 우리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Ⅴ. 초대교회 교인들의 경건과 사랑 2:42-47
이 절에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역사,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나 가장 순결무구한 모습의 교회를 보게된다.
1. 성례의 준수
그들은 거룩한 성례를 지켰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기위해 지정하시고 약속하신 모든 방법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1)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 열심히 참가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자기의 이름을 그리스도에게 드린 사람은 그의 말씀을 경청해야만 한다.
(2) 그들은 성도의 교제를 계속하였다. 서로 교제하며(42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46절). 그들은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다. 제자가 한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동류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음을 볼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였는지 살펴보자. 그들은 예배를 통하여 친교를 나누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만났다. 거기서 그들의 집회를 가졌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연합은 우리가 서로서로 나눌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성전에 있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일과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모였다. 그들은 서로 불화하지 않았으며 그들 사이에는 거룩한 사랑만이 있었다.
(3) 그들은 자주 모여서 성만찬을 거행했다. 떡을 떼며(43절).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떡을 떼었다. 그들은 가정집에서 그 예식을 집행하였다. 이와같이 그들은 작은 회당 혹은 가정 교회를 순방하였고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모인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성찬식을 행하였다.
(4) 그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성령이 임재한후에도 그들은 그전처럼 계속 기도했다. 왜냐하면 기도가 영원한 찬양속에 흡수되기까지는 아무것도 기도를 대치할수 없기 때문이다.
(5) 그들은 감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즉 날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다(47절). 이것은 기도에 있어 필수적인 내용이며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2. 성도의 교제
그들은 거룩한 예식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연합하였다.
(1) 그들은 기독교인의 교제를 위해 자주 만났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있어(44절). 그들은 함께 모여서 그들 상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증대시켰다.
(2)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또한 서로 구하기만 하면 기꺼이 돕고자 했다. 그들은 형제애의 원리에 따라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3) 그들은 아주 명랑했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46절). 그들은 인간의 식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식탁이 주는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들의 마음을 거룩한 즐거움으로 가득차게 하였다. 그리스도인만큼 기쁨을 누릴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기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공동식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웃에게 관대하게 대하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순전한 마음 즉 관대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한조각이라도 혼자 먹지않고 가난한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였다. 이와같이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열어놓아야 하며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4) 그들은 자선기금을 모았다(45절). 그들은 재산과 소요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재산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을 없앤 것이었다. 이를통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자의 신실함을 시험해 보기위해 '너의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신 명령의 의미를 알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적인 구속력을 갖는 법률을 만들기위한 선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특수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네 임의로 할수가 없더냐'(5:4)하고 말한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은 이것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형제들에 대한 사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기독교를 발전시키려는 열정, 유아상태에 있는 교회에 대한 보살핌 등은 존경할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대로 봉헌하면 된다.
3. 기적과 표적
하나님은 그들을 소유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표적을 보이셨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절). 그러나 그들에게 기적을 행할 힘을 주셨던 것이 주께서 그들에게 행하셨던 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그들의 입속에 있는 말씀이 기적을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셨다.
4. 결과
사람들은 그것으로 감화를 받았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하였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43절). 그들은 참으로 존경받을만한 풍부한 영적은사를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으로 숭배하였다. 사람마다 그들의 경외스러운 가르침과 삶을 보고 감화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를 가졌다. 그들을 경멸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들에게 친절했다. 그들은 온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본문에서 그들이 온백성의 칭송을 받은 것으로 볼때,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것은 제사장들의 술책에 의해 강요된 것임을 알수 있다. 이제 이사람들은 본래의 마음과 정신으로 되돌아왔다. 꾸밈없는 경건과 자애는 존경을 받을 것이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거꾸러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왔으며 그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 해설
오순절의 성경강림 ( 2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한자리에 모였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찔려 통회하는 심령들을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회개와 세례를 경험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와 삶을 통한 아름다운 헌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1. 오순절
1)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에 오는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날은 또한 '맥추절', '칠칠절', 혹은 '맥추의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날은 세계의 각처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세가지 연중 대절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많은 순례자들이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a.오순절(출23:16)
2) 성령의 강림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인 곳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가는 그들이 한곳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에 모였을때 바람과 불이 임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람과 불은 성령의 권능의 상징들입니다. 세례요한은 그것을 장차 오실이의 사역으로 예언했었습니다. 그 예언이 지금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상사역을 완성하신 '장차 오실 그이'께서 자기 백성들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a.강한 바람(욥38:1)
b.불 세례(마3:11)
3) 난 곳 방언으로
그 첫번째 효과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큰무리들이 매우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난 곳 방언으로' 듣게됨을 신기해 하였습니다. 방언의 역사가 최초의 기독교 오순절에 띤 형태는 분명히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언을 들은 사람들은 각각 출신 지역의 언어임을 식별했으며, 그말의 내용을 즉시 이해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말로 말한 주제는 하나님의 큰 일들이었습니다.
