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돌아오리라

[예레미야 50장 11절~20절]
11절 - 나의 소유를 노략하는 자여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타작하는 송아지 같이 발굽을 구르며 군마 같이 우는도다
12절 -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13절 -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주민이 없어 완전히 황무지가 될 것이라 바벨론을 지나가는 자마다 그 모든 재난에 놀라며 탄식하리로다
14절 - 바벨론을 둘러 대열을 벌이고 활을 당기는 모든 자여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라 그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15절 - 그 주위에서 고함을 지르리로다 그가 항복하였고 그 요새는 무너졌고 그 성벽은 허물어졌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내리시는 보복이라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는도다
16절 - 파종하는 자와 추수 때에 낫을 잡은 자를 바벨론에서 끊어 버리라 사람들이 그 압박하는 칼을 두려워하여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고향으로 도망하리라
17절 -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뼈를 꺾도다
18절 -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의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19절 -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20절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1. ‘나(하나님)의 소유’란 무엇이며, 노략하는 자는 누구입니까?(11, 17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산업이며 과거 약탈하는 자는 앗수르였습니다. 본문이 선포되던 당시의 약탈자는 바벨론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은 고대 4대 문명 중의 두 문명인 바벨론 문명과 애굽 문명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교통과 무역의 연결 통로였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강한 나라였다면 지정학적 특성으로 가나안을 차지하는 것에 크게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대국에 비해 너무나도 약했습니다. 애굽은 전통 있는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을 수백 년간 노예로 삼았습니다. 또 가나안의 동북쪽에 있는 강한 나라들은 시시때때로 이스라엘을 압박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나라가 앗수르입니다. 앗수르는 결국 주전 721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또 히스기야 왕 때는 남 유다 왕국을 침공해 예루살렘을 포위한 적도 있었습니다. 바벨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 유다 왕국은 앗수르에 이어 등장한 바벨론에 의해 주전 586년 멸망하게 됩니다. 당시 상황이 이러했기에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벨론이 그분의 산업인 이스라엘을 약탈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2. 하나님의 소유를 노략하는 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11절)
하나님의 소유를 노략하는 자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타작하는 송아지같이 발굽을 구르며 군마같이 울었습니다.
전쟁의 승리자는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특히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던 시대에는 그 정도가 심했습니다. 오늘날은 전쟁에 승리한 나라도 UN의 간섭이나 국제법적 울타리 안에서만 이익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이 선포되던 시기는 달랐습니다.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무자비하게 침략했습니다.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노예로 잡아 갔습니다. 남녀노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은 생산과 무역 등 경제적 수단을 통해 국가의 부를 축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가급적 무력을 사용한 전쟁은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전쟁과 정복을 통해서만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상대의 영토와 사람, 재화를 얻을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을 약탈하던 자들은 그들의 승리에 즐거워했으며 기뻐하고 자축했습니다.

3. 하나님은 그분의 소유를 노략한 세력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12~16절)
이스라엘을 약탈한 자들의 어미가 수치를 당하고, 멸망하여 황무지처럼 될 것입니다. 바벨론은 침략을 받아 항복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행한 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앗수르나 바벨론의 손에 넘기신 것은 그들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산업인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죄악을 책망하시고 깨닫게 하기 위해 앗수르와 바벨론을 채찍으로 사용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침략한 적들은 기고만장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잔혹하게 약탈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멸망하게 됐습니다. 이제 바벨론의 최후도 앗수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민이 없는 황무지가 되고 파종하는 자와 추수할 때 낫을 잡는 자가 끊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적의 침략으로 바벨론은 항복하고 이스라엘에게 행한 그대로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왕 당시에 매우 강성하여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나라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벨사살 왕을 마지막으로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에 멸망했습니다.

4.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지 나눠 보십시오(참조 18~20절).
하나님은 그분의 산업인 이스라엘을 약탈한 앗수르와 바벨론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약탈했기 때문에 거해진 심판이 아닙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약탈했기에 앗수르와 바벨론을 심판하신 거라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만 사랑하는 분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편협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앗수르와 바벨론을 심판하기 이전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앗수르와 바벨론의 교만과 악이 심해졌기에 그들은 심판받아 마땅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이제 다시 그들을 회복케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의 고통 중에 회개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원리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용서하시며 고통에서 건지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나 죄에 대해 심판을 받지만, 누구나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다시 자녀삼아 주심을 기억합시다.

5. 본문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품으신 사랑이 어떠하며,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그분의 소유된 이스라엘을 끔찍이 사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언약을 주셨으며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편협하지도 순간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오해하고 그분이 주시는 그지없는 사랑을 간과했습니다. 함부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되 자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높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선지자를 보내 회유하셨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눈이 가려진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은 그들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심판으로 이방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여전히 하나님은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선택과 돌봄, 약속의 말씀과 권면, 꾸지람과 징벌, 용서와 회복, 이 모든 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자녀를 잊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십니다. 회복의 때를 기다리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인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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