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열왕기하 ①
불완전한 왕들의 역사
열왕기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과 선한 왕의 역사가 반복된다. 대부분이 아버지의 악행을 답습하는 악한 왕이다. 어떤 왕은 산당을 없애지 못하고 어떤 왕은 바알을 숭배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어떤 왕은 하나님을 잘 의지하다가 나중에 이방의 힘을 의지하기도 한다. 이 땅의 불완전한 왕들은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왕을 사모하게 한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열왕기하 한눈에 보기
본문 |
1:1~13:21 |
13:22~17:41 |
18:1~20:21 |
21:1~2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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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8 |
2:19~8:6 |
8:7~13:21 |
13:22~16:20 |
17:1~41 |
18:1~19:37 |
20:1~21 |
21:1~26 |
22:1~23:30 |
23:31~25:26 |
25:2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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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
엘리야의 승천 |
엘리사의 기적 |
엘리사와 왕들 |
전쟁하는 나라들 |
이스라엘 멸망 |
살아남는 유다 |
히스기야의 실책 |
므낫세 |
요시야 |
유다 멸망 |
여호야긴의 회복 |
주제 |
엘리사 |
이스라엘 멸망 |
히스기야 |
유다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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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상. 열왕기 저자는 신명기에 매우 능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왕들의 역대지략과 선지자들의 금 등 많은 사료를 조사해 열왕기를 기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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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기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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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
열왕기 후반부는 멸망으로 치닫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남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한다. 하나님은 엘리야에 이어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호세아 등의 선지자를 보내 계속 경고하신다. 하지만 두 왕조의 멸망은 막을 수 없었다. 열왕기 마지막에 남 유다가 간신히 살아남았음이 암시된다.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 원년(주전 562년)에 사로잡혀 간 지 37년 된 유다 왕 여호야긴이 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왕하 25:27~30). 여전히 포로 신분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의 은혜를 입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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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전기 예언서, 역사서 |
엘리야의 승천(1:1~2:18)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난간에 떨어져 병이 들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자을 보내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묻게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대신 우상을 의지한 것이다. 엘리야는 왕이 보내는 사자들을 만나 왕이 죽을 것이라 예언한다. 왕은 엘리야를 잡아 오도록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보내지만, 엘리야는 두 번이나 불을 내려 그들을 살라 버린다.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이 오자 엘리야는 그들과 함께 왕에게 가서 직접 왕의 죽음을 선포한다. 아들 없이 죽은 아하시야에 이어 아합의 다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다. 이 사역을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하나님께 올라간다. 엘리야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은 엘리사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게 임한 능력의 갑절을 달라고 청한다.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사는 능력을 받고 돌아와 기적을 행한다.
엘리사의 기적(2:19~8:6)
엘리사는 아합 왕 때 부름받아 50여 년에 걸쳐 이스라엘 여섯 왕의 치세 동안 활동한다. 엘리사는 많은 이적을 행했다. 곤경에 처한 과부를 돕기 위해 기름을 공급했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기도 했으며, 나병(한센병) 환자인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고쳤다. 쓴 물을 고치고, 독이 든 국을 해독하고,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100명을 먹이기도 했다. 제자가 물에 빠뜨린 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처럼 개인적인 일에도 개입했지만, 요아스 왕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왕하 13:14)이라 했듯이 국가 대사에 관여하며 모압과 아람 군대를 격파하고 국제 정제를 좌우하기도 했다. 번번이 이스라엘 정복에 실패한 아람 왕은 첩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다가 엘리사의 능력을 알게 된다. 엘리사를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만, 여호와의 군대가 호위하는 선지자를 당할 수 없었다.
선지자를 조롱하는 벧엘의 아이들(2:23~25)
선지자와 관련된 일 중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종종 있다. 이사야는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정복되고 수치를 당할 징조로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을 지냈다(사 20:1~6).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임할 멸망의 징표로서 결혼하지도, 자녀를 낳지도 않았다(렘 16:2). 그런데 선지자의 행위에 자기희생적 면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엘리사는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해 42명이나 암곰 둘에게 찢겨 죽게 했다. 지나친 보복이 아닌지 의아한 대목이다. 우선 사건이 일어난 곳이 벧엘임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벧엘은 우상 숭배의 본진이었다. 그곳에서 자란 '작은 아이들'(23절, '네아림 크타님', 청소년을 뜻함)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도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요단 강에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우습게 여기고,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게도 "어디 한번 올라가 봐라."하며 조롱했던 것이다. 이때 엘리사의 외양이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사의 대머리는 여호와의 징계로 여겨지던 나병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비난하면 안 되었다.
이스라엘 vs 모압(3:1~27)
양치기 출신 모압 왕 메사는 아합이 죽은 후 이스라엘을 배신한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유다 및 에돔과 동맹을 맺고 모압을 치기 위해 올라간다. 사실 유다가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과 연합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에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은 외면했지만 유다 왕을 위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모압을 그들 손에 넘겨주신다는 것이다. 모압 왕 메사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기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다.
엘리사의 기적 사역(4:1~44)
엘리야의 사역 중심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적 기능이었다면, 엘리사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는 목회적 기능이 강조되었다. 빚진 과부를 위해 계속 채워진 기름병 기적, 수넴 여인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기적, 독이 든 국물이 가루를 넣어 해독한 기적,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100명을 먹인 기적 등은 경건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손길이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스라엘 vs 아람(5:1~7:20)
아람과 관련된 두 사건은 나병 환자와 연관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엘리사가 나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고쳐 준 일이다. 나아만 장군은 치유되고, 탐욕을 부린 게하시가 대신 나병을 얻는다. 두 번째 사건은 아람이 사마리아를 포위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물러간 일이다. 포위된 이스라엘 백성은 식량이 바닥나자 서로 자녀를 잡아먹는 절망적 상황에까지 이른다. 왕은 이 일이 엘리사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엘리사를 죽이려 한다. 네 명의 나병 환자는 생존을 위해 아람에 항복하려다가 아람 병사들이 진영을 버리고 도망한 것을 먼저 알고는 이 아름다운 소식의 전달자들이 된다.
