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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 19:1-7

에베소는 아시아에서 상당히 알려진 도시 중의 하나로 그곳은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 다이아나 여신(Diana,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으로 성경에는 아데미 여신으로 나옴-역주)의 신전이 세워진 것으로 유명하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에베소에 왔다(1절).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물을 주고 있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보다 즐겁고 만족스럽게 새로운 임무에 정진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아볼로같은 유능한 사역자가 고린도에서 훌륭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을 둘러본 후에 상부 연안 지역을 경유하여 에베소에 도착하였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전에 남겨두고 떠났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다. 또한 바울은 그곳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진정한 메시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안내자였던 세례요한의 지도를 받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지식만을 지닌 상태였다. 그들의 숫자는 대략 12명이었다(7절).

1. 바울이 그들에게 가르친 교리문답(2-5)

(1)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성령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질문했다. 즉 그들이 성령의 계시를 알고 있는지 또한 그것을 인정하는지에 대하여 그들에게 물었다. 또한 성령의 특별한 은사가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 부여되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말은 너희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확신했는가'라는 말이다. 모든 진실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혜가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못 알고,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를 받은 것으로 가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갖게된 후로 성령을 받았는지에 관하여 자신들을 엄격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성령충만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2) 그들은 이 문제에 관한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였다. 성령의 존재에 관한 문제는 우리의 인식을 초월한다. 우리는 성령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구약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으며 그 약속이 적절한 시기에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성령이 참으로 주어졌는지에 관하여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복음의 빛은 아침 햇살처럼 서서히 비치는 것이며 점점더 분명하게 점점더 먼 곳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3) 바울은 그들이 성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어떻게 세례를 받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3절). 그들이 성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답변은 있을 수 없다. 성령에 대한 무지는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무지만큼이나 기독교의 진정한 고백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받은 세례에 관해 숙고함으로써 세례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4)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음을 시인한다. 즉 그들은 요한의 몇몇 제자들에 의해 요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요한이란 이름으로 한 당파의 당수로 고수할만큼 무지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표현되었듯이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5) 바울은 요한이 베푼 세례의 의도와 의미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이들이 바울에게 가르침을 받았듯이, 교육의 혜택을 얻지 못하여 무지의 상태에 있거나 잘못을 범하고 있는 자들은 사려깊게 지도되어야 하며 더욱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한다. 바울은 요한의 세례가 회개의 세례였다는 견지에서 매우 훌륭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였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4절). 그러나 바울은 요한의 세례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요한 이후에 오실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따라서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는 단지 그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던 그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비한 선구자에 불과했다. 요한의 세례는 여러분이 지나가야 할 현관에 불과할뿐 안식할 방이 아니었다.

(6)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깨닫고 이 새로운 사실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5절). 그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기를 원했으며 또한 그렇게 하였다. 이것은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여기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던 자들이 이전에 결코 그와 같은 세례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 바울이 그들에게 베푼 성령의 은사(6,7)

바울은 엄숙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들에게 안수를 베풀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7절). 그들은 예언의 영을 받음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신비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방언의 은사를 받음으로써 모든 나라, 백성들에게 그 나라의 언어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이들에게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령이 있다는 사실을 듣지도 못한 자들이 이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Ⅱ. 바울의 에베소 활동 19:8-12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매우 분주했음을 알 수 있다.

1. 유대인 회당에서의 활동(8)

(1) 그가 복음을 전파한 장소는 그들의 회당이었다(8절). 그곳에는 아직 그리스도인들의 집회 장소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유대인들의 집회소를 자주 출입하였다. 그가 회당에 들어간 또다른 이유는 유대인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으므로 그들을 올바로 인도하고자 기대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내용 : 그는 인간에게 일어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지배하실뿐 아니라 사랑하고 계시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 안에서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위대한 사실을 전한다. 더욱 특기할 것은 메시야 왕국에 관한 사실들이었다. 그는 이 왕국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다.

