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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베드로와 요한이 옥에 갇힘 4:1-4
본문에서 우리는 제자들을 지지하려고 맞서는 악의 세력을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종들이 매우 담대해질수록 사단의 대리자들은 더욱 사악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단의 대리자들이 매우 사악해질수록 그리스도의 종들은 더욱더 담대해져야만 한다.
1. 사도들의 활동(1-4)
사도들, 곧 베드로와 요한은 계속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 복음전도자들은 신실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때에(1절). 그들은 백성들을 가르쳤다. 즉 아직 믿지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기위해, 또 믿는 이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기위해 가르쳤다. 그들은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했다. 죽은 자의 부활 교리는 예수를 통해 확증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 근거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쳤다. 부활의 교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든 믿는 이에게 보장되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직 그만을 통해서 이것을 얻을수 있다고 전했다. 그들은 여러 일에 관여하지 않고 그들의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하늘나라를 그들의 목표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일한 길로 가르쳤다.
(2) 말씀을 듣는 이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4절). 전도자들은 핍박을 받았지만, 말씀은 널리 전파되었다. 때때로 교회의 고난의 시기가 교회의 성장의 시기가 되곤 하는데 특히 교회의 초창기가 그러했다.
2. 제사장들의 음모(2,3)
제사장들과 그들의 무리는 사도들을 억압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손을 묶어둘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조금도 변화시킬 수가 없었다. (1) 사도들을 대적한 그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제사장들이었다. 거기에 성전맡은 자가 합세했는데 그들은 성전을 지키기 위한 로마의 관리였다. 여기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동조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영혼의 존재와 내세를 부인'했는데 그들도 열렬하게 사도들을 반대했다.
(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어떻게 대적하였는가.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치는바를 싫어하였다(2절). 그들은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도 싫었고, 백성들이 그 말씀에 모여드는 것도 싫었다. 그들은 복음이 사라지기는커녕 단단한 기반을 갖게되는 것을 보고 애가 탔다. 그리스도 왕국의 영광이 고통이 되는 그들은 참으로 비참하다. 또한 그들은 사도들이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함을 싫어하였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교리가 전파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들은 그 교리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제사장들도 그들이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를 전파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이 예수를 통해 입증되고 선포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중요한 교리를 포기하려고 하였다.
(3) 그들이 사도들을 어느 정도 핍박하였는가.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3절). 이를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종들이 고난을 감당할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그들은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힌 정도이지만 앞으로는 피를 흘리게될 것이다.
Ⅱ. 베드로와 요한이 심문 받음 4:5-14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교 법정의 재판관들 앞에서 심문받는 기사이다.
1. 재판 광경(5,6)
본문에는 재판 광경이 묘사되고 있다. 아마도 사도들을 심문하기 위한 특별 재판이었던것 같다.
(1) 재판이 열린 때는 이튿날 아침이었다(5절). 그들은 지체없이 사도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기때문에 단지 이튿날 아침으로 연기하였을 뿐이다.
(2) 재판이 열린 곳은 예루살렘이었다(6절).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속을 고대하고 있었으나 막상 구속이 도래한 후에는 그것을 구속으로 여기지 않았다.
(3) 법정의 재판관들은 다음과 같은 자들이었다.
①그들의 일반적인 신분은 5절에 기록된바대로 '관원들과 장로와 서기관들'이었다. 서기관들은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었으며 관원과 장로들은 권세있는 자들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학식있는 자와 권세있는 자들의 반대를 받았던 것이다.
②그들 중의 몇사람은 유력한 인물들이었다. 여기에는 핍박의 주모자였던 안나스와 가야바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안나스는 산헤드린의 의장이었으며 가야바는 대제사장(본문에는 안나스도 그렇게 불리우고 있지만)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다같이 대적하였다. 또 대제사장의 문중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대제사장에게 의존하여 그가 말하는바는 모두 지지하였다. 옳지않은 일에는 아무도 지위가 높은 친척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
2. 죄수들이 법정에 끌려나옴(7)
재판관들은 사도들을 가운데로 세웠는데 당시 산헤드린은 원형으로 앉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즉 누가 너희에게 이같은 교리를 가르치라고 명하였느냐? 누가 너희에게 이와같은 기적을 행하도록 권능을 주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들은 사도들이 예수에 대해서 가르쳤다는 것을 아주 잘알고 있었다(2절).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에게서 죄의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질문하고 희롱하고 심문하였다.