수넴 여인(8:1~6)
수넴 여인은 앞서 4장에 등장한 바 있다. 그녀는 엘리사의 배려로 기근을 피해 블레셋 지방으로 이주했다가 7년 만에 돌아온다. 그런데 소유권에 문제가 생겼고, 이를 호소하러 왕에게 나아간다. 때마침 게하시가 왕 앞에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게하시의 보증 덕분에 집과 밭을 도로 찾는다. 우연한 일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정확한 시간에 일하시는 분이다.
아람 왕 벤하닷과 하사엘,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8:7~29)
분열왕국
벤하닷과 하사엘(8:7~15)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자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 자신이 병에서 살 수 있을지 묻는다. 엘리사는 하사엘이 장차 왕이 될 것임을 알린다. 하사엘은 죄로 가득 찬 본 성에 따라 자기 손으로 왕을 시해하고 아람 왕이 된다.
여호람과 아하시야(8:16~29)
모압과 아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돔은 약소국이었다. 그런데 유다는 그런 에돔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왕이 되었다. 여호사밧이 아팠거나 왕권이 확고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호람의 8년 통치가 끝나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다. 하지만 아하시야는 고작 1년을 통치하고 예후에게 살해된다. 열왕기 저자는 여호람의 아내이자 아하시야의 어머니가 아합의 딸 아달랴인 점을 상기시키며 이런 집안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음을 보여 준다.
아합 왕 때부터 길르앗 라못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격전지였다. 유다는 동맹을 맺은 이스라엘 편에서 싸웠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 당하고 치료를 위해 별궁이 있는 이스르엘로 돌아간다. 패전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유다 왕 아하시야도 병문안차 이스르엘을 방문한다. 친정을 염려한 어머니 아달랴의 성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반정을 위해 조성된 환경이었다.
예후의 반정과 지리적 특징(9:1~10:36)
길르앗 라못(9:1~37)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선포하신 대로 아합의 가문이 모두 멸망한다. 이 일을 맡아 행한 사람은 군대 장관 예후였다. 엘리사는 제자 중 하나를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 아람과 대치하고 있는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아합의 집을 치라 전하게 한다. 다른 장관들 눈에 선지자의 제자는 그저 '미친 자'로 보였지만, 예후는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셨음을 믿고, 신속히 병거를 몰아 아합의 아들 요람이 요양하고 있는 이스르엘로 향한다.
이스르엘(9:21~37)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는 병거를 타고 가 나봇의 토지에서 예후를 맞는다. 요람은 나봇의 토지에서 죽고, 아하시야는 예루살렘을 향해 도망치다가 이블르암 근처에서 공격을 받는다. 예후가 두 왕을 처단하고 이스르엘 궁에 돌아오는 것을 이세벨이 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예후의 명을 받은 내시가 이세벨을 창밖으로 내던지니 엘리야가 전한 말대로 이루어진다.
사마리아(10:1~11)
이제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이 있는 사마리아 성으로 향한다. 먼저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아합의 아들 중 하나를 왕으로 세우고 맞서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후의 의도를 파악하고 서둘러 충성을 맹세한다. 아합의 아들들 70명을 죽여 그 머리를 예후에게 보낸 것이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아합에 속한 모든 자가 죽었다.
유다(10:12~14)
아합과 동맹한 유다도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아하시야의 형제 42명은 이스라엘의 왕자들에게 문안하러 가다 예후에게 모조리 살해된다.
바알 신당(10:15~36)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손을 잡는다. 여호나답은 반바알 운동의 지도자로서, 그의 자손은 훗날 레갑 사람들로 불린다(렘 35:6~10). 예후의 마지막 개혁 작업은 바알 선지자들을 모조리 처단하는 것이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을 제사에 초대하기 위해 자신이 바알 숭배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처럼 꾸민다.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한 명도 빠짐없이 신전에 몰려 들었고 근위병 80명이 이들을 모두 죽이고 바알 목상들을 불사른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아합 집을 멸망시킨 예후는 4대에 걸쳐 왕권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않는다. 이때부터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땅이 잘려 나가기 시작한다.
아달랴의 유다 통치(11:1~21)
아합의 딸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남은 왕의 후손을 죽인다. 예후가 죽인 왕자 42명 외에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왕의 자손을 죽이고, 다윗 집에만 허락된 유다의 왕권을 찬탈하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 하지만 남은 자가 있었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유모와 함께 살아남았다. 요아스는 아달랴가 통치하는 6년 동안 성전에서 숨어 지낸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와 남편인 대제사장 여호야다였다. 아합과 이세벨이 그랬던 것처럼 우상 숭배에 공을 들이던 아달랴로서는 여호와의 성전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6년 후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성전에서 아달랴를 대적하는 반정을 일으키고, 어린 요아스를 왕위에 앉힌다.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삼을 때 율법책을 준다. 아달랴는 백성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간다. 백성은 아달랴는 물론 바알의 제사장 맛단까지 처형한다.
유다의 정통성을 회복한 요아스(12:1~21)
성전에서 자란 요아스 왕은 성전 수리에 공을 들인다. 요아스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지만 나라에는 외우내환이 닥친다. 의지하던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우상 숭배에 빠져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한다(대하 24:17~19). 나라는 다시 아람의 공격을 받고, 아람 왕 하사엘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아스는 아버지 아하시야처럼 살해된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왕조(왕하 1~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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