(3) 바울이 그들에게 전도한 방법 : 그는 논증적으로 변론과 이의에 대한 답변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믿도록 했으며, 그들에게 믿어야할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는 감동적인 설교를 통하여 그들을 설득시켰다. 바울은 감동적인 설교자였으며 설득력의 대가였다. 그는 불굴의 용기와 거룩한 결단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 즉 그는 담대히 말씀을 전했다.

(4) 바울의 복음전도 기간 : 석달동안의 가간은 그들이 바울의 설교 내용을 숙고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5) 바울이 전한 복음전파의 성과 : 바울의 설득으로 그리스도를 믿게된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신앙을 고수했으며 기독교에 반대하는 그들의 편견은 확고했다. 이제 바울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의 말로써 그들의 양심을 자극하게 되자 그들은 곧 바울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지울 수 없는 반감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이 굳어져 믿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복음에 반대하도록 선동하는 일에 앞장섰다.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9절). 그들은 무리들에게 이 도에 반대하는 편견을 심어주었다. 설사 그들이 어떤 악행을 자행하지는 않았다해도, 그들은 복음에 대하여 온갖 악담을 퍼부었던 것이다.

2. 회당을 떠남(9,10)

바울은 가능한한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그 문제를 다루려고 했으나 사정상 그 회당을 떠나고 말았다. 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사실들을 전하는 것에 대해 야유를 퍼부음으로써 그를 쫓아냈다. 즉 그들은 개혁되거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로부터 떠나게 되었다.

(1) 바울이 유대인들에게서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제자들을 데려다가 따로 세웠다. 바울은 그러한 모독자들의 독기서린 혀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그의 제자들을 격리시켰던 것이다. 또한 그는 신자들을 그들과 격리시킴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 교회의 초석으로 삼기 원했다. 바울이 그곳을 떠났을 때, 제자들을 더이상 격리시킬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어느 곳에 가든지 그들은 그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2) 바울은 회당을 떠난 후에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그는 회당을 떠남으로써 이중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1) 그가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자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회당에서는 그가 매주 안식일에만 복음을 전했으나, 이제는 매일 강론할 수 있게 되었다(행13:43).

2)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개방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의 회당에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개종자들 밖에 없었으며 이방인들은 제외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집회를 가졌을 때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모두가 그곳에 참석할 수 있었다(10절). 일부 학자들은 이 두란노 서원이 유대인들의 신학교로써 대도시에 있는 회당의 별관과 같은 곳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곳을 벧미드라쉬(Bethmidrash) 즉 사문회장(査問會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그곳이 한 두란노 서원에 부속된 이방인들의 철학 강의실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곳은 매우 편리한 장소로써 바울과 그의 제자들이 무료로 또는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했던 곳이다.

(3) 여기서 바울은 2년간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기간은 그가 회당에서 보낸 '3개월간' 이후부터 계산된 것이다(8절).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말했듯이(행20:31) 그 기간을 만 3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4) 이로써 복음은 원근 각처로 전파되었다. 아시아에 사는 자는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10절). 에베소의 모든 거주민뿐만 아니라 아시아로 불리우는 광할한 지역의 모든 거주민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중심 도시였으므로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이러한 여건은 바울이 그 지방의 모든 촌락과 마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 모든 사람들은 주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 각처의 도시와 지방에서 온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호감을 갖게 되었으며, 그들에 의하여 복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3. 하나님의 확증(11,12)

(1)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덴 등지에서 기적을 행하지 아니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 그가 기적을 행했다해도 왜 그러한 사실들이 기록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음을 입증하는 기적들을 에베소에서 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 그 기적들은 특별한 기적이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일상적인 자연의 질서를 벗어난 권능을 행사하였다. 또한 이 기적들은(모든 기적이 그러하듯)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기적들을 행한 자는 바울이 아니라, 바울의 손으로 그 기적을 행하게 만드신 하나님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심에 있어서 단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3) 바울은 그에게 실려오거나 나아온 병자들을 치유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취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통해서도 치유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병자 곁에 이르렀을 때 그의 입은 옷자락을 만짐으로써 그 병자가 치유되었다는 기사를 알고 있다. 그때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이 빠져나갔음을 감지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병자들은 바울이 입었던 옷자락에 의해서도 치유 받았다. 그리스도는 그의 사도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악한 것을 고칠 수 있는' 권능을 주셨다(마 10:1). 또한 바울이 구원을 전했던 사람들도 그와 같은 기적의 능력을 지녔다.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12절).