3. 사도들의 항변(8-12)
그들의 항변은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주님의 영광과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1) 이 항변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성령의 지시를 받은 것이었다. 사도들은 오직 그리스도만 전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이 마땅히 할말을 그때에 그들에게 가르치시리라는 약속을 이행하셨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변호자들은 결코 어떠한 지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막 13:11).
(2) 누구에게 이 말씀이 주어졌는가. 베드로 자신이 백성의 지도자이며 이스라엘의 장로들인 법정의 재판관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권세가진 자들의 사악함을 지적하여 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으려 한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고있는 권세를 재고하게 하여 그들에게서 사악함을 제거하고자 했다.
(3) 무엇을 항변했는가.
1)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였다고 대답했는데 이것은 법정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었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이 착한 일에 대하여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앞에 섰느니라"(9,10절). 그는 자신과 자신의 동료가 앉은뱅이를 고친 일을 정당화시킨다. 그것은 착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가 이것을 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로인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선한 사람이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고난받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베드로는 이 선한 행위에서 비롯된 찬양과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렸다. "이 사람이 병고침을 받은 것은 주님의 능력이지 우리의 능력때문이 아니다. 오직 주님만이 높임을 받을지어다. 우리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도다." 베드로는 재판관들이 예수의 살인자였다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바로 그분이시다." 그는 그들의 죄가운데서 가장 양심을 찌르는 죄인 그리스도를 죽게한 죄를 그들에게 깨닫게 하려고 노력한다. 베드로는 그들로 깨닫게 할수 있는 것은 한가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또 자신의 핍박자에 대항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증거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장한다.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셨다. 그들은 그의 생명을 빼앗았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생명을 주셨다. 그는 방청객들에게도 이 사실을 전해준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즉 예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으며 그때 이 이름은 주문으로 불리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향하신 은총과 선한 의지에 대한 신의 계시로써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 이러한 예수의 이름은 그것으로만 우리가 구원받을수 있는 이름이다. 사람들이 이 이름을 믿고 부르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안에서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것을 행하여야 한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써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11절). "너희들은 바로 백성의 통치자이며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며 마땅히 교회의 건축자가 되어야할 자들이다. 여기에 너희에게 머릿돌이 주어졌으나 너희는 그것을 거절하고 내던져 쓸모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돌이 이제 머릿돌이 되었다." 여기서 베드로가 이 인용문을 택한 것은 바로 얼마전에 그리스도 자신이 이를 사용하셨기 때문인것 같다(마 21:42). 우리의 영적인 투쟁에 있어 성경은 믿을수 있는 무기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충실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성경에 몰두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받을수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12절). 다른 이름으로 병든 육체를 치료할수 없는 것처럼, 다른 이름으로는 죄많은 영혼을 구원할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우리 자신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자신을 파괴할뿐이지 우리 자신을 구원할수는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닌 명예로써 오직 이 이름으로만 우리는 구원을 받을수 있는 것이다. 이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이 이름을 선택하셨다. 그것은 하늘아래로 주어졌다. 그는 하늘과 지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그것은 구원이 필요한 인간 가운데 주어졌다.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구원받아야 하며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수 없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서 그 자신들의 지식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과연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는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스도 덕분이며 오직 그를 위하여서인데 이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기'때문이다.
4. 법정의 반응(13,14)
(1) 그들은 앉은뱅이에 대한 치료가 선한 일인 동시에 기적이라는 것을 부인할수 없었다. 그들은 힐난할 말이 없었다(14절).
(2)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굴복시킬수 없었다. 이것은 앉은뱅이에 대한 치료 못지않게 기적이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았다(13절). 그들은 통치자들을 겁내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도리어 통치자들을 두렵게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언자들의 용기는 종종 그들의 잔인한 핍박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1)그들의 놀람이 커졌다. 그들은 사도들을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 그들은 사도들을 심문하여 그들이 갈릴리 태생으로 나면서부터 어부인, 학식이 전혀없는 사람들임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도들이, 그들에게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대하여 질문하면 아주 적절하고 유창하게 성경을 인용하였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있던 학식이 풍부한 재판관도 그들에게 대답할수 없었다. 그들은 범인들이었다. 즉 그들은 공적인 활동이나 관직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유롭게 처신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던 것이다.