a.방언(막16:17)
b.하나님을 찬양함(눅2:13)
2. 베드로의 설교
1) 요엘의 예언 성취
베드로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며 구주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동료들이 술에 취했다는 비방을 가볍게 일축한뒤, 말세에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겠다는 예언을 상기시키고, 지금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는 중에 '그후에'라는 불분명한 표현을 '말세에'로 대치합니다. 그말의 자연스런 의미는 말세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간의 전기간을 말세라고 합니다. 당시의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인용하는 요엘서의 하늘과 땅의 징조들을 쉽게 간과해 버릴수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초림으로 시작해 놓으신 일들을 재림하실때 완성하실 것입니다. 모든 육체에 부어질 성령은 그때부터 성취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가고있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성령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나이와 성별과 계층간의 구별이 없는 시대입니다.
a.말세(딤후3:1)
b.그리스도의 재림(마24:30)
2) 증인의 고백
베드로는 예수님의 기적들은 예수님 자신을 그들에게 증거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대략적으로는 알고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었던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윗의 증거를 들어서, 다윗의 말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예언의 영으로 장차오실 메시야를 가리켜 한 말이며, 이분이 바로 예수님의 경우에 적용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자기의 원수를 발아래 복종시킬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라는 초대를 받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을뿐 아니라 지극히 높은 위치로 올라가셨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의 자리에서 이제 자기의 영을 보내셨고, 성령의 오심은 그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 사실을 회개하고 믿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a.부활의 근거와 약속(시16:10)
b.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엡1:20)
3. 새로운 공동체
1) 회개와 세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새로운 시각에서 예수님의 잡힘과 고난, 그리고 죽음의 진술을 들은후 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죽였던 것입니다. 적어도 메시야를 죽게 동조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눌린 무리에게 베드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과 성령을 받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3천명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a.회개(눅24:47)
2) 공동체의 삶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즉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과 사귐을 갖는 새시대의 공동체가 되기위해서 메시야와 함께죽고 함께사는 부활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식사와 기도로 교제했고, 재산을 함께 통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증언했으며 큰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사도들과 다른 지도자들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a.기사와 표적(막16:20)
결론
새로운 공동체는 매일 성전에 모였습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고 그들의 교제는 풍성했습니다. 온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던 것입니다. 누가는 이 공동체가 보였던 결과에 대해서, '매일 구원받는 사람이 더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성의 강조는 지금 현대교회에게 요청됩니다.
# 핵심
2:1-13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결과, 제자들은 성령충만하여 본격적으로 복음증거에 나섰다.
# 묵상
오순절의 성령강림 ( 2:3-13 )
바람소리와 같은 것과 더불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즉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불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여러곳에서 하나님이 불과 함께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출3:2; 13:21; 19:18; 왕하1:9-12; 2:11; 6:17). 또한 이때 성령충만의 증거로 받은 은사는 방언입니다. 방언은 교만한 백성의 언어를 혼란시킨 것(창11:1-9)과 달리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게하는 것으로, 성령을 통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이며, 복음이 온세계로 전파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방언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 놀라며 의혹하여 그 제자들이 새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습니다.
말세의 현상 ( 2:17-20 )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실 것입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땅에는 피와 불과 연기가 차고,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그날’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구원의 필수조건 ( 2:21 )
주의 이름을 불러야합니다. 그러나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해서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만 구원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 ( 2:37-42 )
베드로의 설교에서 구원의 방법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복음을 들으면서 믿음이 생기고 설교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설교를 듣는 순간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이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발견했습니다. 둘째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는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죄를 뉘우치고 의로우신 하나님만을 알고자하는 마음으로 가득참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접입니다. 구원의 약속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세례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 ( 2:38, 39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 받아야합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선물은 제한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이 받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 다 구원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 ( 2:42-47 )
지도자에게 말씀을 배웠고, 형제끼리 서로 친목했으며, 항상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성전에 열심히 모여 함께 떡을 떼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고, 성도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십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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