 

Ⅲ. 유대인 마술사들의 망신 19:13-20

이 구절에서 우리는 사단의 정복에 관한 두가지 괄목할만한 예들, 즉 사단에게 강제로 사로잡힌 자들과 그에게 자진하여 굴종하는 자들을 보게 된다.

1. 사단의 종으로서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자들의 당혹(13-17)

그들은 '무당들'로서 그들의 악마적인 마술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1) 이와 같은 경거망동의 죄를 범하는 자들의 일반적인 특징 : 그들은 유대인이었으나 떠돌이 유대인에 불과했다. 그들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운명을 점쳤고 마술과 주문을 통해 그들의 병을 고치며 우울증 환자나 정신병자를 치유하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이 미신적인 유대인들은 그 마술적 술수들의 평판을 높이기 위해 그것들이 솔로몬에 의해 고안된 것이라고 악랄하게 조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러한 사실에 빗대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마 12:27)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2) 이러한 삶의 길로 접어든 에베소의 몇몇 사람들에 관한 특별한 설명 : 그들은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었다(14절). 그들의 조상은 대제사장으로 24반열중 한 반열의 우두머리였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대제사장의 아들들은 성전에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으며 자기 발전을 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그들의 불경죄 : 어떤 유대인들이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13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마를 축출했으면서도 그의 제자들을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 관한 기사를 보았었다(눅 9:49).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를 존중하며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의 사악한 일을 성취시키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고 말했다(13절). 이것은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는 말이 아니고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는 말이다. 그 말은 그 이름이 어떠한 능력을 행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4) 불경건한 행위를 통하여 자초한 그들의 당혹 : 악령은 그 마술사들에게 날카롭게 반문하였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15절). 너희들은 무슨 권한으로 그의 이름을 빌어 우리에게 명령하며, 도대체 누가 너희에게 그러한 권세를 주었느냐? 너희가 예수의 가르침을 증오하면서 어떻게 그의 능력을 선포할 수 있단 말이냐?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을 환호하면서 그 두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겼다. 그래서 그들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악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 모두에 대한 경고이다. 그들을 유혹으로 정복한 마귀가 그들을 또한 위협으로 정복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마귀와 대항한다면, 그 마귀는 우리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의 이름만 부르고 주문이나 마술을 사용함으로써 마귀를 물리치겠다고 생각한다면, 마귀는 우리를 이길 것이다.

(5) 이러한 사실이 널리 퍼짐(17절) :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17절). 이 사실은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즉 두려움이 그들 모두에게 임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사람들은 그들이 섬긴 마귀의 간악함과 그들이 반대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목격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으며, 주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의 이름이 다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2. 다른 사단의 종들의 회심 내용(18,19)

(1) 악행의 죄를 범한 자들의 자복(18절) :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죄를 고백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바울에게 와서 과거의 악한 생활과 은밀하게 범했던 많은 죄를 고백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자백하였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으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는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죄를 뉘우칠 때에만 우리가 실족케 한 사람과 하나님께 대하여 솔직하게 죄를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2) 마술사들이 그들의 마술책을 소각함(19절) : 술수를 부렸던 수많은 사람들은 마술과 점술을 연구한 자들이었다. 이 마술사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 책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태워버렸다. 에베소는 이러한 마술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마술이 그토록 유행하던 장소에서 그러한 마술들을 반대하는 고귀한 증언이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과거에 범한 죄악에 대하여 의분을 나타냈던 것이다. 즐거움이 이제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되어버렸다. 이로써 그들은 두번 다시 그러한 마술을 부리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러한 굳은 결의의 표시로써 마술책들을 태워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미련을 남길 수 있는 유혹을 제거했다. 진정으로 죄를 참회한 자들은 가능한 한 그와 같은 유혹의 기회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 소지를 미연에 방지했다. 또한 모든 책들을 불태워버리는 것은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죄에서 돌이킨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 죄를 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그들은 모든 마술책을 태워버림으로써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경멸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이 소각된 책들의 가격은 은 오만으로 추산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액수였다. 그러나 그 책들이 악마의 서적이었으므로 그들은 그것들을 다시 판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악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이처럼 사악한 행위로부터 회심하게 된 기쁨을 공개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회심자들은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 책들을 불태워버렸다. 그들은 대로의 교차 지점에서 모두 함께 책들을 태워버리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가 그들에게 넘치도록 임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3. 복음전파의 진전과 그 성과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20)

