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브로(Cyprus)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복음 전도자로 파송받은후 첫번째 전도 여행의 시발점으로 삼은 곳이다.

1) 이름과 위치
지중해에서 세번째로 큰 섬인 지중해는 오늘날의 터키인 길리기아 남쪽 74Km, 시리아 서쪽 9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구약 시대에는 수도였던 키티온(Kition)의 이름을 따서 깃딤(Kittim)이라 불렀다. 오늘날은 키프로스(Kypros)로 잘 알려져 있다.

2) 지리적 배경
구브로섬은 길이가 224Km에 달하며 그 폭은 96Km가량 된다. 길리기아와 시리아의 해안에 인접해 있으며, 소아시아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역사와 문명의 중요한 요충지로써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구브로의 남서 지역은 산악 지대로 제일 높은 산봉우리는 해발 1951m인 트로두스(Trodos)이며, 북동부에는 메조리아(Mesorea) 대평원이 있다. 오늘날 키프로스의 수도인 니코시아(Nicosia)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3) 역사적 배경
이 섬은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리와 제목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오랜기간 동안 상업적 요충지로 인정받은 곳이었다.
구브로는 페니키아와 이집트의 정복후에도 로마의 통치를 계속해서 받게되는데 짧은 기간이지만 한때는 로마의 통치 직전에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아래 놓이기도 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1960년 8월에 영국의 식민 통치하에서 독립하였다.

2. 바나바
본명은 요셉이며, 사도들에의해 권위자, 위로는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란 이름이 붙여진 사람이다.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이방인에게까지도 복음을 전파할정도로 전도에 뜨거운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1) 시대적 배경
A.D.30-68년경에는 주로 활동 하였으며 이 시기는 오순절 사건과 함께 교회가 태동되기 시작하여 로마 전역으로 복음이 전파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바나바는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직접 목격하고, 베드로를 중심한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으로서 또한 사도 바울과의 제1차 전도 여행 및 자신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이 당시의 교회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더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체험한 인물이었다.

2) 구속사적 지위
12사도외에 사도로 불렸던 사람이며(행14:1-14), 초대교회내에서 두드러질 정도로 헌신하고 수고한 사람이었다. 또한 바울의 동역자로서 안디옥 등 이방 선교에 힘쓴 사람이었다.

3)평가 및 교훈
바나바는 그이름의 의미처럼 어느 곳에서든지 소외당하고 어려움당하는 자들의 편에서서 위로와 격려가 되어준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관대한 모습은 너무나도 쉽게 상대방을 판단하고 비판해 버리는 오늘날의 세태에 비교해 볼때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할 자세가 아닌가 여겨진다.
또한 바나바는 자신의 소유와 달란트, 생애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 주의 일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전적인 헌신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3. 예루살렘 공의회
행15:1-21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는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종교 회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에 의해 신학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전되려는 과도기에 그 당시 초대교회의 최대의 현안 문제였던 구약 율법에 대한 신약 성도의 자세를 최초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정립한 회의였다.

1) 공의회의 결정과 그 신학적 의의
첫째,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막론하고 구원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이방인 성도에게 율법의 멍에를 매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율법 준수가 구원의 근본 조건이 아니라는 신학적 대원칙을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둘째, 이방인 성도는 구약 율법, 더욱 정확히는 구약 시대의 의식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대원칙내에서 교회의 단합을 깨며 특히 유대인 성도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 음란하게 보이는 행동들, 피를 먹는 행위)들은 금할 것을 결의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이방인 출신 성도들간의 마찰을 줄이기위한 조처였다고 볼수 있다.

2) 공의회의 역사적 의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공식 공의회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하여 기독교는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유추적으로 신학적 결론을 유추해 낼수는 있으나,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어떤 사실들을 규명할때는 이같은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공식 입장을 정리하는 관례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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