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책망 2:1-8
(1)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이 예레미야에게 주어졌다. 사역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비교하여 보고 그것들이 서로 일치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할뿐 아니라 "주께서 나를 보내사 이렇게 말하게 하셨다"고 말할수 있어야한다. 그는 이제 즐겁게 은둔생활을 하며 율법을 공부하던 성읍 아나돗을 떠나 번잡한 성읍 예루살렘에 가서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의 귀에 대고 외쳐야 했다. "모든 사람이 들을수 있도록 큰소리로 외치라. 저희에게로 가까이 가서, 귀를 막고 살아온 자들의 귀에 대고 외치라."
(2) 그가 전해야할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는 저희에게 가서, 오랫동안 그토록 자비롭게 대해주신 하나님을 저버린 저희의 엄청난 배은망덕을 비난해야 한다.
1)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오래전 그들이 처음 한민족을 이루었을때 베푸셨던 은혜를 상기하게 하신다(2절).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너로하여금 그것을 기억하게 하겠노라. 네가 선하게 되도록 그기억을 새롭게 하겠노라. 나는 네 소년때의 우의와 네 결혼때의 사랑을 잊을수 없노라."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말로 이해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자랑할만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하나님께 보인 사랑이 적은 것이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었을때, 그들이 홍해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을때, 그들이 시내산 밑에서 하나님께 언약했을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지키고 복종하겠다"고 말한 것이 바로 '저희 소년때의 우의와 결혼때의 사랑'인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듯이 보여졌을때 그는 "실로 그들은 나의 백성이요, 나에게 충성할 것이며, 거짓되지 아니하는 자녀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저희 소년때의 우의'는 다음과 같은점에서 나타났었다.
① 그들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지시를 따랐다. 40년동안 '광야에 하나님을 좇아 지냈으며', 비록 그곳이 '씨뿌리지 못하는 땅'이었을지라도 그가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믿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 받으셨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종종 그의 제자들을 질책하셨으면서도, 그와 계속하여 함께있은 것을 칭찬하여 그들을 인정하신 것과 같다(눅 22:28).
② 그들은 저희가운데에 성막을 세웠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대하여 거룩하였었다. 이와같이 그들은 영으로 시작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사실을 상기시키사 저희로하여금 육으로 끝나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③ 혹은 이말씀은 저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 이해되어질수 있다. 후에 이말씀을 다시 언급하신 것을 볼수 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때에 내가 사랑하여'(호 11:1).
첫째,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특별히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산중 첫열매'이었고 그가 이세상에 세우신 첫교회이었다. 그렇지만 완전한 추수는 이방인들가운데에서부터 해야 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들과 혼인하셨기때문에 그들의 문제는 그의 문제가 되었으며, 그들의 적은 곧 그의 적이 되었다(출 23:22).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와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백성을 타락시키고자 하며, 여호와께 거룩한 백성을 그거룩함에서 떨어지게 하는 자, 브올의 일로 미디안을 치시는 여호와(민 25:17,18)를 증거하는 자를 넘어지게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대적하셨다.
셋째, 그는 강한 손과 크고 두려운 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다'(신 4:34). 그리고 자비로운 손과 많은 보살핌으로 사람이 다니지않는 광대한 황야를 저희로하여금 통과케하셨다(6절). 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그들은 40년동안 행보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셨다. 그뿐아니라 거기에서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상(床)을 베푸셨다'(시 23:4,5). 그리하여 그들에게 구름으로부터 떡을 내주셨고, 바위로부터 마실 물을 내주셨다.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은 몸에 위험이 있을때나 영혼에 위험이 있을때나, 이세상이라고 하는 광야를 통하여 안전하게 인도되기위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넷째,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에 정착시키셨다(7절).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과실과 그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곧, "내가 너희를 갈멜땅으로(원뜻은 이렇게 되어있다) 인도했노라." 갈멜은 특별하게 풍요로운 땅이었다. 가나안은 드넓은 옥토였다(신 8:7).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식과 은혜라고 하는 수단을 주셨고 그와 교제할수 있게하셨다. 이것이 8절에 암시되어 있다.
2)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배은망덕을 책망하신다(4절).