이와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20절).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세력을 얻는 것을 보는 것은 축복된 광경이다. 또한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게 됨으로써 복음이 흥성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도 복된 일이다. 복음을 통하여 더욱 많은 변화가 이루어질 때, 복음은 성장하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가장 완고하게 반대한 자들이 복음에 복종하게 될때, 그 복음이 흥왕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음을 보게 된다. 극심한 타락이 근절되고 장기간 지속된 악습이 타파되며 쾌락과 탐욕과 유행을 추구하는 죄들이 사라지게 될 때, 복음은 강력한 힘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러한 복음을 통하여 계속 승리해 나아간다.

 

Ⅳ. 에베소의 소요 사건 19:21-41

(1) 바울은 그가 다른 곳으로 가려던 때에 이곳 에베소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된다.

1) 장소를 옮기려 했던 바울의 의도(21,22절) : 그는 하나님을 전파하기 위한 방대한 계획을 세웠으며, 가능한 한 세력권을 확장함으로써 복음을 널리 전하려 하였다.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지방의 교회들에 대한 방문 계획을 세웠다.(21절). 그는 그곳에 교회들을 설립했으며, 이제 그곳을 방문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기 생각으로건 자신의 모든 행동을 안내해 주는 성령의 지시에 따르건 간에 성령안에서 계획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이 그곳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가서 보고자 하였다. 다음에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의 형제들을 방문한 다음, 로마로 가서 그곳을 보겠다는 말은 구경하겠다는 표현으로 당시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의도가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보겠다는 것이었으므로 이 말은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둘러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로마의 선한 사람들은 바울이 보기 원했던 그 도시의 영광이었다. 또한 바울이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파송한 것은 그의 마게도냐 방문 계획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는 아시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그가 에베소에서 장기간 직면했던 곤경이 그의 목적을 관철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그가 그곳에 그처럼 오랫동안 머무르면서도 조용히 보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그는 곤경에 처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서신에서 '에베소의 맹수와 더불어 싸운'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15:32). 그리고 그는 에베소 근접한 아시아에서 당한 고통에 대해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후 1:8,9)는 표현을 쓰고 있다.

(3)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고난속에서 그는 부상을 입었다기 보다는 위협을 당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적지 않은 소동이 발생하였던 것이다(23절).

1) 이 사건은 아데미(로마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 신을 알테미스로 부른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아데미'로 표기-역주) 숭배자들을 이끌어냈다는 이유와 그 신전에서 종사한 은장색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비롯된 바울에 대한 커다란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첫째, 대표적인 불만자는 은장색이었던 데메드리오였다. 그의 업종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드는 일이었다(24절). 어떤 학자들은 이 은감실이 아데미의 초상이 새겨진 기념패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그것이 순금으로 만든 그 신전의 조상(彫像)으로서 그 안에는 아데미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에베소 신전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이 신전 또는 성소가 새겨진 소형 기념패를 구입하여 집에 가져갔다. 직공들과 장인들이 사람들의 미신을 이용하여 얼마나 많은 이익을 취했는가를 보라.

둘째, 데메드리오가 호소한 대상자들은 행정관들이 아니라 군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바울을 대적할 것을 충동하였다.

