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고보서

1) 저자
야고보서의 서두에는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저자라고 밝혀져 있다(약1:1).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이 야고보를 예수의 친동생으로서 예수가 승천한 후에 예루살렘의 감독이 되어 초대교회를 이끌어 갔던 것으로 믿고 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이 소식을 야고보에게 보고했으며(행12:17),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도 이 야고보였다(행15:6-29).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의로운 야고보'로 불리웠으며, 히브리인 가운데 히브리인으로서 대단히 엄격하고 금욕적이며 유대의 모든 율례에 철저했던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이 야고보를 불의한 방법으로 돌로쳐 죽인 대제사장 아나누스(Ananus)는 정직한 유대인들의 항거를 견디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쫓겨나고 말았는데, 이 사건은 당시 유대 사회 전체에서 야고보가 얼마나 높은 지위와 평판을 얻고 있었는지를 잘보여 준다.

2) 목적
야고보가 의롭다는 것은 도덕적 원동력이 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구원하는 힘이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말로만의 의로움만을 주장하면서 편파적이면서 진실을 가린채 허위만을 드러내고 있고 무기력한 모습을 하고있는 교회와 거짓된 지도자들의 올바른 양심을 자극하려 했다.

3) 오늘을 향한 교훈
첫째는 입으로만 거룩을 말하면서 위선적인 자들과 사랑을 말하면서 형제와 다투는 자들을 향해서 신앙과 생활이 일치해야 함을 가르친다. 나아가서 참된 신앙은 삶을 바꾸어서 삶 속에서 행해져야 함을 말한다. 둘째로 구약에서 예언자들이 사회의 개혁자들이었듯이 야고보서는 이 사회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사랑의 실천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는 신약의 예언서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드리는 것뿐만아니라 자신의 현재적인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거되고 보여져야만 하는 것이다.

2. 율법

1) 바울의 율법
바울은 일반적으로 '율법'이라는 단어를 모세의 십계명을 포함한 구약성경의 율법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바울은 율법아래서의 삶과 그리스도의 복음 아래서의 삶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율법의 불완전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참뜻의 부정적인 모습을 표현한 금지령으로써, 다만 죄를 드러낼 뿐이다.(롬7:7) 율법은 실제로 죄를 자극하며 (롬4:15 ; 롬5:20 ; 갈3:19),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전15:56), 바울은 율법 자체를 죄와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죄와 율법을 밀접하게 연관시켰다(롬3:20). 바울에게 율법은 상대적인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이 율법에 나타난 것이 아니므로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이 율법에 나타난 것이 아니므로 상대적이며,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에 근거한 계약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과 성취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시적이다. 이 율법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사람들에게는 율법은 더이상 아무 효력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 참여함으로써 율법의 모든 것이 마침이 되는 것이다.

2) 야고보의 율법
야고보가 사용한 율법은 '자유의 완전한 율법'이며, 이는 약1:21-23에 표현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의 요약된 표현이다. 말씀은 복종을 요구하지만 자유이다. 자유의 율법은 최고의 법(약2:8)이며, 고정된 율법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롬14:4).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 안에서 스스로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바울처럼 잘못된 율법 이해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은 관심 밖이었으며, 약2:14-26에서 바울의 율법에 대한 설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공격하면서, 참된 신앙은 자유와 사랑의 율법에 의해서 스스로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3) 루터의 율법
루터의 율법에 대한 설명은 철저히 바울을 따르고 있다. 이는 루터의 '율법과 복음'이라는 설명과 '이신칭의' 교리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죄와 사망에 이르게하는 율법에 매여있는 인간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루터는 야고보의 율법관이 마치 율법이 우리의 '칭의'에 기여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야고보서를 지푸라기라고 했다. 그러나 야고보의 율법은 구원받은 자의 율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점에서 칼빈의 '제3의 율법', 즉 구원받은 이후의 율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점은 바울과 야고보의 두가지의 율법 이해를 모두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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