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16절)
선지자의 사명 -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전달된 계시를 온전히 선포하는 것이다. 더욱이 선지자의 인격은 하나님의 손에 전폭적으로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의 전 삶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지자 요나는 이러한 선지자적 사명을 무시하고 이방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다. 선민 의식에 의해 이방을 배격하고 멸시했던 당시 상황으로서는 요나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나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허물은 가리워질 수 없었다. 당신의 계획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끝까지 추적하시고,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요나의 도피를 차단하셨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뜻을 포기하시지 않는다(롬 8:31~39).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편견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 따라서 모두를 구원하기 원하신다(요 3:16). 인간이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없으며 또한 하나님을 등진 자의 거처는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다(시 139편).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자연의 변화를 주도하신다(막 4:39~41). 모든 재난의 궁극적 해결 방법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시 73:28).
[1절]
여호와의 말씀이...임하니라. 이러한 표현은 선지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진 형식으로서 하나님의 계시의 전달 과정과 그들의 소명을 나타내 주고 있다(호 1:1; 욜 1:1; 미 1:1; 학 1:1; 슥 1:1).
[2절]
큰 성읍 니느웨. 앗수르의 수도(왕하 19:36).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니느웨에 우상 숭배를 비롯하여 궤휼, 강포, 늑탈(나 3:1), 극도의 이기심(습 2:15), 전쟁과 약탈, 냉정하고 비정한 인간성 등이 만연하여 하나님께서 심히 진노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죄악에도 깊이 관여하셔서 그들의 타락을 중지시키시고 범죄한 영혼들에게 당신의 살아 계심과 만유의 주 되심을 깨우치신다(창 6:11~13; 창 18:20, 21).
[3절]
다시스, 욥바. 지중해 연안의 도시(대하 9:21).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이는 요나의 잘못된 성령관을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말로서 그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하나님의 영이 미치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갔던 것이다. 여기서 '여호와의 낯'(히, 페네이 예호와)이란 하나님의 인격 내지는 임재 또는 그분이 임재하셔서 통치하는 장소 등을 의미하는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이다(창 4:14; 시 104:29). 이스라엘 내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의 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결국 이 말은 성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시적인 공간을 초월하실 뿐 아니라 불가시적인 정신 세계에까지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고 계신다(시 139:7~16). 한편 하나님께서는 특정인에게 당신의 사명을 맡기실 때 그 사명과 더불어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공급하신다(수 3:7~17).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설사 감당키 어려운 사명을 주실지라도 결코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는 자신의 불순종의 의사를 행동화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악한 생각은 반드시 그 삶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으며(창 4:5~8) 그런 이유에서 인간이 품고 있는 내면의 죄는 정죄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마 5:27~32). 한편 요나가 하나님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지 못한 것은 그 임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 이방인의 회개를 통해 초래하게 될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의 특권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매우 편협한 국수주의(Ultra-nationalism)와 그릇된 신앙관에 얽매인 행동이었다(4:2). 만약 요나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신 것이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데(벧전 2:9) 목적이 있음을 알았더라면 이런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내에 현존하고 있는 분파 의식과 특권 의식은 바로 이같은 편협한 신앙관 때문에 조성된 경우가 허다하다(고전 3:3~9).
[4절]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달하시는데(시 19:1~6), 이를 가리켜 일반 계시라 한다. 대풍은 요나의 죄악을 꾸짖고 바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라 할 수 있다(시 135:7).
[5절]
배 밑층에...잠이 든지라. 죄를 지음으로써(3절)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요나는 육체적인 피로까지 겹쳐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죽음과 같은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그의 잠은 휴식이 아니라 절망과 고통으로 인한 허탈과 자기 포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영적인 무감각은 인간으로 하여금 전인격적인 허탈과 곤고함을 느끼게 한다. 이에서 헤어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사 40:31).
[6절]
이방 선원들은 폭풍을 견디기 위해 동원한 온갖 수단이 모두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의지해 보고자 했다. 이는 마치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찾는 것처럼 지극히 본능적인 반응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요 피조물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7절]
제비를 뽑으니<에 서론, 제비뽑기>.
[9절]
히브리 사람. 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할 때 특별히 업신여기는 표현으로 상용한 호칭(창 39:14; 창 41:12; 출 1:16; 삼상 4:6)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했던 명칭(창 40:15; 출 2:7)이기도 하다<렘 34:14, 히브리, 히브리인>.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요나는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이시라고 소개하였다. 즉 그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자 그 존재들의 지지자이신 여호와야말로 이 땅에 존재하시는 유일한 참 신이라고 고백한 것이다(행 17:24, 25). 그가 이같이 하나님을 소개한 것은 자신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께 죄를 범했으며 그를 피해 도피했다는 고백이다. 이처럼 올바른 신 지식(神知識)은 자신과 자신의 허물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호 5:4).