셋째, 데메드리오의 불평과 항의는 매우 노골적인 것이다. 그는 은감실을 만드는 것이 아데미 숭배자들에게 매우 필요하며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는 하나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업에 있는데(25절). 사람에게 있어서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직업을 선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그 복음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불법적인 직업과 그 직업들을 통해 획득한 엄청난 부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를 단념시킨 바울을 고소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26절). 기술자가 그것을 만들었으므로 그것은 신이 아니라는 말 이상 분명하고도 자명한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진리는 이교적이며 무신론적인 사상으로 간주되었고, 이러한 사상을 고수한 바울은 범인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그와 같은 결과는 비단 에베소에서 뿐만 아니라 거의 전(全)아시아 지방에서도 발생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데미 숭배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서도록 권면하였던 것이다. 인간의 법 테두리 안에서 세속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한, 아무리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것일망정 그것을 위해 다투려는 자들이 있다. 데메드리오는 그들의 장사가 몰락하게 될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만일 이 가르침이 신망을 얻게 된다면, 우리 모두는 파멸할 것이며 동시에 상점도 문을 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신에 대하여 강렬한 열정을 간직한 것처럼 가장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의 이 영업만 위험할 뿐 아니라'는 말을 덧붙인다. 여기에서 그의 궁극적 관심이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이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고 그의 위엄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가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그 여신의 명예가 추락되는 광경을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아데미 신이 그토록 숭배될 수 있었는가? 그 신전의 측면은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그것의 장엄함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또한 그 신전의 사면에는 엄청난 수효의 조상(彫像)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온 아시아와 천하가 그 여신을 숭배하였다.' 따라서 숭배의 기강 확립은 반드시 필요했으며 바울의 우상 숭배의 발언은 저지되어야 했던 것이다.

2) 이러한 불평으로 야기된 대중의 분노 :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음과 복음 전도자들에 대한 극심한 불만이 있었다. 저희가 이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28절). 그 기술자들은 그들의 사업과 우상이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발끈하였다.

둘째, 그들이 섬기는 여신의 명예에 대한 엄중한 경계가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28절). "바울로 하여금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신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대해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게 하라.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우리는 그 곁에서 살리라. 우리는 우리 고장의 종교를 지키고 또한 지켜야만 한다."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은 그들보다 더욱 열심을 품어야 할 것이다.

셋째, 그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혼란이 일어났다(29절). 이렇게 온 성이 요란하게 된 것은 거짓 종교에 대한 무절제한 열정의 자연적이고도 공통적인 결과였다.

3) 이러한 분노로 흥분해 있던 군중의 소요는 다음의 결과를 초래했다.

첫째, 그들은 바울의 몇몇 동료들을 잡아가지고 급히 연극장으로 들어갔다(29절). 그들에게 끌려간 자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였다. 가이오는 더베 사람이었다(행 20:4). 아리스다고는 행 20:4절에서도 언급되었으며 골 4:10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마게도냐에서 바울과 함께 왔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울의 동료였다는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그들은 끌려갔던 것이다.

둘째, 그들로부터 도피해 있었던 바울은 그를 대신하여 그의 친구들이 곤경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 가운데로 들어가기 원했다.' 이것은 관대한 정신의 증거로서 그는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했던 것이다.

셋째, 그의 친구들은 바울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간곡히 만류했다. 바울의 다른 친구들은 그가 스스로 위험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31절). 그들은 아시아의 관원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이었는지 혹은 바울을 진실하고 선한 자로 간주한 지지자들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바울의 친구들로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들보다는 오히려 선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위에 보다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친구의 입장이다. 그의 친구들은 바울에게 자기 보존의 법칙에 복종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이 사실은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한 위험을 피해야 함을 가르친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으나 생명을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넷째, 군중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32절).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와 같은 경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올 것이다. 따라서 무리의 수효는 외치는 자와 군중들로 인하여 눈덩이처럼 커졌으며 더욱 많이 불어나게 되었다.

