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큰 날
[스바냐 1장 14절~18절]
14절 -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절 -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절 -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절 -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절 -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스바냐 2장 1절~3절]
1절 -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절 -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절 -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배경 이해하기]
유다의 므낫세 왕(BC 697~642년)과 아몬 왕(BC 642~640년)이 우상 숭배를 조장하며 사악한 통치를 행한 이후, 요시야 왕(BC 640~609년)이 즉위합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비롯해서 영적, 사회적 병폐가 사회에 만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바냐는 BC 722년에 있었던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생각하며 유다에 영적 각성을 촉구합니다.
대제국 앗수르는 에살핫돈(BC 681~669년)과 앗수르바니팔(BC 669~626년) 치세 때 국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지나친 국토 확장 정책과 내란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흥 세력인 바벨론이 앗수르를 공격하기 시작했고(BC 626년), 결국 BC 612년에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이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고 앗수르를 멸망시킵니다. 앗수르바니팔이 죽기 전, 즉 앗수르가 여전히 강성한 시기에 있을 때 스바냐는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며 여호와의 심판이 유다와 열방에 임하리라고 경고합니다.
스바냐서는 12소선지서 중에서 요엘서와 함께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선포합니다. 1:2~4절에서는“내가…하리라”라는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심판을 행하실 하나님의 의지를 강조합니다. 1장에서 심판의 대상은 우상(바알, 4절)과 그 제사장들(그마림, 4절), 일월성신을 섬기던 자들(5절),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6절)입니다. 스바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이며 그날은 환난과 고통과 황폐와 패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4~15절).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여호와의 날(1:14~18)
‘여호와의 큰 날’(14절)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심각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유다의 죄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용사가 적군의 발아래 무릎 꿇고 슬픔과 두려움으로 울부짖듯이, 심판의 날에 유다 백성은 모두 그런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14절).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벨론 군대에 의해 유다 땅에 ‘황폐와 패망의 날’(15절)이 임합니다. ‘구름과 흑암의 날’은 하나님의 현현과 임재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날에 혼란과 공포가 임하리라는 것을 표현합니다. 스바냐는 경고용 나팔, 견고한 성읍, 높은 망대를 여호와의 날과 연관시켜 하나님의 심판이 전쟁과 같이 무서울 것임을 암시합니다(16절).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면 아무리 튼튼한 성벽도 인간을 보호하지 못하고 아무리 높은 파수대도 멸망을 막아 내지 못합니다.
유다 백성은 혼란과 공포로 말미암아 맹인같이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갈 길을 찾지 못하고 전멸당할 것입니다(17절). 유다 백성이 그러한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여호와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을 것입니다. 그 피는 마치 강물같이 흐르고 그들의 시체는 매장되지 못한 채 그냥 썩을 것입니다(17절).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했던 자들은 환난과 고통의 날에 재물을 의지하겠지만 그것들은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입니다(18절).
본문 연구 2: 구원을 얻는 길(2:1~3)
1장은 ‘진멸, 멸절, 분노, 황폐, 패망, 흑암’ 등의 단어를 사용해 마치 선전 포고하듯이 무서운 심판의 날을 예고했습니다. 이제 2장은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시작됩니다. 유다 백성은 ‘수치를 모르는’ 오만하고 강퍅한 사람들입니다(1절). 스바냐 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기 시작합니다. 2절의 ‘명령’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했던 율법의 규정과 규례(신 29:21, 27)를 의미합니다. 2절은 ‘명령이 시행되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이르기 전’ 등 같은 구절을 반복하면서 유다에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3절)이란 유다와 이방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위 ‘남은 자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우상 숭배를 그치고 교만과 악함을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멸망의 시간이 임박했다 해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3절에서 ‘공의’는 ‘공정함’, ‘정직함’, ‘정의로움’이란 뜻이고, ‘겸손’은 ‘내리누르다’, ‘굽혀 놓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전 인격을 복종시켜야 함을 뜻합니다.
[묵상 포인트]
하나님이 두려움과 공포와 혼란으로 다가올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신 것은 이방 문화와 우상 숭배에 빠진 유다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 백성이 빨리 회개하고, 공의와 겸손을 회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마지막 심판 날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나요? 가정과 내 삶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우상 숭배적 요소는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선지서에 누누이 등장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주로 우상 숭배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그때부터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선포하셨고 백성에게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일월성신이니 말감이니 하는 이방 우상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스바냐 선지자 당시 유다가 종교적으로 크게 타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척하면서도 이방 신전에 발을 들이는 등 이중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1:12). 오늘날 현대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거나,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5). 내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지는 않는지,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심판에 앞서 회개를 촉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느덧 죄에 무감각해진 영역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에 무감각해져서 죄를 짓고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유다를 향해 회개를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주목하십시오. 죄인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바냐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즉 심판의 예언이 시행되기 전에 돌이키라고 선포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부조리와 부패함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장 사악한 사람은 자기 죄를 은폐하거나 죄책감을 전혀 갖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악한 사람의 결국에 대해 유다서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 1:13)라고 합니다. 자기 죄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스바냐는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촉구합니다. 수치스러운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그분의 규례를 지키는 것, 이것이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숨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스바냐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기도문]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돌아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찾고 여호와의 규례를 준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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