[12절]
요나는 자신의 과오로 인해 폭풍이 일게 되었음을 시인하고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요청했는데 이는 그가 회개하는 심령으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기꺼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눅 15:21)<눅 13:1~9, 회개>. 한편 요나의 희생적 태도는 자신의 유익보다는 이웃의 생명과 유익을 위하는 참 사랑의 증표이다(요 15:13).
[14절]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한 선원들의 말속에는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행동이 자기들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그의 죽음에 대한 보응을 면케 해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5절]
이러한 사실은 폭풍의 원인이 전적으로 요나에게 있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요나를 바다에 던진 책임을 선원들에게 전혀 묻지 않으셨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폭풍과 풍랑이 범람하는 듯한 이 세상을 살아갈지라도 죄악 된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한다면 항상 영혼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요 14:27).
(1:17~2:10절)
불순종의 대가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되 영원히 버리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한 요나를 바다로 던지셨지만 그에게 큰 물고기를 피신처로 제공하셨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고기의 뱃속에서 3일간을 지내면서 자신의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할 수 있었으며 자신을 구원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고난을 통해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게 된다(시 51:1~3). 자신의 비뚤어진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설정할 수 있다(눅 15:21).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욥 42:2~6). 더욱 성숙한 신앙 인격을 소유할 수 있다(약 1:2~4).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고난을 불평의 근거로 삼거나 절망의 순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편 요나의 3일간의 물고기 뱃속 생활과 토해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하는 사건으로서(마 12:40; 마 16:4; 눅 11:29)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와 인류 구원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시사해 주고 있다.
[17절]
큰 물고기. 바다 동물 중 가장 큰 부류에 속하는 고래나 상어로 추정되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물고기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물고기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로서 요나가 3일 동안 그 뱃속에서 체류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삼일 삼야. 온전한 3일, 즉 72시간을 뜻하지 않고 날수로 3일을 의미하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다. 이 기간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요나는 3일 동안 맑은 정신으로 상처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범죄한 영혼이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해설
요나의 사명 (1~2절)
1절은 간략하나마 앞으로 전개될 예언이 인간 요나의 말이 아닌 여호와 자신의 말임을 밝히는 표현으로서 전형적인 예언서의 서론 양식이다(호 1:1; 욜 1:1; 미 1:1). 그리고 2절은 요나서 전체 내용의 개괄적 예고이자 본서에 기재된 사건의 도입부이다. 요나서는 비록 짧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말로 된 예언과 동시에 거기 얽힌 사건 전개가 성경 전체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요나서의 예언 대상은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아닌 이방 앗수르 제국으로서 이는 구약의 하나님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지방신으로 간주하는 종교사적 오해를 철저히 불식시킨다(창 1:1).
요나의 도피 (3절)
본서의 전개를 위한 상황 설정이 기록된 부분이다. 이방 땅 앗수르에 대한 선지자적 사명을 거부하고 도망한 요나의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의 왜곡된 특권 의식과 편협한 국수주의적 신앙의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초자연적 섭리와 요나의 좌절 (4~16절)
풍랑으로 인해 요나의 죄가 발각되고(4~10절) 죄의 대가로 바다에 던져지는 이 장면은 완결된 성경 계시가 없었던 시대에 있어서 역사에 극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 행동을 증언한다.
요나의 회개 (1:17~2:10)
본문은 물고기에게 삼켜진 요나(1:17), 요나의 회개(2:1~9), 구원(2:10)으로 구분되며, 본서의 1부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방 선교를 거역하던 요나의 도피 행각이 여기서 마감된다. 본문은 요나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회개한 후 다시 원래의 소명을 받은 위치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은 진리를 시사한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롬 8:21~39).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범우주적이다(요 3:16).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시 139편).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과 변화를 주재하신다(막 4:39~41). 모든 재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다(시 73:28).
# 핵심
1~10절
이스라엘을 괴롭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에게, 하나님의 징계로 재난이 임했다.
요나 (1절)
'비둘기'란 뜻으로,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의 통치시대(B.C. 793-753)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요나는 구약의 선지자로서는 최초의 이방 선교사였다. 그는 갈릴리의 가드헤벨 출신이었고, 여로보암 2세에게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을 점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왕하 14:25). 본서 2장에 나오는 그의 회개와 결단의 기도문이 시편 형태였음을 볼 때, 성경에 정통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묵상
선지자 요나의 사명 (1~2절)
요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된 계시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는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었기에 전폭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부여된 선지자적 사명을 무시한 채 이방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따르는 성도는 항상 외치고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나의 신앙 자세 (3~17절)
요나의 배타적이고 편협하며 의식적인 신앙 자세는 그로 하여금 자신이 받은 소명을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보편적인 만민 구원 사상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민의식을 깨뜨리며, 하나님의 구원 대상에는 민족적, 지역적 제한이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 (17절)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요나를 위해 예비된 장소는 바다의 큰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배타적인 특권의식을 깨뜨리고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대자연을 직접 주장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요나는 현재 당하고 있는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임을 고백하고 자신이 받는 징계가 마땅함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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