① 그는 그들에게 자신에게서 어떠한 불의함이나 무자비함이 있었으면 말하라고 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을 버린이유를 제시하도록 분명히 요구하신다(5절).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너희는 하나님이 가혹한 주인이라고 여기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린 너희가 그규례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수 있느냐? 너희가 부딪쳤던 낙담과 실망은 결코 하나님때문이 아니요, 너희 자신들 탓이었느니라. 그의 계명의 멍에는 쉽고 그것을 지키면 커다란 상이 있느니라." 비록 그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실지라도 그는 우리에게 잘못행하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불의는 우리에게 있다.
②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에게 불의하고 불친절한 것을 책망하신다. "저희가 나를 떠났도다. 저희가 나를 멀리 떠났도다." 그들은 무익한것 즉 우상을 좇았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더불어 모든 사악한 행위를 끌어들였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갔을때, 그들은 저희 자신을 더럽힘으로써 그땅을 더럽혔다(7절). 그곳은 하나님의 땅, 거룩한 땅이었으며, 임마누엘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땅을 가증스럽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버린후 그들은 다시 그에게로 돌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않았다. 백성도 제사장도 그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나타내지 않았으며, 그의 은총을 회복하고자 하는 어떠한 열망도 드러내지 않았다.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어디계시냐"고 말하지 않았으며(6절), 제사장들도 "여호와께서 어디계시냐'고 말하지 않았다(8절).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야할 사람들이 자신들도 그지식을 얻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율법을 다루는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의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 맡은바 양무리들을 범죄로부터 지켜야할 사역자들 자신이 범죄의 장본인이었다.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거짓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맞섰다.

Ⅱ. 하나님을 버림 2:9-13
선지자는 여기에서 그들의 비할데 없는 변덕스러움과 우둔함을 보여주고 있다(9절).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하나님은 죄들을 징계하시기 이전에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그들과 변론하신다. 이제 하나님은 '저희 열조들의 유전을 받아 헛된 변론을 하는 자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후손', 즉 모든 세대에 있어 저들의 전철을 밟는 자들과 변론하신다.
(1) 그는 그들이 모든 민족들의 관습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음을 보여주신다. 그들이 저희의 참하나님에 대해 했던 행동에 비하면, 그들의 이웃 민족들은 자신들의 거짓 신들에게 보다 확고하고 충실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깃딤 섬, 헬라, 유럽의 여러 섬들과 좀더 문명화되고 지식 수준이 높은 나라들, 그리고 게달의 현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이웃 민족들에게서 저희의 신을 바꾼 민족을 찾아볼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신이 비록 나무나 돌로 만들어졌을지라도 그들은 은이나 금으로 만든 신과 바꾸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살아계신 참하나님과도 바꾸지 않을만큼 저희의 신에 대해 충실하였다. 물론 우리는 그들을 칭송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저희의 하나님을 바꿀 아무런 요인도 없는 유일한 민족, 그러면서도 저희의 하나님을 바꾼 유일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질책하기위하여 마땅히 강조되어질수 있는 이야기이다. 우상숭배자들의 열의와 집념은 자기 신앙에 냉담하고 꾸준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부끄럽게할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이 상식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음을 보여주신다. 즉 그들은 자신들에게 나쁜 것으로 바꿈으로써 해로운 교환을 하였다.
1) 그들은 자신의 영광을 저희의 성막에 나타내심으로써 그들을 참으로 영광스럽게 만드셨던 하나님을 떠났다.
