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과 화해
[누가복음 12장 49절~59절]
49절 -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절 -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절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절 -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절 -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절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절 -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절 -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절 -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절 -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절 -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루마니아의 푸로레스코 목사가 공산당에게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극심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끝까지 버티자, 공산당은 그를 회유하기 위해 비인도적 방법을 썼습니다. 그들은 그의 눈앞에 열한 살짜리 어린 아들을 데려다 놓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을 가했습니다. 푸로레스코 목사는 자신의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아들의 고문당하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때 고문으로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아들이 “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나는 배신자가 된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싶지 않아요”라고 외쳤습니다. 푸로레스코 목사는 아들의 말에 용기를 얻고 끝까지 항거했습니다.
신앙의 깊이는 고난에 대처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려울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1. 위의 글을 읽고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고난은 무엇인지 함께 나눠 봅시다.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의 삶을 다룬 <섀도우 랜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그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로서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이혼녀와 결혼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기쁨은 아내의 골수암으로 끝을 맺는데, 그가 고통 속에서 외치는 한마디가 중요하게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쁠 때에는 속삭이시고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양심에 조용히 말씀하시지만, 고통 중에는 고함을 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그의 고난은 사랑할 사람을 만났는데, 그녀가 질병으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각자가 겪은 고난에 대해 나눌 때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답하도록 인도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누구나 나름대로 고난을 겪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2. 예수님은 세상에 무엇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까?(51절)
예수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려 오신 게 아니라, 분쟁케 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화평이 아닌 분쟁을 주러 오셨다고 선언하신 것은 충격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이 최종적으로 하실 사역 곧 고난과 십자가에서 사역의 결과로 나타날 상황들에 대한 것입니다. 49절에서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받아야 할 세례 때문에 답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불과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즉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사역이 이뤄지면 세상은 나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복음에 귀를 막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한 가족 안에서도 복음에 대한 반응에 따라 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분열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일어날 것입니다. 그 분쟁을 이겨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해 적당히 타협하고 주저 앉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답답해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 고통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는 화평을 택할 것인지, 예수님으로 인한 분쟁을 택할 것인지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이어서 예수님은 무리에게 무엇이라고 책망하십니까?(56절)
천지의 기상을 분별할 줄 알면서도 어찌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유대 사람들은 서쪽 곧 지중해에서 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오겠다고 여기고, 남쪽 곧 아라비아 사막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날씨가 덥겠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예상은 어김없이 맞아 떨어졌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생활 양식을 바꾸고 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 사람들은 천지를 잘 분별하면서도 장차 다가올 심판에 대해선 무방비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불이 세상에 던져지는 시기가 되었고 분쟁하는 시기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예수님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그분을 대적하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땅에 부는 바람은 분별했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심판의 바람은 분별하지 못했고, 공중의 구름은 분별했지만 심판의 구름이 그들을 덮는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에 징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한 그분이셨고, 예수님이 전하신 메시지와 행하신 기적들은 그분이 메시아임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고의로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외식하는 사람들에겐 심판밖에 없습니다.
4.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58~59절)
고소할 자와 함께 재판장에게 갈 때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청중에게 고소할 자와 함께 재판장에게 갈 때 길에서 화해를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재판장은 하나님이시며, 고소할 자는 무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결국 이 말씀은 예수님이 무리에게 화해하자고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화해를 재판정으로 가기 전에 이뤄야 합니다. 재판장 앞에 서면 어떤 화해이든 불가능해집니다. 그곳에는 오직 재판만 있을 뿐이고 화해의 기회는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항상 잘못을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화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시는 예수님과 화해하기보다 그분을 붙잡아 죽임으로써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창문을 닫는다고 바람이 불지 않고 비가 오지 않으며 홍수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창문을 닫고 집 안에 있을 때 홍수가 난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시대를 가장 잘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화해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서,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해결해야 합니다. 옥에 갇히면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거기서 나오려면 호리도 남김없이 모든 빚을 갚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값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과 화해하고 빚을 탕감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5.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가치관에 맞설 때 어떻게 합니까? 세상에 물들지 않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바야흐로 세상은 다원주의 시대입니다. 현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런 성향은 종교에도 그대로 나타나 어느 종교에도 구원이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의 분쟁이나 불이익을 두려워해 자신의 믿음을 떳떳이 밝히지 못한 채 적당히 섞여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만큼은 분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6. 예수님과 날마다 교제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동행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분과 동행하면서 하루하루를 살면 세상이 두렵지 않고 세상을 이길 힘도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과 친하게 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린 사람은 세상에 끼칠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이기지도 못하고 유혹도 이기지 못하며, 환난과 근심에서 자유롭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싸워 이기려면 날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 말씀 읽기, 묵상, 기도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영적 훈련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의 강력한 군사로 만들어 줍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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