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
[이사야 9장 1절~7절]
1절 -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절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절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절 -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절 -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절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절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1. 이사야는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장차 올 메시아는 어디서 활동하게 됩니까?(1~2절)
메시아는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예언했습니다. 메시아는 갈릴리에서 빛을 비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가장 북쪽에 있는 갈릴리는 예로부터 이방인들의 집단 거주지였고,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북방 민족이 침공해 올 때 가장 먼저 유린 당하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유대 사람들에게조차 멸시와 천대를 받은 지역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갈릴리는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메시아의 사역이 시작되어 빛이 비취게 될 것을 이사야는 예언했습니다. 메시아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당시로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고, 갈릴리의 소외된 백성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셨을 때, 이사야 9:1~2절을 인용했습니다(마 4:14~16). 이사야의 예언은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죄악으로 캄캄한 인생들 속에 찾아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춰 주십니다. 죄에 빠져 있던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영화롭게 되고 구원에 동참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2.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어떤 특징과 이름을 갖습니까?(6절)
메시아로 오시는 아기는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고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태어날 한 아기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지만 어깨에 정사를 멜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기묘자라는 호칭은 메시아의 신비로운 사역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메시아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모사라는 호칭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탁월한 지혜를 지닌 존재라는 뜻입니다. 또 메시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것으로서, 찬양 받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말해 줍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호칭은 아들과 상반되는 개념이기보다 메시아가 영원한 보호자로 임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이라는 호칭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온전한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메시아는 분명히 아기로 오시지만 이 땅에 친히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다는 것, 연약한 아기로 오신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셨고,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한 지혜입니다.
3. 메시아의 도래는 무엇 때문에 가능합니까? 그 일이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7절)
메시아의 임하심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있습니다. 그분의 열심이 그것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임하시는 데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있습니다. ‘열심’을 더 정확히 번역하면 ‘질투, 시기심’이 좋을 듯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원수에게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죄로 가득한 흑암의 땅에 빛을 비추시고 메시아를 아기로 보내시는 까닭은 그분의 질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질투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백성들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열심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아는 임하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없는 하나님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확실히 임하고, 그 나라는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를 가져 올 것입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위에 앉으셔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십니다. 그 나라는 인간의 열심 위에 기초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열심 위에 기초를 두고 기둥을 세웁니다. 그 나라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가 오고 가도 그 나라는 든든히 서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질투하시면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4. 이 시대에 ‘사망의 그늘진 땅’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그 땅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망의 그늘진 땅’은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땅 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의외로 가까운 곳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위에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끼리끼리 모여 있는 게 너무나 익숙해 그늘진 땅을 자주 놓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사망의 그늘진 땅에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가족과 이웃들 중에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섬긴다면 빛이 비출 것입니다.
5. 하나님이 질투하실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끔찍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뜨겁게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만이 그분을 뜨겁게 사랑하며 헌신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할 줄도 압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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