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진실한 회개에 대한 촉구〔1〕 4:1,2
하나님께서 배역한 이스라엘을 돌아오라고 불렀을때(3:22) 그들은 즉시 대답하였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나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의 대답을 주목하신다.
(1) "돌아오겠노라고 네가 말하였느냐? 그렇다면 내게로 돌아오라. 철저하게 돌아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로 돌아오라. 너는 모든 죄를 완전히 버려야만 하며 우상숭배의 어떠한 흔적도 남겨서는 아니될지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1절). 그들의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단지 자명할뿐만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그것들은 그의 목전에서 치워져야만 한다. 이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순전한 눈앞에서 그를 노엽게 만드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을, '너는 방황치 아니하며' 혹은 '방황치 아니해야 한다'로 읽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한다(2절).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그의 현존하심은 너에게 가장 신성한 사실이리라."
(2) 그는 그들에게 결심을 굳게하라고 격려하신다. "만일 너희가 나에게로 돌아오려고 한다면 돌아올수 있으리라. 너희는 옛 약속대로 포로에서 풀려나 너희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신 4:29;30:2). 그들은 거짓 신들 안에서가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안에서 스스로 복을 빌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안에서 영화로와질 것이며 그분을 저희의 영광으로 삼게될 것이다.

Ⅱ. 진실한 회개에 대한 촉구〔2〕 4:3,4
이제 선지자는 하나님을 힘입어 그의 설교를 그가 살고있던 땅의 사람들에게로 돌리고 있다. 3:12절에는 그가 북쪽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선포하였는지 나타난다. 곧 당시 포로로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위로였다. 그러면 이제 번영을 누리고 있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는 무슨 말이 주어지는지 살펴보자. 이는 그들의 회개와 각성을 위한 설교이다. 이 두절을 통해서 선지자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개혁하도록, 그리하여 그들에게 내려지기로 예정된 파멸의 심판을 막도록 권면하고 있다.
(1) 그들이 이행해야할 임무들이 있다.
1) 그들은 어떤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땅을 경작하듯 그렇게 자기들의 심령을 갈아야한다(3절). 너희 묵은 땅을 갈고. "너희 스스로를 경작지로 삼아 갈고(혹은, 너희의 경작지를 갈아 젖히고), 가시덤불속에 파종하지 말라. 오랫동안 너희가 해온 것과 같은 그러한 헛된 수고를 하지않도록 하라. 너희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를 받기에 합당하게 만들고 너희가 그렇게 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물리치라. 그리하면 너희는 자비를 기대할수 있으며, 너희 자신을 돕고자 하는 스스로의 노력안에서 번영을 바랄수 있게되리라." 회개하지 않은, 겸손하지 못한, 아무것도 심지않은 땅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울타리도 없으며 아무런 결실도 내지못하는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한 땅이다. 그것은 바로 타락한 마음이 내놓는 자연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만일 은혜로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비와 햇빛은 그에 대해 쓸모없게될 뿐이다(히 6:7,8). 우리는 이 묵은 땅을 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가시덤불과 같이 우리의 수고를 가로막는 부패한 뿌리들을 파내야 한다.
2)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때 육신에 행했던 할례를 저희 영혼에도 해야한다(4절).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향하여 너희 마음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육신과 그정욕을 극복하라. 육체의 할례를 자랑치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한낱 징표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헌신의 표이다. 할례를 행할때 고백했던 그러한 신실함으로 행하라. 여호와께 너희 자신을 바치고 정하게 하라."
(2) 위험이 경고되고 있다. "회개하고 개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우리에게 있어 그무엇보다도 두려워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발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악행이다. 급박한 위험에 대한 경고는 우리를 각성시켜,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하도록 스스로를 깨끗케 하고,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것을 바라게끔 만들어야 한다.

Ⅲ.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 4:5-18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반적인 방법은 때리시기전에 경고하시는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외부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즉시 그들에게 닥칠 전면적인 파멸을 유대인들에게 알려주신다. 이소식은 유다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마다 선포되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듣고, 회개하거나 핑계치 못하게 되어야 한다.