2)그들은 대단히 놀라서 사도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전에 예수와 함께있던 줄도 알고(13절). 심문자들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있던 줄을 깨닫게 되자 그들의 담대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게되었다. 예수와 함께있던 자들은 매사에 스스로 행동하므로 그들과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있었던 줄을 알게된다. 즉 우리는 그들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봄으로써 그들이 변화산에 머물렀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Ⅲ. 재판의 결과 4:15-22
본문에는 재판의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사도들은 대승리를 거두었다.
1. 배심원들의 논의와 결정(15-18)
(1) 그들은 죄인들에게 나가있으라고 명했다.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15절). 사도들이 그들의 양심을 너무 괴롭혔으므로 그들은 사도들을 빨리 피하고 싶었다. 그리스도의 대적자들은 그들의 계획을 하나님께 감추려는듯이 은밀히 추진하였다.
(2) 이 일로 논쟁이 제기되었다.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16절). 그들이 설득력있는 진리와 압도적인 힘에 승복하였다면 이 사람들에게 해야할 일을 말하기가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지않음으로써 때때로 무엇을 해야할지 말로 당황하게 된다.
(3) 마침내 그들은 두가지 해결책을 강구했다.
1)사도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하였다.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므로' 베드로와 요한을 함부로 처벌할수 없었다.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하는 것이 불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또한 하나님이 두려워서 자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사도들을 처벌하는 것을 위험한 일로 생각했으며 백성들을 두려워했기때문에 사도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①백성들은 기적의 진실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주목할만한 기적 즉 '유명한 기적'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예증이었고 그의 가르침에 대한 증명이었다. 그들이 가르쳤던 교리를 확증시켰던 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였다. 그들은 그들의 재능과 술책을 모두 동원하여도 그것이 참된 기적이었음을 부인할수 없었다. 그들이 부인한다면 모든 백성들이 틀림없이 조롱할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은 쉽게 속일수 있었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②모든 사람들이 이 이루어진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일로 인하여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못하던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찬양할수밖에 없었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래를 위하여 사도들을 침묵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17,18절). 그들의 최대 관심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치유 사실이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했으므로 그것을 막아야만 했다. 이 교리를 더이상 퍼지지 못하게 하기위하여 첫째, 사도들이 더이상 가르치지 못하도록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계하였다(18절). "너희는 이 교리를 공개적으로 가르치지 말라. 또한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즉 어떠한 특정인에게도 사사로이 말하지 말라"(17절). 신실한 목회자가 침묵하고 세상의 빛을 감추는 것만큼 마귀의 왕국에 봉사하는 일은 없다. 둘째, 그들은 사도들에게 입을 다물지않으면 목숨을 잃게되리라고 위협한다. 그리스도는 그들더러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을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약속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위협을 무시할수 있다.
2. 사도들의 결단(19,20)
본문에서는 사도들이 그들의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대답했다. 하나님앞에서 너희 말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수 없다(19,20절). 뱀과 같은 신중함은 그들이 침묵하도록 명할지도 모르지만 사자와 같은 담대함은 그들의 핍박자에게 항거하라고 명한다. 사도들은 두가지 점을 들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너희는 우리가 복음전하는 것을 막을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이제 우리가 누구의 명령에 복종하겠는가? 하나님인가 너희인가?"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하나님보다 연약하고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인간의 말을 경청할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아무도 자명하고 확실한 경우이기때문에 우리는 너희 자신에게 판단을 맡기는 모험을 행할 것이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하나님앞에서 옳은 것이라고 너희는 생각할수 있느냐?
(2) 그것은 그들의 양심의 확신이었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첫째, 그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복음의 영향력을 느꼈다. 얼마나 축복된 변화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권세를 깨달은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말한다.
둘째, 그들은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상한 영혼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영원한 파멸에서 탈출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여 믿음을 갖게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므로 우리 자신이 확신에 차있다. 그것은 오직 우리만이 보고 들은 것인데 우리가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느냐? 누가 할수 있겠느냐?"
3. 사도들이 석방됨(21)
그들은 사도들을 석방시켰다. 그러나 그들이 사도들을 석방시킬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그 된일을 보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백성들을 반박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임명된 통치자들이 사악한 백성들을 겁주고 처벌하듯이 때때로 백성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사악한 통치자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행동을 억제케 한다.
