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혹에 대한 처방 (오정현 목사)

[창세기 3장 4절~6절]
4절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절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절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다면 우리도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유혹에 굴복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는 축소하고 명령은 과장시키고 형벌은 약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자기를 착취하는 분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미혹된 하와의 눈에 선악과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 것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진 욕망의 씨가 커서 죄가 출산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욕구에 마음이 치우치면 건강한 판단과 정신을 소유하지 못하고 욕망적 감성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합리화 시켜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가인이 질투의 욕망에 휩싸여 동생을 죽인 것을 합리화 시킨 것이나, 에서가 육신의 욕구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 다윗을 질투해 죽이려한 사울도 그런 경우입니다. 이렇게 뒤틀린 욕망이 합리적인 생각을 압도해 버린 사건들은 우리의 시대에도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깨달아 건강한 지성과 합리성으로 판단력을 가지고 시대를 섬기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와가 유혹당하는 과정을 보면,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여겨 자신도 먹고 아담에게도 줍니다. 즉 유혹은 잠시이지만 이성을 마비시키는 기쁨과 매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욕망적 요구를 자극하고, 나중에는 우리가 자포자기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건강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십니다. 복음이란 것은 감성에 먼저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과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깨닫는 건강한 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성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이성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거꾸로 합리적인 판단과 생각이 아닌 감정을 자극하고 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는 건강한 객관성 보다는 개인의 주관성을 중시하므로 합리성 보다는 포퓰리즘 같은 감정적 욕구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가지고 사회적인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올바른 판단을 가져야 합니다.

유혹에 대한 처방은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세 가지에 대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육신의 정욕에 대해서는 영적인 문제는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사단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는 안목의 정욕의 유혹에 대해서는 인생의 빈 공간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예배할 때 채워짐을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의심치 않고 고백하심으로 물리치셨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우리의 판단 기준은 오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욕망적 감성이 건강한 정신을 압도하지 않도록 주님과 동행하며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을 근거로 판단하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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