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불안은 극복할 수 있다 (옥한흠 목사)
[요한복음 14장 27절]
27절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 가운데서 불안을 느끼지 않고 세상을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다 겉으로는 태연한 것 같아도 마음 구석에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불안을 안고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또 얼마는 불안의 장애를 가지고 밤낮없이 시달리면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부딪히고, 다루고 해결해야 될 문제 대부분이 우리의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불안을 느끼죠.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처리하면서 살 수 있을까? 본문에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에 죽으실지 모른다고 하는 불안이 감돌고 있는 아주 험악한 분위기입니다. 제자들이 볼 때에는 예수님이 이번에는 무사할 수가 없다고 하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듭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는 자기 마음에 있는 평안, 즉 ‘나의 평안’을 제자들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이 ‘나의 평안’은 좀 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 평안은 달라고만 하면 금방 얻어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나의 평안’은 우리가 어떤 합당한 조건들을 갖출 때 뒤따라오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아버지라고 불러도 그저 막연히 어떤 격식을 차려서 부르는 호칭이 아니었어요. 아빠라고 불렀어요. 예수님도 세상에 사시면서 하나님을 어린아이가 자기 아빠를 보듯이 보면서 믿고,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주님이 가지신 그 평안을 우리의 것으로 늘 마음에 간직하고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둘째, 철저한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생명보다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면 하나님과 충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불화는 우리에게 불안의 씨앗을 심습니다.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과 평안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셋째,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일평생 기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불안을 극복하는 비결이었습니다. 주님이 드리신 기도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였습니다. 더할 수 없는 약함, 더할 수 없는 슬픔, 더할 수 없는 고뇌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은 사탄의 시간이었고, 어두움의 시간이었는데, 주님은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피 땀을 쏟으며 전력을 다해 하나님 앞에 ‘아바 아버지여’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평안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험한 세상, 무서운 세상을 사시면서 항상 그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평안을 마음에 담고 사는 아름다운 주의 백성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항상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을 그리고 내가 기도할 때마다 들으시는 아버지 되심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2003.3.30)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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