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열왕기하 ②

멸망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는 하나님이 진노를 멈추실 수 없을 만큼 가득 찼다. 하나님은 심판을 경고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과 말씀을 버린 민족은 망하고 백성은 사로잡혀 본토를 떠난다.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도 하나님은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소망의 빛을 주신다. 37년간의 감옥살이에서 해방된 여호야긴 왕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표한다.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아람(13:1~13, 22~23)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가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보내 심판하신다. 하지만 학대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간구에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 주신다(13:5). 이 구원자는 우선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왕일 가능성이 있다. 요아스가 벤하닷을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하기 때문이다(13:25). 하지만 아람을 괴롭힌 더 큰 세력, 곧 앗수르의 왕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죄가 관영한 이방을 심판하시기 위해 또 다른 이방을 사용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이 온 세계의 왕이시기 때문이다(사 45장 참조).

 

엘리사의 죽음(13:14~21, 24~25)

열왕기하의 중심인물인 엘리사 선지자가 죽음을 맞는다. 엘리사는 죽음 후에도 능력을 과시한다.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진 시체가 그의 뼈에 닿자 회생해 일어선 것이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 쳐서 이기고 성읍들을 회복한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14:1~22)

유다 왕 가운데 반역으로 죽임을 당한 부자(父子)가 있다. 요아스는 밀로 궁에서 신복들 손에 죽고, 그의 아들 아마샤는 예루살렘에서 반역을 일으킨 무리에게 쫓기다가 라기스에서 죽는다. 아마샤는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왕 요아스를 도발했다가 벧세메스에서 크게 패하고 사로잡혀 예루살렘에 돌아온다. 이후 15년을 더 살지만 결국 반역자에게 살해된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14:23~29)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을 41년간 통치한 이스라엘 최장수 왕이다. 게다가 그는 아밋대의 아들인 요나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 즉 레바논에서 사해까지 영토를 확대한다(14:25). 이런 왕에 대해 열왕기는 고작 일곱 절로 진술을 마친다. 성경의 관심은 세상적 업적이나 성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는 번영한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이스라엘 부패상을 통렬한 어조로 비판한 바 있다.

 

이스라엘을 통치한 반역의 왕들(15:1~31)

유다 왕 아사랴(웃시야) 통치 52년 동안 이스라엘 왕조에는 수많은 반역자와 구데타가 일어난다. 스가랴를 반역한 살룹, 살룸을 죽인 므나헴,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죽인 베가, 베가를 죽인 호세아 등이다. 반역의 배후에는 아람과 앗수르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므나헴은 자신의 반역을 지지하지 않은 딥사(15:16; 수 17:7~8, 므낫세 지파의 땅인 답부아)를 초토화하면서 부족한 정통성을 무마하기 위해 앗수르에게 은 1,000달란트를 주고 지원을 받는다. 이 앗수르 왕이 '불'이라고도 불리는 디글랏 빌레셀 3세다(주전 745~727년). 딥사와 친족인 길르앗 사람들은 베가를 도와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죽이고 반역한다(15:25). 이때 브가히야와 함께 죽은 이들은 왕을 지키는 친위대인 듯하다.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된다.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15:32~16:20)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군대가 유다를 친 것은 요담(15:37)과 아하스 왕(16:5)의 왕권 교체기였을 것이다. 당시는 요즘과 달리 군사를 동원해 달려오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유다 왕 아하스는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할 정도로 악독한 우상 숭배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앗수르 왕에게 공물을 바치고 아람과 이스라엘의 포위에서 벗어난다. 또 앗수르 왕을 영접하기 위해 다메섹에 갔다가 앗수르의 제단 구조에 감명을 받고는 그것을 그려 와 하나님의 성전을 앗수르 식으로 개조한다.

 

이스라엘의 멸망(17:1~41)

앗수르는 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아에게 무거운 조공을 요구한다. 호세아는 앗수르를 버리고 애굽을 택한다. 애굽 왕이 '소'(So)라고 소개되는데, 이 이름은 지명이다. 사이스(Sais)라고도 하는 소(So) 지역을 다스린 바로는 24왕조의 테프나크트(Tefnakht)로 알려져 있다(17:4). 호세아의 배신에 분노한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는 3년 동안 이스라엘을 침공해 전 국토를 파괴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로 끌려가고, 이방인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정착했다.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이 가치 없는 우상들을 섬기고 악한 왕들을 선택하느라 하나님을 등졌기에 결국 망했다고 요약한다(17:35~41).

