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들에게 온 사랑의 편지

[빌립보서 1장 1절~11절]
1절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절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절 -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절 -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절 -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절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절 -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절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절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절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절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표현합니까?(1절)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자주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전쟁 포로들이나, 경제적인 빚 때문에 종이 됐습니다. 그들은 물건처럼 매매 대상이 되었고,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종’이라는 단어는 매우 불쾌한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종은 dou/loj둘로스라고 하는데, ‘묶이다’, ‘동이다’라는 뜻을 가진 de,w데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결국 종이란 ‘묶은 사람’, ‘묶여서 끌려가는 사람’, ‘팔려 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 바울이 자신을 종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종은 원하지 않고 억지로 된 사람들이기에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상황을 불편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종 됨을 마치 자랑하듯이 기쁘게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길 자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 종이 되길 자청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종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습니다.

2.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항상 기쁨으로 간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5절, 참조 7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특별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이들의 관계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모하며 하나님이 이것의 증인이심을 말합니다(8절). 그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들 사이에 깊은 교제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같은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육체적인 교제가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영적으로 하는 교제가 참된 교제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감옥에 갇힌 바울을 위해 물질을 보냈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그를 돕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 많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동역자의 관계였습니다.

3.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바울이 확신한 사실은 무엇입니까?(6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이 시작하신 복음 사역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가로막을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시며 세상의 시작과 끝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주님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삼라만상이 있게 되었고, 언젠가 때가 되어 그분이 “그만 있으라”라고 명하신다면 현재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뜻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려는 계획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탄이 비록 성도들을 핍박하고 믿음 생활을 방해하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4.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이 감옥에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참된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나눠 보십시오.
바울은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에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후 충실히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11장 후반부를 통해 바울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복음을 위해 고난 당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고난을 예고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길이 얼마나 고된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성도에게 당연한 일입니다. 바울은 이 고난의 길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감당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을 때도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고난을 즐거워하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감격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주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은혜로 여겼습니다. 바울에게 임했던 그리스도의 구원이 지금 우리에게도 임했습니다. 매순간 구원의 감격으로 은혜의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5.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사이의 교제를 보면서 오늘날 성도 간의 교제는 어떠한지, 그리고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눠 보십시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성도 간의 교제입니다. 사도신경에서도 나오듯이 교회란 거룩한 공회로써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곳입니다. 로마시대 성도들은 이웃 교회의 목회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명패를 넘기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교회의 지도자가 이단에 빠지거나 배교하게 되면 그의 이름을 명패에서 제거했고,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지도자가 더 이상 거룩한 교제에 포함될 수 없음을 선언하는 일종의 ‘파문’이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일반적인 교제와 구별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유익과 즐거움을 위한 교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의 교제에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린다’(요일 1:3)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있는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성도의 교제에 속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