다섯째, 유대인들은 이 폭동에 개입하고자 했을 것이다. 당시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폭동을 주동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폭동이 발발되었을 때, 그들은 그 폭동속에 개입할만한 충분한 악의를 품고 있었다.(33절). 그들은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이끌어내어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반대하는 유대인의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그에게 요구하였다. 그 요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데메드리오와 은장색들이 그들의 종교적인 적으로서 바울의 일행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제 당신은 우리 대신 나아가 바울이 우리의 종교적인 대적임을 말하라." 이것을 말하도록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앞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더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의 입장을 사람들에게 대변하도록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이 바울의 적이듯 이곳의 유대인 자신들도 바울의 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하였다. 알렉산더가 손짓한 것은 군중들로 하여금 바울을 반박하는 자신의 말을 경청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킬 목적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단행되는 곳에 유대인들이 없었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악행을 저지를 수 없다면 유대인들은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알렉산더가 본래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유대교로 전향한 배교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바울을 고소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바울에게 엄청난 악행을 범한 '구리장색 알렉산더'로서(딤후 4:14) '사탄에게 내어 준'자였다(딤전 1:20).

여섯째, 이 기회에 기소자들은 바울의 친구들에 대한 기소를 내버려 두고나서 그들의 여신을 찬양하는 함성을 질렀다(34절). 그들이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아데미 숭배를 반대한 적인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음과 같이 함성을 질렀다. "위대하신 에베소의 아데미여! 우리의 여신을 모독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든 유대인이든 간에 모두 필요 없다. 우리는 그 여신을 찬양할 것이다." 이 함성은 두 시간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그들에게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신이 아니다'라는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 충분히 논박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장 신성한 진리들이 종종 소음이나 아우성 또는 대중의 분노 따위의 하찮은 것들에 의해 비방되기도 한다.

(4) 서기장의 사려 깊은 경계에 의해 이 폭도들이 진압되고 해산되었다. 그 소요를 진정시키려는 그의 엄청난 노력 끝에 사태는 무마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들에게 화해의 연설을 행했다.

첫째, 그는 아데미 신이 에베소 사람들의 존경받는 여신임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춘다(35절). 그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그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 그렇게 고함을 지르거나 분투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에베소 도시가 위대한 여신 아데미 신상을 숭배하는 도시였음을 알고 있었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은 매우 호화스럽고 화려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 신전 안에 있는 아데미 신상은 신전보다 더 귀중히 여겨졌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신상을 쓰스(쥬피터)가 보낸 것으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그 어떤 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전했기 때문이었다. 아데미 신상은 기억조차 하기 힘든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으므로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상을 쓰스가 보낸 것으로 믿도록 선전했던 것이다. 서기장은 "이 도시가 아데미를 숭배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라고 매우 정중히 말한다. 또한 그는 "이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므로 여러분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둘째, 그는 그들의 종교가 요구하지 않는 모든 폭력과 소요 사태에 대하여 그들에게 경고한다.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홀히 아니하여야 하리라(36절). 사적이거나 공적인 일에 있어서 항상 일의 진행 상황을 관망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또한 항상 조급하고 경솔하게 행동을 취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서 생각할 줄 알며 사태를 진정시키고 수습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따라서 우리는 침묵을 지키고 절대로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만일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서둘러서 결정한다면, 생각할 여유가 있을 때 후회할 것이다.