(2) 그들은 기적을 부정할수 없었기때문이었다. 이 표적으로 병나은 사람은 사십여세나 되었더라(22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행 3:2)에게 이 기적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오랫동안 악에 젖어있던 사람은 선에 대한 그들의 영적무기력을 고침받는다면 그로인해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은 더욱더 증대될 것이다. 기적의 진실성은 더확실히 입증될수 있었다. 왜냐하면 병나은 사람이 사십여세가 되었으므로, 그 사건에 대해 질문받았을때, 자신이 경험한 그 기적을 스스로 설명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Ⅳ. 사도들의 증언 4:23-31
이제 대제사장에 대한 기록은 더이상 볼수 없고 다만 두가지 증언만 기록되어 있다.
1. 귀환(23)
그들은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23절). 그들은 자유롭게 되자마자 그들의 옛 동료에게로 갔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의 명예를 높이시고 그를 증거하도록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들은 우쭐거리지 않고 그 동료에게 갔다. 우리가 은사를 많이 받고 유능하다고해서 성도의 모임에서 더많은 특권이나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2)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단단히 협박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동료에게 갔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동료 가운데에서 주어진바를 최선을 다해 행한다.
2. 경위 설명(23)
그들은 그들이 겪은바를 동료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23절). 그들은 동료들에게 그것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동료들은
(1) 사람에게 기대할 것과 하나님께 기대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인간에게는 공포밖에 기대할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용기를 주신다.
(2) 그것을 기록해둠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에 관한 우리의 신앙을 확립할수 있게 하였다. 이 사도들은 제사장들앞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음을 증언하였다. 제사장들은 그것을 부인할만한 확신이 서지않았으므로 가장 어리석고 비굴한 방법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사도들에게 명했던 것이다.
(3) 사도들은 기도와 찬송으로 연합할수 있게 되었다."
3. 감사기도를 드림(24-30)
이 사실로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24절). 여러사람을 대신하여 한사람이 하나님께 소리를 높였고, 남은 사람들은(단어가 의미하는바대로) '일심으로' 연합하였다. 그들의 마음이 모두 그를 따랐으므로 한사람이 기도했지만 모두가 기도한 것과 같았다.
(1) 그들은 세계의 창조자로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들은 가로되(단어가 의미하는바대로)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분이시요(24절). 이방인들은 자신이 만든 신을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세계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때문에 사도신경에서와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말을 시작한다. 기독교는 자연종교의 진리와 교훈을 소멸시키지 않고 분명하게 하며 향상시키려 한다. 만유를 지으셨으며, 고난을 당할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종에게는 용기가 된다.
(2) 구약성경을 인용함으로써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섭리에 자신들을 복종시킨다(25,26절).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말씀하셨다. '성경은 이루어져야할 것'이므로 그들은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시편 2:1,2절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고 있다.
첫째,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해 노할 것이다.
둘째, 족속들은 그것에 대적할수 있는 것은 모두 생각해낼 것이다.
셋째, 특별히 세상의 군왕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반대하게될 것이다.
넷째, 관원들은 함께 모여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대적할 것이다. 많은 통치자와 의회와 원로원의 권세가 있는 곳에서는 그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대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하신다. 그들은 기독교와 싸우고 대적하였지만, 기독교는 번영하였던 것이다.
(3) 그러한 예언이 27,28절에서 성취됨을 볼수 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27절).
첫째, 하나님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세우신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이 있다.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그를 종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몇몇 영역본들에서는 어린예수라고 부르고 있다(흠정역 참조). 그 말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아들과 종이라는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구속사업에 있어서 그는 그의 아버지의 종으로서 행동하셨다.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사람은 바로 그분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주님의 그리스도라고 불렀다(26절). 그리스도에게 기름부으셨던 하나님은 그가 해야할 일을 결정하셨다. 그는 구세주가 되기위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속죄를 위해 희생되도록 결정되었다. 그는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현명하게 그가 누구 손에 죽어야하는지도 결정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야 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이 그렇게 정했다(28절). 그의 권능과 뜻은 언제나 일치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그가 행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 계획을 달성함에 있어 사악하고 불경한 도구가 이용된다. 서로 불화하던 헤롯과 빌라도,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데 연합하였다. 하나님이 선한 일에 쓰신다고해서 죄는 그 악함이 덜하여지지 않지만 이 일로 그리스도는 더욱 영광을 받게 된다.
