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엘리후의 고발 34:1-9
(1) 엘리후는 청중에게 말을 건네서, 그들의 호의와 주의를 얻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1) 그는 그들을 '지혜있는 자들, 지식있는 자들'이라고 칭하였다(2절). 이렇게 지혜로운 자와 교분을 나누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엘리후는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을 지혜있고, 지식있는 자로 칭하였다.
2) 그는 그들의 판단에 호소하고 그들의 판결에 따르고자 한다(3절). 현명한 자의 '귀는 말을 분별한다.' 즉 지혜로운 자의 귀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한다. 따라서 말하는 것은 시험을 치루는 것과 같다.
3) 그는 이 문제를 다루고 논의함에 있어 그들을 동반자로 여긴다(4절). 엘리후는 외로운 독재자인양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모든 증오심과 선입견을 버리도록 하자.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무엇이 선하지 않은가 우리의 의견을 교환하고, 사고를 모아 '우리끼리' 알아보자."
(2)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나라를 비난하였던 격정적인 말에 대해 욥을 심하게 비난하고 있다.
1) 엘리후는 욥이 하였던 말을 기억나는한 정확하게 암송하고 있다. 욥은 말하기를 '내가 의롭다(5절)' 하였고, 죄의 고백을 강요받을때, '허물이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즉, '내 손에는 포악이 없으나'(16:16,17) 나는 마치 불치의 병에 걸린 것처럼 '내 상처가 낫지못하게 되었도다'(6절).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어떠한 사람도 자기 종교로인하여는 나아지는점이 전혀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9절). 이는 엘리후가 욥이 '그는 완전한 자도 사악한 자도 멸하신다'(9:22)라고 말한 것을 비꼰 것이다. 그말에도 진리는 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잘못 표현되었다. 욥은 조용히 앉아있었다. 또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카릴(Caryl)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절한 표현을 하고있다. 선한 사람들은 때때로 생각하는바를 받을때, 스스로를 변명하기보다는 차라리 받을만한 비난이상의 비난을 당하곤 한다.
2) 엘리후는 '어느사람이 욥과 같으랴'(7절)며 욥을 정죄하고 있다. "너희는 욥과 같은 사람을 도대체 아는가, 도대체 그렇게 엄청난 소리를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엘리후의 말에 따르면 욥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었다. 욥이 훼방하기를 물마시듯하며. 욥은 이 어리석은 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비난받을 일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사귀었다'(8절). 그는 직접 대화를 통해 그들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그들을 좋아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힘을 북돋워줌으로써 그들과 사귀고 있다.
Ⅱ. 하나님의 절대성 34:10-15
엘리후가 하는 말의 의도는 욥에게 그의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욥에게 해를 입히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적인 축복을 베푸시려고 고통을 주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말은 친구들을 향한다.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10절).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결코 악을 행치않으셨고, 행치도 않으실 것이다. 그의 방법은 공평하나 우리의 방법은 공평치 않다.
(1) 이 진리는 소극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주장된다.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10절). 이것은 그의 성품의 완전함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의지의 순결함과도 일치하지 않는다(12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결단코 어떤 사람에게도 부당하게 행치 아니하시며 자신의 공의를 부정하지 않으신다. '하늘은 곧 그의 정의를 선포하리라.' 하나님은 전능자이시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힘을 불의에 사용치 않으신다. 그는 모든것에 자족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악에게 시험을 받으실'수도 없다(약 1:13). 그는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집행하신다(11절).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2) 엘리후는 대단히 강력히 주장하였다.
1) 그는 자신의 말이 진리라는 확신을 피력함으로써 강력한 주장을 폈다. 진실로(12절). 이는 확실하다는 점을 강력히 나타내는 말이다.
2) 그는 비진리에 대한 혐오감을 피력함으로 강력한 주장을 폈다(10절).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또한 우리가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것도 단정코 허락치 않으시느리라.
(3) 엘리후의 말은 두개의 주장으로 요약될수 있다.
1) 하나님의 독자적이며 절대적인 주권과 지배(13절) :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그는 이세상의 유일한 지배자이다. 또 그는 스스로 지배하신다.