셋째, 그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게 가해졌던 오명을 씻어주었다(27절). 그 서기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이 사람들을 여기로 데려왔다. 너희는 그들의 범죄 사실을 무엇으로 입증하는가? 그들은 교회에 침입한 도둑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데미 신전이나 그곳의 보물을 파손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너희의 여신에 대한 신성모독자들도 아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비록 마음에 맞지 않는다해서 너희에게 지독한 욕설을 퍼붓지도 아니한 그들을 이처럼 폭력으로 학대하려느냐?" 그들이 변론과 논증으로 모든 힘을 다하여 대항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우상이었다. 만일 그들이 마음 속에 있는 우상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신전에 있는 우상은 자연히 파괴될 수 있을 것이다. 우상 숭배적인 교회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그들에 대한 지나친 폭언을 삼가면서 온순한 가르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며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무절제한 열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서기장은 그들로 하여금 법률에 정해진 정식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공안이 잘 유지되고 공의가 실천되며 모든 잘못이 시정될 수 있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이 나라도 어느 다른 백성들처럼 행복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사적인 침해를 받았다면 그들은 그 문제를 재판관들과 법정에 호소해야 할 것이다. 만일 데메드리오와 은장색 업자들이 억울한 손해를 입었다면, 그들은 법적 절차를 밟아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해야 했을 것이다. 법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대리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대리자들의 임무는 양편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이나 대중의 마음에 들도록 판결하는 경우가 없어져야 한다. 만일 불평이 대중의 억울함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폭도들의 소요 사태를 통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대표자 회의를 통하여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39절). '만일 그 외의 무엇을 원하거든 민회에서 정식으로 결단할지라'는 말은 당국자들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모색하라는 것이었다. 개인들은 공적인 문제에 주제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서기장은 그들이 이러한 폭동으로 인하여 빠져들게 될 위험성에 관하여 인식시킨다(40절). "오늘 일어난 이 소요 사태가 문제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해 보고할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미 정도를 벗어난 것이므로 그 사건을 더이상 진전시키지 말도록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보다 인간의 심판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소요들을 하늘과 땅의 심판자에게 즉시 맡겨야 한다는 이유를 생각함으로써 우리의 무절제한 욕구와 열정의 혼란 사태들을 진정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퍽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여섯째, 서기장은 그들의 폭동적인 집회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같이 설명하고 조속히 해산할 것을 충고한다.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41절). 여기서 공공의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가 역사하신다는 사실과 그가 인간의 영혼들을 무한한 권능으로 지배하신다는 사실을 주시하라. 따라서 이 세상의 질서가 어느 정도 유지됨으로써 인간은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바다 물고기들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막상 폭동이 발발하면 폭도들은 다스리거나 길들일 수 없는 야생동물처럼 변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를 항상 그와 같은 포악한 상황속에 처하지 않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할 근거를 우리는 찾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는가를 살펴 보라. 이 서기장은 바울과 전혀 친분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분별력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던 것이다.

 

# 해설

에베소에서의 전도 사역 ( 19 )

본장에서는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살펴보게 됩니다.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불완전한 믿음을 온전케 하며, 제자들을 따로 세워 말씀으로 가르치며 훈련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 갔음을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험난한 난관속에서 지속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바울을 붙드셨고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1. 에베소에 돌아온 바울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은 안디옥을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을 거쳐 가면서 제자들을 굳게 했습니다.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왔을 때 아볼로와 그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성령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과 그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의 뜻과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안수하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므로 그들은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a.약속된 성령(요14:16)

2) 온전한 그리스도인

바울의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초기 기독교회 내에서 발생한 변칙적인 것을 교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만 받은 에베소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아볼로가 구약 성경에는 능통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를 좀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줌으로써 온전한 그리스도인들로 세우기에 힘썼던 것입니다.

a.성령 세례(고전12:13)

b.말씀 선포(딤후4:2)

 

2. 예수의 이름

1) 두란노 서원

바울은 오랜기간 동안 에베소에서 일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에베소에 이른 바울은 이제 열심히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시 회당에서 복음을 강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믿지 아니하고 그 도를 비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약 2년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의 복음 전도 방법은 다른 도시에서의 것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바울은 먼저 회당에서 가르치고 유대인들이 그를 배척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당시 바울을 돕는 사람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고 디모데와 에라스도가 함께 있었습니다.

a.불신앙(마13:58)

b.하나님 나라의 전파(막1:14)

2)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 몇가지 중요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중에 바울을 통해 나타난 것은 병고치는 이적이었습니다. 이때에는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돌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닿은 병든 사람의 병과 악귀가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희한한 능력이었습니다.

a.악귀가 떠남(막16:17)

