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엘리후의 신실함 33:1-7
엘리후는 욥을 논박하는 세친구와 동조하지는 않았다. 전장에서 이미 그는 친구들의 행위를 싫어한다고 밝혔고, 그들의 가정을 부인했으며 욥을 대하는 그들의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었다. "내가 새롭게 말하노니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그는 신중하게 또 의도적으로 '입을 열었다'(2절). "나의 생각과 확신의 산물인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리라." 그가 말하는 것은 쉬운 것이었지 이해하기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었다. 내 입술이 아는바를 진실히 말하리라(3절). 엘리후는 그보다 나이많은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의 나이어림을 경멸치않기를 또한 소망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한말에 대한 욥의 반박을 기꺼이 들으려하였다(5절). 네가 할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앞에 진술하라. 욥은 때때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유롭게 훈계할수 있고, 중재자로 말할수 있는 사람을 소망하였었다. 엘리후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6절). 나와 네가 하나님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나도 너와 일반이라." 욥은 하나님이 그를 심하게 압박해서는 안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강변하였었다(10: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나이다." 엘리후는 "나도 너와같이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이들은 이를 "같은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람을 옳게 설득하려면 위엄으로나 권세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써, 또한 정당한 주장으로 하여야한다.
Ⅱ. 욥의 하나님에 대한 교만을 책함 33:8-13
(1) 엘리후는 특히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때에 하나님의 의와 선에 관하여 표현하였던 몇가지 내용에 대하여 욥을 정죄하고 있다. "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또한 모든 친구들이 듣는데 말하였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말을 들을때는 언제나 그것을 밝혀 항의하여야 한다. 우리가 듣기에 틀린소리를 들으면 이를 비난하고자 하여야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고발자앞에서 '나의 증인'이니라 하셨기 때문이다. 욥은 스스로 무죄하다 하였다(9절).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욥은 글자 그대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득죄하였다는 것, 하나님앞에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였었다. 하지만 그는 또하나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줄을 아시나이다'(10:7). '내가 내 의를 굳게 잡았나이다'(27:6). 엘리후는 욥을 정죄함에 있어 과장하여 말하고 있다. 즉 욥 자신은 단지 "커다란 죄악에 대해 의로우며 결백하다"고 말한데 대해 엘리후는 욥이 "모든 죄에 대해 깨끗하여 죄를 범치않았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길에서 벗어남을 엄격하게 감시하는 분으로 말했다고 표현하고 있다(10,11절). 마치 하나님이 그와 싸울기회를 찾으시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칠틈을 찾으시며.
(2) 엘리후는 욥이 그렇게 말한 것은 잘못 말하였다는 것, 따라서 욥이 이것때문에 하나님앞에서 겸손해져야 하고, 회개함으로 이것을 취소하여야 한다는 것을 욥에게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였다(12절). 이 말에 내가 의롭지 못하니. 엘리후의 욥에 대한 정죄와 다른 친구들의 욥에 대한 정죄의 차이를 살펴보자. 친구들은 도무지 욥이 의롭다는 것을 인정치 않았다. 그러나 엘리후는 단지 "이렇게 말한 것에 대하여는 네가 의롭지 못하다"라고 말하였다. 욥은 스스로 하나님의 위대함, 대항할수 없는 권세, 명백한 주권, 가공할 권위, 헤아릴수 없는 무한성에 관해 많은 말로 찬양을 드렸다. 따라서 이제 엘리후는 이렇게 말한다. "자! 오로지 너는 네 스스로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였던 것만 생각하라. 그리고 네 스스로에게 답하라. 하나님이 인간보다 크시다면 너보다 크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에 대한 너의 잘못된 생각을 후회하며 너의 선입견에 대해 전율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리라."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모든 불평과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심에 대한 모든 이의를 잠잠케하기에 충분한 하나의 평범한 진리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더 지혜롭고 힘있을뿐만 아니라, 훨씬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중에 초월적인 영광이며, 뛰어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에 있어 하나님은 인간보다 크시다. 따라서 하나님에게서 결점을 찾는 행위는 어리석고 부당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신다(13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우리가 즉 약하고 어리석고 죄많은 피조물인 우리가 무한히 지혜롭고 강하시며 선하신 하나님과 변쟁함은 이치에 닿지않는 일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가 알기에 적당한만큼만 밝히신다(14절).
Ⅲ. 하나님의 훈계 33:14-18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다루시는데에 있어서 완전히 어두움에 처하게 하셨다고 불평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기를 대적으로 다루신다고 결론지었다. 그에 대해 엘리후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너에게 말씀하시나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도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네게 있느니라. 하나님은 네가 어렵게 여기는 율법조차도 너의 진정한 선을 위해 주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며, 우리의 축복이시다.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14절). 우리가 하나의 경고를 소홀히 여긴다면 그는 또하나의 경고를 발하신다. 우리 축복의 적은 바로 우리이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귀를 막고, 눈도 감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충고를 거부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을 통해 사람들을 교훈하고 훈계하신다.
