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기는 신앙

[고린도전서 7장 29절~31절]
29절 -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절 -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절 -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빌립보서 2장 5절~11절]
5절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절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절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저희 형님이 공군 군목으로 계실 때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납니다. 대전 기교단 군종 실장으로 있을 때 기교단 단장인 어떤 한 장군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뒤에 당시 대위 계급장을 단 군목 형님을 보고 '목사님, 제가 봉사할 일이 뭐 없겠습니까? 분부만 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겠습니다'라고 물어오더랍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문간에 서서 주보를 나눠주며 훈련병들 안내를 보라고 했더니 그 별을 단 장군이 머리를 빡빡 깎고 땀내나는 훈련병들에게 겸손히 주보를 나눠주면서 인사를 하고 자리를 안내할 때 훈련병들과 부대내 장교들이 황송해서 어쩔줄을 몰라 하고 복음 전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계급을 생각한다면 장군이 훈련병 앞에서 굽신 굽신 인사하면서 안내를 보겠습니까? 계급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자기보다 까맣게 아래 서열에 있는 군목한테 '목사님, 목사님'하면서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고 봉사하겠습니까?
이런 자세가 바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자세요, 신앙 생활의 멋도 있고 맛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기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자세입니까?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아내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라 이 세상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하였는데, 한마디로 하면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것들은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뜻깊고 멋진 말씀입니다.

1. 권세가 있어도 없는 자 같이 여겨야 합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권세는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겨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 공군 부대 장군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된 존귀한 성도들은 세상 권세 따위에 너무 큰 비중을 두지 말고 그까짓 것들은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기며 겸손히 봉사하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잔치집에 청함을 받아가거든 스스로 높은 체하여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아예 스스로 낮춰서 말석에 가 앉으라고 하시면서 만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더 높은 사람이 오면 낮은 자리로 밀려나서 창피를 당하는 것보다 스스로 낮추어서 말석에 앉았다가 청한 사람이 강청해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더 영광이 되리라고 하시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세가 있어도 없는 것같이 여기며 높아도 낮은 자같이 여기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참으로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멋도 있고, 맛도 있는 신자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실 뿐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생활로 본을 보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 권세를 버리시고, 높으신 분이시지만 낮은 자가 되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입니다. 참으로 가장 멋있는 행동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의 삼분의 이를 기록한 분이요, 삼층천에까지 올라가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극도의 신비를 체험한 분이지만 언제나 자기를 낮추어서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 '팔삭등이', '죄인 중에도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전 9:18절에 보면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누릴 권리가 있어도 그 권리를 다 쓰지 않는다고 했고 그것이 더 큰 상을 받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집사가 권사가 되고 권사가 장로가 되고 또 무슨 회장이 되도 그 전과 똑같이 겸손한 자세로 자기를 낮추고 높아도 낮은 자같이 생각하고 봉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권사나 장로나 부장이다 해서 어깨에 힘주고 대접이나 받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있어도 없는 것같이, 즉 높아도 낮은 자같이, 권세가 있어도 없는 자같이, 부자라도 가난한 자같이 여기며 또한 다른 성도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히 섬기면 얼마나 훌륭한 신자가 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제일 높은 자리만 차지하려 하고 중한 직분을 받았다고 목에 힘만 주는 사람입니다.
권세가 있어도 없는 자같이, 높아도 낮은 자같이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2. 물질이 있어도 없는 자 같이 여겨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재산상속 문제로 형제가 싸우다가 예수님을 찾아와 판결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아 내가 무슨 물건이나 나눠주는 재판장인 줄 아느냐"고 핀잔을 주고 나서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부자의 생명을 하나님이 불러가시는 말씀을 하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히 11:26절에 보면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부유하고 물질이 풍부하다고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모하거나, 또 물질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을 실족케 하는 일은 반드시 없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썩어 없어지고 안개와 같이 사라질 뿐인 헛된 것이기에 그것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기며 영원하고 참된 하늘의 가치를 더욱 소망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선행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여겨야 합니다.
착한 일을 하고 칭찬 들을 일을 하고 자랑할 만한 일을 했어도 없었던 것같이 여겨야 진실된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즉 선행을 하고 나서는 곧 없었던 것 같지 잊어 버려야지 그것을 나팔을 불면 이미 세상에서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금식할 때에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흉한 얼굴을 하지 말고 금식해도 안하는 것 같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고 내려온 후에 그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서 온 백성이 두려워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모세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려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눈물로 간곡히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침을 받고 15년이나 생명의 연장을 받았습니다. 그때 바벨론에서 축하 예물을 가지고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 왕은 너무 기분이 좋고 신이 나서 그 사절단에게 궁중에 있는 모든 것을 구경시켰습니다. 금고와 무기고와 보물 창고...등 안보인 것이 없이 다 들추어 내보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신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보물은 다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후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왜 노하셨을까요?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이 많을수록 자중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히스기야는 너무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만하다가 이방인에게까지 자랑삼아 다 들춰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선행이나 장점을 너무 나타내거나 너무 의식하는 사람은 실족하기 쉽습니다.
식물의 줄기도 무성하고 번창해야 되지만 뿌리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식물의 뿌리까지 햇빛에 다 노출시키면 그 식물은 곧 시들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부분이 있어야 건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서 하는 기도와 성경 읽기와 선행이 있어야 땅속 깊숙히 뿌리를 내린 식물과 마찬가지로 신앙이 튼튼한 법입니다. 신앙 생활에 숨은 선행이 없이 모두 드러내기를 즐긴다면 실로 위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권세가 있어도 없는 것같이, 물질이 있어도 없는 것같이, 칭찬을 들어도 못들은 것같이, 자랑거리가 있어도 없는 것같이 무게있고 깊이가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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