2)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선한 것도 해줄수 없는 신들, 다시말하여 예배자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못하는 신들을 가까이 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들의 죄와 어리석음은 하늘조차도 놀라와할만한 것이다(12,13절). 너 하늘아 이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이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이백성의 태도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① 언제나 이성을 따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그와같이 대단히 불합리한 일을 하고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② 우리의 창조주에게 행해진 그와같은 불경과 경멸에 모든 사람이 거룩한 분노를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내 백성, 내가 이제까지 가르쳐온 백성이 두가지 큰악을 행하였나니, 곧 배은망덕과 어리석음이라. 그들이 저희의 의무와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도다. 그들은 나, 곧 풍성하고 끊임없이 공급하는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렸도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의 원천이시다(시36:9). 그분안에는 은혜와 힘이 온전히 풍성하게 있으며 우리의 모든 근원이 그에게 있다. 그는 우리에게 있어 은총의 선물을 넘치게, 항상 넘치게 주시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속였다. 그들은 헛된 거짓을 위하여 저희에게 주어진 자비를 버렸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기위해 큰수고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물을 저축치못할 터진 웅덩이였다. 그들이 갈증을 채우려고 웅덩이를 찾아갔을때, 그들은 그것이 단지 진흙과 수렁과 고인 호수의 더러운 쓰레기에 불과함을 알게되었다. 우상숭배자들에게 있어 저희가 섬기는 우상은 바로 이와같다. 만일 우리가 어떤 피조물들 즉 부나 쾌락이나 명예같은 것들을 우리 자신의 우상으로 삼는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기쁨과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그것을 파고 채우기위해 애쓴다해도 결국 그것은 한낱 웅덩이, 기껏해야 단지 적은 물밖에 담지못하며 이내 말라붙는 죽은 웅덩이에 불과함을 알게될 것이다. 그것은 더운 날씨에 갈라지고 틈이 생겨 우리가 물을 가장 필요로할때 물이 없는(욥 6:15) 터진 웅덩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에게만 매달려야 한다. 그는 영생의 말씀을 가지신 이인 것이다.

Ⅲ. 이스라엘의 황폐 2:14-19
하나님을 버린 저들의 우둔함은 이미 비싼 대가를 치렀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은 온갖 재앙이 저희의 나라를 짓눌러 신음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 그들의 숙적인 이웃 나라들이 그들을 쳐서 이겼다.
1) 그들은 자유를 잃고 종이 되었다(14절).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아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그들은 자녀요, 후사들이다, 아브라함의 씨이다. 그들은 섬기는 자들로가 아니라 다스리는 자들로 정함 받았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유를 잃게 되었는가? 왜 그들은 날때부터 된 노예와 같이 종으로 쓰임받게 되었는가? 왜 그들은 자기 정욕에 스스로 노예가 되었으며, 저희 우상의 노예, 무익한것(11절)들의 노예가 되었는가? 그와같은 생득권이 죽 한그릇에 팔리며, 그와 같은 왕관이 더럽혀져 재가운데 놓이게 되나니 이 어찌된 일인가! 방백들은 저희의 신하들을 노비로 삼았으며 주인들은 저희의 종들을 노비로 삼았다(렘 34:1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일찍이 복되고 영예롭게 하신 저희의 나라가 비천하고 비참하게 되었다. 이웃 나라들의 방백들과 권세자들이 그들에게 침입해 들어와서 그들중 어떤이들을 자기 나라의 종으로 삼기까지 했으며, 다른이들을 외국에 팔기도 했을 것이었다. 오직 그들은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다(사 50:1). 우리는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해 볼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영혼은 종인가? 날때부터 노예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망쳐졌는가? 그것은 욕망과 정욕에 빠져 스스로 저희의 자유를 팔고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저희의 부요함을 잃고 빈궁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름진 땅으로 인도해 내셨다. 그러나 모든 이웃들이 그들을 먹이로 삼았다(15절). 어린사자들이 너를 향해 부르짖으며 소리를 날려. 때로는 한 강력한 적이, 때로는 다른 적이, 그리고 때로는 많은 적들이 동맹하여 그를 향해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리고 정복하였다. 그들은 그땅의 결실들을 거두어 갔고 '그땅을 황무케 하였으며, 성읍들을 불태웠다.'
3) 그들은 학대받고 모욕을 당하였으며 정수리를 상하였다(16절). "군사적인 용맹으로 이름높지도 아니하며, 힘도 없는 비열한 민족인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들까지도 네 머리의 왕관을 상하였도다." 우리가 볼수 있거니와 므낫세의 재위말기에 있어서 유다의 상태는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대하 33:11).
4) 이모든 일들이 그들의 죄때문이었다(17절).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다른 족속들과의 죄된 연합, 그리고 그들의 우상숭배 풍습을 스스로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들을 멸시당하게 만들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하던 바로 그때에 너희가 그를 버렸도다."
(2) 그들의 친구인체하던 이웃 족속들은 그들을 돕지않았다. 이것 또한 그들의 죄때문이었다.