(4)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간구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적들의 죄를 기억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29절). '주여 이제도'라는 말속에서 '이제도'에 강조를 둔다. 원수의 세력이 극심하고 위협을 하는 이때가 바로 그의 백성을 위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때이다. 그들은 무엇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지시하지않고 단지 솔직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뢸뿐이다. "당신께 간구하오니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손을 결박하든지 그들의 마음을 돌려주소서." 우리가 부당하게 위협받을때 주님앞에 호소하여 위협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켜주실 것을 기도했다.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하여 주옵시며(29절). "주여 저들의 위협을 하감하옵시고 그들을 놀라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저들의 위협을 하감하옵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또 그들은 "주여, 이제 위험이 다가오고 있사오니 우리의 임무에서 은퇴할수 있는 명예로운 기회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주여,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임무를 계속 수행할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이나 그 말로써 입증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담대히 그들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능력있는 자를 찾으신다. 적들의 위협은 우리를 분발시켜 더욱더 용기를 갖도록 해줄 것이다. 감히 그들이 그리스도와 대적하여 싸울수 있겠는가? 부끄러움때문에, 그를 위하여 싸우는 일을 회피하지 말자.
셋째, 그들이 전한 교훈을 확고하게 하기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적을 행할 힘을 주실 것을 기도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30절). 신실한 사역자들이 그들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표적보다 더큰 힘은 없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30절).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고 적들을 꺾을수 있게 하소서."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간구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인 것이다.
4. 하나님의 응답(31)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응답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표적을 그들에게 주셨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31절). 이 진동은 그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이키며 진실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감각적인 표적을 그들에게 주기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줌으로써 이때부터 그들은 사람들을 더욱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 장소는 흔들렸지만 그들의 신앙은 더욱 굳건해지고 깨지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이 더욱 충만하게 하셨다. 의심할 나위없이 그들의 기도는 받아들여졌으며 응답되었다.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겁냄이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성령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되는가 하는 것까지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법정에서도 성령이 충만하였고, 이제 강단에서도 성령이 충만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를 보게되는데 그것은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게 됨이 기도의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풍성한 은사의 실례를 보게되는데 이는 우리가 은사를 받고 그것을 쓰면 쓸수록 은사가 더욱 풍성해진다는 의미이다. 저들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절). 재능은 이용해야 되며 묻어두어서는 안된다.
Ⅴ. 초대교회 공동체 4:32-37
1. 서로 사랑함(32)
제자들은 진심으로 서로 사랑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32절).
(1)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루살렘에서만 회심하는 자가 어떤 날은 삼천명이나 되었고 또 어떤 날은 오천명도 되었다. 이외에도 날마다 믿는 이가 더하였다. 교인의 증가는 교회의 영광이다.
(2) 그들은 '한마음과 한뜻'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달랐지만 그리스도의 믿음안에서 일치하였고 주께 연합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룩한 사랑안에서 서로서로 연합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제자들에게 남기신 교훈의 축복된 열매이며, 그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신 그 기도의 축복된 열매이었다. 그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전에 서로 사랑한것 같이 지금도 서로 사랑할수 있을 것이다.
2. 권능의 사역(33)
사역자들은 큰 권능으로 그들의 사명을 계속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33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올바르게 이해할때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 사도들이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받은 권능은 커다란 힘, 정신, 용기를 의미한다. 그들은 그 진리를 부드럽고 소심하게 전한 것이 아니라 생기있고 단호하게 전하였다. 또는 그 권능은 그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주는 기적을 의미한다. 하나님 자신이 그 기적의 역사속에서 또한 증거하셨다.
3.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33)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그들에게서 빛났다.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33절). 비범하고도 장엄한 은혜가 모두에게 주어졌다. 그리스도는 그들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셨다. 그들이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속에 이 은혜의 명백한 열매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들속에서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보았고 그들을 존경하였다.
4. 가난한 자에 대한 너그러움(32-37)
(1) 그들은 소유권을 포기하였는데 실제로 소유권이란 어린아이조차 갖고자 열망하는 것이며 세상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고자 하는 것이다.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으로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절). 그들은 이미 서로 나누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재물을 모으기위해 염려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나누어주고자 한 사람들은 형제를 돕기위하여 스스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다. 내 것과 네 것을 가를때 분쟁이 생긴다. 인간이 자기 재물을 갖고 그것을 더욱 긁어모으려고 할때 전쟁과 분쟁이 일어난다.