(1) 훈계의 적당한 때와 기회(15절) : 하나님은 사람이 일단 세상일로부터 물러나 쉴때, 세상의 사업과 교제로부터 물러나 쉴때, 즉 '사람이 침상에서 놀며 깊이 잠들때에나 꿈에' 훈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꿈과 이상으로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다(민 12:6).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속에 있는 그의 가장 일상적인 대리자인 양심을 작동시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깊이 잠들었을때나(왜냐하면 꿈은 대개 공상에서 비롯하지만, 어떤것들은 의식에서 비롯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든 것과 깨어있는 것의 중간상태인 졸때에 그 기회를 가지신다. 이때는 한밤에 전날의 일을 돌이켜보거나, 아침에 다음날의 일을 계획해 보는때이다. 이때가 바로 그들의 심령이 잘못한 것을 꾸짖고, 해야할바를 훈계할수 있는 적절한 때이다.
(2) 훈계가 임하는 강도(16절) : 사람의 귀를 여시고.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여신다. 이는 곧 우리의 귀를 여시는 것이다.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즉,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계획하신 알맞은 교훈을 그들의 영혼으로 하여금 인을 치는 것처럼 깊고 지속적인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하신다.
(3) 베푸신 훈계의 목적과 의도.
1) 이는 인간이 범죄하는 것, 특히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17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하려 하심이며. 즉 악의 꾀를 버리게하려 하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적절한 규제를 통해 사악한 죄에 빠짐을 면해왔다. 양심은 "주께서 미워하시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말라"고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은 이를통해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하신다.' 어떤이들은 이를 '사람에게서 교만을 제거하려 하신다'로 해석한다. 즉 하나님은 수많은 죄의 근원인 악을 뿌리채 뽑으려 하신다.
2) 이는 사람이 멸망함을 막으려하심이다(18절). 하나님은 양심의 교훈에 의해 사람들의 죄를 막으려하신다.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않게 하시며. 깨어있는 양심의 구속하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복인가! 양심의 상처는 신앙이고, 양심의 속박은 은혜이다.
Ⅳ. 질병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33:19-28
하나님은 재차 말씀하실뿐만 아니라 또다른 방법으로 죄인들을 깨우치고 회개케하신다. 하나님의 섭리인 이것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자비롭기도 하다(하나님은 이런방법으로 두번 말씀하신다). 욥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대단히 불평하였다. 또 질병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노하셨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엘리후는 하나님이 때때로 사랑으로, 또는 영혼에 유익을 베푸시기 위한 자비로운 계획으로, 육신에 고통을 가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엘리후의 말중에서 이부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인 질병을 우리가 적절히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1) 하나님이 징계로 질병을 주실때, 질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라(19절이하).
1) 병든 사람은 심한 고통을 받는다(19절).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수심의 징계를 받나니. 고통과 질병은 안락한 침상을 가시침상으로 바꿀 것이다. 흔히 환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고통도 더욱 크다.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살을 에는 아픔이라기보다 뼈를 깍는 아픔이라는 점이다. 이는 겉으로 아픈 것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아픔이다. 즉 사지의 뼈뿐만 아니라 온몸의 뼈가 징계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서의 육체의 고통은 종종 영혼에 유익한 수단이 된다.
2) 질병의 일반적인 결과는 입맛을 잃는 것이다(20절). 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즉 우리에게 가장 필수적인 음식을 싫어하게 된다.
3) 완전히 뼈만 남아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 이른다(21절).
4) 그의 혼이 구덩이에 가까와지느니라. 그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염려속에 죽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멸하는 자'로 불리는 죽음의 고통이 그를 사로잡으려 한다.
(2) 인간은 하나님이 그를 교훈하시려고 준비하신 것을 이 방법으로 말씀하실때 듣고 깨달아야 한다(23절).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고, 그에게 그 의미를 깨닫게할 '해석자'가 함께있다면, 즉 징계하는 음성을 듣고 그뜻을 해석할만한 지혜로운 자가 함께있다면 그는 복되다. 질병중에 훌륭한 사역자의 충고와 도움은 훌륭한 의사의 처방만큼이나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특히 사역자가 할일은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정의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병자가 진실로 경건하게 보인다면, 그 해석자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했던 것처럼, 즉 욥이 고통당하기 때문에 그가 위선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인양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중에도 평강을 누릴수 있다는 하나님의 정의를 보이려할 것이다.
(3) 그가 회개하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받아들이신다(24절).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심령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자비로운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1) 하나님은 자비로운 명령을 하신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하라'(그로하여금 구원받게 하라). 죄의 삯인 사망으로부터 그를 건져내라고 하신다.