1) 그들은 헛되이 애굽과 앗수르에게 원조를 청했다(18절).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이 '시홀'은 나일의 신이다. "너희는 그들이 너희에게 한 달콤한 약속을 의지하고 있도다. 또다른 때에 너희는 구원병을 부르기위해 전력을 다해 앗수르의 길을 달렸으며, 유브라데의 강물로 너희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하였도다. 너희가 거기에서 할일이 무엇이 있더냐? 그들을 의지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더냐? 그들은 도움이 되지 못하며 너희가 강으로 여겼던 그것은 한낱 터진 웅덩이에 지나지 않도다."
2) 이것역시 그들의 죄때문이었다(19절).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저희가 너를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 네가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악한 일임을 깨닫고 살펴보라. 하나님을 버린 것은 너희 원수를 정말 원수되게 하는 것이요, 친구를 헛된 친구로 만드는 것이니라." 죄는 우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버리는 것이며, 그에게서 영혼을 멀리 떼어내는 것이다. 죄의 원인은 우리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죄는 그안에 선한 것이라고는 없는 악한 상태이다. 그것은 쓴것이다. 다시말하여 그값은 죽음이며 죽음은 쓴것이다. 죄는 그자체 안에 악과 쓴것을 가지고 있듯이 또한 우리를 비참한 상태로 만들려는 기질을 명백히 가지고 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죄 그자체가 네게 형벌이라고 말해질만큼 그렇게 피할수 없는 형벌이 죄에 동반되리라. 너 자신의 사악함이 너를 납득케하고, 너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하리라. 그리하여 네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자인하지 않을수 없게되리라."

Ⅳ. 이스라엘의 타락의 참상 2:20-28
(1) 우상숭배는 죄 그자체이다.
1) 그들은 우상숭배하는 장소에 자주 모였다(20절). 모든 높은 산위와 모든 푸른나무 아래서. "산당과 수풀가운데에서, 인정되지 못하고 만족을 얻지못하면서도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보통 영적인 간음은 육체적인 음란도 동반하는 것이 상례이다.
2)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었으며 이것들에게 신적인 영예를 돌렸다(26,27절).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왕들과 방백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까지도 나무에 대고 말을 할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었다. 너는 나의 아비다 즉, "너는 내가 은혜를 입고 있으며 의지하는 나의 신이요, 나를 지은 이라." 그들은 또한 돌을 향하여, 돌로 만든 우상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낳았다. "네가 나를 이땅에 내었다. 그러므로 나를 보호하라."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이보다 더 큰모욕을 행할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들이 처음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때, 그들은 그것들이 어떤 하늘의 능력이나 영에 의해 생기가 불어넣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생각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은 우상 그자체를 저희의 아비로 간주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우상 그자체를 경배하였다.
3) 그들은 이 쓰레기같은 신들을 끊임없이 증가시켰다(28절).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수와 같도다. 그들은 동일한 신으로 만족할수 없었다. 한 성읍은 저희 나름의 신을, 그리고 다른 성읍은 또한 저희 나름의 신을 세웠다.
(2) 이죄에는 증거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죄에서 면제되어 있는 척하였다. 그들은 잿물로 스스로를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썼다(22절).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귀신들로서 경배한 척하였으며, 그러한 것들에게 신적인 영예를 보인 것이 아니라 공민으로서의 예의를 보였을뿐인 척하였다. 이와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나는 더럽히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을 좇지 아니하였다(23절). 그들은 그일을 비밀리에 행하고 부지런히 감추었기때문에(겔 8:12) 결코 발각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네가 어떻게 그사실을 부인할수 있으며, 바알을 좇지않았다고 말할수 있느냐? 그죄악은 깊은 자욱을 남겼고 더럽혀진채 내앞에 있도다." 혹자는 이와같이 해석한다. "비록 너희가 죽은 사람의 핏자국을 옷에 묻힌 살인자와 같이, 그자국을 씻어내려 애쓸지라도 결코 그것은 지워지지 않으리라." 골짜기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그들은 높은 산위에서 뿐만아니라 골짜기에서도 우상을 숭배하였다, 사 57:5,6). 그들은 벧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서(혹자는 그렇게 읽음) 우상에게 예배하였다(신 34:6;민 25:3). 그러나 만일 이것이 어떤 특정한 골짜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그것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들이 저희의 자녀를 희생제물로 몰록에게 바친 곳이며, 따라서 어떠한 다른 곳보다도 그들의 잘못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3) 이죄악은 그들이 다음과 같은 책망을 받음으로써 더욱 가중되었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거역하였고 그에게 반역하였다(20절).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하나님께서 풀어주신 그들의 멍에와 결박들은 이제 마땅히 영원토록 그들을 하나님께로 묶어두는 것이어야 했다.
