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장 1절~6절]
1절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절 -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절 -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절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절 -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배경 이해하기]
욥기는 욥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에 대해 인과 관계적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을 향한 친구들의 신랄한 비판과 자의적인 지적들은 욥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결국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고난의 실마리를 찾아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욥의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 즉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경험함으로써 지금껏 가지고 있던 고난에 대한 이해의 범주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런 후 고난 가운데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철저히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 이전에 누리던 것의 두 배에 해당하는 복을 주심으로써 그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관해 말씀을 마치신 후, 욥이 자신을 돌아보며 했던 고백은 무엇인가요?(2~3절)
욥은 못 하실 일이 없는 주님 앞에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린 자가 바로 자신이며,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했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주께서는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2절). 이는 그 계획의 출처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은 어떤 힘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고백입니다. 이전에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무고함을 항변했지만, 이제는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3절)라는 고백을 통해 자신의 무지함과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주권을 고백합니다. 또한 앞선 항변들이 모두 무의미한 탄식이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3절)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욥은 자신의 제한적인 생각으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은 욥은 자신이 직접 만난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의 섭리를 다 헤아리지 못해 불평하며 항변했던 일을 나누어 보세요.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해 주셨나요?
산 높은 곳에 있는 관광지를 방문하면 산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망원경을 사용하면 수십 배, 수백 배 더 많은 것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와 같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바라는 것의 실제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전에 욥은 하나님의 크신 뜻과 섭리를 깨닫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야가 넓어지고 높아지게 된 욥은 하나님의 섭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으십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큰일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고 고통의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고난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2. 하나님에 대해 귀로 듣기만 하다가 그분을 눈으로 뵌 후에 욥은 어떤 태도를 보였나요?(4~6절)
욥은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욥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묻는 말에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해 보라고 하셨지만(38:3), 욥은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위대한 창조주의 권능을 구체적으로 펼쳐내셨고, 욥은 완전히 굴복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절)라고 반응합니다. 창조주의 권능 앞에 완전히 꿇어 엎드려 자복합니다. 이전까지 욥은 전통적인 믿음의 전수를 통해 귀로 들은 추상적인 지식을 신앙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 아니라 타인의 입에서 전해진 관념적인 지식으로서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현현을 목격하고 체험한 신앙인이 되었고, 이로써 욥에게 있던 의심과 의혹들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이제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6절)라고 고백합니다. 회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티끌과 재’는 욥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적용과 나눔
지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체험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묵상할 때 적용할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3P’입니다. 첫 번째는 ‘Personal’,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그에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Practical’,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적용은 바른 적용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Possible’, 실천 가능해야 합니다. 실천 가능한 묵상이 삶을 말씀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런 묵상은 신앙을 올바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이 세 가지가 부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지식적인 신앙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3P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체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을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욥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받았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 욥은 마침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뜻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전에 그가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관념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난 후에는 체험적이고 생생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인간의 고난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문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풀어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하는 통로입니다.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롬 8:28).
[말씀으로 기도하기]
지금 당면한 고난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뜻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이 고난을 제가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 변화되는 기회로 여기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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