2) 하나님의 저항할수 없는 권세(14절) : 그가 만일 인간과 다투기위해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여기서 더나아가(어떤이들은 이렇게도 해석한다) 그가 만일 인간을 멸망시키시려고 그의 마음을 인간을 멸하시는데 둔다면, 또 하나님이 인간을 단지 절대주권에 의해서나 엄격한 정의에 의해서만 다룬다면, 그의 앞에서 견딜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영과 숨은 곧 사라질 것이고 '모든 혈기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15절).
Ⅲ. 하나님의 전능함 34:16-30
여기서 엘리후는 보다 직설적으로 욥에게 말한다.
(1) 하나님은 행하신 어떤일 때문에도 비난당하실수 없다.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17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는 너무 높아서 그에 비하면 아무리 완전하고 정직한 인간이라는 욥조차도 공의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 할수밖에 없다. "네가 하나님에게 지시하고, 그가 하신 것을 고치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네가 그럴수 있겠느냐?" 그는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생각하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것이 마땅하고 우리가 그에게서 흠을 찾는다는 것은 가당치않다(19절). 높은 사람이라고 그 부와 높음때문에 더잘 대우받지도 않고 더공애받지도 않을 것이다. 또 가난한 사람이라고 그 가난때문에 나쁜대우를 받지도 않을 것이며, 정직한 동기를 인정받지 못하지도 않을 것이다.
(2) 하나님은 그의 행하심속에 드러나신다. 엘리후는 여기에서 욥에게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생각을 깨우치려고, 또 이로인해 욥을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그와의 논쟁을 그치게 하기위하여 몇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따라서 그가 인간을 심판하실때에는 가장 강한사람조차도 아무것도 아닐뿐이다(20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즉, 아무리 많은 백성도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떨게되고,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것이며, 세력있는 왕자라도 하나님의 말 한마디면 자신의 왕좌를 잃을 것이다. 하나님은 단 한사람의 세력있는 자를 이기실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를 이기실수 있다(24절).
2)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따라서 가장 비밀스러운 것도 찾아내신다. 가장 힘있는 자도 그와 맞설수 없듯이, 가장 교활한 자도 그의 눈을 피할수 없다. 어떤이들이, 그들이 받게되리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거나 혹은 적게 벌받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적하기전에 그것을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은밀한 이유의 탓으로 돌려야한다. 그의 앞에는 감추인 것이 없다(21절).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공의로운 하나님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을 행하는 자가 사람을 피하여 숨을 방법과 수단은 있을수 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25절). 하나님은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계획하는지 모두 아신다.
3)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23절). 그는 무죄한 자를 벌하지도 않으시거니와 죄인들을 그들의 죄값이상으로 벌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므로 무한한 지혜이신 그분은 죄와 벌간의 함수를 판결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욥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으로인해 정죄되어야 했다. 이 불의한 판단이 곧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를 경외하기를 그치며, 그를 생각하는 것조차 그쳤던 것은 그들이 '그의 모든 길을 무관히 여기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교훈과 섭리에 주의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이땅에서 살아갔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폭군이었다(28절).
4)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일에 절대주권을 행사하신다. 그는 사회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무엇이든지 인도하시고 지배하신다. 따라서 그의 계획은 실패할수 없고, 그가 하신 일은 변경될수도 없다(29절). 어떠한 근심도 하나님이 자신의 미소로 안위하시는 이들을 침범치 못한다.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29절). 하나님이 한국가에 외적인 평화를 주심은 그가 주신 것을 지켜주실수 있으심이요, 또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적인 평강을 주심은 사단의 정죄함이나 현세의 고통, 심지어 사망의 질곡으로부터도 인간을 지켜주실수 있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4장 7절을 보라.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실때에,' 그의 은총을 거두실때에, '누가 감히 뵈올수 있으랴.'
5)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므로, 공공의 복리에 주의하신다. 사특한 자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30절). 사특한 자는 교만하다. 인간에게 칭송받는 것과 세상의 권력을 잡는 것이 그들의 바라는바이다. 독재자들은 스스로를 세우고자 할때에 종종 자신들의 야망을 감추고 가리우려고 종교를 이용하는 계략을 쓴다. 사특한 자가 권세를 잡으면 백성들은 곤경에 빠진다. 백성들은 죄나 고통에 또는 죄와 고통 둘다에 빠지게 된다.