2) 그들은 명쾌히 약속하였지만 그약속을 이행치 아니하였다. 네가…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20절).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그들을 한백성으로 이루게 하셨을때의 상태로부터 비참하게 타락하였다(21절). 내가 너를 순전한 참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사는날 동안과 여호수아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수24:31). 그러나 바로 그다음세대는 여호와를 알지못했고, 그가 행하신 일도 알지못했다(삿2:10). 그리하여 그들은 점점 악화되었으며, 결국에는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
4) 그들은 우상숭배를 열심으로 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나 그의 배려로써도 그것을 막을수 없었다. 그들은 그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와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23,24절)에 비유되고 있다. 그들은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대단히 분방하여 쾌락을 좇아 헐떡거리고 있으니 누가 그것을 막을수 있겠는가? 누가 암나귀와 암약대가 욕구를 좇아 달려나가는 것을 가로막을수 있겠는가? 암나귀를 찾는 자들은 이러한 상태의 암나귀를 좇아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않고 암나귀가 새끼를 가질때까지 참고 기다려 그후에 잡고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암나귀가 더이상 그들을 앞질러 달아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열망하는 정욕은 야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돌이키려 하지않는 자들은 야생짐승들로 간주되어질 것이다. 그들을 이성적인 존재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우상숭배는 묘하게 도취시키는 힘이 있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가장 격렬한 것도 길들여질때가 올것이다. 고통과 번민이 저희에게 임할때, 저희의 귀는 계율에 대해 열려질 것이다.
5) 그들은 저희의 죄로 완악하였다. 그들은 죄에 있어 제어되어질수 없었던 것과 같이, 또한 개혁되어질수도 없었다(25절). 하나님은 확실히 그들을 비참하게 하실 것이며, 그때에 그들은 벗은 발로 걷지않을수 없게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신선한 물 한모금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저희의 목은 갈증으로 타는듯할 것이다. 이방 신들을 공경하고, 낯선 예배방식을 좇던 자들은 이제 그에 적절하게 이방 땅의 낯선 왕의 죄수가 될것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면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가 우상들을 버리기를 기대하지 말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가겠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낙담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의 죄가 아무리 흉악하다해도, 만일 회개하고 그의 자비를 구하기만 하면 충분히 우리의 죄는 용서받게 된다는점을 믿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절망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우리가 크게 타락했다해도, 만일 기도하고 은혜를 더하시기를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우리의 타락은 극복되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사람은 그가 지옥 이편에 있는한 결코 희망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6) 그들은 저희를 도울 자를 멀리함으로써 스스로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26-28절).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그리고 형벌을 받게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집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그것은 저희가 지은 죄를 뉘우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죄가운데에서 저희가 부딪치게 되는 절망에 대한 형벌적인 수치이다. 저희가 흥할때에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으며, 환난을 당할때에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외에는 아무런 만족도 없음을 알게될 것이다. 환난을 당할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들은 회개에 이를수 있도록, 이러한 수치를 당하게끔 저희가 섬기던 그신들에게 보내질 것이다(삿 10:14). 그들은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만든 네 신들이…너의 환난을 당할때에 구원할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28절). "너희에게는 내가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할 아무런 연고도 없느니라."

Ⅴ.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2:29-37
(1) 죄과가 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이 자명한 사실이다(29절). 너희가 나와 다툼은 어찜이뇨. "너희는 너희가 한가지 일에서뿐 아니라 다른 일에 있어서도 모두 범죄했음을 알고있으면서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뇨?"