2) 하나님은 이 명령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내가 중보자를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대속물이다. 엘리후는 그를 대속물이라 칭하였고 욥은 구세주라 칭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시되 그의 피로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제사장인 동시에 희생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를 몹시 기뻐하셨다. '내가 얻었노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느니라. 바로 내가 인간을 대속할 자로다.'
(4) 이에 병자는 회복된다. 환자가 회개할때에 어떤 축복이 따르는지 보라.
1) 그의 육신은 건강을 회복한다(25절). 이는 병든 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킨다고해서 반드시 따르는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하다. 그리고 이 병의 치유가 죄사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은총이다. 만일 병자가 대속물과 관계를 맺으면, '그 살이 어린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어떤병의 흔적도 남지않게 된다. 소년때를 회복할 것이요. 그는 소년때의 아름다움과 힘을 회복할 것이다.
2) 그의 영혼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26절).
① 회개한 환자는 간구하는 자가 되며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② 그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된다. 진실로 회개한 자는 어떤번영이나 쾌락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기쁨을 누린다(시 4:6,7).
(5) 이와같은 예로 추론해볼때, 하나님은 인간을 다룸에 있어 일반적인 규칙을 갖고계시다(27,28절). 복종함으로 병든 자가 회복되듯 진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것이다. 우리는 죄의 속성과 그 해악을 알지않는가. 그것은 '시비를 바꾼다'(정의의 개념을 바꾼다-역주). 이는 가장 불의하고 몰지각한 일이다. 이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반역이며 영에 대한 육의 쿠데타이다. 우리는 죄로인해 얻게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않는가.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이것이 우리가 회개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죄의 잘못을 고백하여야 하며, 죄의 사악함과 불의함('내가 시비를 바꾸었다')을 고백하여야 한다. 또 우리는 죄의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여야 한다. "내가 어리석고 무지하였도다. 모든것이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하나님은 죄인을 자비로운 눈으로 살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위와같은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삶과 기쁨을 기뻐하신다.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즉 하나님의 이상과 그 열매맺으심 속에서 모든 좋은 것을 보리라는 의미이다.
Ⅴ. 엘리후의 의도 33:29-33
엘리후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크고 자비로운 계획이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베풀기위함이라는 것을 보임으로써 그가 한말들을 간단히 요약하고 있다(29,30절).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과 그의 섭리하심, 세우신 사역자들과 은총, 그리고 고통을 통해 인간을 다루신다. 그는 인간을 병들게도 하시고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시기도 하신다. 모든 섭리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역사와 노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 모든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30절).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이제 욥은 어떤 이의든지 제기할수 있었다. 엘리후는 이를 환영하였다(32절). "너를 변호하기위해 '만일 할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하려 하노니' 말하라." 엘리후는 욥이 할말이 더있다는 것과 이것도 주의깊게 듣기를 원한다는 것을 욥에게 알렸다(33절).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
# 핵심
33:1-33
엘리후는 욥을 향하여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욥을 엄격하게 정죄했던 세친구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하여 고난에서 구원받을 가능성을 말했다. 아울러 고난을 단순히 죄에 대한 징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연단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등 상대적으로 진전을 보였다.
# 묵상
하나님을 대리함 ( 33:1-7 )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욥과 변론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전에 욥이 하나님이 자신을 두렵게하지 마시고 변론해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했었는데(9:34), 엘리후는 자신의 출현이 그에 대한 응답인듯이 말합니다.
엘리후의 변론에 나타난 고난의 목적 ( 33:13-33 )
엘리후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성숙케하고 더 큰복을 주시기위하여 사용하시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앞에서 의롭다고 생각한 교만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 교훈하시며 징계와 채찍을 사용해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교만의 출처 ( 33:17 )
마귀와(딤전3:6) 인간의 악한 생각(막7:21, 22),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요일2:16), 위선과(눅18:11, 12) 세상의 권력(겔16:49, 56) 등에서 교만은 시작됩니다. 이러한 교만의 본질은 창조주이시며 심판주되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교만에 빠지지않기위해 그리스도를 본받으며(빌2:8),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여호와께 순종하는 경건의 훈련을 해야합니다.
엘리후가 생각한 하나님의 은혜 ( 33:25-28 )
하나님께서는 노쇠와 질병으로인해 죽을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이 청년의 기력과 건강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밀접한 교제를 가지게 하시며, 사람들이 의를 회복하고 죄사함의 은총과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더 큰복을 주시고 성도의 신앙을 성숙케하시며 하나님과의 참된교제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변론시의 성도의 태도 ( 33:32, 33 )
우매한 변론을 피하고(딤후2:23), 헛된 변론을 피하며(딤전6:20), 지혜와 성령으로 답하고(막12:28), 복음전파를 위해 해야합니다(행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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