Ⅳ. 엘리후가 지적하는 욥의 죄 34:31-37
(1) 엘리후는 욥에게 고통중에 무엇을 말하여야 하는지를 교훈한다(31,32절). 전체적으로 그는 욥이 고통중에 하였던 표현을 회개케하려 하였다. 이에 반해 욥의 다른 친구들을 욥에게 스스로 사악한 자라는 것을 자백케하려 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지나친 것으로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에게 단지 그가 이 논쟁에 있어 '자신의 입술로 범죄하였다'는 것만을 자백케하려 하였다. 그는 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너의 죄로인해 하나님앞에서 겸손하라. 또 죄로인한 벌을 인정하라.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라고 인정하라."많은 사람이 징계를 받는 것은 실제로는 징계를 받지않기 위함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하나님이 하신 모든것을 잘 받아들인다. 그들은 징계를 선한 의도의 치료행위처럼 받아들일 것이다.
2) 하나님께 득죄한 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라(32절).
3) "개심을 서원하라"(31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하라.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또는 내가 악을 행하였으니)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주께서 내게서 어떤악을 찾으셨던지, 나는 주의 은총으로인해 다시는 이를 행치 않으리이다."
(2) 엘리후는 욥에게 고통중에 겪는 불편과 불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33절). 우리는 우리와 관계된 모든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엘리후는 여기에서 이를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고 이치에 닿지않는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럴수 없느니라. 그 이유가 무엇이냐?"
(3) 엘리후는 욥이 한말에 죄와 어리석음이 없는지를 모든 총명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끝이 날때까지 시험이 계속되도록 하라." 그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모두 호소하고 있는 모두로부터의 심판을 원하고 있다. 어떤이들은 36절을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로 해석한다. "오 나의 아버지시여! 욥을 시험하소서." 흠정역의 난외주에는 이와같이 되어있다. 이는 같은 단어가 '나의 소망' 또는 '나의 하나님'으로 해석될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이들은 엘리후가 이 말을 할때, 눈을 하늘로 향했다고 생각한다. "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여, 욥이 굴복할때까지 그를 시험하소서."
# 핵심
34:1-37
엘리후의 말에 욥은 아무대답도 하지않았다. 따라서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는 하나님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울수 없다는 논지에 의거하여 인생이 하나님과 변론할수는 없음을 강조했다.
단편적인 진리(34장)
욥의 세친구를 비롯하여 엘리후의 말은 모두가 단편적인 진리를 내포하고 있을뿐 온전하고 균형잡힌 결론을 내리고있지는 못하다. 현대의 신앙인들도 진리의 보고인 성경을 가지고 있고 또 제각기 신앙적인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신앙적인 문제들에 관해서 논하고 결론을 내릴때는 원만한 진리를 제시하기위해 보다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할 것이다. 처음부터 도식화된 견해를 들고나서서 상대방을 정죄하는 태도는 금물이다. 완전한 진리는 주님이 다시오실때 비로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고전 13:9-12).
# 묵상
엘리후가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 ( 34:10-30 )
악인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권능자이시면서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시며, 그 행위대로 얻게하신다고 했습니다(시62:12; 렘32:19; 벧전1:17).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지 말고, 방종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인간들의 행위에 대하여 자세하고 엄정하게 판단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성도의 자세 ( 34:19, 20 )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요 인간은 피조물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릴수 없기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앞에 침묵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급히 판단하거나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예정과 섭리하심에 묵묵히 순종해야 합니다.
엘리후의 신정론 ( 34:21-30 )
엘리후의 신정론은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 불평등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 회의섞인 원망과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모든 죄악과 고통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고, 하나님께서는 절대 정의롭고 거룩하신 분이며, 세상끝날에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때문에 성도에게는 이세상에서 실현되는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성숙된 신앙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악인을 공개적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 34:26, 27 )
악인을 공개적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불의를 행할때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에 알리어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진리임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욥에 대한 엘리후의 반박 ( 34:29 )
하나님께 부르짖는 욥에 대해 엘리후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감히 할말이 있겠느냐’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는 엘리후의 인과응보론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갑작스레 임한 고난에 대해 의아해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고난이 닥쳤을때 자신을 살피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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