(2) 그는 저희의 돌이킬수 없는 타락과 배은망덕을 상기시킴으로써 저희의 죄과를 부각시킨다. 그들은 갖가지 일에 대해 하나님의 책망아래 있었다. 그가운데서 하나님은 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고자 하셨다. 그렇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음은 녹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징계를 통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더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매맞은 것은 무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선지자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준 말씀에 의해서도 아무런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그 메시지때문에 선지자들을 죽였다.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30절). 너희 이세대여(그는 "너희 이세대 사람들아"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있다) 여호와의 말을 들어보라(31절). "그러나 단지 듣는 것에 그치지말라." 우리는 미가 6:9절에서 매를 받도록 명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매는 소리를 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을 보도록' 명해지고 있다. 이는 그것이 환상과 전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햇빛으로 써놓은 것과 같으므로 달려가는 자도 읽을수가 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흑암한 땅이 되었었느냐. 하나님의 도우심은 불쾌한 것도, 무익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백성을 광야와 흑암의 땅을 통과하도록 이끄신다. 그렇지만 그러할때, 그는 스스로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셨다. 그는 그들을 만나로 먹이셨고,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기름진 땅과 빛의 땅으로 안내하셨다. 이제 그들은 참을수 없을정도로 오만하고 불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와같이 말한다.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않겠다. 구걸하는 자들인 우리가 스스로 "우리는 놓였으니, 즉 우리는 부유하니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악함에 대한 책망을 그들이 하나님을 잊은 것에 두고있다(32절).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들은 저희심중에서 하나님을 생각케하는 모든 것들을 피하였다. 그들은 날수를 계산할수 없이, 시간의식이 없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잊어왔다. 우리 생애의 얼마나 많은 날들이, 마땅히 있어야할 하나님에 대한 생각없이 흘러가는가! 그헛된 날들을 누가 계수할수 있겠는가? 그들은 젊은 처녀들이 흔히 저희의 옷에 대해 가지기 마련인 그러한정도의 관심조차 하나님에 대해 쏟지않았다. 처녀가 어찌 그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고운 옷을 잊겠느냐. 그렇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그것들을 생각하며 그것들에 대해 말할 것이다.
(4) 하나님은 그들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신다(33절).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여기에 얼굴을 꾸미고 머리를 장식한 이세벨과 같이 추파를 던지고 화려한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들을 아름답게 보이려는 추잡한 여인들에 대한 비유가 있다. 이와같이 그들은 저희 이웃들을 끌어들여 죄의 공모자가 되게 했고, 그들에게 우상숭배하는 습관과 하나님의 규례를 혼합시키는 저희의 사악한 방식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의 무익한 흑암의 행위를 따름으로써 그렇지않아도 빠지게 되었을 악한 상태보다 훨씬더 사악하게 된 자들에게 엄청난 책임을 지게되었다.
(5) 하나님은 그들에게 살인죄의 책임에 대해 묻고 계시다(34절). 네 옷단에 죄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이언급은 몰록에게 희생제물로 바쳐진 어린자녀들에 관한 것이거나 아니면 보다 일반적으로는 므낫세가 흘린 모든 무고한 피, 그것으로 그가 예루살렘을 가득채운 일(왕하 21:16)을 말하는 것일수 있다. 이피는 은밀한 탐색에 의해서나, 혹은 구멍을 뚫어 파헤침으로써 나타난 것이 아니다(본문구절을 이렇게 해석할수 있다). 오직 '이모든 일위에', 땅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죄과가 공공연하게 숨김없이 드러나있음을 의미한다.
(6) 하나님은 무죄하다고하는 그들의 변명을 물리치신다(35절).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주님과 변론하여 주님의 오류를 확인시키겠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행동을 중단하시고 그의 진노를 돌이키실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는 대단히 격노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진노가 옳은 것임을 그들에게 확인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를 의롭다하는 대신에 스스로를 심판하고 죄가 있음을 자복하기까지 멈추시지 않을 것이다.
