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고보서에서 반대의 대상

① 야고보는 바울을 반대하였는가? 얼핏 보기에는 야고보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을때 그는 롬3:28, 롬9:32, 갈2:16의 중심적인 바울의 진술들에 반대하는 변증을 하고있는 듯이 보인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2:24). 바울이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 3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밑받침하는 것으로 인용하였던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말씀인 창15:6의 주석에 비추어 야고보가 2:21 이하에서 자신의 명제를 변증적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볼때 이러한 인상은 더욱 밑받침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속이는 것이다. 롬3:28에 표현된 원리는 야고보에 의해 다루어진 표어와는 다른 말로 표현되었다. 롬3:28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가 없는 믿음을 통한 칭의를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야고보의 변증은 바울의 명제가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된 표어를 향한 것이었다.
② 야고보는 이단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태도, 즉 하나님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형이상학적 이론이 되어버린 기독교에 직면해 있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이론을 너무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것들은 더이상 행실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것은 지성주의를 통해 질식사하는 생명없는 정통과 신앙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세상에 연합하여 살아가면서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켜 버리는 자유주의일 수도 있다. 야고보서의 저작 당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볼때 그것은 두번째 세대의 전형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항한 야고보의 변증은 신약에서 눅6:46에 나오는 말씀의 편집을 통해 마7:21과 같은 진술로 확대 해석한 마태와 가장 유사하다고 하였다

2. 야고보와 바울

① 야고보는 해이해지고 습관적이 되어버린 기독교인을 향하여 행위의 실천적인면을 강조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유대인들의 특권과 갈라디어서 3장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주장하는 유대주의화된 그들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즉 바울은 율법이라는 기독교 이전의 길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의 참진리를 피력하였다. 반면 야고보는 해이해진 기독교적 신앙을 향하여 살아 움직이는 실천적인 믿음을 강조하였다.
② 야고보가 자주 사용한 단어는 믿음으로, 이 믿음은 유대교적 바탕 위에 기독교적 행함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였다. 반면 바울의 행함은 어떤 문맥과도 적합하지만 믿음과 관련해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이 차이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더 낫다. 바울에게는 믿음은 그 내용의 기능이었다.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되도록 스스로를 허용하는 정도만큼 믿음을 가지고 있다. 믿음은 말씀의 창조였다(고후4:4,6). 믿음은 그 내용의 힘에 의해 사랑을 통해 역사하였다(갈5:6).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순종(롬1:5)으로써만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행함'이라고 부른 것을 바울은 의의 열매 또는 성령의 열매(빌1:11 ; 갈5:22)라 불렀다. 때때로 바울은 이 열매를 행위라 지칭하기도 하였다(골1:10). 그러나 일반적으로 바울은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모세율법이 요구하는 순종의 행위에 대하여 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야고보에게 믿음은 랍비신학에서처럼 다른 행위들과 나란히 있는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현상적이고 경험적인 유형의 태도, 믿는 행위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 유형의 태도가 그에 걸맞는 행실, 즉 행함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그토록 애써서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위'라는 용어의 서로 다른 용법과 관련하여 바울에게 '행위'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었던 반면에 야고보는 바울이 성령의 열매라 부른 것을 '행위'라는 용어로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고보는 '행위'를 모세 율법의 의미로 말한 적이 결코 없었다.
③ 이러한 용어 사용의 차이를 알면 우리는 야고보와 바울간의 내용적이고 신학적 관계를 규명하는데에 방향을 잡을수 있게 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야고보가 행위에 관하여 말하였던 것을 바울이 의의 열매로 말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바울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야고보에게 동의했을 것이다. 그에 걸맞는 행위를 통해 드러내 보여지지 않는 믿음은 의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고전6:9 ; 고전10:5-13). 물론 바울은 이 순종의 결여를 행함없는 믿음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순종이 없는 곳에 과연 믿음이 존재하는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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