(1) 전쟁이 선포되었고 적들의 침입이 알려졌다.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수년전인 그당시의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어 진다(5,6절). 나팔을 불고 기호를 세우며 함께 모여 시온을 향하도록 백성들을 소환해야 한다. 그성을 지켜야할 사람이든, 그성안에서 보호를 받아야할 사람이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군대 소집령이 내리고 모든 군대는 모여져야 한다. 싸우기에 적합한 자들은 견고한 성읍들에 들어가 그것을 방어해야 하고, 연약한 자들은 지체하지 말고 도피해야 한다.
(2) 바벨론 왕과 그의 군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급한 전갈이 왔다. 그적은 본문에서 이렇게 비유되고 있다.
1) 배가 고플때 먹이가 될 제물을 찾기위해 수풀에서 올라온 사자에 비유된다(7절).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짐승들은 공포에 질려 쉽게 먹이가 되고 만다. 느부갓네살왕은 이 울부짖는 사자이며, 열방을 멸하는 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유대 땅을 향하여 나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방의 열방을 멸하는 자가 또한 유대인을 멸하는 자가 될것이다. 이는 그때 그들이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저희 자신들을 이방인과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땅을 황폐케하려고 이미 그처소, 바벨론을 떠나 나왔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될 것이며 들과 같이 풀로 뒤덮이게될 것이다.
2) 뜨거운 바람에 비유된다(11절). 이것은 마치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잠25:23) 땅의 결실들을 결단내며 그것들을 말린다. 또한 그것은 모든 것을 오싹하게 만드는 검은 바람이다. 그들이 어디로 갈지라도 그들을 에워쌀 것이다. 그것은 산의 높은 곳을 치며, 평지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광야 자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지금 그 사나운 바람이 그들을 향하여 불어올 것이다.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하려함도 아니다. 그것은 강한 바람이다(12절). 이바람은 여호와에게로, 아니 여호와를 위하여 올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가지고 올것이며, 그를 위하여 보내신 그일을 수행할 것이다.
3) 구름과 날랜 회리바람에 비유된다(13절).
갈대아 군대가 바람이 몰고온 구름같이 올라올 것이다. '말들은' 저희 먹이를 덮칠때에 '독수리보다 빠르다.'
4) 치는 자와 밭을 지키는 자에 비유된다(15-17절). '소리가' 가나안의 전성읍들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단에서 선포된다. 그들은 소식을 접했으며 그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였다. 그러면 그것은 무슨 소식인가? "열방에, 열지파의 성읍들에 고하라. 그리하여 그들이 저희 자신의 안전을 예비할수 있도록 하라. 그것을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그들로하여금 치는 자들이 먼땅에서부터 오고있음을 알게하라." 그들은 악을 행할 온갖 기회를 엿보던 병사들이다. 그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며 마치 밭을 지키는 자같이,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지키기위해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둘러 사면으로 가둔다(참조. 눅 19:43).
(3) 이심판이 있게된 통탄할만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들 탓이었다.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7절). 갈대아인들이 그들을 침입하였으며 저희가 쳐들어오도록 틈을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의 죄였다. 네 기록 행사가 이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18절). 그죄는 우리의 모든 재난의 요인이다.
2) 하나님은 저희의 죄로인해 저희에게 진노하셨다. 갈대아인들을 이처럼 사납게 만든 것은 '여호와의 명렬한 노이다'(8절).
3) 그는 마땅한 진노로 그들에게 이형벌을 내리셨다.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12절).
(4) 이 심판으로인해 비통한 결과가 나타난다. 싸워야할 백성들은 절망하여 적들에게 대항할 마음도 갖추지 못할 것이다(8절).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칼로 무장하는 대신에 그들은 굵은 베를 두를 것이다. 적들이 아직 멀리 있을때에 그들은 항복하고, '화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13절)라고 울부짖을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용자로 이름 높았었다. 그러나 죄의 결과를 보라. 그죄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없앰으로써 그들에게 있었던 용기도 빼앗아갔다. 그날에 왕은 실심할 것이다. 즉, 그의 지혜와 용기를 잃을 것이다. 그의 방백들과 모사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실심할 것이다. 제사장들의 할일은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말라'고 말해야 했다(신 20:3). 그러나 이제 제사장들 자신이 놀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용기를 줄 엄두도 내지못할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마지막때에 "사람들이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라"고 예시하시고 있다(눅 21:26).