(2) 그들은 구제를 많이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32절). 그리하여 그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34절).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중에는 가난한 자들이 많았으나 그들을 부양할수 있는 부자들도 몇사람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그렇게 하게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모든 물건을 통용하였는데 그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의 재산을 약탈하도록 한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한것이었다.
(3) 그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진 것을 팔아 그들의 기금으로 내놓았다. 밭과 집있는 자는 팔아(34절). 본문에는 그들이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다.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앞에 두매(34절). 이것은 사도들이 합당하게 여기는대로 사용할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저희가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35절). 공공 구제기금을 사용하는데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만 한다. 즉 그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결핍이 채워져야 되는 사람들이 돌봄과 구제를 받았다. 한개인에 대한 편애나 존경심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졌다. 본문에는 특별한 사람의 이름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으며 레위족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구브로 출신이었다. 그가 사도들과 함께한 뒤에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었음을 주목하자. 그는 사도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표시로 그에게 바나바란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이다. 그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로 그는 유쾌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마음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함에 있어 늘 관대하였으며 또 주의 백성을 위로하는데 있어 탁월했다. 이와같이 그는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도들 가운데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막 3:17)이라 불리는 사람이 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위로의 아들이 그들과 함께있었다.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사람이 상처를 찾아내면 다른 사람이 치료하고 싸매주었다. 둘째, 본문에서는 그의 무한한 관대함이 설명되어 있다. 후에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서 그의 봉사가 뛰어났기때문에 이 사실은 특별히 주목의 대상이 되고있다. 또는 그것이 타인의 모범이 되고 지도적인 지침이 되기때문에 언급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앞에 두니라(37절). 이와같은 그의 행위는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고 하신 성령의 말씀대로 그가 사실상 사도들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던 사실과 합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들을 사도로서 존중하였기때문에 그 보상으로 그는 사도로서의 대접을 받게되었던 것이다.
# 해설
박해당하는 사도들 ( 4 )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그들이 공회에 넘겨지고 관장들과 임금들앞에 서서 고난을 받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있게되면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참조, 막13:9-11). 주님은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앞에 증거했습니다. 핍박속에서 그들은 더욱 담대했고 교회는 힘을 더해 갔습니다.
1. 심문받는 사도들
1) 갇힌 사도들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던 사도들은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에게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다수가 사두개파 소속이던 성전 관원들이 좋아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일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전맡은 자는 성전 경비의 책임자로서 성전내의 질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 직위는 대제사장 가문들에서 추천되었고, 서열은 대제사장 다음이었습니다. 이들은 밤새 두사도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a.성전맡은 자(느11:11)
b.사두개인(마22:23)
2)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튿날 아침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고, 참석자들 중에는 당시 산헤드린의 두드러진 인물들이 포함되어 었었습니다. 가야바는 당시의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권위로 판결을 좌우하곤 했습니다. 그의 장인 안나스는 가야바 이전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명예 대제사장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서 심문할 죄를 발견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권위를 잃지않기 위해 '무슨 권위와 뉘 이름으로 그런 혼란을 일으켰느냐'라고 물을 뿐이었습니다.
a.공회(마5:22)
b.대제사장(마26:59)
3) 모퉁이 돌
베드로는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라는 공회의 물음을 일축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건축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돌이 예수님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자들은 곧 유대 지도자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한건물의 머릿돌이 되게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기적 또한 그들의 힘이 아니고 비할데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a.고난받는 인자(막9:12)
b.버림받은 모퉁이 돌(시118:22)
2. 공회에서의 담대함
1) 범인
공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학문이 없고 평범한 사람들인줄 알았다가 그들의 담대한 증거에 무척 놀랐습니다. 막힘이 없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도들의 담대함을 그들은 보았던 것입니다. 이 담대함은 사도행전의 또다른 독특한 주제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와 함께있던 자들임은 물론 병나은 사람까지 그들과 함께있는 것을 보고 조용해졌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공회원들을 당혹하게 했을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책잡을 것을 발견치 못했던 것입니다.