3) 유대인 마술사들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이적 행한 것을 모방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바울을 모방하다가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악령은 그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이김으로 그들이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많은 마술사들이 죄를 고백하고 마술을 버리고 그들의 책을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더많은 사람이 주께 나아왔고 큰 세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a.귀신들의 분별력(막1:24)

b.귀신들의 증거(눅4:41)

 

3. 연극장에서의 소동

1)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데메드리오

앞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바울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에 미리 보낸 후에 에베소에서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것은 은장색 데메드리오로 인한 위기였습니다.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신당을 은으로 만들어 많은 수입을 올렸는데 바울의 복음전파로 사람들이 우상을 사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에 데메드리오는 같은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 난동을 부렸습니다. 아데미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먼 옛날부터 숭배해 오던 모신에게 에베소인들이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더욱이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 신전은 오래된 아데미의 상이 새겨져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거대한 건물이었습니다. 연극장에 모인 무리들은 수입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대중들에게까지 번져 수많은 군중이 시위하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동행하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a.우상의 제작(롬1:23)

b.인간의 분노(약1:20)

2) 서기장의 소요 진압

이 거대한 야외 연극장은 2만 4천명 정도를 수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는 시민들의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군중들의 모임은 정규적인 모임이 아니라 로마의 처벌을 초래할만한 불법 집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시의 서기장이 우려하면서 군중들을 진정시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군중들은 그곳에 왜 모였는지도 모르면서 두 시간 동안이나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 관원들이 연극장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말림으로 이 소동으로 인해 큰 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당시 복음의 위력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잘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a.지혜로운 모사(행5:35)

b.경솔함에 대한 경책(전7:9)

 

결론

복음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희한할 정도의 큰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였기에 후에 힘있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을 모방하려 했던 마술사들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를 보이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경건은 모양이 아닌 능력임을 분명히 교훈하고 있는 바울의 사역을 분명히 엿볼 수 있습니다.

 

# 핵심

19:1-20

3차 전도 여행의 중심지인 에베소에서 행한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에 관한 기사이다.

 

# 묵상

에베소의 제자들과 바울 ( 19:2, 3 )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세례는 이전의 죄를 씻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생활을 하겠다는 뜻을 서약하는 의미로, 온 생애를 드려 주님께 헌신할 것을 결단하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받았던 요한의 세례는 성령 세례를 예비하는 것일 뿐 구원을 이루기에는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안수와 성령 강림 ( 19:6 )

바울이 안수했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은사를 주시도록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 기적은 에베소에 복음이 잘 전파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로써 에베소의 제자는 전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의 바울 ( 19:8, 9 )

에베소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비방했기 때문에 바울은 장소를 옮겨 말씀을 강론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두란노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완악함에 물들지 않도록 제자들을 따로 세웠으며 두란노 서원으로 옮김으로써 오히려 더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된 계기 ( 19:11-20 )

당시 에베소에서 바울이 악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자 여러 마술사들이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그러한 행위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들가운데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악귀들린 사람이 예수님과 바울은 인정하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의 마술을 제어하고 이김으로써, 에베소 사람 사이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은 마술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은 오만이나되는 가치의 책을 모아서 불살랐습니다.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염려 ( 19:24-27 )

그가 염려한 것은 자기들의 직업이 천해지는 것과 아데미의 전각이 경홀히 여김을 받게 되고 그의 위엄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겉으로는 아데미를 섬기는 열정으로 바울을 대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데미가 우상으로 여겨져 버림을 받으면 자신의 돈벌이에 지장이 있을까봐 염려한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 사람들이 주로 섬기던 신은 아데미입니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아데미는 달의 신입니다. 이는 그 모습이 유방을 많이 가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생식을 주관하는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많은 여행자들이 원근 각지에서 몰려듭니다.

서기장 ( 19:35 )

에베소의 소동하는 무리들을 진정시킨 사람은 서기장이었습니다. 서기장은 시의 집회를 관리하고 그 결과를 총독에게 보고하는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방의 서기장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하여 변호하고 있는 것을 보아 우리는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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