(5) 선지자는 백성들이 속았다고 불평한다(10절). 그표현이 참으로 묘하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속이지 않으심을 분명히 확신한다.
1)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약속들로 그들 스스로를 속였다. 그들은 그약속들이 수행되어지는 조건들을 행하는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그약속들 위에 서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저희 자신을 속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속였다고 사악하게 불평하였다.
2) 거짓 선지자들이 평화에 대한 약속으로 그들을 미혹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약속을 하였다(렘 23:17;27:9).
3)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하는 것을 허용하셨으며, 백성들이 그들에게 기만당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들이 그미혹하는 말을 사랑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강한 미혹까지도 허락하셨다.
4) 이구절을 의문문으로 읽을수가 있다. "주께서 진정 이백성을 속이셨나이까? 그들이 크게 기만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강을 기대했으나, 반대로 칼이 생명에 미쳤기 때문이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속이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종종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셨었다. 그러나 저희 자신의 선지자들이 그들을 속였으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평강을 말해주시지 않은 자들에게 평강을 외쳤다. 사람들이 스스로 속아 자멸하고, 전쟁이 코앞까지 다가왔을때 스스로에게 평강을 약속하는 것을 보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6) 선지자는 백성들을 속이지 않고자 노력한다.
1) 그는 그들에게 저희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들은 저희의 죄에 따른 징벌을 알아야만 했다(18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니라. 그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칠 것이라. 칼이 생명에 미칠 것이라"(10절).
2) 그는 그들에게 처방책을 가르쳐 준다(14절).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루살렘이라는 말로써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거민들 각각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각기 그들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공중을 도울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회개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저희의 악한 길을 돌이키고, 저희 마음의 악을 씻어야 한다. 개혁은 구원에 이르기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마음에까지 미치지 아니하면 어떠한 개혁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마음의 개혁이외에는 어떠한 효과적인 개혁방식도 없을 것이다. 이절의 후반부분에서 그는 그들에게 묻고있다.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죄를 짓고자하는 혹은 해를 가하고자하는 생각들은 악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악한 생각들이며, 거기에서부터 모든 다른 사악함이 나오게 된다(마 15:19). 혹자는 여기에 있는 악한 생각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의 견책과 부르심을 외면하고 자기들의 악을 계속 고집하는 모든 어리석은 구실들로 이해하기도 한다.

Ⅳ. 예레미야의 애통함 4:19-31
선지자는 여기에서 고뇌하며 큰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와 같이 울부짖는다. 그표현들은 돌같은 마음도 녹이기에 충분할만큼 비장하다. 슬프고 아프다(난외주에는 '내 창자여 내 창자여'로 되어있음-역주) 내 마음 속이 아프고.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해도 이세상과 같이 악한 곳에서 살때에는 슬픔의 사람이 될수밖에 없다.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수 없으며, 내 심령의 격정으로인하여 나는 평안할수 없도다." 그가 이와같이 슬퍼하는 것은 그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요, 그의 가족가운데 있는 것은 그의 백성들의 문제이다.
(1) 그들은 심히 범죄하였으나 개혁되기를 원하지 않는다(22절). 이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우둔할지라도 그들을 그의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그들은 그를 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롬 11:1). 내 백성은 나를 알지못하는 우준한 자요(22절). 그들은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다. 그들은 땅의 평화를 거스려 행악을 도모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묘안을 고안하며, 그것들을 숨기는 일에 있어서는 지혜롭다. 그러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며 마음을 쏟지 아니한다.
(2) 그들은 참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으며, 구제되어질수 없다.
1) 예레미야는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19절). 내가 저 기호를 보며(21절). 그는 '나의 귀, 네가 들었다'고 말하지 않고 '나의 심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가 선지자의 심령을 통하여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육체의 귀로 들었던 것과 같이, 그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것을 들었다. 비록 그가 이재난을 예고했을지라도, 전혀 그재앙의 날을 바라지 아니하였다. 그는 거룩한 경외심에 대해 백성들을 일깨우고자, 그리고 그렇게함으로써 참된 때맞은 회개로 심판을 막고자 하였다.