a.담대함(엡3:12)
b.악인들의 침묵(딛2:8)
2) 힘없는 위협
공회원들은 은밀히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들로서는 눈에 바로 보이는 사실을 부인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금지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만일 사도들이 공회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증거한다면, 그때는 법정모독죄를 적용할 셈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사도를 불러서 더이상 그 일을 하지말도록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신들이 산헤드린의 명령보다 더높은 하나님의 말씀아래 있음을 주지시켰습니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회원들은 그들을 힘없이 위협하고 놓아줄수밖에 없었으며 그 일로인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a.핍박의 원인(갈6:12)
b.보고 들은 것을 말함(요일1:1)
3. 놓인 사도들
놓인 사도들은 그 즉시로 동료들에게 가서 겪은 모든 일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한마음이 되어 찬미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관원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병자를 고칠수 있는 능력을 더욱 베풀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찬미는 창조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의 회당 예배시에 쓰이던 예배의 형식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에서 보게되는 중요한 특징은 시편 2편의 말씀을 인용, 적용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메시야를 노래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은 먼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분에 대해 말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그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로서는 예수님께서 시편이 가리키는 왕으로서의 메시야임을 의심할여지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또한 예수님을 '거룩한 종'으로 표현함으로써 이사야서에서 묘사되는 '여호와의 종'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관원들의 위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권능과 표적들이 더많이 나타나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믿고, 성령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a.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종(사61:1)
b.하나님의 손(잠31:20)
4. 유무상통
본문의 말씀에서 누가는 바나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누가가 밝히듯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의 이름에서 보듯,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연합이 되었습니다. 즉, 물건을 나누는 것은 자발적이었고 분배는 필요에 따랐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이 부활하신 주를 증거하도록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4장의 교회의 모습과 다음에 나오는 5장의 내용은 대조를 이루는데 이 또한 누가의 의도를 엿볼수 있게 합니다.
a.한마음과 한뜻(빌1:27)
b.바나바(행9:27)
결론
본장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확신에 찬 사도들의 증거가 인상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단지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한정됨을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와 교제를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 핵심
4:1-22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으로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위기의식을 느껴 저지하려 들었다.
구원(salvation, 4:12)
스스로 헤어날수 없는 큰 위험이나 극심한 괴로움으로부터 제3자가 건져내어 주는 것,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대적의 위협과 재난에서 건져내시는 것(삿 10:11), 혹은 예수님이 각종 병자를 치유해 주신 것(막 5:34) 등이 구원행위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궁극적 의미에서의 구원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와 사망권세에서 벗어나 영생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 이 구원은 장차 천국에서 누리는 것일뿐 아니라 주님안에서 천국 백성임을 자각하며 사는 자가 현재의 이 세상에서도 향유하는 것이다.
# 묵상
최초의 교회에 대한 박해 ( 4:1-3 )
교회에 대한 최초의 박해는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전 경내에서 백성을 가르치는것 자체는 위법적인 행위가 아니었기때문에 누구에게나 허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전부터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던 사두개파 사람들과 패역한 제사장, 성전 관리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귀에 거슬리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박해가 있었지만 복음은 더욱더 확산되었습니다. 핍박은 오히려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성령충만 ( 4:8-12 )
베드로가 성령충만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박해하여 복음전파를 막으려했으나 베드로는 오히려 이것을 복음증거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도들도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할지라도 낙심하거나 두려워말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선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 비유 ( 4:11 )
베드로는 예수님의 생애를 건축자의 버린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비유했습니다(마21:42; 벧전2:7). 집모퉁이의 머릿돌은 승리하신 예수님,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을 위협한 관원과 장로들 ( 4:18-20 )
그들은 사도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협박했습니다. 공회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사도들의 답변에 반박할 수 없으므로 사도들을 부당하게 위협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를 위협으로 막아보려는 생각은 어리석을뿐만 아니라 실패할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옳다고 말하였으며, 또 자신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난 법률을 단호하게 거부한 베드로의 태도는 초대교회 이후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으며,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견지(堅持)되어야할 황금률이 되고 있습니다.
박해받는 교회가 한 일 ( 4:24-31 )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당시 성도들의 기도가, 당면한 박해의 세력만을 제거하려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그 박해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게 해달라는 적극적인 기도였다는데 우리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에 전념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충만을 체험하게 하시고 땅이 진동하는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러한 성령충만은 복음을 더욱 담대히 전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교회를 하나되게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 ( 4:32 )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은혜받은 성도는 모든 물건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나의 소유는 하나님이 나에게 위탁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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