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놀라운 사랑의 섭리 (옥한흠 목사)
[요한복음 18장 33절~38절]
33절 -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절 -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절 -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절 -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뜻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미리 알고 정하신 뜻에 따라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행2:23).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알고 미리 작정하신 일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분명한 판단 아래 하나님께서 내린 결론입니다.
왜 저주의 죽음을 죽으셔야 하는가? 우리 모두가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율법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자신만을 사랑했습니다. 결국 율법이 명령하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불복종했기 때문에 그 불복종에 뒤따르는 죄의 값을 물으시는 저주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저주의 죽음을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빌라도의 재판 과정과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갈 때 한 일들과 행동을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십자가를 통해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강압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게 하려고 대제사장들을 충동질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야바, 대제사장과 그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원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원했고 하나님이 무슨 뜻을 갖고 계시느냐 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들의 증오와 잔인성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우리가 몇 가지 정리를 해야 될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기로 작정하셨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잔인하게 죽이려고 했던 대제사장들의 행동이 거꾸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홍수를 가져다 주었고 그들이 악하게 행동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더 이 세상에 넘치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악을 선용하십니다. 악인들이 가장 악한 짓을 하도록 하심으로 자기의 선한 뜻을 이루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탄도 악인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악인도 쓸모가 있고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에 남겨 놓고 계십니다.
셋째는 예수님 그분 만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실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것이 재판 상에서 드러났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라야 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실오라기만한 죄가 있어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누가 증명했습니까? 예수님의 원수들이 증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기뻐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에 십자가로 인한 뜨거운 감격과 찬양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1999.3.28)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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