2) 파멸이 예고되고 있다.
① 그파멸은 순식간에, 홀연히 있을 것이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20절). 한 슬픈 재난이 다른 재난을 뒤따라 일어날 것이다. 요시야왕의 죽음이 그수문을 연다. 그가 죽은지 3개월이 채 못되어 그의 아들이며 계승자인 여호아하스는 애굽왕에게 붙잡혀갔다. 2,3년이 못되어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탈취했으며, 그후로 계속하여 유대 땅을 침략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완전히 예루살렘을 파괴하여 황폐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그들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었다.' 시골이 먼저 황폐해졌다. 천막에 살던 목자들과 그외 모든 사람들은 즉시 탈취당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막에 거하다가 갈대아인의 군대가 처음 쳐들어왔을때 예루살렘으로 도피한 레갑 족속의 일을 읽을수 있다(렘 35:11).
② 이전쟁은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완고하여, 바벨론왕에게 항복하려 들지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바벨론에 대항할 모든 기회를 모색하였다.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한다.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리 듣기를 어느때까지 할꼬(21절). "영원히 칼에 삼키우기야 하겠는가?"
③ 온땅이 탈취를 당하니(20절). 처음에도 그러했으며 마침내는 완전한 혼돈의 땅이 되었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23절). 마치 창세때와 같았다(창 1:2). 창세때에 사용된 단어, 혼돈과 공허가 유대 땅에도 적용되어졌다.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이것은 깊음위에 있던 흑암에 빗대어진다(창 1:2).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땅뿐만이 아니다. 하늘도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고난과 더불어 흑암을 받게되었다. 왜냐하면 저희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들이 불태운 그들의 집과 성읍들에서 나는 연기가 햇빛을 가렸으며, 그리하여 하늘에도 빛이 없게되었다. 혹은 이말을 비유적으로 받아들일수도 있다. 땅(즉, 일반백성)은 불모지가 되었고 혼돈하였다. 그리고 하늘(즉, 방백들과 치리자들)도 빛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지혜도 없으며 백성에게 줄 어떤 위로도 그들을 이끌 안내자도 없었다.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24절). 영원한 산들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합 3:6).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장소였던 산들이 마치 백성들의 죄를 깨닫고 있다는듯이 떨며 진동하였다. 작은 산들도 죄지은 나라의 무거운 짐을 떨구듯 가벼이 요동하였다. "내가 성읍들을 본즉 사람이 없으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던 공중의 새조차 더이상 볼수도, 들을수도 없도다." 유대 땅은 이제 소돔의 못과 같이 되었다(참조. 신 29:23).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26절). 모든 성읍도, 그문들과 벽들도 무너졌으며 평지와 같이 되었다. 2차적인 원인들만 살피는 자들은 이모든 일을 침략자들의 광포한 책략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1차적인 요인을 보는 선지자는 그일이 여호와의 앞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나라는 완전히 황폐해질 것이다. 즉 이 온땅이 황폐할 것이며 곡물 경작지나 목초지도 모두 버려질 것이다(27절). 기병과 활쏘는 자의 훤화로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그들이 분노에 잡힌바 되기보다는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를 것이다. 즉 성읍들이 버림을 당할 것이다. 이는 다가오는 파멸에 대한 음울한 경고이다. 그렇지만 이모든 경고들가운데 한마디 위로의 말씀이 나온다(27절).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하나님은 남은 자를 보존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은 재건되고 땅에는 사람이 살게될 것이다. 이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위안을 주기위한 것이다.