(7) 하나님은 그들이 그를 적으로 삼고 피조물들을 의뢰함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저 수치스러운 좌절감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질책하신다(36,37절). 그들이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난 것은 영적인 우상숭배의 한 단면이었다.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하나님을 저희의 소망으로 삼고 그를 의뢰하며 계속 나아가는 자들은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그에게로 돌아가며 휴식처와 같은 그분안에서 편안히 쉴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 앗수르를 의지했으며, 그것이 한낱 상한갈대에 불과함이 드러나자 다시 애굽을 의지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더나을 것이 없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너희는 이전에 너희를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했던(대하 28:20)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했던 것과 같이 이제 다시 애굽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가 구원을 청하기 위해 보낸 대사나 사절들은 낙심하여 애굽으로부터 돌아오며, 너희 백성의 절망적인 상태를 애통해할 것이라. 너희는 여기에서 멀리 추방될 것이라. 즉, 두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낯선 땅에 포로로 끌려가게될 것이라. 그리고 너희가 의지하는 애굽은 너희를 지키지도 못할 것이며 포로된 것으로부터 구해주지도 못할 것이라." 여호와를 대항하여 이길 모사나 꾀가 없음같이 그분없이 승리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핵심
2:1-13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땅의 바알신을 섬긴 이스라엘의 죄악을 결혼비유를 통해 지적하심.
건기용 물탱크(2:13)
우기(10월경부터 3,4월경까지) 때외에는 좀처럼 비가 내리지않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솟는 샘도 적어 빗물을 저장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건기에 쓸 물을 확보하기위해 땅을 파고 석회를 발라 작은 물탱크를 만들었다. 이 물탱크를 의미하는 ‘웅덩이’가 팔레스타인에는 매우 많았다(38:6). 세월이 흘러 바른 석회에 균열이 생기면 웅덩이가 터지는 일도 있었다.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행위(2:37)
전쟁의 승리자가 포로들에게 취하게 했던 모습이다. 포로들은 두손을 결박당한채 머리위에 얹어야 했다. 비유적으로는, 어디서도 도움을 얻지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음을 나타낸다.

# 묵상
소년때의 우의와 결혼때의 사랑 ( 2:1-3 )
‘우의’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며 이는 언약에 충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소년때의 우의와 결혼때의 사랑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이 그의 백성이 되는때, 곧 출애굽직후와 광야생활 그리고 초기 가나안시기의 하나님과 그들의 유대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유다와 다투시는 하나님 ( 2:9 )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죄를 지었을때 그들을 심판했던 것처럼 그들의 후손들이 죄를 범하였을때도 역시 동일한 심판을 행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툰다’라는 말의 의미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발에 따라 피고인 이스라엘과 변론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죄를 짓고 회개치않으면 유다 백성들처럼 심판당할수밖에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유다 백성의 두가지 죄 ( 2:13 )
유다 백성의 죄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물을 저축할수 없는 웅덩이를 스스로 판 것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한 것을 말합니다.
유다의 배반 비유 ( 2:20-29 )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는 멍에를 부수고 맨 끈을 끊으며 순복지 아니하는 소, 음행하는 여인,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 어지러이 달리는 발빠른 젊은 암약대, 성욕이 동한 들암나귀 등으로 비유됩니다. 이는 모두 다루기 어렵고 반항적이며, 악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존재 양식에 대해 예레미야는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난한 것입니다. 우리도 원래 이와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한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불러주신 그 큰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잿물과 수다한 비누의 상징 ( 2:22 )
잿물과 수다한 비누는 죄를 씻기위한 인간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깨끗한 사람이 되기위해서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지만 그것은 다만 죄를 가리울뿐 죄를 완전히 제거할수는 없습니다. 죄를 씻게하는 유일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잿물과 수다한 비누를 사용하여 죄를 씻으려는 인간의 헛된 수고가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때려도 무익한 이스라엘 ( 2:30 )
때림이 무익한 이유는 때려도 징책을 받지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징계하시나 징계받은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조차도 귀기울이지 않아 하나님의 책망이 무익해졌던 것입니다.
패물과 고운 옷의 상징 ( 2:32 )
패물과 고운 옷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처녀는 패물을, 신부는 고운 옷을 잊을수 없지만 이스라엘의 패물이요, 고운 옷인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은 잊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영광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잊는다면 이와같이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죄없는 가난한 자의 피 ( 2:34 )
죄없는 가난한 자의 피란 돌이킬수 없는 심판의 원인이 되는 범죄를 말합니다. 죄없는 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리는 범죄로서, 역사적 측면에서는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 므낫세의 박해를 의미합니다.
길을 바꾼 유다 ( 2:36 )
네 길을 바꾼다는 것은 율법의 길,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바꾸어 세상권세를 따르는 길을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는 하나님만 믿고 순종해야 했건만 앗수르, 애굽 등을 의지하고 따름으로 그길에서 벗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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