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이름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출3:13에서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이 모티브의 서곡을 장식한다. 적어도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사람의 본질을 나타낸다. 스스로의 내면적이 보이지않는 핵심을 겉으로 내어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이름인 것으로 이해한다. 출3:14에 "나는 스스로 있는자니라"는 하나님의 대답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하는 것이며,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을 규정할수 없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무엇이든지 될수 있는 분, 또 달리 표현하면 누구도 하나님의 본질을 꿰뚫어 알수 있는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내 보여주며, 그분이 자신의 계획을 알리시기 전에는 아무도 알 사람이 없다. 그는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므로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가에 따라 하나님을 알수 있다. 즉 앞으로 행해질 이스라엘에 대한 계시에 따라 하나님이 알려질 것을 나타내준다.

 

2. 개혁주의의 표징 두가지

본문은 개혁주의를 나타내는 두가지 표징 가운데 하나를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개혁주의는 중세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압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지만 하나님의 권위 앞에 사람들을 붙들어매는 이중적인 작업을 하였다. 로마 가톨릭으로부터의 해방은 '열린 성경'으로 대변된다. 당시의 가톨릭은 일반 민중들에게 성경을 읽지못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사람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 이후 각국어로 성경이 번역되어 민중들이 쉽게 성경에 접할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은 급기야 가톨릭의 사제들만이 누리던 배타적인 권리를 이제는 일반 민중들도 함께 누릴수 있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만인 제사장설의 확장을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민중의 해방만을 목표로 한것은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에 젖어있던 사람들을 철저히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오게 하는 신앙의 대각성 운동이었다.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타지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하나님의 위엄을 느낀것처럼 사람들은 성경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엄위하신 모습을 보게되었던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위를 칼빈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성경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라는 곳에서 멈춘다." 열린 성경과 타지않는 떨기나무라는 개혁주의의 2대 상징은 바로 개혁주의 정신을 가장 잘 들어내고있다고 여겨진다.

3. 언변이 없어진 모세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을 계속해서 거절하며 자신이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라고까지 변명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론을 대변인으로 삼아서 가라고 하신다. 모세가 주저할때마다 그것에 추가되어 모세의 사명이 분명해지고 하나님의 뜻이 명확해진다. 모세의 궁중 교육을 통하여 받았던 훌륭한 언변의 기술이 이제는 광야 40년 생활을 통하여 사라지게 되었다. 광야 목동 생활 전체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이 된다. 모세는 실제로 입이 뻣뻣하게 되었다. 그는 본래 애굽의 최고의 학식을 쌓고 언변에도 뒤떨어지지 아니하는 자였다. 그러나 40년의 광야 생활은 그에게 입술의 어눌함을 안겨주었다. 이에 관하여는 촘스키(chom-sky)의 언어 사상 형성설을 생각하여 보면 이해할수 있다. 이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결정한다는 하나의 가설이다. 이 가설이 모세에게 실제화된 것이다. 40년간 말을 사용하지않는 침묵속에서 그의 훌륭했던 사상과 학식도 소멸되어 갔다. 하나님이 그의 입술을 둔하게 하신 것을 암시적으로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것은 합당한 변명이 될수 없었다.

4. 출6:3의 간단한 석의(釋義)

출6:3에 대한 현대의 견해는 문자적 해석에 따르지 않는다. 즉la(엘)과 hrhy(야훼)의 성격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앨리스(Allis)는 "여호와를 안다"라는 표현이 출애굽기에 여러번 사용(출6:7; 출10:12; 출7:5; 출14:4, 18)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경우의 뜻은 단순히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여호와의 본질과 성격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전능의 하나님과 여호와라는 이름이 동시에 사용될때에는 두이름의 성격을 대조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즉 여호와는 구속의 하나님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다.
즉 창세기의 족장때와는 달리 출애굽 사건으로 그분의 이름이 분명히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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