④ 그들의 처지는 절망적이었으며 구제할 도리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우려하지 않으시며 그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28절).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2: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후회하지 아니하실 것이며, 심판을 돌이키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도울수 없었다(30,31절). 그들은 어떤 조처를 취할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스스로 안위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막상 일이 닥치면 크게 당황하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30절). 그들은 저희가 의지하던 동맹국들에게 무시당할 것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구애를 표하곤 하던 연인들에게서 버림받은 창부에 비유했다. 그창부는 열방들가운데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고자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예루살렘은 사람들을 보내어 환심을 사려고하며 마치 부요한듯 보이기위해 붉은 옷을 입고, 저가 가진 보물이 아직도 가득한듯 금장식으로 단장하여 꾸미고 있다. 현재의 불행을 감출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으로 눈을 그려 꾸며 화장하였다. 그러나 이 화장한 것이 현재에는 얼굴을 아름답게 해주나 실상은 얼굴을 해친다. 피부를 버리게 하며 주름잡히게 하고 거칠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에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너의 모든 이웃들은 네가 얼마나 빈곤한 자리에 있는지 그참상을 참으로 민감하게 알아채리라. 갈대아인들이 너의 붉은 옷과 금장식을 벗겨낼 것이라." 여기에는 이세벨의 이야기가 암시되고 있는듯하다. 그녀는 자기를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자기 운명에 도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왕하 9:30,33). 그들은 자기들의 고난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이 피할수 없는 것임을 알게될 것이다. 내가 소리를 들은즉…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31절). 즉, 갈대아인의 나팔소리에 반향하는 시온의 신음소리이다. 시온은 이웃들이 그녀를 동정하기를 거절하였기때문에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이러한 의미이다) 몹시도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인가 의지할 것을 찾으면서 손을 펴고 있다.

# 핵심
4:1
가증한 것 가나안의 더러운 우상들.
4:5-31
다가올 재앙으로인해 예레미야가 탄식과 슬픔을 발하고 있다.
기호(4:6)
항오를 벌여 행진할때 소속을 나타내는 깃발이나(민 2:2), 혹은 위급한 상황을 먼지역까지 전하는 신호나 표시따위를 가리킨다(사 5:26; 18:3). 그 예로, 적군의 침입을 알릴때 사용된 봉화를 들수 있다.

# 묵상
묵은 땅을 갈라 ( 4:1-4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앞으로 돌아오려면 가증한 것들을 버리고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옛마음, 옛습관, 옛생활, 옛성품을 버리고 주의 백성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레미야가 요구한 할례 ( 4:4 )
마음의 할례로서, 할례는 언약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언약을 지키지않고 할례라는 종교의식만을 치르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교만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그러한 위선적인 행위를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으로부터 지키게 하는 마음의 할례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속이시는 여호와 ( 4:10 )
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평강하다’고 외치게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신 것에 대한 예레미야의 탄식입니다(왕상22:1, 2). 이와같이 진리의 말씀을 듣기 원치않는 악한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한방법임을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롬1:28).
적군 침략에 대한 대비책 ( 4:14 )
이대비책은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는 것, 곧 회개를 의미합니다. 적군이 몰려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므로 백성들은 그들의 죄에서 돌이켜 회개해야 했습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심판을 중지하시기 때문입니다(욥3:10).
예레미야의 슬픔묘사 ( 4:19 )
본문은 창자가 끊어지는듯한 예레미야의 아픔을 묘사한 말로서, 예레미야가 이런 아픔을 느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황폐화될 유다와 그백성들의 고통을 예견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크나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가 자기 나라와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단면을 볼수 있기도 합니다.
재앙의 이유 ( 4:22 )
이스라엘에게 재앙이 내려지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지한 자녀 같았습니다. 그들은 출애굽등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김으로 어리석음을 범치않아야 합니다.
황무지가 될 좋은 땅 ( 4:26 )
황무지가 될 좋은 땅이란 이스라엘의 땅이 황폐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된것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진노만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곧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헛된 붉은 옷과 금장식 ( 4:30 )
본구절에서 언급된 붉은 옷과 금장식, 눈을 그려 꾸미는 것은 창기가 사람의 눈을 끌기위해 몸단장하는 것을 묘사한 표현입니다. 또한 이렇게 단장할지라도 연인들이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는다는 말에서, 연인들이란 여러 이방나라들을 가리킵니다. 즉 유다는 그들과 우호관계를 맺었고 전쟁의 위험시에 그들의 도움을 구했으나 그들은 유다를 외면했던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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