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느웨에 대한 회개의 선포와 그 결과
1) 당시 앗수르인들의 종교관
히브리인 요나의 멸망 선포에 대해 왕과 온 국민들이 회개했다. 그 이유는 죄악을 돌이키지 않으면 40일 후에 멸망 당하리라는 선고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방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 선지자의 선포에 대한 응답과 회개는 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종교관을 살펴보자면 그들은 여러가지 신들을 우상으로 섬겼다. 특히 바벨론으로부터 전수받은 태양신(사마스), 달신(신), 우뢰의 신(아달), 여성의 신(이스달)들을 섬겼다. 그러나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신은 '앗수르'라고 불리는 군신(軍神)이다. 군대의 신, 전쟁의 신으로서 그 신의 명칭이 앗수르 국가의 명칭이 된 것이다. 그들은 그 '앗수르' 신을 팔레스틴이나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어떤 신들보다 강한 존재로 자랑했었다(사10:10). 그렇다면 생면부지 이스라엘의 한 선지자의 선언에 온 나라가 회개한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베옷을 입고 온 날 사람들과 왕까지 심지어는 가축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하는 풍습은 비단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회개 풍습이 아니다. 고대 동양인들이 국가의 큰 재난이나 재앙이 닥치면 행했던 신께 대한 제사 의식 중 한 가지이다. 그 다음 그들은 특이한 신적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나타내는 풍습이 있었다. 앗수르에는 신탁을 받은 술사들이 종종 예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갑자기 당돌하게 나타나 담대하게 앗수르의 운명을 선포하는 요나에게 어떤 강한 인상과 두려움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앗수르인들의 회개는 요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돌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구원의 능력이 요나의 선포 속에서 나타났기에 완악한 니느웨 사람들도 그 죄악을 회개했을 것이다.
2) 하나님 뜻이 변혁되는 예
요나는 하나님께서 애초에 니느웨를 멸망시키실 뜻을 돌이키신 사실에 심한 의문과 불만을 나타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래 정하신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신가? 그 경우는 어떤 때이며 그와 같은 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니느웨에 대한 멸망을 선고하신 후 그 뜻을 돌이키신 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예는 하나님의 섭리에 여러번 발견된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의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18:8)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그 예가 수없이 많다(시78:38 ; 대하12:12). 이와 같은 하나님의 처사는 그 절대적 구속과 심판의 섭리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절대적인 계획의 일환이 된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이미 악인들이 돌이켜 회개할 사실까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신30:2, 3).
2. 요나의 불만
1) 섭리에 대한 인식의 한계
요나는 대단한 불만을 나타냈다. '심히 싫어하고'라는 말은 정서적으로 혼란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불만의 감정을 지니게 됐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반드시 심판하사 멸망시키실 것을 크게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며 니느웨 민족이 그가 선포한 회개 명령을 불복종하므로써 심판 당할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와 같은 기대와 상반된 결과를 하나님께서 이행하신 고로 극한 불만에 쌓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요나의 불만은 당시 율법의 '인과응보' 법칙에 물든 유대인들의 편협된 의식을 발로다. 우리는 '악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신다'는 의식을 욥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의인은 흥하고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원리는 맞는 이치다. 그러나 악인도 회개만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삼차원적인 원리를 하나님의 용서의 섭리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 악인만이 반드시 멸망 당할 것이다.
2) 사랑에 대한 이해부족
요나의 불만 요인은 더 적극적인 요소가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외에 이방인이자 원수인 앗수르 민족에게도 관심을 지니고 계신다는 점이 요나의 불만의 핵심이다.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이 그야말로 당시 요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 선민들만 사랑하시고 이방 민족들은 미워하셔야만 했다. 아니 아예 관심을 보이시지 않아야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시고 더 나아가 그들을 당신의 창조와 통치와 구원의 은혜 안에 포함시키려고 하신다는 사실에 경악과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은 불만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선민특권 사상, 또는 이방 민족 배타 사상의 발로다. 그리스도 예수는 마20:1-16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유대 민족의 편협성을 잘 지적했다. 인자한 포도원 주인이 늦게 온 자들로 부터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5)고 물은 예와 같다. 하나님의 한없는 초월적인 사랑은 유대인이든 앗수르인이든 차별없이 적용된다는 진리를 요나는 이해치 못했던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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