 

 

 

 

살아남은 유다(18:1~19:37)

유다의 희망은 아버지 아하스와는 전혀 다른 아들 히스기야였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18:5).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배반하자(18:7), 앗수르 왕 산헤립이 전쟁에 나선다.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크게 세 부분이다. 히스기야가 항복하고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18:13~16), 랍사게의 육성 도발(18:17~19:7), 편지를 통한 산헤립의 두 번째 위협(19:8~37)이다. 첫번째 본문이 종합적 요약이고, 둘째와 셋째 본문은 전쟁의 세부 사항으로 보인다. 유다는 산헤립에게 항복했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지킨다. 서둘러 돌아간 산헤립은 자식에게 암살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히스기야의 회복과 실책(20:1~21)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는 극적으로 살아나지만,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보낸 사자들에게 왕궁의 모든 것을 내보인다(20:12~13). 약 140년 후 앗수르와 유다를 멸망시킬 강대국 바벨론은 당시에는 앗수르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가 자랑한 유다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왕의 아들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환관'으로 번역한 단어는 아카드어(고대 메소포타미아어)에서 온 '사리스'로, 그 우두머리는 왕의 최측근인 랍사리스다(18:17). 우리말은 이를 환관장으로 옮긴다(단 1:3). 훗날 다니엘과 세 친구가 이 지위에 오른다.

 

므낫세의 죄(21:1~26)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되었고, 아버지와 달리 모든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해 유다 멸망의 주범이 된다. 특히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다. 그런데도 므낫세는 55년이나 왕위에 머물며 남북 왕조를 통틀어 최장수 왕이 되었고 심지어 제명에 죽는 복까지 누린다. 므낫세의 태평성대(?)는 앗수르가 가신국들을 압도하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과 관련이 깊다. 앗수르의 왕 앗수르바니팔은 동쪽의 엘람과 바벨론에서부터 서쪽의 아람과 유다, 나아가 애굽까지 제압했다. 앗수르가 쇠약해진 것은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다. 유다 궁중에도 세력 다툼이 전개되면서 반앗수르 세력이 일어나 아몬 왕을 죽인다. 하지만 반역은 '그 국민'(암 하아레츠)에게 진압되고(21:24) 유다의 마지막 전성기 요시야 시대가 열린다.

 

요시야의 개혁(22:1~23:37)

8세에 왕이 된 요시야는 31년간 유다를 다스린다. 그는 재위 18년에 성전을 보수하게 하는데,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등이 왕을 돕는다. 이때 하나님의 율법책이 발견되는데, 그 내용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명기와 흡사하다고 본다. 율법책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마음을 다해 모세의 율법을 따르기로 하고 유다 전역에 걸쳐 개혁에 돌입한다. 이방 신전을 부수고 유월절을 지키고 벧엘의 제단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여호와를 따른 왕은 요시야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23:25). 하지만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당시 요시야를 도와 여호와께 돌이키라고 선포한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응답은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렘 11:14)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 대한 노여움을 풀지 않으신 것이다. 한편 경건함과 개혁 의지는 요시야에게 있었지만 군사력이 미약했다. 결국 요시야는 애굽 왕 바로 느고의 길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죽고 만다. 바로 느고는 차기 왕으로 세워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가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운다.

 

유다의 멸망(24:1~25:26)

주전 612년 앗수르의 니느웨가 멸망한다. 신흥 바벨론은 주전 605년 갈그미스에서 애굽을 꺾는다. 애굽 왕은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했고 애굽 강에서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의 영토는 바벨론이 차지한다(24:7). 여호야김(엘리아김)도 바벨론을 섬겼지만 3년 후 반역을 일으키고, 바벨론은 여호야김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이때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유다는 바벨론에게 항복한다. 결국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사람은 석 달간 통치한 여호야긴이었다. 유다 백성과 지도자는 물론, 성전과 왕궁의 보물까지 전부 바벨론에 강탈당하고 오직 비천한 자만 그 땅에 남는다. 마지막 왕인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맛다니야)는 이름뿐인 나라를 지탱하라고 바벨론이 세운 허수아비 왕이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최선임을 알려 주셨지만, 시드기야는 명분을 좇아 바벨론을 배신한다. 바벨론은 9년 만에 돌아와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결국 성은 함락되고, 도망치다 붙잡힌 시드기야는 자기 아들들이 처형되는 장면을 보고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은 최후를 맞는다. 이때를 열왕기는 시드기야 제11년, 느부갓네살 제19년 아브월(다섯 번째 달, 양력으로 7~8월) 7일이라 하고(왕하 25:8), 예레미야는 같은 해 탐무즈월(네 번째 달, 양력으로 6~7월) 9일이라고 한다(렘 39:2). 예레미야가 말한 날짜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침투한 날로(왕하 25:3), 당시 왕궁 시위대 감옥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멸망의 의미를 생생하게 각인시킨 날이다. 열왕기가 기록한 날짜는 느부사라단, 즉 바벨론 왕의 사절단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공식적으로 성을 접수한 날이다. 성전이 무너지고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간 후, 바벨론은 사반의 손자 그달리야에게 유다를 관할하게 한다(25:22). 하지만 애굽을 추종하는 자들이 일어나 그달리야를 살해한다.

 

여호야긴의 회복(25:27~30)

북 이스라엘처럼 남 유다도 철저히 파괴된다. 성전은 폐허가 되고, 예루살렘은 잿더미가 된다. 약속의 땅에 대한 대망은 이렇게 끝난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내던 백성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한다. 주전 562년, 바벨론으로 잡혀 온 지 37년 만에 여호야긴은 옥에서 나와 일평생 바벨론의 보살핌을 받는다. 머지않아 하나님이 바벨론에 옮겨 놓으신 자들도 고토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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