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따르는 신실한 종

 

[예레미야 40장 1절~6절]
1절 -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절 -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절 -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절 -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절 -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절 -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레미야는 구약의 많은 예언자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예언 사역을 했던 예언자로 가장 어둡고 처절했던 고난의 시기에 남 유다의 몰락을 전후하여 사역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되고 애굽이 팔레스타인의 종주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남유다 16대 요시야왕 때 예언 활동을 시작했고(BC 627년), 바벨론에게 침공을 받던 시절(BC 605년 이후)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시기에 근동의 패권은 바벨론에게 있었습니다. 신흥 강국 바벨론은 BC 605년 앗수르를 패퇴시키고 그들이 점령했던 모든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바벨론은 서방 정복 정책을 이어나갔는데, 그로 인해 BC 605년, 598년 그리고 587년 3차에 걸쳐 남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시드기야왕을 포함한 남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바벨론에 맞서 싸우는 정책을 고집하다가 결국 BC 586년에 패망합니다. 패망하기 전부터 많은 유다인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 같은 시기에 사역한 예레미야는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 아닌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말기부터 멸망 이후 시대까지 사역했습니다. 그 어떤 예언자보다 전쟁의 화염 속에서 성과 성전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수많은 백성이 죽어 가는 고통의 절규를 들으면서 예언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 39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으며, 40~43장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상황을 전합니다. 이어지는 44~45장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관찰과 묵상]
1. 포로로 잡혀가던 예레미야는 어디서 풀려나나요? 바벨론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유다의 패망 이유를 무엇이라 말하나요?(1~3절)
예레미야는 라마에서 풀러납니다. 느부사라단은 유다 백성이 죄를 범하니 하나님이 재난을 선포하셨고, 이제 말씀대로 이루셨다고 말합니다.
BC 605년 신흥 강국 바벨론이 앗수르를 패망시키고 서방 정복 전쟁을 일으킵니다.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에 정복당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몰락 과정을 눈으로 보며 탄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바벨론 세력이 급부상하는 과정과 이와 반대로 유다는 몰락해 가는 모습을 생생히 목도하며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예루살렘 멸망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군대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시드기야왕과 백성은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예루살렘 멸망 당시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 사이에 섞여 포로로 붙잡혀 끌려가는 와중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입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죄를 범했기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약적 관점에서 말합니다. 이방인까지도 예루살렘 멸망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과 백성만 알지 못했습니다.
적용과 나눔
내가 고난 당하는 이유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누군가 일깨워 준 일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유다는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결국 패망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에 대한 응보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사실을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통해 듣습니다. 나라가 패망한 것도 참을 수 없지만,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을 통해 이런 말을 듣는 일은 더 참담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듯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상을 따른 결과는 곧 패망입니다. 지나간 역사에서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에게 요구되었던 말씀 순종의 의무 또한 지금 성도에게도 요구됩니다. 물론 당시 유다 백성이 좇은 우상은 지금 우리 시대의 그것과 다릅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결국 재앙을 겪게 하는 이 시대의 우상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며,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고난이나 환난 근심 등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 성경을 기준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습관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2.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어떤 제안을 하나요? 예레미야는 어떤 결정을 내리나요?(4~6절)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바벨론으로 가라, 선하게 여기는 곳으로 자유롭게 가라, 그다랴에게로 가라.’ 예레미야는 세 번째 제안을 택해 그다랴에게로 갑니다.
예레미야가 많은 백성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중 풀려납니다. 바벨론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합니다. 첫째,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간다면 후대받을 것입니다. 둘째, 예레미야가 좋게 여기는 곳으로 자유롭게 가는 것입니다. 셋째, 바벨론 왕이 유다 총독으로 세운 그다랴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도피하지도, 바벨론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다랴에게로 가서 남은 백성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어 갔습니다. 그다랴 총독이 관할하는 미스바로 각지로 흩어졌던 유다 백성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다랴는 미스바에서 다시 유다의 회복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거나 안전해 보이는 곳이 아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갑니다. 내가 원하는 곳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 자리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무엇이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면 선대해 주겠다는 느부사라단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또 가고 싶은 곳으로 편하게 가라는 권유도 거절합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유다 백성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바벨론으로 갔더라면 친(親)바벨론주의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좋게 여기는 대로 행동했더라면 도피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한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며 유다 백성에게로 가 그들과 함께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단순히 전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전한 말씀에 책임을 다하며, 자신의 삶을 유다 백성과 같이했습니다. 자신이 전한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길에 고통이 따를지라도 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분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말씀이 가라는 곳으로 갑니다.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시고 인도하십니다.

 

* 예레미야는 유다 역사 마지막, 가장 어둡고 참담한 시기에 사역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백성이 대적에게 죽임 당하고 예루살렘성이 불탐으로 인해 애통하면서도 자신이 맡은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그는 바벨론 사령관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동족에게 말씀을 전하는 자리로 돌아갑니다. 안락을 추구하기보다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사명의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신실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불순종의 비참한 결과를 마음에 새기고, 믿지 않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께 경책받기 전에 죄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저 자신의 편의와 유익이 아닌, 사명의 자리를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